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52)
제152화
3황자에 대한 소식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는 곳도 존재했다. 힐데스하임의 적국이나 다를 바 없는 발칸이 그에 해당했다.
“그들은 여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대악마의 부활이니 뭐니, 다 꾸며낸 이야기일 테지요. 우리가 그들에게 병력을 지원해 주는 것은,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꼴입니다.”
발칸의 황제는 3황자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것 역시 인지하고 있었고, 모두를 위해 발칸 역시 힘을 합칠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가 워낙 심했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에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기 때문에 황제는 그러한 그들의 뜻을 무시한 채로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황제는 멀지 않은 데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의원들.
발칸에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의원들 중에서, 특히나 고위 귀족들을 담당하는 실력 있는 자들은 힐데스하임에 우호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3황자를 겪어 보았으니까.
발칸의 사람이라면 힐데스하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외에 해당한다면 3황자를 만난 이들에 속했다.
순수한 선. 기적과도 같은 소생.
3황자는 적국의 사람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며, 적국인 발칸에 대해서도 전혀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발칸의 의원들은 3황자에게 직접 의술을 배워 오기도 한 만큼 3황자에 대한 호감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힐데스하임에 갔을 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있습니다. 다친 이를 치료하는 것보다, 다치는 이의 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3황자께서 그리 말씀하셨지요.”
황궁 소속의 의원이 그리 말하며 제 뜻을 내비쳤다.
“인류가 맞이할 큰 전쟁은 힐데스하임에 국한된 것이 아닐 겁니다. 발칸에서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피해는 더욱 커질 테고, 부상자의 수는 셀 수 없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뜻은 단호했다.
“정녕 힘을 합칠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는 의원으로 남지 않겠습니다.”
의원직을 그만두겠다는 뜻.
고위 귀족들을 담당하는 실력 있는 의원인 터라 발칸의 입장에서는 한 명으로도 꽤 치명적이었으나.
“이하동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의원들이 미리 말을 맞춘 듯 한 번에 이야기를 꺼냈다.
의원들은 분명히 발칸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특히나 고위 귀족들을 담당하는 의원들이라면 말을 다 했다.
그럼에도 한가락하는 귀족들을 상대로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절대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허나 속으로 불만을 품을지언정, 그들을 크게 나무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약 의원들을 전부 처벌했다가는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으니까.
질병과 부상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막대한 양의 돈을, 엄청난 세력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그런 의원들에게 큰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한 것이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황제는, 의원들을 불러모은 채 나무랐으나, 그 말에는 그들을 위로하고 또 그들에게 감사하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전하께서 말씀드린 바 있으나 저희는 성국의 3황자께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분께서 건네신 제안이라면 함정일 리가 없을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모두를 위한 길을 제안하셨는데 발칸만이 고집을 부려 최악의 선택을 하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3황자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 분께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 없었습니다.”
발칸의 황제는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의원들은 누구보다 성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고, 특히나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사제라면 원수처럼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성력에 대한 소문이 허황된 것이든 아니든. 이들은 자신들의 의술이 최고라 여겼고 의술이 성력의 하위 호환 급이라 여겨지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신성력을 직접 본 이들은 좌절했고, 그랬던 이들의 체면을 살려주며 다시금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3황자였다.
3황자는 이들에게 의술의 잠재력을 일깨워 주었으며, 직접 그 의술을 전파해 줌으로써 새로운 경지를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대단하군.”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이 이 고집 센 의원들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결정적인 계기이리라.
하지만 의원들이 기대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귀족들은 의원에게 직접 반발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뜻대로 순순히 따라주지도 않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하고 있었다.
덕분에 황궁 혹은 귀족들의 저택으로 출근하던 의원들은 일시적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근방의 마을로 나가 민간인들을 치료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원님이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한 의원은 늦은 시간까지 치료를 마을의 치료를 도맡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의 감을 유지하면서, 뿌듯함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밤.
터벅터벅.
의원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소리는 하나처럼 들렸으나, 정확히는 두 개였다. 의원의 것을 포함하여 두 개의 발소리가 겹쳐지고 있었다.
의원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며 그것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여전히 발소리는 겹쳐 들리고 있었으며, 심상치 않다 여긴 의원은 발걸음을 멈췄다.
턱.
침묵이 맴돌았다.
의원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신경이 예민하여 잘못 들은 것일까.
내심 안도하며 다시 앞을 바라 본 의원은, 무언가를 보기도 전에 심장에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을 먼저 맞이했다.
“커헉.”
심장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쇠붙이.
의원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의 심장을 파고든 검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게, 주제를 알아야지. 누구 덕에 발칸 제국이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지. 감히 의원 주제에 말이야.”
암살자의 말이 점점 흐려지며, 의원은 감각이 희미해져만 가는 것을 느꼈다.
* * *
두 명의 의원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질병이나 사고가 아니었다.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파고든, 숙련된 암살자의 행동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황제는 분개했다.
제국의 입장에서 의원의 귀중함을 둘째 치더라도, 평생 남을 살리기 위해서만 애써 온 이들이, 누군가의 원한을 살만한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화가 났다.
황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의심 가는 바는 있었다.
귀족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의원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리라.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귀족의 짓이라는 물증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길 바라오.”
황제는 그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많은 의원들이 참여했고, 황제는 조용히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조금이지만 분명히,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모두가 이번 사태에 대해 황제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그러니 표적이 어떤 의원이 되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장례를 모두 치른 황제는 의원들을 불러모았다. 재발을 막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다.
“황도에 그대들의 거처를 마련하겠다. 황궁의 기사들을 배치하여 결코 모종의 세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겠으니, 그대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기를 바라겠다.”
하지만 그런 황제의 제안을 거절하는 의원 역시 존재했다.
“제가 치료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시를 다투는 위급한 이도 더러 있습니다. 제가 맡지 않았다면 모를까, 무책임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황제는 일부 병자들 역시 황도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황제는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씹으며 황궁으로 되돌아왔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마땅한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완벽한 정답이 될 수는 없어 보였다.
“……3황자,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황제는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연 3황자라면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허나 발칸의 정사에 대해 3황자에게 부탁할 수도 없을 일이었으니, 그 질문은 혼잣말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의원 둘을 죽인 것은 본보기일 뿐이리라. 그들은 의원의 뜻대로 놀아날 생각이 없고, 감히 귀족들을 제 멋대로 휘두르려는 이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셈이었겠지.
황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 * *
그러던 와중 발칸에 또다시 일이 터졌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계책이라 여길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계와 연결된 균열.
그러한 균열이 생겨나는 일은 흔치는 않았지만 분명 이따금씩 볼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 때마다 그 지역에는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아주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균열의 작은 크기에 맞추어 비교적 격이 낮은 마물이 넘어온 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바, 발록입니다! 헤카테 공작이 병력을 투입하여 진압하려 하고 있으나 피해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곧장 황실의 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발록. 게다가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권력을 뽐내고 있는 헤카테 공작이, 자신의 병력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있단다.
분명 보통 일이 아니었다.
“기사들에게 곧장 출정을 준비시킨다. 마법사들도 대기 시켜.”
그렇게 말하고는 황제 역시 검과 갑옷을 챙겨 입었다.
“폐, 폐하. 직접 가시려는 겁니까? 워낙 위험한 현장이니 폐하께서는 가급적이면…….”
“나설 땐 나서야 하는 것이 군주인 거야.”
그렇게 말하고 움직이던 황제가 무언가 떠오른 듯 시종에게 또다른 명령을 내렸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에게 서신을 넣어.”
“예, 예? 뭐, 뭐라고 하면 좋을지…….”
“도움을 청한다고. 어쩌면 3황자가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갈 전환점이 될 지 모른다고 말이야.”
어쩌면 정말로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