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50)
제150화
나를 극구 만류하던 성기사들도, 사내를 걱정하던 왕자도. 모든 사정을 알고 난 후로는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의사였던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앗아가는 것.
지금까지 간접적으로는 이미 많은 이들을 죽여 온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칼로 직접 숨통을 끊는 것과는 결이 다른 일이었다.
전직 의사로서, 그리고 현직 사제로서 남은 일말의 양심이 찔렸던 탓일까. 나는 모두를 밖으로 내보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성기사들이 포박해 놓은 사내가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동정심이 생기기는커녕 더욱 열불이 치밀어 오르기만 했다.
“살려달라는 말. 네 아이가 네게 했던 말이었지.”
이 남자의 탐욕 때문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아무런 죄도 없었던 어린아이.
반면에 이 남자에게는 죄가 있었다. 자신의 죽음으로도 차마 씻을 수 없는 막대한 죄.
“……신이 있다면 남은 죄를 지옥에서 청산해 주시겠지.”
남자를 향해 검을 날렸다.
팍.
덜덜 떨고 있는 남자의 바로 옆 바닥에 검이 박혔다.
“있잖아.”
남자는 자신의 목이 제자리에 달려 있는지 매만져 보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사람 살려보기만 했지 죽여본 적은 없거든. 오늘 처음으로 죽일 뻔 했네.”
아버지의 구타에 의해 뇌사에 빠진 아이, 분명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아이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는 톡톡히 죗값을 치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너는 힐데스하임에서 죽일 거야. 너 같은 쓰레기들도 쓸 데가 있거든.”
나는 밖에서 대기하는 성기사들을 불러들였다.
“가둬 둬. 이 같은 짓을 하는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앞에서 보여줄 거니까.”
그렇게 남자가 끌려간 뒤로 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뇌사자의 몸이 완전히 죽어버리기 전에 그 심장을 꺼내어 왕자에게 빠르게 이식할 때였다.
바로 수술이 가능하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두었다.
* * *
수술이 시작되어도 국왕의 참관은 빠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순간인 것을 알고 있으니, 국왕도 꼭 지켜 보고 싶어 했다.
절개 과정이 생각보다 단순했던 걸 보았던 탓일까. 전보다는 국왕의 눈빛도 차츰 차분해 보였다.
“일전에 말했듯, 혹여나 잘못되더라도 황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부디 최선을 다해 주시오.”
오히려 나를 다독이기까지 했다.
“또한 황자께서 왕자를 위해 많은 노력을 보였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내가 분명히 빚을 진 게지. 그 빚은 언제든 갚도록 하겠소.”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다시 한번 수술의 과정을 각인시켰다. 심장 이식 수술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질 거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사불란하게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 줘야지만 훨씬 더 수월하게 진행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시작하지.”
내가 뇌사자의 가슴 피부를 그어 열어내는 동안, 칼로스 역시 왕자에게 같은 과정을 진행했다.
누워 있는 두 명 모두 가슴 쪽의 흉골이 드러났다. 그 안에 있는 심장을 꺼내기 위해서는 흉골을 잘라내야만 했다.
물론 흉골 절개를 최소화하거나 전혀 열지 않은 채로 갈비뼈만 여는 새로운 방식도 있었지만,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 내게는 조금 생소한 과정이었다. 아무래도 흉골의 회복 기간에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쓰는 메스가 아닌, 훨씬 더 두꺼운 칼에 신성력을 주입하여 날이 서도록 한 후, 뇌사자의 흉골을 먼저 잘라내었다. 가능하면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경험도 없는 칼로스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내가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심장 이식에는 허혈 시간이라는 게 있고,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이식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허혈 시간 동안은 심근에 혈류가 없기 때문에 심근에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스윽.
뇌사한 아이의 심장에 연결된 좌심방을 먼저 절단했다. 그리고 대동맥을 잘라내기 전에 먼저 출혈량을 줄이기 위해 대동맥 쪽을 확실하게 집어 두었다.
심장에 연결된 혈관들을 확실히 잘라낸 후 조심스럽게 뇌사자의 심장을 들어 올렸다.
그 심장을 한쪽에 내려놓고 옆에 있는 왕자에게로 자리를 옮겼다.
왕자의 흉골도 마찬가지로 잘라낸 후, 상대 정맥, 하대 정맥, 폐정맥을 보존하고 폐동맥과 대동맥의 판막 바로 위쪽을 절개했다.
그리고 뇌사자의 심장을 옮겨 조심스레 혈관들을 문합했다.
그러는 동안 왕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은 성기사들의 역할이었다. 그들의 신성력 덕분에 인공심폐기가 없어도 왕자는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들은
이론적으로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시간에 쫓기듯 수술하다 보면 난이도가 더욱 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대략 6시간 정도 진행되는 수술이다보니 집중력을 놓지 않는 것도 관건이었다.
나와 의원들이 수술을 진행한 시간은 무려 10시간가량이었다.
그러는 동안 보는 이들이 더욱 지친 듯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다만 국왕은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전부 지켜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게 끝났을 때 왕자의 피부를 접합시켰다.
“……다 끝난 것이오?”
국왕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의 얼굴이 어쩐지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다.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니 끝났다는 생각은 반년 뒤에나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수술은 모두 마쳤습니다. 힐데스하임의 사제 한 명을 두어 아까 잘라내었던 뼈의 회복을 돕게 할 것이니 그리하게 해 주십시오.”
“……성황께서 그것을 기꺼이 여기시겠소?”
“사제 한 명 두는 것쯤이야 성황께서도 제게 책임을 물으지는 못하실 겁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성황께서 황자를 좋지 않게 여기실 텐데. 그러면 훗날 황자가 대의를 이루는 데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지 않겠소?”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국왕은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자끼리의 후계자 다툼에서, 성황에게 미움을 사는 행위란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도 알고 있을 테니까.
참.
힐데스하임에서도 내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성황께 미움을 산 지는 꽤 오래 돼서.”
* * *
성황에게 미움을 샀다.
그 말이 국왕에게는 참 묘하게 들렸다.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는 황자의 모습이, 유독 과거의 성황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성황이 피를 묻혔던 건 침실이 아닌 전장에서였다.
그는 수많은 적들을 베어 넘기며 손에 피를 묻혔었다.
그 결연한 표정과 다부진 마음가짐. 그 당시의 성황과 황자는 정말로 판박이였다.
어쩐지, 3황자가 성황에게 미움을 샀다는 건, 성화이 3황자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잊고 싶은 과거인 것일까. 탐욕에 빠져 버린 성황에게는 수치스러운 지난날일 뿐일까.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국왕도 사람인지라 지금 당장 느껴지는 감정은 그런 것보다는 기쁨이었다.
“왕자가 깨어나는 데 얼마나 걸리겠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왕자가 살아났다는 사실.
눈앞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왕자의 가슴을 칼로 갈라내어, 그 안에 있는 심장을 도려냈다.
심장이라는 것은 검에 찔리기만 해도 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건만.
3황자는 그 심장을 잘라 꺼내고는, 다른 이의 심장을 집어넣었다.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피가 나오는 것도 적었고, 왕자의 상태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비록 가슴에 흉터가 생기기는 했으나 이건 왕자가 살아가며 3황자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도록 기억하게 해 줄 터였다.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왕자는 멀쩡히 숨을 쉬고 있었다. 심장을 바꿔 끼웠는데도.
“내가 무얼 해 주면 좋겠소?”
“흐음.”
국왕은 3황자가 해 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 생각이었다. 국왕에게는 다소 무리가 가는 부탁이더라도, 왕국의 미래와, 자신의 아들을 살려 준 은인에게는 그만한 답을 해 주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얘기나 잘해 주십시오.”
3황자의 부탁은 참으로 소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말씀드렸듯이 성황께서 저를 늘 못 미더워하셔서. 국왕 전하께서 잘 말씀해 주십시오.”
못 미더워하는 것이 혹여나 의술이라는 것 때문일까. 그럴 만도 하긴 했다. 국왕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의 말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며 의심했었으니까.
하지만 3황자의 의술은 기적에 가까웠다.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검술. 그러한 검술에 무언가를 융합하여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만들어 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국왕은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단순히 보면 피부를 갈라내어, 심장을 옮겼다. 이것이 전부였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에 들어간 노력과 섬세함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를 돕는 의원들 역시도 마치 짜 놓은 연극처럼 딱딱 맞아떨어지게 움직였다. 알고 있다고 따라 할 수 있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괜한 사람을 죽이게 될 수도 있을 터.
누군가 이미 시도해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별짓을 다 해 보았을 테니까.
소중한 사람을 살리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가장 큰 욕구니까.
하지만 기나긴 역사를 거치며, 의술이 단순한 민간요법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3황자처럼 칼로 째 보기도 하고, 실로 묶어 보기도 했겠지만, 오히려 생목숨이 스러졌을 것이다.
손기술이 부족해서, 집중력이, 혹은 지식이 부족해서.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었다.
역사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쓰이고 있었다. 새로운 업적은 늘 한순간에 나타났고, 그 새로운 업적이라는 게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3황자는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것이다. 국왕은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성황께 잘 말해 달라고?”
“예. 아버지께서는 자식 취급도 안 해 주시지 뭡니까? 국왕 전하께서 왕자를 생각하는 것, 그 절반만 되어도 좋으련만.”
이제 막 십 대 후반쯤 된 황자가 하는 농담에는 조금 괴리감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 부탁을 들어주긴 힘들 것 같소.”
국왕은 그런 3황자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대 못지않게 성황께 미움 받고 있는 처지라.”
그러자 3황자가 해맑게 웃었다.
“그럼 더 잘 됐습니다. 제 처지에 공감해 주실 수 있으니 앞으로도 자주 공감 좀 해 주십시오. 그거면 됐습니다.”
국왕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