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4)
제164화
여사제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마을로 빠르게 퍼졌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그녀를 걱정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걱정거리를 옮기고 싶지 않아 털어놓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위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모든 걸 털어놓기로 결정했다.
“……그럴 수가!”
“신께서도 너무하시지! 어찌 그런 걸 보고만 계셨단 말입니까?”
그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여사제에게 공감해 주었으며, 진심에서 우러난 위로를 건네주었다.
사제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이토록 따스한 일이었다니.
이전처럼 극단적인 생각은 두번 다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게 이토록 마음을 열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게다가 이제는 신성력도 없는 그녀를, 여전히 사제로 여겨주고 있는데.
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으니 버림받을 거라는 생각은 더이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신께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개입하시는 일은 없다고. 기도를 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는 없습니다.”
신성 제국의 정론과는 꽤나 다른 주장.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로 신이 늘 모두를 지켜보고 있고, 불쌍한 이들에게 구원의 자비를 베푸는 거라면.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일들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제로서 인적 드문 곳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일이 없었을 테지만, 그랬다면 이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니 지금에 와서는 천운이 아닐까 싶었을 뿐.
“허면 어쩌실 셈입니까?”
“이미 제 삶은 망가졌으나, 제게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없던 일처럼 살아가는 것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이겠죠.”
“……하.”
“젠장!”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당신들이 미안해할 게 뭐가 있어요.”
사제는 울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꺼내기 망설였던 말을 조심스레 늘어놓았다.
“하지만 저는 이제 당신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여기 계속 있는 건 오히려 민폐만 끼치는…….”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그녀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진지한 얼굴로 성을 냈다.
“그간 사제님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은혜는, 저희가 평생 사제님을 모셔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괜한 생각 하지 마시고……. 사제님께서 정말로 이곳을 떠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떠나실 필요 없습니다.”
“맞습니다. 사제님께서 남아주시는 게 저희도 더 좋습니다.”
고맙다, 차마 그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녀에겐 너무도 어색한 말이었다.
평생 누군가에게 고마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습관이 들지 않아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심정조차도 이해해 주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빛나던 고리의 빛은 바래져 버렸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저기 뜨고 있는 태양처럼 다시금 환해질 것이라 믿었다.
* * *
고리가 사라졌다고 한들, 그녀는 사제복을 벗지 않았다. 고리가 끊어지긴 했음에도 2황자에게 굴복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신전을 운영하지는 않기로 했다.
애초에 신전은 사실상 치료소처럼 운영되고 있었고 치료 능력이 없어진 그녀가 신전 문을 더 이상 열고 있을 의미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일을 거들었다.
경험이 없다 보니 서투르고 실수가 잦았지만, 밭을 가꾸는 데 손을 보태기도 하고 일꾼들에게 식사거리를 손수 제공하기도 했다.
“아이, 참. 이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사제님이 이러시는 거 알면 저희가 천벌 받습니다.”
“그런 거 없다니까 정말. 도와줄 때 받기나 해요.”
마을의 모습은 다시금 예전처럼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안타까운 시선들이 그녀에게 향하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사라질 거라 믿었다.
다그닥, 다그닥.
그렇게 불편한 사제복을 입은 채 흙을 묻혀가며 밭일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든 사제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말을 타고 이 마을에 방문하는 사람은 드물었으며, 게다가 복장마저 기사의 그것과 가까워 보였다.
힐데스하임의 기사. 그가 이런 마을에 방문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자연스레 2황자와의 일이 떠오르며, 잊혀져 가던 악몽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걸 억지로 견뎌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그녀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녀보다도 더욱 걱정스러운 얼굴들.
휴식을 취하던 이들까지 근처에 던져 놓았던 농기구를 집어 들었다. 그들의 손에 힘이 꽉 쥐어져 있었다. 어쩌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통받는 건 그녀 하나면 족하건만. 이들이 일을 저질렀다가는 괜히 마을 전체가 2황자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이들이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직접 그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철갑과 롱소드로 무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결코 기사 노릇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쿨럭, 쿨럭. 이곳에 사제가 있다고 들었소만.”
기사는 말 위에 오른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사제복을 유심히 바라보는 걸 보면, 이미 다 눈치채고 하는 말인 듯했다.
“제게 더 앗아갈 것이 남아 있었습니까?”
그녀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덤덤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도 좋아서 온 것은 아니겠지.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쇠약한 몸을 이끌고, 2황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으리라.
“오해를 하시는 듯하오.”
노인은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먼 길을 와서 지치는군. 혹시 물 한 잔만 주고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소?”
경계심은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저 멀리서 지켜보는 주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사를 자신의 집 안으로 들였다.
“…….”
사제는 앉아 있는 노인에게 물을 건넸다.
“고맙소.”
그는 숨이 넘어갈 듯 물을 마셨다. 철갑옷을 벗어놓자 더욱 환히 드러난 기사의 몸. 앙상한 뼈가 드러나 있는 빈약한 몸이었다.
“그대를 찾기 위해 두 달을 수소문을 했소.”
“제가 누군지 알고 말입니까?”
사제는 여전히 기사가 2황자가 보낸 사람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2황자와, 이 마을의 주민들 뿐이었으니까.
“나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소.”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신성 제국에서 빛을 잃었다는 것 말이오.”
“……?!”
“아마도 2황자 전하가 그대를 감시하러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오나, 오히려 그 반대요.”
“설마…….”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가설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2황자가 보낸 사람이라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저런 다 죽어가는 노인을 보낼 리가 없겠지.
“내가 첫 번째 희생양이었소. 황자 전하께서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고리를 끊으셨으나, 네 개의 고리를 모두 끊어내는 동안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셨지.”
“그런……! 대체 몇 명이나 희생당한 겁니까?”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사제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다소 무감각한 편이었으나, 타인의 고통에 한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녀와 같은 일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단순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그 유일한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일을 당할 대상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소인이 첫 번째였고, 사제님이 두 번째였소.”
그래도 다행히 그 외의 피해자는 더 없는 듯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더 늘어날 수도 있겠군요.”
“그대를 통해 황자 전하께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지 못하셨다면, 그렇겠지. 그래서 물으러 왔소. 그대에게는 회상하기 싫은 기억일 테지만,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이기에.”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특별한 성과는 얻지 못하셨을 겁니다.”
“끔찍하군.”
노기사의 눈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그녀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겪어봐야만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단지 그것을 알기 위함만은 아니시겠지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름의 해결책이 있기에, 그녀를 애타게 찾았던 것이겠지.
“사제님도, 나도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배경도 뚜렷하지 않고, 성력마저 모두 잃어버렸으니.”
하지만 노기사의 대답은 원하던 것이 아니었고. 그녀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때쯤, 노기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은 있소.”
“……그게 무엇입니까?”
“사제님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지 오래되셨다 들었소. 허나 성국의 정세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 그 주축에는 세 번째 황자님이 계시오.”
3황자의 손을 빌려 2황자의 악행을 막자는 것인가. 얼핏 듣기로는 그다지 적합한 해결책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저희가 원한다고 황자 전하께 저희의 말을 전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야만인을 토벌하기 위해 야만인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녀가 성국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한들, 황자들 간의 싸움이 치열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싸워야만 하는 입장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신성 제국의 고위층을 믿지 않았다. 특히나 2황자에게는 감히 신성 제국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힘든 일을 당했다. 그런데 3황자라고 그러한 2황자와 다를까?
“……그렇지 않소.”
그런 그녀의 편견을 깨부수듯 노인이 확고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노인네가 은퇴한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3황자 전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왔소.”
그는 3황자에 대한 소문을 그녀에게 천천히 늘어놓았다. 그가 이룬 업적과 선행들. 실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또한 낮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이니, 우리가 원한다면 충분히 그분에게 닿을 수도 있소.”
하지만 역시 미심쩍었다.
“성국에 대한 소문은 과장되었으며, 황족에 대한 것은 특히나 그렇지요. 마치 음유 시인의 노래에서나 나올 법한……”
“3황자 전하에 대한 소문이 꼭 만들어 낸 이야기 같은 건 동의하오.”
노기사는 그녀의 마음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국을 위해 나름 충성을 바쳐 왔고, 그 덕에 나름의 눈치 정도는 생겼소. 또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오.”
노기사의 생각은 몹시도 확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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