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7)
제147화
왕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한 수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칼로스를 비롯한 두 명의 보조의들에게 간략한 과정을 미리 설명해 두었고, 국왕도 너무 놀라지 않도록 대충이나마 언급을 해 두었다.
그는 못내 안타까워하면서도 가만히 지켜보겠노라 순순히 응했다.
그 외에 다른 이들은 모두 나가도록 한 뒤, 왕자를 확실히 마취시켜둔 뒤 메스를 들었다.
심장을 살피기 위해 가슴 쪽에 메스를 가져다 대고는 피부를 20cm 정도 그어 갈라내었다.
출혈이 나오는 것을 본 국왕의 눈이 흔들렸지만, 나름 적응이 된 의원들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 피를 닦아내었다.
갈라진 피부를 양쪽으로 벌려 확실하게 고정시켜 둔 뒤 드러난 심장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비록 흉골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근의 크기가 눈에 비대해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피로, 흉통, 실신.”
왕자의 증상을 말하자 국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으로 측정해 보았을 때 고혈압까지 있었다.
이젠,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심장의 근육 자체에 일차적으로 생긴 심근증이었다. 문제는 이미 말기에 접어들었을 정도로 많은 진행이 되었다는 것.
“……좀 어떻소?”
국왕이 차마 바라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로 물었다.
나는 말없이 왕자의 심장에 신성력을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심장의 근육이 과도하게 커져 버린 것에 대해서는 신성력이 질병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일까.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왕자의 증상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따위에 의한 것도 아니고, 인체의 항상성이 특별히 깨진 것 때문도 아니었으니까.
“닫자.”
어차피 지금 당장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빠르게 원래대로 봉합을 진행했다.
열었던 가슴 피부를 빠르게 닫고 나자 국왕이 비로소 이쪽을 쳐다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군. 이렇게 보니 별일도 아닌데 괜히 너무 걱정을 한 듯하오.”
그렇게 말하는 그도, 내 표정이나 흘러가는 상황을 보곤 왕자의 병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되었소?”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합니다만. 신성력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고, 특별히 손을 쓸 수도 없어 일단 봉합을 해 두었습니다.”
“손을 쓸 방법이 없단 말이오?”
국왕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젠장……!”
그는 한없이 낙담한 듯한 얼굴이었다.
“어째서요. 어째서란 말이오. 내가 힐데스하임에 반기를 들어서 그런 것이오? 감히 성황과 성국을 가벼이 여긴 죄로 신께서 왕자에게 저주라도 내린 것이오?”
나는 그런 국왕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소리였다.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신이 직접 악하다고 판단한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거라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테지요. 그리고, 이 어린이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었겠습니까.”
“왕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요.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서부터 뛰어놀지는 못했음에도 매사에 긍정적이며 현명하기만 했단 말이오. 나보다 국왕의 자질이 더욱 충만한 아이이니, 내 심장을 꺼내 주어서라도 아이를 살려 주면 안 되겠소?”
그런 국왕의 말에 번뜩 든 생각이 있었다.
사실 이전부터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구상은 해 놓은 것. 장기의 이식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말기에 접어든 심근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장 이식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정말로 심장을 내어 줄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국왕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얼핏 듣기엔 상당히 무례하게 들릴 수 있으나, 내 진지한 태도에 국왕의 얼굴도 사뭇 진지해졌다.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이오?”
“심장을 비롯한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뭐라?”
놀란 반응을 보인 것은 국왕들 뿐만이 아니었다. 의원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칼로스는 새로운 의술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설레는 듯 보였고.
“마음 같아서는 내 심장을 내어줄 수 있으나, 그랬다간 그 아이의 미래가 눈에 환하니……. 국왕의 자리에 오르기엔 너무도 어리고, 많은 이들의 먹잇감이 될 거요.”
국왕이 겁을 먹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왕자를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국왕의 심장을 떼어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대신 흉악한 범죄자들의 심장을…… 아니지. 그리하면 왕자의 몸속에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테니…….”
“그렇게 원한다고 아무 장기를 가져다 쓸 수는 없습니다.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적합한 심장을 찾아야 한단 말이오?”
“우선 그 전에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제가 말씀드리는 항목들에 정확히 일치하는 이를 찾았다 하더라도, 의반드시 의식이 없는 이여야 하며, 또한 그 의식을 잃은 지 이 주 이상 지나서도 안 됩니다.”
일명 뇌사자였다. 죽지는 않아 신체 기능이 살아 있지만, 그럼에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이들.
현대 의학에서도 장기의 기증은 뇌사자의 것만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뇌사의 판명에 있어서도 엄격했고.
“신분의 높고 낮음이 존재한다고 해도, 생명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생명을 헛되이 빼앗아 왕자를 살려낸다고 한들, 그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신성 제국의 높으신 누군가가 들었으면 발작이라도 일으켰을 말이지만, 국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왕국 내에 수소문을 해 주십시오. 왕자와 또래인 아이들 중에 최근에 의식을 잃은 아이를. 체중도 가급적이면 비슷하면 좋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혈액형이 맞아야 한다는 거였지만,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곤 왕명을 내렸다.
* * *
“쯔쯧. 가엾기도 하시지.”
왕명의 내용이 적힌 벽보를 확인한 누군가가 혀를 찼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이것 봐.”
그 내용을 쭉 읽어 본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뭐가 가엾으시다는 거야? 이런 사람을 왜 찾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왕자 전하께서 오래도록 아프셨지 않은가.”
“그랬지.”
“그래서 이번에 힐데스하임의 황자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왕자 전하의 몸을 살피셨다는 거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게 글쎄.”
그녀가 목소리를 확 낮추며 남자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댔다.
말을 전해 들은 남자는 놀란 얼굴을 하며 화들짝 귀를 떼어내었다.
“뭐? 정말로? 심장을 옮긴다는 건 무슨 개똥 같은…… 읍읍.”
“조, 조용히 해! 누가 듣겠다고.”
“아니. 그,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해? 차라리 신성력으로 심장을 만들어 낸다는 게 더 그럴싸하겠군.”
사실 민간인들까지 모두 알 정도로 퍼진 소문이었고, 국왕은 일부러 그러한 소문을 퍼지게 내버려 두었다. 뇌사자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심장을 기증받기 위함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허. 국왕 폐하께서 단단히 속으셨군. 현명하시던 분이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자네도 아들이 생사를 오간다고 생각해 보게.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 아니야? 그러다 보면 사리분별도 잘 안 되고…… 그러는 거지, 뭐.”
“허.”
한숨을 푹 내쉬는 그들이었다. 그만큼, 국왕은 평소에 왕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저것에 해당하는 사람이 가족 중에 있으면 땡잡은 거나 마찬가지겠구만.”
“……뭐?”
“그렇지 않은가. 만약에 자네 자식 중에 의식을 잃은 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게. 그리하면 그 죽지도 살지도 못한 아이를 기약도 없이 내버려 둔 채로, 이런저런 부담만 늘어날 것 아닌가. 마음도 불편하고. 헌데 국왕께서 저런 왕명을 내리셨으니, 왕국에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짐을 떼어낼 수 있겠지. 왕가의 보답은 덤이고.”
“그것도 맞는 말이네.”
둘은 그렇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중 누구보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노파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이 어두워 글귀를 볼 수는 없었는데, 앞에 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어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된 그녀는 비로소 뒤돌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신이 머무는 초라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외곽에 있는,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초라한 집이었다. 마음 깊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먹을 것과 생필품을 제공해 주었고, 집도 새로 지어주겠노라 했지만.
그녀는 집만큼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쓰겠노라 고집을 부렸다.
비라도 많이 왔으면 집의 절반이 비에 잠길 정도였겠지만 다행히 젠스위트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위태로운 집을 두고도 그녀가 고집을 부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과거부터 살아왔던 추억이 담긴 집.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녀의 자식들이 함께 북적이던 집이었기에,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하나 남은 혈육, 그녀의 손녀딸이었다.
일 년쯤 전에 머리를 크게 부딪혔다가 의식을 잃었고, 그 이후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녀딸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손녀딸을 직접 간호해 주기도 했다.
노인인지라 왕명을 가장 늦게 접했을 테지만,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그녀에게 그 왕명을 전해주지 않은 것은 그만큼 노인이 손녀딸을 아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얘야.”
노인은 이 아이를 붙잡아 두는 것이 아이에게 고통을 짊어지우는 것은 아닐지 예전부터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천국에 가서 자유로이 날아다녀야 할 아이가, 살지도 죽지도 못한 몸으로 이곳에 남아 답답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차마 이 아이가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집이 무너지게 된다면 아이와 노인이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을 뜰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고 있었다. 집을 버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응?”
노인은 여전히 대답이 없는 소녀에게 물었다. 주름진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가, 말을 좀 해 보거라. 응? 여기 있는 게 많이 답답하지?”
솔직히 말해서 노인도 이제 지쳐버렸다. 세상을 더 살아갈 힘도 남아 있지 않은데, 아이가 살아 있으니 마음 편히 세상을 뜰 수도 없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손녀를 바라보며 노인은 메마른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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