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성황의 몸에 흑마법이 침투했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성황이 타락했다는 것.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어떤 식으로 치료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성황에게 치료할 것을 장담이라도 하듯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권능이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자동적으로 사용된 체득의 권능이 성황의 과거를 보여주었다는 것. 앞선 경험들로 보아, 이런 식으로 권능이 발동된 경우는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행해야만 할 때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혹여나 내 선택이 잘못되었을 거라는 의심은 없다. 성황이 과거에 보였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그의 타고난 성정이었다면, 성공적으로 흑마력을 제거해 낸다면 성황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부결의 추라는 성물을 손에 얻는 건 시간 문제나 다름없었다.
성황은 부결의 추에 의한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장 심판하고 싶어 할 테니까.
성황에 대한 동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은 죄가 사하여지는 것은 아니다. 마땅한 죗값을 치르는 게 맞겠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하아.”
그냥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끄기로 했다. 만약 성황이 정신을 차리고도 과거의 자신에 대해 뉘우치지 못한다면 내가 나서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그 머리 아픈 심판에 굳이 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베이언으로 돌아와 장비들을 챙기고, 일부 의원들을 동행하여 다시 성황이 황궁으로 향했다.
“저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의원들도 이번 치료 대상이 성황이라는 것을 얼핏 들어서 걱정이 앞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어본다고 한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우선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지.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을 거야. 너희들도 나름 경험이 쌓였으니까, 하던 대로만 잘하면 돼. 어차피 내가 집도할 거고.”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의원들은 여전히 힐데스하임에서 골칫거리고 여겨지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민심은 천천히 바뀌고 있었지만, 신성력을 지닌 사제들이 의술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지닌 건 여전했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에 있는 성황, 그의 치료를 의원들이 맡아서 한다는 것은 당연히 이들에게 크게 부담되는 일일 터였다.
“고위 사제들이 아니라 의원들이 성황 폐하를 치료하는 게 좀 아닌 것 같나?”
의원들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꼭 그런 것은 아니나, 혹여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의술에 대한 편견이 더욱 두터워질 것이 두렵습니다. 신성력도 마찬가지지만, 의술 역시 모든 병자를 치료할 수는 없는 터라……. 의술이 못나서가 아닌데,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의술 탓으로 돌려지게 되겠지요.”
그건 확실히 사실이었다.
지금은 힐데스하임 내에서의 의술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민심이 확실하게 뒷받침만 해 준다면, 사제들이 아무리 아니꼬워해도 자유로이 의술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의원들이 성황을 치료한다는 사실은 금방 힐데스하임 전역에 퍼질 일이었다. 혹여나 성황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말대로 사람들은 결국 그 원인을 의술에서 찾을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그 한 가지의 케이스만을 보고 의술의 효용 자체를 부정해 버리겠지.
“그런 걸 두려워하지 마.”
하지만 그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는 법이거든. 너희들이 치료소에서 치료를 할 때도 마찬가지야. 잘못되더라도 너희들의 뒤엔 내가 있으니까, 괜한 걱정 만들어서 하지 말라는 소리야.”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소리였다.
잘 모르는 초짜 인턴이 병원에서 괜히 나댔다가 사고를 치는 일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었으며, 그게 생명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그날로 인턴은 아주 개작살이 나는 게 당연했다.
인턴은 레지나 교수의 철저한 인형이 되어야 한다. 당연하다. 아직 미숙한 이들임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응급 상황에서 인턴이 홀로 환자를 마주했을 때 기본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인턴이더라도, 자신이 독자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베이언의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려준 지식들, 그리고 그들이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치료소를 운영해 오면서 쌓여 온 경험들로.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다.
치료를 할 수 있는 환자인지, 없는 환자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성황의 치료를 보고 난다면 이들의 지식은 필연적으로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잘 따라오기만 하면 돼.”
“……저희는 전하의 발걸음을 뒤쫓기도 채 버겁습니다.”
회의적인 표정들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원래 다 그런 거야.”
나도 그랬거든.
이제는 기억이 안 날 법도 하지만, 워낙에 끔찍했던 인턴 생활이었던지라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그리고 성황 폐하의 치료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 신께서 말씀하셨거든. 의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섞는 건 잊지 않았다.
* * *
의외였지만, 성황은 다행히 굉장히 우호적으로 나왔다.
덕분에 여러 사제나 관료들의 반발에도, 그 누구의 참관 없이 성황의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의원들이 사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수술은 가능하면 빨리 끝내는 것이 낫기에 성황을 눕혀둔 채로 개흉을 진행했다.
체득의 권능을 통해 보았던 성황의 과거에서, 그가 찔린 위치는 대략 심장이나 폐, 혹은 그 사이의 빈 공간이었다.
신기하게도 피부에는 조금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 직접 개흉을 하고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피부를 열자, 의원들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들로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듯했다.
성황의 좌폐에 종양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크게 자라나 있었으며, 그 종양은 심장과 연결이 되지는 않았으나 맞닿아 있었다. 특히나 성황의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새하얀 섬광의 고리가 종양으로 인해 단절된 상태였다.
“……제거해야겠네.”
종양만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이미 좌폐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다행인 건, 우폐나 심장 쪽에 직접적인 전이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좌폐 전체를 제거할 거야.”
“그, 그래도 괜찮습니까?”
폐는 생명 활동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장기라는 것 정도는 이제 의원들도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불편함은 있겠지.”
가능하면 절제 부위를 최소화 하는 것이 좋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인간의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하거든. 정말로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지…….”
“예?”
“아냐. 한쪽 폐가 제거되면 반대쪽 폐가 더 크게 확장될 수 있도록 알아서 구조가 변화하니까 진행만 깔끔하게 되면 별 문제 없을 거야.”
그리고 곧장 수술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
갈비뼈 일부를 제거하고, 폐를 깔끔하게 절단해서 빼 내었다.
그리고 흑마력으로 추정되는 종양이 달라붙은 폐에 신성력을 주입해 보았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어서,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에 따로 숨겨 두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을 마치고 나서 후속 조치까지 모두 끝이 나자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의원들은 여전히 기적을 본 것처럼 동그란 눈이었다.
“성황 폐하가 깨어나시면 내가 이야기 해 볼 테니까 너희들은 먼저 돌아가. 너희들이 큰 도움이 됐다는 건 성황 폐하께서도 충분히 인지하시게 할 테니까.”
“……저희들이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전부 전하께서 해내신 일인 것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시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도 자신들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후순위로 미뤄둬야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황궁에 남아 성황이 깨어날 때까지만을 기다렸다.
* * *
“……쿨럭.”
정신을 차린 성황의 앞에는 3황자가 앉아 있었다.
수술이 모두 끝난 것일까.
3황자에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이유 없이 모두가 원망스럽고, 모두가 가증스럽게만 보이던 나날.
칭송받던 황자였던 겔리두스는, 자신의 형에게 흑마법으로 공격당한 뒤 그렇게 차츰 변해갔다.
그런데도 그게 흑마법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걸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빛 내린 환한 세상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고서야.
“……데미안.”
성황은 자신의 아들을 불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몹쓸 짓을 해 왔는지를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가슴 어림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기분을 말하자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황홀함을 온전히 만끽할 수 없었던 건, 비록 정신이 나갔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쿠, 쿨럭. 성공한 모양이구나.”
“예. 일단은 안정을 조금 더 취하실 필요가 있으니 누워 계십시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내일 쯤 다시 찾아와 상태를 살피겠습니다.”
“……그래.”
성황은 그렇게 돌아가는 3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마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따위 말로 3황자를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을 알기에.
성황은 몸을 일으켰다. 갈비 쪽에 느껴지는 통증으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서신이었다.
성황은 차마 자신의 입으로는 내뱉지 못할 말들을, 글자로 옮겨 적었다. 고심하고, 고심해서.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적고 나자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었다.
그리고 성황은 방의 가장 비밀스런 비처에서, 자신이 감춰두었던 부결의 추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성황 폐하!”
성황을 확인한 시종이 호들갑을 떨려 하자 성황이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성황은 시종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동안 자신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던 이이기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위로이자 사과의 말이었다.
그리고 시종 역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황은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다. 자신이 아는 그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몸이 불편한 것인지 절뚝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성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종은 불안하면서도 차마 그의 의지를 말릴 수는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