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젠스위트의 왕자는 곤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그를 깨우려고 했지만,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낫다고 내버려 두게 했다.
열 살 남짓 되었을까. 한창 개구쟁이처럼 뛰어놀 나이에 병약한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사뭇 안타까웠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맥박을 짚어 보고, 성력으로 신체에 특별한 반응이 없는지를 살폈다.
지금 당장 맥박에 큰 이상이 있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심장 쪽에서 성력에 반발하는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간혹 가슴 쪽에 큰 통증이 찾아오고 의식을 잃는 경우도 더러 있었소. 의원들은 별것 아니라 말하나 어머니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 돌아가셨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심장병이었다. 심장병이라면 그 안에서도 부류가 나뉘지만, 우선은 대부분이 급성보다는 만성으로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가족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한 것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왕자를 바라보고 있자, 국왕은 눈치를 주어 자신의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게 했다.
“너희들도 나가 봐.”
나 역시 호위로 붙어 있는 성기사들을 물렸다.
그렇게 보는 눈이 모두 사라지자, 젠스위트의 국왕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일전에 성황이 어머니의 치료를 맡았다는 건 들었소?”
“국왕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현자에게도 들은 바가 있었지만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 말을 꺼냈던 것은 그대에게 딱히 경고를 하기 위함은 아니었소.”
난데없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국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한없이 진지한 눈빛이었다.
얼핏 보면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꽤나 인간적인 면모가 숨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 역시 처음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한없이 누그러져 있었다.
“당시 성황의 능력으로도 어머니를 살릴 수 없었지. 비록 어머니께서는 늙었고, 시기를 놓친 것도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꼭 무언가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공허해 보였다.
“어쩌면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저주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겠지. 왕자를 살려달라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한 요구일 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힐데스하임에 또다시 부탁을 하신 겁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십니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오.”
현자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가 성황과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는지.
“내심 성황이 직접 오길 바라고 있었소. 살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과거의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번 일이 연결고리가 되어 그와의 관계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도 있을 테니까.”
피해자이자 억울한 입장에 놓여 있을 국왕이 오히려 성황을 용서하고 있는 듯했다.
“……어째서. 그가 어머니를 살린 은인이라도 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되돌리고 싶어 하십니까? 오히려 복수를 하고 싶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그는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즐거웠소. 그와 함께 지내며 나는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일국의 국왕으로서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지. 그로 인해 젠스위트가 이토록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오.”
그러니까 국왕은 그것을 빚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나 또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황은 분명히 나쁜 사람이었다.
내게는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조금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국가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휘둘러 대고 있었다.
비록 성황이 과거에는 옳은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면책권이 될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젠스위트 국왕의 입장이라면. 성황에게 정말로 많은 빚을 지기라도 한 것이라면.
글쎄, 내 입장이 아니라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으나 이해가 아주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멍하니 있던 국왕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성황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괜히 그대에게 말했군. 이해해 주시오. 그대를 보니 과거가 떠올라서.”
“괜찮습니다.”
“오지랖을 조금만 더 부려보자면, 황자께서 말한 대로 검게 물들기는 아주 쉬운 법이오. 늘 경계하여 힐데스하임이 신께 버림받는 일은 없길 바라겠소.”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께 버림받은 채로 사는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그대는 모를 테니.”
그리고 국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쯤 되니 정말로 헷갈렸다.
어쨌거나 신은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긴 한다. 그렇다면 젠스위트의 기후와 가족력은 신이라는 작자가 다분한 의도를 지니고 내린 것인지, 아니면 자연선택에 의한 것인지를 이제부터 알아봐야 했다.
* * *
국왕은 사실 왕자의 치료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할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당연히 신성력이었다.
분명히 신성력을 통해 그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신성력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심장이 급속도로 빠르게 뛰며, 왕자의 몸에 급성으로 나타난 문제는 조금씩 잠재울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심근이 약해져서 한 번에 훅 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확인도 되지 않은 이상, 적절한 조치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힘들었다.
심장의 소리나 맥박의 상태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류는 아니었으니, 그나마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절개를 해서 육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그런 일을 국왕이 허락할 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알리지 않고 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개복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전하!”
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성기사 한 명이 다급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마, 마르틴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호위 기사를 황궁 쪽의 기사들로만 구성하는 것이 영 불안하다며, 마르틴과 트루드가 따라오겠다 고집을 부리기에 알았다고 했더니.
“사제들이 처치하면 되잖아.”
성기사의 다급한 말투를 보니 꽤 심한 상처인 듯 보여 걱정이 앞섰으나, 구태여 나를 찾아오는 것보다 근처의 사제들에게 치료받는 것이 나았을 텐데. 어쨌거나 응급조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니.
“그, 그게. 마르틴이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지 않겠다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성기사들이 제압을 해 보려 했으나 힘이 장사인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출혈이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여…….”
하아. 이마를 짚었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데, 용병 출신으로 기사가 되어 나름대로 잘 지내던 마르틴이 어째서 그런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는 또 의문이었다.
“그가 부상에서 낫고 나면 확실하게 책임을 묻겠…….”
“안내해.”
“아, 알겠습니다.”
성기사가 날 듯이 뛰어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나로서는 조금씩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간간이 성기사가 나를 보며 속도를 맞추었다.
그리고 마르틴이 누워 있는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 성기사가 말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황색의 침대 시트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을 정도인데도, 그를 저지하려는 성기사들에게 반항하며 몸을 비틀어 대고 있었다.
“나는 전하께서 해 주시는 치료가 아니면 받지 않겠단 말이다!”
그리고 마르틴이 소리를 질러대더니 갑자기 조용해 진 주변에 이상함을 감지하곤 이내 내가 온 것을 확인했다.
“……전하.”
피를 많이 흘리고도 저러고 있는 게 한편으론 대단했다.
나는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복부에 위치한 정맥이 쇠붙이에 찔린 듯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쩌다 그런 거야?”
내가 묻자 마르틴이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가만히 있기 적적해서 사냥을 좀 갔다가…… 하하. 이렇게 됐습니다.”
그 옆에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트루드가 있었다.
복부에 난 자상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벌어져 있으니 잘만 하면 신성력만으로도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리를 회전시켰다. 자세한 상황을 묻는 건 이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고리를 통해 손으로 전달된 신성력을 내뻗으려 할 때, 묵직한 마르틴의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뭐 하는 것이냐?!”
성기사들이 그것을 보고 무례하다 생각했는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한 놈!”
“이래서 천박한 놈을 기사로 받아들이면 안 되거늘! 네가 지금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줄 아느냐?!”
“힐데스하임으로 돌아가면 당장 재판에 회부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라!”
나는 그렇게 난리를 부려 대는 성기사들을 제치고 마르틴에게 다가갔다. 그가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전하. 제가 직접 젠스위트의 국왕을 부를 수는 없었으니 전하께서 부르시지요.”
“……뭐?”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르틴은 곧이어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말했다.
“애초에 저는 용병이었고, 숱하게 들이닥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신성력으로 치료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를 의술로 치료해 주시지요. 그게 저 같은 놈에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
다른 이들은 마르틴이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속셈을 이해한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힘만 센 놈인 줄 알았더니.”
순수한 감탄.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리자 마르틴이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맞습니다. 힘만 센 놈.”
그는 애초에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을 알고 있던 것이다. 내가 의술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도, 의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국왕을 설득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것이다.
저만치 놓여 있는 마르틴의 검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고, 그건 마르틴의 자작극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옆에서 여전히 불안해하는 트루드 역시 이 모든 계획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함께 짠 계획일 수도 있고.
“젠스위트 국왕 폐하를 불러와라. 급히 보여드릴 게 있다고.”
나는 젠스위트의 사람을 시켜 그가 불러오게 하는 동안 의료 기기들을 챙겨오며 곧바로 수술을 할 준비를 했다.
그리곤 마르틴을 마취시키기 전, 그에게 확실하게 한마디를 해 두었다.
“다신 이런 짓 하지 마. 위험하게.”
그러자 그가 눈을 감으며 웃었다.
“저도 오가며 배우고 들은 것이 있습니다. 부러 동맥이 아닌 정맥을 찔렀으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나는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