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4)
제144화
“전하. 저곳부터가 젠스위트의 국토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 결코 염려 마시옵소서.”
되려 그리 말하는 호위 무사의 얼굴에 긴장이 어려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괜히 없던 긴장도 생길 정도로.
“알았어.”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젠스위트의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깍듯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젠스위트의 2군단을 이끌고 있는 레브럼 백작이라 합니다. 국왕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제가 빠른 안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마중을 나온 변경백의 인도를 받아 한나절을 더 이동했다.
“……허억, 헉.”
말을 타고 이동하는 힐데스하임의 기사들은, 처음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는 거친 숨소리를 가감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젠스위트의 기후는 처참했다. 뙤약볕을 쬐며 온통 모래로 덮인 사막길을 말을 탄 채로 이동하는 것은 고되기 그지없었다.
반면 젠스위트의 병사들은 익숙해 져 있는 것인지 태연하게 이동하다가, 뒤로 처진 성기사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꼭 비웃는 것만 같았으나, 그걸 보고 화를 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지금 힐데스하임과 젠스위트간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성황과 국왕, 그 둘 사이의 갈등이 그 안에 있는 수만 명의 사이를 갈라놓았으리라.
“잠시 쉬었다 가지.”
나는 지쳐 있는 성기사들을 위해 젠스위트의 레브럼 백작에게 말해 행군길을 멈추도록 했다.
“그게 국왕 폐하께서…… 알겠습니다.”
그가 내게 재촉하려다 단호한 얼굴을 보고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갑옷들 잠깐 벗어서 내려놔.”
“아, 아닙니다.”
성기사들에게 그리 말하자 그들은 저만치 있는 왕국의 병력들을 흘깃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저들의 습격에 대비하고자 했겠지만.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이미 덮치고도 남았을걸.”
녹초가 된 성기사들을 쭉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없는 상태였고, 그걸 왕국의 병력들이 모를 리는 없었다. 혹여나 불미한 계획을 짜 둔 상태였다면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행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지금 체력을 확실히 보충해 두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결국 성기사들이 눈치를 보더니 하는 수 없이 입고 있던 중장비를 벗어 내려놓았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하며 그들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숨을 골랐다.
나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심장 속의 고리를 회전시켰다. 천후의 권능을 통해 이곳에 비를 내려 더위와 갈증을 씻어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
“……전하.”
“감사합니다.”
“전하의 넓은 아량과 위대하신 권능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미 일전에 공개적인 곳에서 비를 내린 적이 두어 번 있었고, 칠흑 등대에 진입할 때도 날씨를 바꾼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신이 아닌 내게 감사를 표하는 듯했다. 이게 내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인지.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을 보며 힐데스하임의 기사들보다도 더욱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젠스위트의 병력들이었다.
“어, 어째서……?”
“비, 빗방울입니다!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히 비가 오지 않는 곳인지, 수십 년 만에 상봉한 가족인 것처럼 놀라고, 기뻐하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시선은 하늘에서 내게로 옮겨져 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심 내게 품고 있던 적의가 사그라진 것을.
* * *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왕도를 향해 행군길을 이어나갈 때는 확연히 달라진 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부러 성기사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 일도 사라졌으며, 따로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비를 내린 것이 만들어 낸 예상치 못한 변화였다.
이윽고 왕도로 들어서자, 확실히 발전되어 있는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힐데스하임의 수도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했으나, 그래도 멋드러진 왕성과 발달된 도시 문명은 왕국의 수도라 칭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대가 힐데스하임의 3황자인가.”
이윽고 왕성 안으로 들어서자 위엄 있는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일국의 군주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힐데스하임의 성황이 사뭇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허나 문제는 그가 내게 확연한 적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황 폐하의 명을 받아 젠스위트의 왕자를 치료하러 왔습니다.”
“…….”
그는 내 말을 듣고도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겁을 먹고 자신의 아들을 보낸 꼴이라니. 내가 다 부끄럽군.”
그가 한참 만에 꺼낸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 * *
힐데스하임의 3황자.
젠스위트의 국왕도 그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누군가는 3황자가 신에게 버림받은 이라 칭하고 있었다.
게다가 멍청하고 포악하며, 저급한 성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이, 그와 정반대되는 여론도 퍼지고 있었다.
그건 3황자를 견제하는 세력들이 만들어 낸 거짓일 뿐, 3황자는 현자가 스승을 자처했을 만큼 현명하며, 어질고, 나날이 신성력이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그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진실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건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을 뿐이다. 불분명한 소문만이 가득한 3황자에게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맡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겁을 먹고 자신의 아들을 보낸 꼴이라니. 내가 다 부끄럽군.”
그는 내심 성황이 직접 오기를 바랐다. 비록 성황이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내는 데 실패했을지언정, 그는 현재 신성 제국 내에서 가장 막대한 성력을 보유한 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속죄하기를 바랬다. 변해 버린 스스로에 대해서.
국왕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것에 대해 성황에게 조금의 악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성황의 후속 대처였다.
이제라도 자신의 앞에 나타나 한마디만 해 주면 달라질 수 있건만. 힐데스하임과 젠스위트는 과거의 끈끈했던 사이로 돌아갈 수 있건만.
“성황은 여전하오?”
국왕은 3황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가 황자를 보며 성황에 대해 물은 것은, 어쩐지 그 둘의 얼굴이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성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에 물들기 전, 인간적이고 순수했던 성황. 그의 얼굴과 앞에 있는 3황자의 얼굴이 판박이로 보일 지경이었다.
“여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국왕의 심장을 꿰뚫는 듯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탐욕스럽고, 권위적인 사람이오? 과거의 모습을 지워버린 채로, 완전히 악에 물들어 버렸소?”
국왕은 앞에 있는 사람이 3황자임에도, 가감 없이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두려울 게 없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을 살려낼 수 있는 것은 힐데스하임의 힘이 유일할 테지만…….
그 때문에 신성 제국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황이 스스로 뉘우치고 과거의 모습을 되찾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3황자에게 꽤나 거칠게 말한 것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하얀 것이 검게 물드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검게 물든 것을 하얗게 씻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애초에 물들지 않는 것이 최선일 뿐.”
“……!”
3황자의 대답은 젠스위트 국왕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그는, 3황자에 대한 두 소문 중 어느 쪽이 맞는지를 정확히 직감할 수 있었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라……. 그대가 젠스위트에 비를 내렸다고 들었소.”
그리고 레브럼 백작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그가 왕도로 오는 길에 젠스위트에 잠시나마 비를 내렸다고 들었다. 그게 3황자를 보며 과거의 성황을 떠올린 이유기도 했다.
당시에도 젠스위트는 메마른 국가였고, 점점 더 비참한 절망을 맞이하고 있는 국가였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희망이라는 것이 없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바꾸어 준 것은 힐데스하임의 겔리두스 성황이었다.
그가 젠스위트에 비를 내려 주었고, 그 비의 단맛을 맛본 왕국민들은 희망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비록 그때 이후로 수십 년이 지났을지언정, 아직까지도 그 희망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었다.
“젠스위트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쳐 있던 성기사들을 위한 것이었지요.”
3황자는 구태여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렇군.”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점점 더 성황의 과거와 닮아 있는 3황자를 보며, 다시 한번 실낱같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어쩌면 3황자는 젠스위트와 힐데스하임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허면, 파우스트 경은 잘 지내는가?”
3황자의 스승을 자처했던 것이 현자라고 했던가.
현자라면 젠스위트의 국왕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성황과는 가장 가까운 이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자는 그가 본 사람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기에…….
“현자께서 국왕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가 3황자를 택했다면, 설령 3황자가 훗날 변모하게 될 수도 있을지언정 지금의 3황자는 과거의 성황 못지않은 사람이리라.
“그렇군. 그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기보다는, 장점만을 찾아서 칭찬하는 능력이 대단했으니.”
젠스위트 국왕의 마음이 변해가고 있었다.
3황자를 보낸 것에 대해 성황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져 갔지만, 반면에 신성 제국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사람에게 잘못이 있을지언정, 국가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젠스위트와 힐데스하임의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분이 필요했다.
젠스위트 전체가 힐데스하임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에 확실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젠스위트가 3황자와 신성 제국을 다시금 돕기 위해서는 또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
“현자에게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젠스위트 왕족 중에는 병약한 이들이 더러 있었소. 어머니께서 말년에 큰 병을 앓으셨고, 성황에게 치료를 요청했다가 그 일로 인해 현재 이렇게 되어버렸지.”
앞뒤 다 자르고 얘기를 했으니 3황자의 입장에서는 국왕이 좋지 않게 보일 것도 맞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한 것은, 왕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더욱 관계가 악화될 수 있으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3황자가 왕자를 살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만큼 3황자가 최선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금은 하나뿐인 후계자인 왕자마저도 큰 병을 앓고 있소.”
“제가 직접 상태를 좀 보겠습니다.”
헌데 3황자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채로 국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