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힐데스하임에선 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도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신전에는 자고로 사제가 있어야만 하는 법이고, 신성력을 지닌 사제가 별 볼 일 없는 시골에 틀어박히는 경우는 적었으니까. 보통은 신성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축복으로 취급받았기에, 그를 이용해 대도시에서 출세하기를 원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사제님께서 떠나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아무리 타락한 신성 제국이라고 한들 그 예외는 분명히 남아 있었다.
타지인의 방문조차 손에 꼽을 만한 변방의 시골 마을에서, 사제로서 주민들을 돕는 여인.
마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황족만큼 위대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대도시로 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터인데. 천한 것들의 심신을 치료해 주며 몇 년이고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 전, 2황자의 사람들이 그녀를 데려갔다. 황자의 부름이었기에 그녀로서도 차마 거절할 수는 없는 듯 보였다.
“돌아오시지 않으면 좋은 것 아니겠나.”
뉘엿뉘엿 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일상에 지친 이들이 텃밭에 앉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놓았다.
“그럼. 여기 있을 분이 아니셨지.”
“항상 사제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었어. 우리 때문에 여기 남아서, 창창한 앞날을 걷어차고 계셨지 않은가.”
“그래. 정말로 그렇게 정하신 거라면 옳은 선택을 하신 게지. 우리 같은 놈들한테 붙어있는 것보다, 황자 전하 옆에서 큰일을 하시는 게 맞았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사뭇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사실은 정이 든 게 맞았다.
5년 전 그녀가 우연히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난데없이 찾아온 높은 이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높으신 사제분이 뭐 하러 이런 촌구석에 오겠는가? 무언가 좋지 못한 꿍꿍이속이 있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홀대받으면서도 그녀는 결코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심어린 그녀의 태도에 시간이 지나면서 곧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이 사제를 권위주의에 찌들었다 바라보았던 것은 편견 때문이었으며, 오히려 그녀는 아무런 허울 없이 이들을 대했다.
그녀는 이들에게 빛이 되었다.
지금 저물어가는 태양보다도, 더욱 찬란한 빛이.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사제님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진 모르겠군.”
“그분께서 오셨던 게 불과 5년 전이네. 그 전까지 충분히 잘 살았지 않은가.”
“잘 살았다라…….”
그는 다시금 노을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시골의 마을이라고 늘 평화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들짐승이 마을을 습격하기도 하고, 난데없는 질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런 위기를 계기로 더욱 똘똘 뭉치며 살아갔고, 신께서 자신들을 가호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신이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은 막연한 믿음일 뿐이었다.
사제가 선보인 신성력은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웠으며, 맹목적인 믿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효용을 보여주었다.
사제가 마을을 떠나간다면. 이제 그 맹목적인 믿음이 이들을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시 예전처럼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렇게 떠나가게 되실 줄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것을.”
“꼭 돌아올 거라 장담하고 가셨으니 우리도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는가.”
그렇게 한숨이 잔뜩 섞인 대화가 오가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의문을 표했다.
“……사제님께서 허튼소리를 하시는 것 봤나?”
“……응?”
“사제답지 않게 과격한 소리를 자주 하기는 하셨지만, 그분의 말이 틀렸던 적은 없어. 특히나 그분께서 내 거셨던 약속을 어긴 적은 없었지.”
“그러니까, 사제님께서는 돌아오실 거다?”
“이 사람아. 이젠 그냥 보내드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분께서도 감히 황자 전하를 도울 만한 기회를 얻게 되셨는데.”
“그곳에서 누리실 삶은 이곳과는 완전히 다르겠지. 약속을 어기셨다고 원망할 생각은 하지 말게. 감히 누가 그곳을 마다하고 돌아올 생각을 하겠어. 나라도 그러진 못할 테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 생각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그분을 원망하거나 질책하려는 게 아니야. 평소의 행동과 너무 다르니 의아해서 말일세. 만약 그렇게 마음이 바뀌셨다 하더라도, 사람이라도 보내서 우리에게 소식 정도는 전해주지 않으셨겠어?”
그것에 대해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나뉘는 듯했다.
누군가는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누군가는 사제님이 괜한 죄책감에 시달려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각기 다른 의견들이었지만. 이들이 아무리 갑론을박을 벌인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 되겠네. 내가 조만간 2황자 전하께서 계신 도시로 가서 소식을 알아보든지…….”
“그만두게. 촌놈이 그런 데 발을 들였다가 얼마나 무시를 받으려고?”
“사제님께서도 그러길 바라진 않을 테고.”
대화는 그렇게 발전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로 끝이 났다. 사람들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어둑어둑하지만,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려 했다.
“……어?”
그 순간, 태양을 등지고 다가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저 멀리에 있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두가 일제히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외지인의 방문이 드문 곳이다. 혹여나 사제님이 돌아오신 게 아닐까. 기대하지 말라니까, 길 잃은 방랑자가 우연히 방문한 것이겠지, 그런 대화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실루엣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털썩.
그리고 이쪽을 향해 걸어오던 사람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린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황급히 달려갔다.
“……어어?!”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내심 그토록 돌아오길 바라던 여사제였다. 헌데 금의환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 만신창이가 된 채로 돌아왔단 말인가.
“신이시여……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럴 시간 없네! 빨리 사제님을 옮겨!”
주민들은 여사제를 재빨리 들쳐메고는 가까운 집 안으로 들였다.
침대 위에 여인을 눕혔지만,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두 손을 모았다. 여사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 그토록 말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신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제발…… 제발…….”
이들은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졌다. 사제님이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이들은 사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마을 사람들은 협의하여 돌아가며 여사제의 간호를 담당하기로 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안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뱉었다.
“대체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황자 전하를 뵈러 갔다가 이리되었단 말인가? 설마…… 사제님께서 죄지은 게 있으시다거나…….”
“괜한 생각 하지 말게. 단순히 귀향길에 사고가 났던 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사제님께서는 꼭 살아나실 테니 그때 여쭤보면 되겠지. 신께서도 설마 이렇게 대단한 분을 거두어 가시겠는가.”
그렇게 말하면 신은 혹여나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제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괜스레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허억, 허억.”
여사제가 눈을 뜬 것은 이튿날이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대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정겹고 소박한 집의 풍경이 보였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애써 달랬다. 다행히도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옥 같은 기억 속에 휩싸여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기다 의식이 끊어진 것까지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사, 사, 사제님!”
그리고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본 마을 주민 한 명이 호들갑을 떨자 그녀는 자신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별일 아니에요.”
거짓말이었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고리를 끊어내는 과정에 있어 차라리 죽고만 싶은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끔찍했다. 신성 제국의 타락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알지 못해도, 대충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거늘. 설마 황자라는 자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불편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대체 어쩌다 그리되신 겁니까?”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한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괜히 이들의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다.
“정말 괜찮다니까.”
그녀는 애써 담담한 척 사람들을 치워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정신이 끊어질 뻔했다.
고리를 끊을 때의 끔찍한 고통뿐만 아니라 매 순간 묶인 채 들려왔던 2황자의 조롱이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여사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물리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구석에 웅크린 채로 계속해서 덜덜 떨었다.
지독한 수치심과 굴욕감.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사제도 아니게 되었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고리가 한 개도 없었으니 말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대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짐짝만 될 뿐이겠지.
여사제는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아까 분명 해가 뜨고 있었는데, 이제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독하게도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사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2황자의 음성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발길을 멈춘 곳은 절벽 위였다.
그리고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녀에게 있어서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앞에서 생명이 끊어지는 걸 차마 바라볼 수 없었기에. 사제로서 늘 최선을 다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건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사제님?!”
그리고 막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빠르게 끝을 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어느 순간 바로 뒤까지 다가왔고, 그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사제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단 말입니까? 예? 혼자만 앓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마을 주민은 그녀를 잡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었지, 한 번도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위로로 다가온 그의 울음이, 지독하게도 안락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는, 누군가에게 더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