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젠스위트의 국왕은 3황자가 자신을 불렀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무슨 용건인지는 알 수 없었다.
3황자가 있는 곳에 도착한 국왕은 잠시 얼이 빠진 채로 상황을 파악하며 서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을 가로챈 것은 사방에 분출되어 있는 혈흔들이었다.
복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성기사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국왕이 다가가려 하자 감싸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고, 그제야 3황자의 모습이 보였다.
3황자가 손에 피를 묻혀 가며 두 손으로 치료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쩌다 저리 큰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
복부 안의 장기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커다랗게 베여 있었다. 국왕은 당연히 그것이 처음 입은 부상에 의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 생각을 알아챈 누군가가 고개를 저었다.
“3황자 전하께서 직접 배를 가르셨습니다.”
“……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멍하니 지켜보던 국왕은 퍽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혈관, 그것이 갈라진 배를 통해 드러나 있었으며, 상처 입은 혈관을 3황자가 두 손으로 치료하고 있었다.
신성력이 아닌, 두 손으로 말이다.
“의술이라 합니다.”
진작부터 있던 왕국의 누군가가 또 다시 국왕의 생각을 알아채곤 귓속말을 했다.
“3황자께서는 신성 제국에서 의술로도 인정을 받고 계신다고 합니다.”
“……저것이 의술이라?”
젠스위트의 국왕도 의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때 그때 응급조치를 해야 했기에, 발칸처럼 체계적으로 의술이 갖추어 져 있지는 않았지만 의술의 범주 안에 속하는 행위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3황자가 눈앞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국왕이 알고 있는 의술의 범주를 한참이나 넘은 듯 보였다.
“정말 저런 것으로 치료가 된단 말이냐?”
국왕은 의아함에 성기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황자 전하께서 갖추신 의술은 가히 신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3황자 전하에 한해 신성력에 못지않은 효능을 보인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런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지만, 신성 제국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니 그러려니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의아한 부분은 남아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그 꼬장꼬장한 성황이 순순히 인정해 주던가? 신성력을 대체할 만한 힘이라면 거품을 무셨을 양반인데.”
국왕의 말이 너무도 노골적이었던 것일까, 성기사들이 좋지 않은 눈으로 노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왕은 앞에 있는 3황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히 듣도 보도 못한 방식. 하지만 또한 분명히 효과가 있었으며, 어느새 출혈이 완전히 멈추었다.
신체 내부에서 나는 피를 그치도록 하기 위해 몸을 가른다. 어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듯했으나, 원하는 효과를 보고 개복된 배까지 완전히 깔끔하게 봉합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국왕은 어째서 3황자가 자신을 이 자리에 불렀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가진 의술 실력을 보고 주눅이라도 들라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랑이라도 하기 위함인가?
아닐 터였다. 3황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잠깐이나마 겪어본 바 그런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상이 갔다. 3황자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하지만 국왕은 부정하고 싶었다.
젠스위트의 국왕은 바뀐 성황을 늘 반감을 가지고 비난해 왔지만, 그 스스로도 내면에 그와 닮은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변해 왔다.
과거에 개혁적이고 도전적이며 호전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무게를 느끼며 늘 안정적인 방법만을 선택해 왔다.
그것이 젠스위트와 힐데스하임이 서로 지켜보기만 했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국왕 전하.”
3황자는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국왕을 향해 다가왔다.
의술이라.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효용을 보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겉으로 보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기사가 검을 쓸 때, 어느 곳을 찔러야 목숨을 단번에 앗아갈 수 있는지를 익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늘 원하는 곳을 찌를 수는 없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검이 목표를 빗겨 나갔음에도 상대를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이 좋았다…… 고 보기에는 그런 경우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았다. 상식적으로도, 검에 찔렸는데 과연 상대가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이 이야기는 그만큼, 신체는 섬세하고 연약하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오.”
3황자가 아무리 숙련되었다 한들, 몸 안의 위험한 급소을 전부 피하며 배를 가르는 것은 불가능이라 여겼다.
“신성력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이오? 신성력으로는 대부분의 병을 낫게 할 수 있거늘. 어째서 신께서는 젠스위트에만 축복을 내려주지 않으신단 말이오!”
국왕은 따지듯 물었지만, 그게 3황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3황자의 신성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 역시.
3황자는 조용히 국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어이없을 법도 하건만, 국왕을 이해한다는 듯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저 나잇대의 소년이 가진 눈빛처럼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신성력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육안으로 왕자의 몸을 살펴 보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왕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국왕은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를 잃고, 아이도 잃을 판국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게 더 이상했다.
* * *
그렇게 돌아갔던 국왕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 듯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성력으로는 정말 어렵소?”
“제가 경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잠시 미루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성황 역시 그의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었다니까 이들에게 있는 병이 신성력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거나, 정말로 신성력과는 맞지 않는 체질이거나 할 수 있었다.
신성력이라는 것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명확한 답은 나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의술은 달랐다. 의술의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손기술은, 모든 인간에게, 모든 질병에 똑같이 작용할 수 있었다.
원래 천성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거나, 현대 의술로는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의 경우에는 의술로도 치료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원인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지.
“혹시 위험하지는 않겠소?”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개복 수술이라는 것이 마냥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수많은 임상을 통해 나온 안전한 절개법과, 그간 쌓여 온 내 경험 덕분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왕자를 살려낼 수 있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어떤 병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살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그렇지만 절개를 하는 것 때문에 악화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장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오?”
“힐데스하임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 왔습니다.”
“……성황이 달갑지 않게 여길 만하군.”
“그럼에도 성황 폐하께서는 의술을 인정하고 제가 의술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왕은 누구보다 성황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성황이 허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의술의 효용을 인정했다는 뜻과 같았다.
“황자가 보기에, 저대로 두면 왕자는 어떻게 되겠소?”
그것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그의 병명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국왕의 어머니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눈에 보였다.
“젠스위트의 국왕을 잇는 것은 다른 핏줄이 되겠지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국왕이 결정을 내린 듯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소. 황자께서 원하는 대로 절개를 하고 직접 확인해 보시오. 다만 조건이 있소.”
국왕이 내건 조건. 그것은 수술 장면을 국왕이 직접 지켜보겠다는 것과, 국왕이 원하면 언제든지 수술을 중단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안 됩니다.”
허나 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도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는 없었다. 차마 보호자가 두 눈 뜨고 지켜보기는 힘든 광경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상대는 의술에 대한 믿음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뭣도 모르고 수술을 중단시키는 건 오히려 상황을 더욱 위험에 몰고 갈 수 있었다.
내 생각을 간단히 전달하자 국왕이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치료 과정에 있어 개입하지는 않겠으나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진행해 주시오. 또한 황자가 치료를 전담하는 만큼, 치료 과정에서 잘못된다면 황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오.”
“그건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국왕과의 협상이 끝나고, 수술은 날이 밝는 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던 도중, 마르틴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나는 곧장 그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랬지?”
그가 산만 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씨익 웃었다.
“다 알면서 물어보십니까.”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네가 그러지 않았어도 방법은 많았을 거다.”
“그러셨겠지요. 황자 전하께서는 분명히 현명하신 분이니.”
마르틴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들어보니 의술은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하더군요.”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평생 몸이나 굴리던 놈이라 그런지 마땅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습니다만. 정맥의 경우에는 빠르게 치료할 경우 치명적이지 않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
“제게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뭐?”
“평생 용병질이나 하던 놈이, 전하를 따라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록 기사라 불릴 자격도 없는 놈이지만, 기사 노릇 하는 게 취미에도 맞고 말입니다.”
마르틴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감았다.
“그러다 보니 괜히 자긍심이라는 것이 생기더군요. 용병일 때는 앞뒤 안 가리고 짐승처럼 굴기만 했는데. 어떻게 하면 전하께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늘 생각했고. 처음으로 제게 주어진 기회였습니다.”
마르틴은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차마 그런 그를 더 나무랄 수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