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8)
제148화
심장 이식을 위해서는 단순히 이식뿐 아니라, 심장과 연결된 대혈관들, 그리고 판막을 수술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아두어야만 했다.
심장 이식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흔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경험이 있어 머릿속으로 잘 떠올려 보았다. 내가 맡았던 분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과정을 내가 직접 집도해야만 하는 것은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닌 게 또 대수술이었다. 칼로스와 다른 의원들에게 수술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철저하게 준비를 시켜두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 노인이 나를 찾아왔다.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바닥에 몸을 내리깔려 하자 내가 얼른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허리도 안 좋은데 무슨 예의를 차린다고.
“손녀딸이……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엄연히 말하면 뇌사와 식물인간이라는 것은 달랐지만, 이곳에서는 식물인간으로만 통용되고 있었다.
노인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그 안에 담긴 깊은 감정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헌데 기간이 아이가 의식을 잃은 기간이 꽤 길다더군.”
애초에 내가 내걸었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나는 이 주일 이내에 의식을 잃은 자를 찾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 때문이었다.
뇌사자는 뇌간을 비롯한 뇌 기능이 전체적으로 중지되어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하다. 인공호흡기조차 없는 이곳에서는 필연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었으며, 현대 의학으로도 결코 의식을 회복시킬 수 없었다.
반면 식물인간의 경우에는 뇌간을 다치지는 않아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은 살아 있었기에, 자발적인 호흡도 가능하며 운이 좋다면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었다.
의식의 회복 가능성. 이것이 식물인간의 장기를 기증받지 않는 이유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어쩌면 살아날 수 있는 어린아이의 장기를 마음대로 빼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듣기로는 꼭 기증하고 싶다 했다던데.”
조금은 의아했다. 혈육이라면, 아무리 뇌사에 빠졌다고 한들 장기를 기증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 것은 분명하니까. 근 몇 주간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은 데는 그 이유가 한몫했을 것이고.
그런데 노인은, 계속해서 쫓아내는 병사들에게 매달리며 꼭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했다고 들었다.
그 사정이 궁금했다.
“깨어나지 못할 거라 확신하는 건가?”
뇌의 손상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 년간 누워 있는 식물인간이 깨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가능성은 존재했다.
“확신이라…… 이 노인은 어떤 일에도 확신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으니까요. 열심히 뛰어놀던 손녀딸이 하루아침에 이리 될 줄은 몰랐듯이.”
“허면 깨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군.”
그러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지친 건가?”
그럴 수 있었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기약 없는 손녀딸의 간호에 열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이겠지만, 지치지는 않았습니다.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 손녀딸을 보면 온갖 피로가 날아가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제 욕심이 아닐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
“밤마다 꿈에 손녀딸이 나왔습니다. 예전의 그 해맑은 모습이 아니었지요.”
노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녀에게는 좋지 못한 기억인 듯.
“비명을 지릅니다. 죽여달라고. 왜 자신을 붙잡아 두는 것이냐고.”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선행을 베풀 줄 아는 착한 아이이니 천국으로 가겠지요. 차라리 그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일 수도 있지요. 허나, 노인에게 남은 것은 여생에 대한 욕심뿐인지라, 차마 이 아이를 보내줄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누가 자신의 가족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헌데 신성 제국에서 오신 황자이시라면, 이 아이를 직접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실례를 무릅쓰고 꼭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노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낮게 엎드렸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고민이 들었다. 어떤 게 최선의 선택일까.
보살펴 줄 사람도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이라면. 살아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어도 보내주는 것이 맞을까.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내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노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대신에 아이를 직접 보고 싶다.”
* * *
노인을 따라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노인의 초췌한 행색과는 다르게, 그녀의 손녀딸은 아주 말끔한 복장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모르고 보면 아까까지 놀다 들어와 곧장 잠에 든 아이처럼.
노인이 손녀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찬물을 가져와.”
노인이 내 말에 따라 물을 긷자, 칼로스가 달려가 그것을 들고 왔다.
나는 감고 있는 아이의 눈을 손으로 벌렸다.
그러자 호위로 따라온 성기사들이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체나 다름없는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벌려진 눈을 향해 신성력을 발했다.
내리쬐는 환한 빛. 그 빛이 아이의 눈을 향했고, 빛을 본 눈의 동공이 축소했다.
동공 반사가 살아있는 걸로 봐선, 분명히 뇌사는 아니었다.
이후로 귀에 찬물을 넣어 눈의 떨림을 확인하고, 자발 호흡이 붙어 있는지, 자극에 대한 각막의 반사가 있는지까지. 뇌사를 판정하기 위한 과정들을 직접 해 보았다.
그리고 확실하게 이 아이는 뇌사가 아닌 식물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 년 가까이 특별한 장치도 없이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기적에 가까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었다.
그리고 의식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 역시도 존재했다.
나는 아이의 뇌를 향해 신성력을 주입했다. 어쩌면 신성력으로 뇌의 기능을 회복시켜 의식을 되찾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얼 하고 계십니까?”
노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성기사들이 그런 노인의 태도를 지적하려다가 만 이유는, 궁금해 죽겠다는 저들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노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 건 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일 년이 조금 안 되었다고 했나?”
“예. 하지만 분명히 그 전까지는 건강하고 영리했던 아이인지라, 왕자 전하를 살리시는 데 큰 도움이 되실 수 있을 겝니다.”
“아이를 왕자의 제물로 쓸 수는 없다고 말했을 텐데.”
내 싸늘한 대답에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으면 노인이 계속해서 매달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현대에서도 식물인간에 빠진 이들의 수명은 대략 1년에서 2년 사이였다. 식물인간이 되면 합병증에 취약해져 오래 살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죽게 된다.
“……문제는 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지요. 허면 이 아이는 누가 보살펴 준단 말입니까? 더러운 꼴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한데…….”
노인의 말끝이 흐려졌다. 목구멍으로 타고 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왕자의 치료가 끝나면 신성 제국으로 같이 갈 생각이 있나?”
이런 내 질문은 차마 예상하지 못한 듯, 노인이 동그래진 눈으로 되물었다.
“예, 예?”
“신성 제국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 깨어날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분명 죽게 될 테지만, 깨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신성 제국으로 간다면 그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될 거고.”
당장에 신성력으로 치료하지는 못했지만, 사제들의 지속적인 치료 하에서라면 나아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합병증에서는 확실히 신성력을 지속적으로 부여받는 것이 안전한 테고.
“……그리 해 주신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바치겠습니다. 비로소 이 노인이 자유로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겠습니다. 신성 제국이 있는 쪽으로 해가 뜰 때마다 절을 올리겠…….”
“그대도 같이.”
“……예?”
“보살펴 줄 사람은 필요하잖아. 당연히 같이 가야지. 그것까지 우리한테 떠넘기려고?”
노인이 한참이나 입을 오물거렸다. 그녀의 눈시울이 한없이 붉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쉰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러면 이 아이와 노인은 왕자의 치료를 마친 후 데려가기로 하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까부터 이 아이의 영혼이 계속해서 내게 하던 부탁이 있었으니.
* * *
노인은 신성 제국의 황자가 돌아간 뒤 아이를 바라보았다.
‘살아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황자가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어째서 자신처럼 초라하고 미천한 이에게 그토록 큰 관용을 베푸신단 말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은혜였다.
“아이야. 혹여나 깨어나거든, 힐데스하임의 황자께 받은 은혜를 결코 잊지 말거라. 네가 깨어나는 것이 그분의 덕이 아니라고 해도, 그분께서는 과분한 자비를 베푸셨음이 분명하니.”
노인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중얼거렸다.
‘그럼요.’
그때였다. 점점 잊혀지던, 그 청아했던 아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 것이.
노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천장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지만, 제게는 할머니도 똑같은 분이에요.’
“어, 어딨니?! 아이야! 내 말이 들리는 거니?!”
노인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름한 집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주 큰 소리였다.
“듣고 있으면 대답을……”
‘전 늘 여기 있어요. 늘.’
미쳐서 환청을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이가 들어 치매가 와 버린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의 귀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노인에게는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었다.
덜컥.
“……노인네! 무슨 일 있슈?”
노인이 그렇게 오열하고 있을 때, 그 소리를 듣고 이웃집 주민들이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가 말없이 노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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