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왕자가 깨어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이 훨씬 가벼워진 듯합니다.”
사실 당장 왕자의 몸 상태가 나아진 것은 아니었으나, 왕자는 그리 느끼고 있다 말했다. 수술 이후 몸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했으니, 자연스레 왕자는 새로운 심장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갖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말라비틀어진 듯한 왕자의 심장을 꺼내고, 그 자리에 훨씬 건강해 보이는 심장을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 그 모든 것을 국왕이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왕자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 심장을 제공해 준 아이의 넋을 기렸다.
그리고 힐데스하임의 사제 한 명을 왕자의 옆에 붙여 주었다. 기력을 빠르게 되찾는 데는 신성력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면서.
또한 힐데스하임으로 돌아가기 전, 젠스위트에 있는 사람 두 명을 힐데스하임으로 데려가도록 요청했다.
국왕은 그것이 젠스위트의 인재를 빼 가려는 거라 생각하고, 아들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그 정도 값은 치러 줄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국왕의 착각이었다.
미천한 신분의 노인과 아이. 심지어 아이는 식물인간이 된 채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단다.
국왕은 그 황당한 요청을 승낙한 뒤 황자가 그들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았다.
단순히 뇌사자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불우한 이들이었다. 황자는 그들을 힐데스하임으로 데려가 치료를 할 모양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국왕은 여러모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럼 이제 황자에게 받은 부탁을 들어줄 차례군.”
성황에게 얘기나 좀 잘해달라는 그 부탁.
그렇지 않아도 성황과는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할 부분들이 생겼으니 힐데스하임으로 성황을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다.
성황의 얼굴을 직접 본 국왕은 적잖이 놀랐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성황은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사슴처럼 순수하던 눈은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소녀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다부진 체격 역시 어느새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마음의 변화가 만들어 낸 몸의 변화이리라. 국왕이 마지막으로 성황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젠 정말로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황자가 아니었다면 평생 볼 리 없었을 성황의 모습이리라.
“……오랜만이오.”
국왕은 성황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러게나 말이군.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상황을 만든 건 성황 그대였소.”
국왕은 은근슬쩍 과거의 일에 대해 지나가듯 언급해 보았다. 혹여나 성황이 반성을 한다면. 그때의 일에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갖고 있고, 국왕에게 사과 한마디만 건넨다면.
불편한 관계를 해소할 용의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성황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겠나. 세상일이라는 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고, 내일은 또다시 적이 될 수 있는 법인데. 어쨌거나 그대는 힐데스하임에 빚을 지게 되었으니, 약속한 대로 확실하게 병력 지원을 이행해주길 바라네. 과거의 일에 연연할 필요 없이.”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몰려들었다.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었을까.
성황은 이미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인가.
“말은 똑바로 해야지. 힐데스하임에 빚을 진 게 아니라 3황자에게 빚을 진 것이오.”
“과거에 국왕이 내게 빚을 진 것을 잊었는가?”
“그때 그대가 나를 도운 만큼, 나도 그대를 도왔소. 또한 그대가 내게 몹쓸 짓을 하고, 심지어 내 뒤통수를 쳤을 때도 나는 그대와의 기억을 불태워버림으로써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빚을 모두 청산했지.”
성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을 터였다.
“그 이후로 힐데스하임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줄로만 알았거늘,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
그 말에 성황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국왕을 바라보았다.
“아들 교육은 직접 하지 않은 모양이오. 현자에게 황자의 교육을 맡긴 것은 분명 신의 한 수였소. 3황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힐데스하임을 향해 검을 겨누었을 테니.”
국왕은 일부러 성황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들을 내뱉어 댔다. 오랫동안 앙금처럼 쌓인 감정들을 터놓는 것이기도 했으며, 그 말을 듣고 성황이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젠스위트가 힐데스하임에 향해 검을 든다라.”
성황은 국왕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하면 젠스위트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 과거의 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이 군주의 올바른 길이오.”
“그게 정녕 올바른 길이오? 누가 그리 정했는지 궁금하군.”
국왕은 그리 말하고는 한숨을 삼켰다. 성황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기대조차 깨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바랄 수도, 바라고 싶지도 않았다.
허나 아직 3황자의 부탁이 남아 있었다.
“의술이라는 것. 힐데스하임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오?”
국왕도 알고 있었다. 힐데스하임 내에서 의술은 잡술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며, 3황자만큼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3황자가 의술로 왕자를 살렸소. 20년도 더 전에, 그대의 성력으로도 치료하지 못한 고질적인 병을 말이오.”
하지만 성황에게 잘 좀 말해달라는 3황자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선 이런 식으로라도 언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지.”
그럼에도 지금 국왕의 말에는 조금의 허풍도 섞여 있지 않았다. 순수하게 국왕이 느낀 바를 그대로 전달할 뿐이었다.
* * *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돼.”
젠스위트와의 일을 모두 끝마치고 베이언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젠스위트에서 데려온 노인과 그녀의 손녀가 머물 거처를 찾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내가 이들을 구태여 데려온 건, 분명히 이 아이에겐 깨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성력과 의술을 통한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원인을 모르고, 직접적인 해결책이 없다 보니 아직 뚜렷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누워서 합병증에 걸려 죽게 될 운명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수시로 내가 오거나 사람을 보내거나 해서 치료를 할 거고. 혹시나 혼자 있을 때 문제 생기면 바로 나한테 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미 전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무슨 일이든 할 때 제일 의욕이 떨어지게 하는 게 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물거품이 됐을 때야. 이미 나는 그대와 이 아이에게 시간을 들였고,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 않았으면 해.”
이건 불변의 진리였다. 사람에 따라 죽음에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맡았던 환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노인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께서 이 노인에게 평생동안 고난을 쥐여 주시더니, 결국에는 자비를 베푸시는군요.”
나는 밖으로 나와 주변에 거처하는 주민들에게도 언질을 해 놓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이니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특별히 신경을 좀 써 달라고.
사고가 나면 언제든 성으로 뛰어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해결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참 많은 고민을 했고, 과연 옳은 선택일지, 그래도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의료인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에서라면 분통을 터뜨리며 참아야 했겠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달라진 세상. 그에 맞추어 다르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힐데스하임의 다른 지역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베이언에서만큼은 3황자에 대한 칭송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3황자의 능력과 씀씀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베이언에 소속되었다는 데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3황자가 큰 임무를 맡을 때마다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3황자가 큰 공을 세우는 날에는 술집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다.
특히나 이번에 젠스위트에서 3황자가 왕자의 심장을 교체하여 살려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돌았을 땐, 만취한 이들이 길거리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3황자는 이번에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그런 업적과는 별개로, 젠스위트에서 불쌍한 이를 직접 치료하기 위해 데려온 것을 보며 다시 한번 그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하고 말았다.
“……나는 말이야. 가끔 전하가 걱정도 돼.”
“자네 같은 똥멍청이가 무슨 전하 걱정을 한단 말인가.”
“이 사람아! 내가 못 배우기는 했어도 어렸을 때부터 험하게 자라지 않았는가. 이 험한 세상을 피부로 부대끼면서 느낀 게, 사람은 너무 착하면 안 된다는 거야.”
사실 베이언에서는 이미 전부터 나오던 우려였다.
“전하께서는 너무 착하시지.”
“그러다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 건 아니실지.”
“마음이 여리셔서 강단을 내려야 할 때도 주저하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달라지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젠스위트에서 직접 데려온 죄인이 있단다.
“돈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폭행했고, 혼수상태로 만들었다. 짐승도 하지 않을 짓을 스스럼없이 저질렀지.”
3황자가 그 죄인을 광장에 묶도록 지시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남자가 3황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악에 받치던지, 듣는 이들이 괴로울 정도였지만 3황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실수는 용납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니.”
순간적으로 묶여 있는 남자의 눈빛에 기대감이 일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이어진 말을 듣고는 금세 눈빛이 바뀌었다.
“용납되지 않는 죄질은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지. 그대의 행위는 결코 실수라 칭할 수 없으며,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남자의 사연에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분노했다.
모두가 가난이 어떤 것인지, 돈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가난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의지였다. 이들은 하늘과도 같은 3황자에게 의지하고 있었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보듬는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나와 생각이 같다면 돌을 던져라.”
3황자는 싸늘했고, 무서우리만치 단호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3황자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3황자가 유순하다 못해 우유부단할 수 있다는 것은 우려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듯.
빠악.
“이 빌어먹을 놈!”
3황자가 뒤를 돌자마자 누군가 남자를 향해 돌을 던졌다.
빠악.
“쓰레기 같은 자식!”
멀어져가는 3황자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