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9)
제149화
노인과의 일을 일단락한 후, 다른 이들이 몇 명 나를 찾아왔다.
식물인간이었던 아이와는 달리 확실한 뇌사자들이었다. 자극에 반응도 없고, 자가 호흡도 없으며, 의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
하지만 뇌사자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장기를 무작정 왕자에게 이식할 수는 없었다. 뇌사자의 심장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왕자에게 적합한지도 확인해야 하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혈액형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A형은 B형의 피를 수혈받을 수 없으며, B형은 A형의 피를 수혈받을 수 없다. A형이 지니고 있는 항-B항체 때문에 A형이 AB형이나 B형의 피를 받았다가는 혈액이 응고되고, 결국엔 위험한 상태에 빠져 사망하게 될 수 있다.
수혈을 하는 것만 해도 그런데, 혈액을 직접 보내 주는 역할을 하는 심장이 다른 혈액형의 것으로 대체된다면 당연히 얼마 못 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혈액형을 검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정확히 어떤 혈액형인지까지 알아낼 필요도 없었다. 현미경이나 시약도 없으니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했고.
대신에 왕자의 피와 뇌사자의 피를 적당량 짜내어 한 데 섞어 보았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응집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물론 왕자가 AB형이고 뇌사자가 O형인 경우라면, 왕자는 뇌사자의 피를 받을 수 있고, 뇌사자는 왕자의 피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케이스라면 피가 응집되는 것이 보였더라도 이식이 가능할 수 있지만, 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확실하게 응집되지 않는, 그러니까 정확히 혈액형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다섯 명의 뇌사자들은 아쉽게도 전부 응집 현상이 일어나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상금을 조금 높여 보겠소.”
국왕은 초조한 얼굴로 내게 따지려 들다가도, 그 과정이 왕자의 목숨을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국왕이 내건 현상금의 액수가 워낙 높은 덕인지 그나마 이 정도 찾아왔던 것이겠지. 그러니 현상금을 올리겠다는 국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가 나를 찾아왔다. 산만 한 덩치를 갖고 있음에도 꼭 죄를 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든 채로 들어왔다.
장기 기증을 위해 찾아온 이들의 모습이 다 저러했다. 그들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아무리 자신의 혈육이 깨어날 수 없는 뇌사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그의 장기를 기증하도록 결정한다는 것은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현대에서도 그러한 이유로 장기 기증을 꺼리는 이들이 많았고.
“이틀 전에 아이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질 않습니다. 치료소에 데려가 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답이 없다고 하여…….”
“나이는 몇 살이나 됐지?”
“올해로 8살이 되었습니다.”
“체중은?”
“50파운드가 조금 넘습니다.”
나이와 체중은 딱 들어맞았다. 지금껏 찾아온 이들 중 최적의 조건을 갖춘 아이였다.
“아이를 내려놔 봐.”
사내가 들고 온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려 하는 걸 보고 저지시켰다.
“옆에 멀쩡히 침대가 있는데 뭐하러 바닥에 둬?”
그 말에 사내가 이상할 정도로 당황하며 아이를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간단히 뇌사를 위한 검사를 진행했다. 확실히 식물인간이 아닌 뇌사였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한 부분이 보였다. 우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제쳐두기로 하고.
“피를 통해서 검사를 좀 할 게 있는데, 손끝만 살짝 따 봐도 되지?”
“예, 예.”
사실 이 피 검사라는 것 역시에도 다른 이들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피를 통해 무언가를 하는 건 흑마법사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국왕이 나를 온전히 믿지 않았다면, 왕자의 피를 채취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왕자의 피와 아이의 피를 유리 위에 떨어뜨려 반응을 살폈다. 시간이 경과함에도 혈액은 확실히 응집되지 않았다. 양 측의 혈액이 상대에 대해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
이 말은,
“……드디어.”
왕자에게 기증될 심장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황자 전하.”
그런데 따끔거리는지 손끝을 어루만지던 왕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깨어난 뒤로도 쭉 과묵하게 입을 열지 않던 아이였는데.
“왜.”
“……저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습니다.”
알고 있었다. 왕자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반응만 보더라도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고 있었다.
“뭐 때문에?”
나는 그런 아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그의 생각을 듣고, 최대한 이해해 주기로 했다.
불안할 것이다. 이 세상에 지금껏 존재해 오던 방식이 아니니까. 가슴을 가르고, 그 안에 있는 심장을 꺼내어 다른 이의 심장을 집어넣는다.
이들에게는 마법보다도 더욱 신비한 이야기일 테지. 그리고 그 위험성이 걱정될 것이 분명했다.
“잘못될 일은 없을 거야. 확실하게 안전한 방향으로만 진행할 거니까.”
“……그렇겠지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황자 전하께선 현명하신 분이라 하셨으니. 허나…….”
왕자가 저만치 누워 있는 아이와, 불안에 떨고 있는 그의 아버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행복한 삶을 앗아가는 것만 같아 죄스럽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
어린아이의 생각이 참 깊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많이 생각해 본 부분이었다.
“그래도 절대 깨어날 수 없는 아이야. 분명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고. 죽음이 확정된 아이가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 혹시 너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다면 같은 결정을 내리면 돼.”
하지만 왕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뭐?”
“전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전하께서 이 아이가 어차피 죽게 될 아이라고 하신다면, 그 말씀이 옳겠지요. 그리고 저라도, 제가 죽으면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그럼 뭐가 걸리는 거지?”
“그의 아비를 보십시오.”
왕자의 시선은 아이가 아닌 그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그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황자께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옳지만, 그의 아비에게까지 옳은 소리로 들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게는 죄책감만이 남을 테지요. 죽게 될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끝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짓는다는 것.”
왕자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깊은 아이였다.
“그에게는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 행복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될 터인데. 어찌 제가 함부로 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왕자가 모르는 게 있었다. 일반적으로라면 왕자의 말도 분명 틀리지 않았을 테지만.
“왕자의 눈에는 저자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아?”
“다른 감정들도 더러 섞여 있을 테지만 죄책감이 가장 크겠지요.”
나는 그렇게 떨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손짓하여 그를 쪼그려 앉게 했다.
그리곤.
짜악!
사내의 뺨을 있는 힘껏 강하게 후려쳤다.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화, 황자 전하!”
왕자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으며,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 역시도 불쾌한 시선을 차마 감추지 않았다.
“죄책감? 아니야. 그냥 두려운 거야. 숨겨 온 자신의 죄가 들킬까 봐.”
내 말을 들은 사내의 눈이 더욱 커졌다.
* * *
왕자를 위해 희생할 아이를 찾는다는 왕명. 그리고 그에 대해 걸린 현상금은 무려 1만 달러였다. 그 정도면 작은 영지 하나를 사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평민들이나 농노들에게는 말 그대로 일확천금이었다.
하지만 그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다.
의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으며,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어야만 한다. 그리고 절대 깨어나서는 안 된다.
심지어는 그 조건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힐데스하임의 황자가 돌려보낸 이들의 수만 다섯이란다.
그러니 그쯤 되면 애초에 안 주려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건만.
“깨어나면 안 된다! 알았지?!”
퍼억.
광기에 젖어 있는 남자 하나가 있었다.
퍽.
“의식을 잃어야 해.”
퍼억.
“듣기로는 머리에 문제가 생겨야 한다던 것 같고.”
퍽.
남자는 한 아이를 때리고, 짓밟았다. 심지어 그 아이는 남자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취기 때문에 이런 일을 잔혹하게도 벌인 것일까, 아니면 이런 일을 벌이기 위해 취기를 빌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따라다니는 취기는 그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것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취기가 있었다는 건 절대 합리화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잘못했어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잘못을 빌어야 했던 아이는, 그렇게 영원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
확실한 뇌사였다.
1만 골드라는 거금이 만들어 낸 탐욕이었다. 어쩌면 이런 경우가 앞으로 더 나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는 아이를 반쯤 죽인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3황자를 마주 보았을 때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어쩐지 그를 마주 보니 모든 것이 들통날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머리를 많이 때렸나. 머리 쪽을 잘 보면 폭행의 흔적이 탄로 날 수도 있을 텐데. 젠장.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 황자도 눈치를 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두려움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그 두려움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남자는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1만 골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작은 땅뙈기라도 하나 사서 운영해야 할까. 아니지. 일단 암살자를 고용해서 못살게 굴었던 관리자 놈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고…….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중.
3황자가 자신을 쪼그려 앉게 시키고는 갑작스레 뺨을 후려쳤다.
쿠당탕.
그렇게 강하게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육중한 체구가 앉은 채로 균형이 무너지자 벽으로 나뒹굴게 되었다.
“죄책감? 아니야. 그냥 두려운 거야. 숨겨 온 자신의 죄가 들킬까 봐.”
황자의 말을 들은 순간, 사내의 머릿속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티가 났나? 젠장…….
하지만 다행히 그걸 눈치챈 건 황자 뿐이었고, 다른 기사들이 3황자를 말리고 나섰다.
“전하. 불쌍한 이입니다.”
“불쌍하다고? 누가. 이 쓰레기가?”
그런데 3황자는 그런 기사들을 가볍게 밀쳐내며, 한 기사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아랫도리가 축축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