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1)
제161화
2황자가 예정에도 없던 트루드와의 대련을 흔쾌히 수락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도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었다.
2황자는 태어날 때부터 난 놈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고, 적어도 힐데스하임 내에서 최고의 될 것이라는 믿음을 받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가 2황자의 재능을 보며 놀랐으며,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2황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그가 받았던 주목이 깨어졌던 것은 트루드가 2황자를 꺾은 직후부터였다.
아직도 2황자는 바닥을 나뒹굴었던 과거의 대련이 머릿속에 생생했다. 지워버리고 싶은 그의 쓰레기 같은 과거였다.
어쨌거나 2황자는 트루드를 이겨내는 데 성공했고,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남겨 그의 승리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두었다.
그리고 2황자는 떠났다.
황궁의 기사단에 남아 수련을 하는 것보다는, 그의 기반 세력이 있는 곳에서 힘을 끌어모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일부 성기사들 역시 황궁의 기사단을 빠져나와 2황자를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2황자는 자신의 세력이 있는 곳에서 힘을 길렀다.
성국 내에서 손에 꼽는 무력을 지닌 성기사들에게서 검의 운용을 배우고, 주교에게 성력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습득해 나갔다.
실전 경험도 충분히 쌓였으며, 무엇보다 성장기가 지나면서 그의 신체와 성력의 고리는 완전히 굳건해져 있었다.
과거의 그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성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트루드와 정면 승부에서 지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3황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2황자의 검은 트루드의 검격을 간신히 방어해내는 데 급급했다. 반응하는 속도는 차츰 느려지는 반면, 트루드의 공격은 오히려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치잇.”
여유롭던 2황자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져 갔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주위의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과거의 망신을 깨끗이 지워버리고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트루드와의 대련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망신을 당하게 될 꼴이었다.
“커헉.”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트루드의 파도 같은 검격이 복부로 들어오며 속이 거세게 울렁거렸다. 통증과 함께 메스꺼운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그 감정들을 곱씹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2황자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였다. 그 사실에 의문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태어나기를 4성으로 태어났다. 물론 신성 제국에서 4성인 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고리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밀도 높은 4성의 고리였다. 게다가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헌데 트루드는 여전히 2황자의 머리 위에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전처럼 신성력을 사용하여 그녀를 압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그런데 번개처럼 휘몰아치던 트루드의 검격이 멈추었다.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2황자는 의아함을 느끼고 트루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3황자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이 꼭, 트루드가 3황자에게 허락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더욱 역정을 불러일으켰다.
“나를 농락하는 것이냐!”
지금까지는 힘을 감춰온 것처럼, 이제는 끝을 내도 되냐는 것처럼. 그 모습은 꼭 트루드가 자신을 한참 아래처럼 여기는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황자는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2황자의 가슴 속에 위치한 고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의 손목을 따라, 많은 양의 성력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
“헛!”
그리고 지켜보는 이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신성력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라면 모를 수 있지만, 여기 있는 대부분이 신성력을 보유한 자들이었으니.
2황자의 기사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2황자가 또다시 사고를 치는 건지. 그때야 트루드의 입단속만 해 두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고, 특히나 트루드를 기사로 서임한 3황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이 감히 3황자를 입막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베이언의 기사들 역시도 나서서 2황자를 말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2황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고 한들, 그를 말릴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지금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3황자뿐이었다.
베이언의 기사들도, 2황자의 기사들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3황자가 나서주기를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3황자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2황자는 주위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이미 분노에 휘둘리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마물이나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2황자는 몇 배나 빨라진 속도로 검을 들어 올렸다. 전신의 근육이 성력을 통해 강화되어 있었고, 그걸 트루드가 반응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검 끝에서는 신성력의 방출을 의미하는 새하얀 빛을 작게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2황자는 뒤는 생각도 않고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아래로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심상찮은 기운에 2황자는 검을 들어 올린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느낌이 2황자의 온몸을 꽁꽁 속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경험을 찾자면, 아주 강한 마물을 눈앞에 볼 때나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트루드에게서 갑작스레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일개 마물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달랐다.
한 차원 위에 있는 듯한 절대자의 기운. 트루드가 고개를 들어 2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그녀의 눈이 2황자를 훑을 때마다 몸이 쩍쩍 갈라져 나가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대체 이게 무슨…!”
어째서 트루드에게서 이런 기운이 느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건대,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2황자가 아닌 트루드였다. 정작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은 2황자인데 말이다.
트루드에게서 나온 기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오직 2황자 뿐이라는 소리였다.
“……전하.”
트루드의 차가운 목소리가 2황자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음성은 2황자가 숨을 제대로 고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2황자는 호흡을 멈춘 그대로 트루드를 바라보았다.
애써 몸을 움직여보려 했다.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만 검을 움직이면 트루드에게 닿을 수 있는데. 그녀에게 누가 위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럴 의지조차 잃은 채로, 이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두려움만이 엄습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통제를 잃은 2황자의 온몸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일전에도 정도가 지나치셨고, 이번에도 정도가 지나치셨습니다.”
빠악.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한 타격음과 함께, 옆구리에 강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채 눈으로 쫓기도 전에 트루드의 목검은 어느새 회수되어 그녀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2황자는 그제야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넘어져 버렸다. 수치심과 굴욕감, 지금 2황자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는, 안도감이었다.
일 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에서 벗어났다는 데에서 2황자는 마음이 편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2황자는 의식을 잃은 동안,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악몽 속에서 시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2황자조차 알 수 없었으며, 애초에 다른 이들은 트루드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 * *
트루드가 2황자를 기절시킨 것에 대하여 그 누구도 항변하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2황자가 응했던 대련이었으며, 기사 간의 신성한 대련이었고, 트루드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물론 루시퍼의 힘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트루드는 나의 기사였고, 참관인으로 내가 있었으니 감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트루드가 내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왜인지 알 법했다.
2황자와의 악연. 그건 처음 트루드를 만난 순간부터 알고 있던 바였다. 애초에 그 때문에 그녀가 내게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녀가 나에 대한 편견을 모두 떨쳐 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2황자에 대한 감정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을 터.
그걸 해결해주고 싶었다.
사적인 이유는 둘째 고라도, 훗날 2황자를 상대할 때 과거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으면 안 되었으니까.
루시퍼의 힘을 사용해서라도 2황자에게 끔찍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 그것으로 트루드는 만족할 만한 복수를 하는 데 성공했다 봐도 무방했다.
“내가 고마울 일이지. 꼭 한 대 때려주고 싶었거든.”
그리고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가 검술에 재능이 있었다면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2황자를 흠씬 두들겨 패 주었을 것이다. 2황자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쌓여 온 악감정이 많아서.
“……그런 게 있으면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전하의 몫까지 제가 확실하게…….”
“이제는 농담도 할 줄 아네.”
“…….”
트루드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한 걸로 봐선 농담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이번 대련에서 트루드에게 루시퍼의 힘을 사용케 한 것은 사적인 복수 외에도, 그녀의 힘을 확인해 보기 위함도 있었다.
대악마의 힘은 분명히 그녀를 한층 더 강한 존재로 만들 만큼 놀라웠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은 양날의 검이었다.
이전만큼 트루드가 그 힘에 이성을 잃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루시퍼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의 힘 때문에 또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의 속삭임에 넘어가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확인해 보았던 것이다. 그녀가 그 힘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을지.
비록 이번 대련에서 트루드가 사용한 대악마의 힘은 미량이었지만, 평정심을 잃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었다. 트루드에게는 누구보다 미울 상대가 눈앞에 있었고,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루드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잘 통제하여 딱 필요한 만큼의 분노를 표출했다. 대견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그녀는 훌륭한 기사였다.
“……혹여 제 얼굴에 뭐라도 묻은 것인지.”
내 시선이 노골적이었는지 트루드가 난색을 표했고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