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황궁으로 돌아온 뒤로 내 일상에 조금이지만 변화가 생겼다.
2황자는 기사단에 정식으로 입문하여 검술을 배우기 위해 떠났고, 1황자 역시 성력 수양을 명목으로 황궁을 비웠다.
1황자와 2황자. 내게 가장 껄끄러운 두 존재가 집을 비웠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확 트였다.
그렇다고 다소 평안해진 이 삶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참회의 숲에서 보기 좋게 망신을 당한 1황자와 2황자가 반전을 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나라고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의학. 이미 그 효력을 두 번이나 입증해 보였으며 때로는 성력으로도 불가능한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늘 생각만 했던 성력과 의술의 결합에 대해 조금은 방향이 잡히는 듯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의술을 사용했다간 마냥 좋은 시선을 받을 수만도 없었으며, 성력의 양이 아직은 한참이나 모자라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결합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지금은 그만한 신성력을 갖춰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신전에 나가 고위 귀족들의 치료를 담당하곤 했다.
비록 2성이기는 하나 나를 찾는 귀족들은 꽤 많았다.
“확실히 성가의 핏줄은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고위 사제의 신성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는군요.”
“3황자 전하께 치료를 받으면 유달리 상처가 빨리 낫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작은 상처를 재생시키는 것쯤이야 사실 신성력의 양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얼마나 세밀하게 다뤄주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저러는 것 꼭 아부만을 위한 것은 아니리라. 게다가 내가 성황의 아들이기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여겨 플라시보 효과가 극대화된 것도 있을 테고.
참회의 숲에서 활약한 것이 널리 퍼져 귀족들이 내게 잘 보이려는 것도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대세는 1황자와 2황자 쪽이었으나, 혹시나 모를 보험 정도 들어두는 느낌이겠지.
그렇게 신전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착실히 할 일을 해나간 지 어언 7년.
조금씩 내게 변화가 생겼다. 무언가 어색하기만 했던 황자로서의 삶이 점차 익숙해지고, 과거의 삶은 오랜 추억으로 바래져 갔다.
의사 정하늘은 점차 황자 데미안이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다짐을 잊은 건 아니었다.
언젠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으며 계속해서 성력을 성장시켰다.
긴 시간 동안 성력의 발전에 매진해 온 덕에, 나에 대해 들려오는 뒷소문 역시 조금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밥버러지에서 어설픈 못난이 정도로.
그렇게 수없이 들이닥치는 귀족들을 치료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고리를 가득 채우던 신성력이 매일같이 바닥을 드러냈다가, 복구되기를 되풀이했다.
그 과정은 내게 신성력의 제어를 숙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성장기인 몸과 더불어 심장의 고리 역시 점점 더 비대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끄윽.”
그에 따른 성장통이 가슴을 뜨겁게 달궈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때로는 날뛰어대는 듯한 심장의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고, 멀쩡히 서 있다가 풀썩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
보다 못한 현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이 정도까지 과하게 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진 통념.
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성력을 진탕하여 고리의 크기를 키우는 일은 성과에 비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성력을 바닥까지 드러내면서 느껴지는 통증은 더 큰 성력을 담을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현자는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그를 통해 전달받은 지식이었으니까.
안쓰러운 얼굴이었다. 아마 내가 어린아이라서 특히나 더 그런 거겠지.
허나 남의 시선 때문에 이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심心과 체體가 무르익어 가는 성장기. 기氣 역시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시기였다.
다른 황자들이 타고난 신성력으로 안일해하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경이 그랬잖아. 황자로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뭐든 잡으라고.”
어째서 현자가 그렇게까지 말했는지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내 살길이었다. 죽을 뻔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 어떻게든 발악을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아직 황자들이 모두 어리고 입지도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황위에 대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 경쟁은 거룩하기는커녕 거북하게만 보일 정도로 참혹한 결과를 수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황자로 태어난 이상, 내 의지로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성황의 후계자는 황자들의 온전한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이곳이 법칙이었으니까.
“사실 뭐 그렇게 거창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야.”
“예?”
현자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전생에서 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것과 꼭 닮아 있었다.
‘그렇게 밤 새고도 또 환자 보는 거 안 피곤하냐?’
‘미친놈. 메스질 못해서 죽은 귀신이 들렸나. 오늘만 수술을 몇 개를 하는 거야?’
환자를 살려낸 것에 대한 뿌듯함. 점점 더 어려운 걸 해 나가며 느끼는 성취감.
그것도 물론 의사로서의 삶을 지속하게 해 주었지만, 의술에 대한 흥미 자체도 분명히 큰 원동력이 돼 주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
신성력을 다루는 것 자체가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알아갈수록 심오하고, 수련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발전하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니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렇게 지속할 수 있었다.
현자를 그렇게 돌려보낸 뒤로도 나는 계속해서 성력을 바닥까지 소모했고, 그걸 무려 십 년 넘게 반복했다. 일이 터진 것은, 비로소 19살이 되었을 때였다.
“끄으아악!”
정말로 미칠 듯한 고통이 내 가슴을 쥐어뜯었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눈이 까뒤집어질 정도였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침대 속에서 홀로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빨리 사제님을 불러와. 최대한 성력이 뛰어난 분으로!”
“전하, 이게 어찌 되신 겁니까!”
비명을 듣고 찾아온 고용인들이 마치 제 일인 양 호들갑을 떨어 댔다. 눈물을 보이는 시녀마저 여럿 있었다.
망나니처럼 구는 두 황자들에 비해 내가 워낙 양반인지라, 고용인들은 특히나 나를 각별히 여기는 탓이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끄억, 괘, 괜찮아.”
정신을 간신히 다잡았다. 이 역시 지나고 나면 밑거름이 될 성장의 과정이리라.
“전하! 어찌하여 이런 무모한 짓을!”
뒤늦게 나타난 현자는 내 몸에 신성력을 채워 넣으려고 했다.
“모두 비켜라. 걱정들 하지 말고. 고리의 성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 때문이니 외부에서 성력을 주입하면 괜찮아질 것이야.”
나는 그런 현자를 밀어냈다.
“……괜찮아. 내버려 둬.”
어떻게 비워 낸 신성력인데. 현자의 행위는 내 성장을 막아내는 꼴이었다.
“전하. 허나…….”
현자가 열심히 반발해댔으나 그의 말소리는 점차 흐려져만 갔다. 뿐만 아니라 떠들어대는 주위의 모든 소리가 작아졌다.
시야 역시 노이즈가 낀 듯 흐려지더니 난데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성력의 반복된 고갈로 고리가 결핍을 느낍니다.] [고리의 규모가 확대됩니다.] [성배가 고리에 그대의 의지를 전달합니다.] [세 번째 고리가 꿈틀거립니다.]차마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전하, 괜찮으십니까?”
“신전으로 모실 테니 부디 움직이지 마시고…….”
“됐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가슴의 통증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되려 오묘한 청량감만이 온몸을 맴돌고 있었다.
호들갑을 떨던 이들이 갑작스레 가라앉은 내 모습을 보고는 모두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얼른 가서 일들 봐. 훠이, 훠이.”
“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도 사제를 부를 테니 한번 확인을…….”
“됐다니까. 파우스트 경. 나 혼자 좀 쉬고 싶으니까 빨리 나머지 데리고 나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도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 파우스트.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수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탓이리라.
나는 고용인들이 모두 나가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갔다. 파우스트에게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해 두었다.
“그럼 이게 뭔지 한번 볼까.”
대충은 알 듯했지만 정확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태어난 지 정확히 일 년 되던 해. 의식을 통해 신성력을 부여받았고, 그때 받은 신성력의 등급은 가역적이고 불변하는 것이었다.
노력과 성장을 통해 고리의 크기를 키운다고 한들, 신성력의 등급을 뜻하는 고리의 개수는 결코 달라질 수가 없었다.
나태하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며, 발악한다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자 진리였다.
“그런데 이건 분명히…….”
가슴을 뜨겁게 일구는 감각. 그것은 분명 처음 고리를 하사받을 때 느꼈던 것과 지나치게 유사했다.
그리고 18년 전과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가슴 어림에서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신성력이다. 두 개의 고리 옆에 작게 자리 잡은 것은 세 번째 고리이고.
수년간 신성력을 다뤄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교양 교육이랍시고 파우스트에게 들었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리의 개수에 변동이 생겼던 건 초대 성황 폐하의 경우가 유일합니다. 태초부터 5성으로 태어나셨으나 언젠가부터 여섯 가닥의 성력을 뿜어내셨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요.”
500년이 넘는 역사에서 유일한 예외란다. 심지어 6성의 신성력을 지닌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나에겐 괜한 기대를 품지 말고 지니고 있는 신성력을 발전시킬 생각을 하라는 뜻에서 해준 말이었겠지. 그런데 그 유일한 예외가 내게도 일어날 줄이야.
그리고 그 실마리는 아마도 베일에 감춰진 성배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내가 분명 3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뜀박질을 하는 와중에 괜히 억울한 생각이 몰려들었다.
“……이럴 거면 나도 처음부터 5성으로 태어나게 해 주든가.”
달랑 2개의 고리를 줘 놓고 이제 와서 하나를 늘려 주는 신이라는 작자의 의도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에 또 늘려 주려나?”
괜한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2성에서 3성이 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발전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