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젠스위트 왕국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를 치료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
그것이 성황이 내게 전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이 말을 꺼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일을 해결한다면, 네가 받을 수혜는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직접 젠스위트 왕국까지 방문해 왕자를 치료하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젠스위트가 힐데스하임에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을지언정, 결코 황자의 신변에 위해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도 함께였다. 그에 더하여 만약을 대비해 호위 기사들을 붙여주겠다고까지 했다.
꼭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어투였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황이 직접 해결해도 될 일인데. 성황은 여전히 의술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신성력으로 치료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혹시나 나를 시험하기 위함일지, 아니면 성황이 직접 왕국에 방문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젠스위트 왕국의 왕자가 정체 모를 병에 시달려 죽을 고비를 맞이했다는 건 꾸며낸 말이 아니었으니까. 예전부터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였다.
“전하.”
그렇게 플라타 왕국에서 젠스위트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베이언에 있어야 할 현자가 나를 찾아왔다.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경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젠스위트 왕국으로 떠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됐네.”
파우스트는 침묵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젠스위트의 국왕은 신성 제국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황 폐하께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 말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그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나 내막에 대해서까지는 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나를 해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도 힐데스하임의 황자인 이상,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젠스위트 왕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정예 기사들로 꾸려진 호위단이 나를 보호하기도 할 테고.
“걱정 마. 어차피 거기 왕자가 아프다며. 그들에게는 내가 유일한 희망일 텐데 설마 해치기라도 하겠어?”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현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못 짚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젠스위트 왕족 중에는 유독 몸이 좋지 않은 자가 많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보고, 젠스위트는 신이 버린 일족이라 칭하지요.”
그런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현대 의학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가족력이겠지.
“허나 그런 말까지 나오게 된 데는 아무래도 젠스위트와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 큰 몫을 했을 겁니다. 과거, 폐하께서 젠스위트와 좋은 관계를 지니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성황 폐하께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지금의 자리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그건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틀어진 거지?”
성황의 옆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현자라면 모든 내막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사소한 이유로도 어제의 친우가 오늘의 원수가 될 수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젠스위트와 힐데스하임 간에 생긴 갈등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지요.”
현자는 성황이 어떻게 젠스위트와 친밀한 관계를 지니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성황 폐하께서는 아직 황자였던 시절에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실 수 있을지. 그렇게 내린 결론은 아직 힐데스하임의 아래에 있지 않은 왕국들을 편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편입된 왕국들은 분명히 폐하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신성 제국 전체적으로 보아도 큰 공을 세우시는 게 되지요.”
“그렇겠지.”
“그렇게 폐하께서 왕국들을 둘러보던 와중, 유독 기후가 좋지 않은 왕국에 이르렀습니다.”
한없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건조한 기후. 저주받은 사막이라 불리는 젠스위트 왕국이 바로 그곳이라는 현자의 설명이었다.
“힐데스하임에서는 젠스위트를 결코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곳의 기후는 신께서 저주를 내렸다고 봐도 마땅할 정도로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이니 말입니다.”
그것이 젠스위트를 강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라는 말도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성황 폐하께서는 과거 조화의 성배를 다루셨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권능 중 전하와 같은 것을 다루기도 하셨지요. 이를 테면 천후의 권능 말입니다.”
“……어?”
“놀라실 것 없습니다. 성물의 주인은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성배가 폐하의 손에 들려 있었다는 것은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과거의 성황은 힘을 베풀기에 적합한 인간이라, 성배가 인식했던 것일까.
그렇게 성배의 힘을 지니고 있던 성황은 헬리배드에서 내가 그랬듯 젠스위트에 비를 내렸으며, 그 덕분에 젠스위트 왕국의 국왕과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는 현자의 설명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성황 폐하께서도 신성 제국에 편입시킬 왕국을 찾고 계셨습니다만…… 젠스위트 왕국의 국왕과 너무 가까워져 버리셨습니다.”
어쩐지 그 말이 지금의 성황과는 너무도 이미지가 맞지 않았다. 성황이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그는 독단적이며 권위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때는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했지?”
“……분명 그랬지요.”
“그럼 젠스위트 왕국의 국왕이란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었나 보네.”
“정확합니다. 성황 폐하와는 통하는 부분이 참 많은 분이셨으며 두 분이 만나셨다 하면 십 년 된 친우처럼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럼 그 둘이 틀어지게 된 건 아버지가 변하고 나서부터인가?”
현자는 성황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내가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걸 따로 지적하지는 않았다. 현자 역시 은연중에 동의하고 있다는 발로이리라.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 사이에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사건이 있었지요.”
이어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젠스위트 왕국의 왕족들에게는 대대로 병약한 이들이 자주 섞여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당시에 젠스위트 왕국의 왕모가 큰 병을 앓고 드러누웠단다.
“어쩌면 그 국왕이라는 사람 말이야. 애초에 신성력을 필요로 해서 아버지께 접근한 것 아닌가?”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두 분의 사이는 분명히 깊은 우애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젠스위트의 국왕께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두 분이 가까워지고 한참 후의 일이었지요.”
그래도 여전히 의심은 거두어들일 수 없었지만 일단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젠스위트의 국왕께서도 성황 폐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미루다가, 결국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폐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셨지요.”
“그게 오히려 독이 됐겠네.”
“정확합니다. 저는 당시 성황 폐하께서 그토록 진노하신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째서 이제야 말했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지요.”
“그래서 시기를 놓친 건가?”
“시기를 놓친 것이 원인인지, 아니면 애초에 살릴 수 없던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황 폐하의 신성력으로도 살려낼 수 없었습니다.”
“……그럼 그게 둘 사이가 틀어지게 된 이유란 말이야?”
내 아버지이자 성황이라는 사람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성황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젠스위트 국왕이라는 작자 역시 정상은 아닌 놈인가 싶었지만.
현자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성황 폐하께서는 그분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그러한 노력을 젠스위트의 국왕께서도 보셨지요. 젠스위트의 국왕께서는 모친을 잃은 슬픔에, 성황 폐하께서는 생명을 살리지 못한 비참함에 빠져 계셨지만, 서로를 이해하기에 서로를 위로하셨습니다. 분명 그렇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지요.”
그리고 그 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란다. 겔리두스가 성황의 자리에 오른 직후.
“폐하께서는 젠스위트에서 보낸 사절단에게 망신을 주며 인연을 완전히 끊어 버리셨습니다.”
“어째서지?”
“……아마도 두려우셨을 겁니다. 자신께서 살리지 못한 병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말입니다.”
“……어이가 없네.”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애초에 모든 사람을 살린다는 건 사람의 영역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의료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명 한 명을 잃었을 때 상실감과 회의감이 너무도 클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많이 불편한데 말이다.
“성황께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자 하셨고, 결국 젠스위트의 국왕께서는 성황 폐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분노하였을 겁니다.”
이제야 어느 정도는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내지 못한 것만 해도, 사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었다. 성황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까.
의사 생활을 할 때도 유가족들이 내 멱살을 잡았음에도 가만히 있었던 건 역시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사가 자신의 커리어 때문에 모든 것을 모른 척한다면. 그건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누구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좀 무서운데?”
갑자기 젠스위트 왕국의 국왕이 내게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으나.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국왕께서 여전하시다면 굳이 전하께 불똥을 튀기진 않을 테니.”
“그건 다행이네.”
솔직히 좀 궁금해졌다. 그 국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그래서, 혹시 현자도 아버지가 왕모를 치료할 때 같이 있었어?”
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땠어? 신성력으로는 조금의 효과도 없었나?”
성황의 신성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병이었다면. 신성력이 작용하지 않는 류의 병에 걸린 것이거나, 워낙에 심각한 병이었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그리고 전자라면 의술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후자라면 사실 지금의 나로선 해결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자는 아닌 듯했다.
“상태는 어땠지? 특별한 증상은 없었나?”
“워낙에 오래된 기억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현자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가 무언가 떠오른 듯 번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 심장 박동이 유독 불안정했습니다.”
“심장 박동?”
“예. 어쩔 때는 아예 멈추는 것이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현저하게 느려졌지요. 그때마다 신성력으로 박동의 주기를 정상적으로 맞춰주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으음.
“결국에는 심장이 완전히 멈추어 버렸습니다만…… 이것이 심장에 원인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다른 원인이 심장에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야.”
심장병이라면 분명 가족력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현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이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