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58)
제158화
황도에 보이지 않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황자와 2황자, 둘 중 한 명에게 붙어 알게 모르게 세력 싸움을 하던 귀족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모든 귀족들이 이탈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 발칸 제국 사태에 연루된 가문들은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황자들의 지지를 철회하였다.
“미친 게 분명하지.”
그리고 여전히 두 황자에게 붙어 있는 귀족들은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한 채 그런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3황자 전하께 붙으려는 것 아닌지 몰라. 그들 중 일부는 원래도 3황자 전하께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그렇지. 설마 그런 거겠어.”
“모르지. 이번 발칸 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성황 폐하께서도 함구하고 계시니. 거기서 3황자 전하가 폐하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든가,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고 하면…….”
그 귀족의 말에 삽시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말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럼 돌아선 귀족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됐다. 자신들만 3황자 편에 쏙 붙어 단물을 빨아 먹겠다는 뜻.
하지만 그럼에도…,
“3황자 전하께서 그간 믿기 힘든 업적들을 이루어 오신 것은 맞네만, 그건 애초에 3황자 전하에 대한 기대가 낮았기 때문에 더욱 빛나 보인 것 아니겠나.”
이들은 돌아설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하지. 현명하신 것도 맞지만 그것만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전부 해결할 수도 없고.”
이들이 3황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멸시가 깔려 있었다. 태생이 2성이었다는 것. 힐데스하임에서 신성력만큼 중요한 지표는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3황자의 신성력의 격이 올라갔다고 한들, 1황자나 2황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두 황자 전하 간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겠군.”
“그렇겠지. 하지만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도 없고.”
“변수라.”
그 변수는 3황자를 뜻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두 황자 전하께서도 알고 있으실 테야. 그리고 직접 3황자 전하를 만나 보기로 하셨네.”
“그럼 더욱 확실하게 하면 되겠군.”
이들 귀족들은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알고 있었으며, 그 권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순간은 대체로 최고 권력자인 성황의 자리가 후계자에게로 넘겨졌을 때.
그러니 이들에게는 누가 성황이 되느냐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1황자 전하께서 되셨으면 좋겠군.”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라 했지. 분명 2황자 전하께서 그 자리를 거머쥐실 테니 두 눈 뜨고 잘 지켜보게.”
그런 그들의 고려 대상에 3황자는 쏙 빠져 있었다.
정작 3황자를 택한 이들은, 권력의 욕심에서 벗어나 과거를 속죄하고, 말끔한 미래를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 * *
1황자와 2황자는 무언가 꺼림칙한 것을 느꼈다. 발칸 제국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도 들었고.
때문에 직접 전장에 나섰던 성황을 알현하여 상황을 알고자 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으셨던 겁니까?”
성황은 자신의 앞에 찾아 온 두 황자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모든 걸 말해 버리고 싶었다.
1황자와 2황자는 어려서부터 유독 3황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3황자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더욱 아니꼽게 보았다.
그러니 3황자가 무슨 일을 꾸몄는지를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터.
하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성국을 주도하는 귀족 세력 중 절반 가량이 이번 일에 연루되어 성황을 등지고 섰다. 나머지 절반 가량만이 두 황자를 지지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게 모든 사실이 성국 전체로 알려진다면, 3황자가 무사하지만은 않겠지만 그건 성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생각에 잠겨 있던 성황을 1황자가 불렀다.
“말씀해 주십시오. 발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마 발록을 소멸시키는 데 실패했다거나…….”
“……아니.”
성황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번 일이 만천하에 알려진다면, 성황이 발칸을 향해 무슨 일을 꾸몄는지 역시 알려지게 될 것이며 비겁자라는 명목 하에 성황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터였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성황을 지지하는 상황이라면 면할 수 있겠지만, 이미 그들은 성황을 등진 상태였다.
1황자와 2황자가 나머지 귀족을 등에 업어 3황자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고 한들, 저 둘 중 한 명은 성황까지 잡아먹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자식들이지만, 결코 일반적인 부자지간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됐다. 아무 일도 없다. 나가 봐라.”
결국 성황은 그들에게 아무런 사실도 전하지 못했고, 1황자와 2황자는 의아함만을 증폭한 채로 알현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형.”
그렇게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려던 중, 2황자가 1황자를 멈춰세웠다.
“뭐지?”
“이대로 돌아갈 거야?”
“뭐?”
“솔직히 말이야. 데미안 그 놈이 견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찝찝하지 않아?”
2황자의 말대로, 1황자 역시 찝찝하기는 했다. 언젠가부터, 당연히 황위의 후보자로도 생각하지 않던 3황자의 이름이 종종 언급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두 황자에게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두 명이 황좌를 가지고 다투는 사이 난데없이 한 명이 끼어든 꼴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놈 생각이나 좀 들어보는 건 어때?”
직접 3황자를 대면하자는 이야기였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했다. 황좌에 대한 욕심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를 위해 어떤 짓을 해 왔고, 앞으로는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
물론 3황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 수확이 있기는 있으리라.
그럼에도 두 황자가 지금껏 3황자를 만나지 않았던 것은,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두 황자는 자라면서 3황자를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했다. 2성으로 태어난 황자는 그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했다. 괴롭혀도 그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심 3황자가 황족의 권위를 떨어뜨린 데 대하여 죗값을 치르게 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었다.
헌데 지금은 달라졌다.
이들이 오히려 아쉬운 입장이 되어, 3황자를 만나려는 것 아닌가.
“나도 그 놈이 설마 우리 둘 중 한 명이 맡아야 하는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도 이렇게 불안하게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 놈을 확실히 묻어 두고, 형이랑 나랑 결판을 내는 게 맞지 않겠어?”
“……그러지.”
하지만 3황자는 머저리 같은 놈이다. 당하는 것밖에 모르는 멍청이기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두 황자는 같은 날 베이언으로 향하기로 정했다. 3황자라는 공공의 적이 정해진 이상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두 황자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사절단을 꾸렸다.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고, 멋드러진 장식을 찬 기사들로 구성된 호위대를 구성했다.
그건 모두 베이언에 두 황자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다시 만난 두 황자는 곧장 베이언으로 향했다.
* * *
“올 게 왔네.”
1황자와 2황자. 나에 대해 지나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 열등감은 신성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2성밖에 안 되는 놈. 그놈에게 단 하나라도 꿀리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의대 교수로 십여 년간 생활했으면서도, 종종 의대생들의 참신한 발상에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상대보다 잘난 구석이 있으면, 상대도 나보다 잘난 구석이 있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두 황자는 그걸 납득하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두 황자가 나를 보러 베이언까지 찾아오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일방적인 전달이었다.
“……전하. 차라리 자리를 피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트루드는 황궁의 기사단에 있으면서 2황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를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괜찮아.”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그게 또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무서워서 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신경 써 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두 황자가 나를 만나러 온 시기가 공교로운 것을 보면, 그들도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낀 것인데. 내가 그들을 피한다면 베이언까지 왔으니 이곳에 무슨 화풀이를 할 지도 모를 일이고.
“트루드. 너는 2황자에게 갚아줘야 할 게 있지 않아?”
내 말에 트루드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했다.
분노했다가, 슬퍼했다가, 상념에 빠졌다가.
많은 감정이 오가며 결국 마지막에 남은 그녀의 감정은 단념이었다.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다. 엄연히 힐데스하임의 황족이신…….”
“그런 게 뭐가 중요한데?”
힐데스하임의 불문율 같이 여겨지고 있는 것.
그것은 놀랍게도 얼마 전 깨어졌다. 심지어 최고 권력자인 성황을 대상으로 말이다.
“황궁의 성기사들은 비로소 눈을 떴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하게 되었어.”
그건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장족의 발전이었다. 황궁의 성기사나 사제들은 나와 직접적으로 교류하지도 않았던 이들이니 더욱 의외였다.
하지만 트루드는 나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숨기지 못할 착한 천성 때문일까. 차마 복수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했다.
“실망인데. 너는 그걸 보면서 깨닫지 못한 거야?”
“……죄송합니다.”
실망이라는 말에 트루드가 얼굴을 붉히며 바닥으로 시선을 깔았다. 목소리는 꼭 기어 들어가는 듯했다.
“……헌데.”
“어?”
“전하와 함께 있으니, 황족이란 정말 고고한 분들이며 신께서 직접 내리신 자식들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잠시 황당해하고 있으니.
“모든 황족이 다 전하 같을 거라 생각했고, 일부의 황족들은 잠시 잘못된 길을 걸으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언젠간 다시 올바른 길을 잡으실 거라고.”
“트루드.”
그런 그녀에게 확실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 있었다.
“잘못된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든.”
“……예.”
“실수는 누구든지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잘못이 실수라고 칭하기엔 과할 정도라면 말이야. 용서받을 수 없는 거야. 결코.”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게는 성황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1황자와 2황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뒤끝이 좀 긴 건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마지막으로 덧붙였지만 트루드가 당황하며 열심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