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6)
제166화
어지간해서는 미뤄두려고 했다.
1황자나 2황자, 그리고 성황까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사악한 놈들이기에 내가 성황이 된다면 공식적으로 그들을 확실하게 처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피해를 입은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피해자들이 나를 믿고 찾아온 상황이었다. 물론 내가 성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을 언제까지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성황이야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악행들을 온전히 은폐해 왔다지만, 2황자는 그에 비하면 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성황은 지금 힘을 잃은 상태이니 그가 2황자까지 커버해 주기는 힘들 터였고.
나는 그 빈틈을 찾아내고, 2황자를 묻어버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현자와의 대화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고리를 끊어냈다라…….”
얼마 전 나를 찾아왔던 여사제와 노기사의 사연을 들은 현자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현재 신성 제국 내에서, 스스로 고리를 끊어낸 유일한 자였기에. 혹시나 그에 대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던 것.
그리고 현자는 애써 한숨을 집어삼켰다.
“지독하군요.”
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겉으로는 늘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고리를 끊어내면서 느끼는 고통. 사제로서 신성력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는 현자의 반응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알 법했다.
“현자에게도 미안하네.”
그리고 나는 현자에게 사과 아닌 사과를 건넸다.
현자는 나 때문에도 고리를 끊어낸 적이 있었으니까. 만약 그렇게 힘든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내가 극구 거부했을 테지만,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현자가 고개를 저었다.
“제 자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일전에 경험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전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타의에 의해 강제로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지요.”
그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는 바였다. 현자의 말처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과 남에게 강요받아 겪게 된 것은 경우가 다른 일이었다.
“현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미뤄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봐.”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전달했다. 굳이 내가 이것을 현자에게 전한 이유를 현자 역시 알 터였다.
“현 상황에서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확실한 건 아니다 보니 일이 틀어졌을 때 전하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황이 되고 나서 해결한다면 더욱 확실하다고 돌려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건 미룰 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기회에 2황자를 실각시키고 난다면 나 역시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 더 수월해질 수 있었다.
“……전하는 늘 한결같은 분이군요.”
그리고 현자는 내 표정을 읽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칭찬으로 들리는 건 내가 조금은 변태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거겠지.
“참 다행입니다.”
“뭐가?”
“한결같으신 분이라서요.”
현자의 표정이 씁쓸해 보이는 것은 비단 2황자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제대로 된 분을 선택한 듯합니다.”
성황이 된 후 완전히 달라져 버린 사람, 겔리두스. 그가 성황이 되는 과정에 일조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에 대한 회의감과, 그 이후 달라져 버린 신성 제국을 보며 느끼는 죄책감. 현자 역시 말은 안 해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터였다.
“현 성황께서 그 자리에 오르신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뭔데?”
“‘부결의 추’라 불리는 성물이 있었습니다.”
성물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성국의 안위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춘다거나, 혹은 스스로 자취를 감추는 성물도 있었다.
“현 성황이 즉위하신 직후 부결의 추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성물의 이름을 보아 무언가 추측되는 바가 있었다.
“성물은 파괴할 수 없으니…… 성황께서 감추신 것이라 보는 게 맞겠지요. 부결의 추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도 하였으니.”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닙니다. 챈슬러 경께서 큰 역할을 해 주었기에.”
“챈슬러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과거 힐데스하임의 황궁 기사단을 이끌던 수장이었으며, 필연적으로 성황의 부정한 명령들을 여럿 받았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내 어머니를 죽이라는 것이었고.
챈슬러는 그 명을 따르지 않았다. 죽인 척하며 어머니를 살려 보냈고, 결국 그게 발각되어 그를 평생 지하 감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죄인으로 만들었다.
챈슬러는 부결의 추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 역시 성황의 명을 어겨 살려주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서 감추려던 것이지?”
“지금의 성국이 정말 성황께서 원하시던 모습이라면. 부결의 추가 있는 이상 이대로 유지될 수는 없었을 테니 그러셨겠지요.”
잠시 회상하던 현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사제는 힐데스하임 내에서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이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신성 제국이 청렴한 국가로 유지될 수 있던 이유였지요. 허나 그 사제들 중 꼭대기에 있는 황족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 자는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알고 있었다. 그게 지금 힐데스하임이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된 결정적인 이유였고 말이다. 단순히 황족들의 사명감만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일인 건 사실 당연했다.
“그리고 그런 황족들을 심판하던 역할을 하던 것이 부결의 추라는 성물이었습니다.”
듣는 순간 기가 찼다. 너무 교묘하지 않은가.
마음껏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신성 제국을 타락시키기 위해 성물의 존재를 아예 감추어 버렸다니.
“부결의 추를 되찾고, 만천하에 그 존재를 알리게 된다면 2황자 전하는 마땅한 심판 아래에서 죗값을 치르게 되실 테지요.”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성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성황만이 알고 있을 터다. 하지만 그가 순순히 그 위치를 알려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부결의 추가 다시금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면, 가장 위험한 자는 다름 아닌 성황이었으니 말이다.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추를 되찾는 일은 쉽지 않으실 겁니다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황의 자리에 오르신다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실 테니 더욱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말씀드린 게지요.”
“성황을 만나봐야겠어.”
하지만 그에게 말했던 대로 기다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그들과 같은 피해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었고.
나는 곧장 결정을 내렸다.
* * *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직후, 성황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채로 황궁에 틀어박혀 있었다.
발악할 수도 있었다. 이제껏 그래 왔듯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3황자를 찍어누를 수도 있었다. 혈육이라는 것 따위는 성황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점차 막을 수 없는 세대교체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그 역시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운 시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폐하. 3황자 전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신을 받았던 것처럼 3황자가 성황의 궁으로 찾아왔다.
속을 당최 알 수가 없는 놈이었다.
지독하리만큼 선한 성정을 가진 놈이면서 동시에 유순한 줄로만 알았더니. 제 아비를 집어삼킬 생각을 하고는, 이제는 그를 직접 마주하러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래, 위에 선 자란 신중하다가도 때로는 대담해야만 하는 것. 실로 군주의 모습에 가까웠다.
“……들라 해라.”
성황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3황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아비를 대하는 모습도, 일국의 군주를 대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무례해 보일 정도로 차가운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일까. 그때의 일을 담판이라도 지으려고 온 것일까.
잠시 고민하던 차에 3황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말하라.”
“분명히, 좋은 분이셨다고 들었습니다.”
“……?”
“현자도, 챈슬러 경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모실 만큼 훌륭한 분이었다고. 당신이 진정으로 신성 제국을 빛낼 위인이시라고 여겼다 들었습니다.”
성황은 3황자의 난데없는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나를 비난이라도 할 셈이냐?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고 한다면. 성황이 되어 나부터 숙청할 것이더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따지고 들 셈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에게 들은 모습과 제가 바라본 폐하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지요. 아버지로서도, 군주로서도, 폐하께서는 최악이었습니다.”
“……인정하마.”
성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성황이 악한 성향을 지닌 이였다면, 스스로가 악한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챈슬러나 현자를 비롯한 이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결코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깨끗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악에 물들어 버렸다.
그 변화를 성황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타락하는 과정을 막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지 정도는 하고 있었단 뜻이었다.
“헌데 챈슬러 경과 현자가 말하기로, 아버지께서는 젊으셨을 적에 저와 참 많이 닮으셨다 하더군요. 참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3황자의 말은 지나치게 과격했지만 성황은 이제 그것에 따지고 들 수 있는 힘조차 없었다. 되찾으려면 되찾을 수 있는 힘이었지만, 어차피 황자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기에 굳이 그러지 않았을 뿐.
“그런데 저는 현자와 챈슬러 경이 저를 어찌 바라보는 줄 알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는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은 저를 과도하게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리 말했다는 건, 성황 폐하께서 정말로 과거엔 다른 분이셨다는 뜻이겠지요. 그게 결코 연기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연기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황과는 예상과는 다른 말에 놀란 눈으로 3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성황은 구태여 변명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스스로가 추해질 뿐이었으니까.
“그런다고 내가 너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 내 기사들이 네게 힘을 실어준다고 한들, 일부분일 뿐이지. 황가 전체가 네 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황자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불문율이었기에. 성황이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3황자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저는 저를 도와달라 폐하를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
“단지, 성황 폐하께서 어그러뜨린 성국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기회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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