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5)
제15화
“사제라니 무엄하다. 이분은 3황자 전하시다. 예의를 갖추어라.”
챈슬러의 말을 들은 헤센의 눈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예, 예, 예?”
그리고 그가 몸을 바닥에 엎드린 건 바로 직후의 일이었다.
“화, 황자 전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무슨 일로…… 소인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됐어. 일단 살릴 사람부터 살리자고.”
지금은 한가롭게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오크에게 공격을 받은 남자의 복부에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두었다간 목숨을 잃는 건 시간문제였다.
“챈슬러 경은 오크들 좀 처리해 줘. 내가 치료하기는 힘들 수 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이 쪽으로 좀 붙고.”
“받들겠습니다.”
챈슬러의 손에 들린 괭이에 새하얀 오러가 담겼다. 그가 오크에게 달려가는 것을 본 나는 서둘러 눕혀진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 흘러나오는 복부의 옷을 걷어 올렸다. 날카로운 쇳조각이 그의 배에 박혀 있었다. 출혈량으로 보건대 하필이면 동맥을 건든 모양이었다.
“헤센. 여기 날붙이 좀 제거해 줘.”
“예? 어떻게 하면…….”
“직접 뽑아. 내가 힘이 부족해서. 한 번에 확 뽑아야 해.
헤센이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복부에 박힌 쇠붙이를 움켜쥐었다.
후우.
나는 미리 심호흡을 해 두었다.
몸 안에 파고든 금속은 남자의 혈관을 찢어버렸지만, 반대로 그렇게 난 구멍을 막고 있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헤센이 금속을 뽑아낸다면 노출된 구멍을 통해 막대한 양의 출혈이 시작될 것이고 그 이후로는 시간 싸움이었다.
과다 출혈로 죽느냐, 혈관을 빠르게 재생시켜 목숨만은 건지게 하느냐.
팡!
헤센이 뽑아낸 금속이 바닥을 뒹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 나왔다.
“저, 전하!”
헤센이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성력을 움직였다.
심장을 타고, 손을 통해 뻗어 나온 성력을 최대한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성력은 겉으로 드러난 구멍을 통해 들어가며 남자의 혈관으로 추측되는 곳에 안착됐다. 혈관을 빠르게 재생시키려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젠장.”
혈관이 원하는 대로 재생되지 않았다. 성력을 통해 신체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마치 처음 인턴 생활 때 사고를 쳤던 것처럼 식은 땀이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나 때문에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과 함께,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는 옹졸한 자기합리화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혈관이 붙지 않는 이유에 대한 한 가지의 추측이 생겨났다.
“……헤센.”
“예.”
“내가 말한 곳을 정확히 눌러.”
“……예?”
“지금 상처 난 데에서 조금 위쪽으로 손 올려. 아니, 거기서 조금 왼쪽으로.”
심장으로부터 혈액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통로, 동맥. 속도가 워낙 빠른 나머지 피가 분수처럼 솟고 있었고, 그것이 혈관의 재생을 가로막고 있는 꼴이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동맥의 구멍 난 곳, 바로 위쪽을 직접 압박하여 출혈량을 잠시나마 줄이는 것이다.
“여, 여기를 말입니까?”
“그래, 거기. 걱정 말고 있는 힘껏 눌러.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꼭 인턴이나 레지들에게 했던 것 같은 말을 자연스레 해 버렸다.
주저하던 헤센이 두 손으로 내가 말한 지점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출혈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계속 그러고 있어.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이 사람 살아나면 헤센 덕도 절반은 있는 거야.”
“알겠습니다!”
헤센 덕에 출혈량이 줄어들었고, 성력은 비로소 남자의 혈관을 재생시켰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 덕에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로소 혈관이 어느 정도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이제 손 떼도 돼.”
내 말을 듣고는 헤센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이런 광경은 처음 지켜본 것인지 그의 부르튼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피에 익숙하지 않은가 보네.”
“평생 농사일만 하며 살아왔다 보니…… 그보다 이 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혹여나 잘못되었다 한들, 황자 전하께서 직접 손 써 주셨다는 사실만으로…….”
“잘못됐는지는 지금 확인해보자고.”
혈압계나 청진기가 없으니 정확한 혈압의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대략적으로라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남자의 손목에 위치한 동맥에 내 손가락을 올린 뒤, 헤센을 통해 팔 위쪽을 점차 강하게 압박시켰다.
“이제 손 떼도 돼.”
헤센의 힘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서도 맥박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혈압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뒤늦게서야 돌아온 챈슬러가 남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에야 위기는 넘어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일전에 일도 정말이지 감사했습니다! 황자 전하께서 직접 손을 써 주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헤센은 부담스럽게 몸을 바닥까지 넙죽 엎드렸다.
“됐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사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드리려 했으나 말씀드렸듯이 전하께 뜻을 전할 방법도 마땅치 않고…….”
“알아. 그리고 고마워할 건 없어. 어차피 치료비도 냈던 거잖아.”
그리곤 챈슬러가 들고 온 바이에른 가의 폐물을 촌장에게 전달했다.
“이건 무엇입니까?”
“보너스. 너희가 낸 치료비로 투자 좀 했더니 이자가 많이 붙었거든.”
“이런 건 절대 못 받습니다!”
헤센은 투박한 손을 열심히 내저었지만 나 역시도 들고 온 성의가 있으니 굳이 가지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선물을 전달해 주는 데에, 처음으로 황좌의 권위를 운운해가며 갑질을 해 봤다.
결국 선물을 전해 받은 헤센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뒤늦게 오크들이 처리된 것을 확인한 주민들이 슬슬 몰려들기 전에 자리를 뜨기로 했다.
“어찌 그냥 가신단 말입니까. 적어도 감사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십사…….”
“괜찮아. 바쁜 일이 있어서.”
바쁜 일이야 딱히 없지만 그렇게 둘러댔다. 괜히 여기 있다간 저 마을 사람들이 내 눈치를 봐 가며 무리하게 무언갈 준비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만류하는 헤센을 뒤로 하고 마을을 떠났다.
말없이 옆을 따라오던 챈슬러가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황비님과 꼭 닮으셨군.”
“뭐?”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황비는 어떤 사람일까. 그래도 나를 낳은 사람인 건 맞으니 괜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 *
3황자가 참회의 숲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하고 승자의 권리를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성국 전역에 퍼졌다.
물론 일반인들이 그 사실을 알 겨를은 없었고, 일부 고위 귀족들에게만 전달된 사실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1황자와 2황자를 각각 지지해오던 일부 가문의 귀족들은 그 소식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으며,
“심사 과정에서 불공정한 평가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신성해야 하는 과정이거늘. 궁으로 상소를 넣어라.”
납득하지 못하고 애써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는 그 사실에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 참 잘된 일이군!”
이를테면 바이에른 백작가의 가주가 그 소수에 속했다.
대대로 고위 성기사들을 배출해 온 명문 무력 가문, 바이에른.
위로는 신을 떠받들고, 아래로는 백작령의 주민들을 살피는 성결한 가문이었다.
비록 지금은 좋지 못한 일에 휘둘렸고, 성황 겔리두스의 폭정에 반대 상소를 넣었다가 권력이 예전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간신히 백작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심 지지해오던 이는 1황자도, 2황자도 아닌 3황자였다. 성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 뜻을 직접 전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와중 난데없이 들려 온 3황자의 승전보는 그들에게는 분명한 희소식이었다. 게다가 전장에서 돌아온 장남의 말을 듣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3황자 전하께서 저를 살리셨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게 정말이냐?”
3황자는 정말이지 소문대로, 그리고 바이에른이 그간 겪어본 대로 참된 인성을 가진 사람이이었다.
심지어는 바이에른에서 감사 인사로 보낸 패물을 몇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것들로 영지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해 주라면서.
올바른 말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바이에른의 가주는 계속해서 감사의 패물을 전했다. 다른 귀족들이 1황자와 2황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전하는 것과는 달리, 순수한 고마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결국 3황자가 패물을 받기는 했다. 그런데 그걸 산골짜기의 어떤 마을에 전달해 줬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왔다.
“이건 바이에른 가에 모욕을 주기 위함이 틀림없습니다!”
“어찌 백작님께서 직접 전달하신 선물을…….”
“황가는 또다시 바이에른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됐으니 그만들 하거라.”
성을 내며 백작에게 불만을 표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백작은 그 사실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군. 설마 그 나이에 불쌍한 이들을 굽어살필 정도로 성숙하신 건가.”
오히려 백작은 3황자의 행동에 감탄할 뿐이었다.
* * *
3황자에게 패물을 보낸 것은 비단 바이에른 백작가만이 아니었다.
1황자와 2황자. 그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가문들. 기세가 우세한 쪽으로 박쥐처럼 달라붙을 생각인 자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3황자는 안중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1황자와 2황자에게만 은근히 자신들의 성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3황자가 그 둘을 제치고 시험에서 훌륭한 결과를 얻어냈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3황자에게도 최소한의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으며 나름의 성의를 전달했다.
그런데 3황자는 제 주제도 모르고 그 성의를 무시했다.
“3황자 전하께서는 참 당돌하시군.”
“허허. 본인이 처한 위치를 모르시는 게야.”
자존심이 상한 여러 귀족들은 속으로 악담을 퍼붓는 것을 넘어서 악의가 담긴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3황자는 어부지리로 참회의 숲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성인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운이 좋아 얻은 성적으로 잔뜩 거만해져 있다.
그렇게 만들어 낸 소문이 신성 제국에 널리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있었다.
“잘 됐네. 누가 관심 갖는 건 사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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