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69)
제169화
베이언에 잠시 들른 동안, 서신 한 통을 받았다. 성황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차피 금방 황궁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것일까. 나는 빠르게 서신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
성황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내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뉘우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성황이 행해왔던 악행과 그가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서신을 쭉 읽어 내려갈 때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성황은 지나치게 자책하고 있었으며,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로 말미암아 나를 원망하던 이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길 바랄 뿐이다…….]* * *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모든 걸 제쳐두고 다시 성황궁으로 향했다.
“폐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비운 지는 얼마나 되셨지?”
“이틀 정도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따로 말씀이 없으시던가.”
“예. 그저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씀밖에 없으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성황이 자리를 비운 황궁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성황의 방 안에 들어가려는 걸 기사가 막으려 했지만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노라 말하고 억지로 뚫고 들어갔다.
성황의 방 안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던 성황의 방이 이제는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꼭 완전히 떠날 준비가 끝난 사람처럼.
그리고 가운데 있는 테이블 위에는 유일하게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물건이 올려져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저울 모양으로 된 성물, 부결의 추였다.
“……젠장.”
나는 성물을 챙겨 들곤 황궁 내의 사람들에게 빠르게 주변을 수색하도록 명했다.
정황상 성황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건 결코 내가 바랐던 게 아니다.
비록 성황은 존경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고, 그가 치러야 할 죗값 또한 분명히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죗값을 치르는 건 부결의 추가 할 일이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황궁의 기사들이 다급하게 수도 주변을 수색하는 동안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원망하고 싫어했던 사람인데 왜 이제 와서 죽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는 걸까. 성황의 사연을 알지 못했더라도 나는 그의 죽음은 과한 처사라고 생각했을까?
만약 성황이 죽은 척하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면. 차마 죗값을 치를 용기가 없는 거라면….
차라리 그러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아직까지도 누군가가 나로 인해 죽는다는 건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 * *
성기사와 병사들이 근방을 수색하고 있음에도 성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행방을 아는 이도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후우.”
내겐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만 목을 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부결의 추를 챙기고는 곧장 2황자에게로 향했다. 2황자는 혹여나 내가 자신 쪽으로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저놈이 노기사와 여사제, 그리고 더 있을 수 있는 피해자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얼굴을 뭉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형님께선 어지간히 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리고 내가 2황자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자 그의 얼굴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위아래로 나를 훑는 걸로 봐선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 보였고. 나는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내가 2성에서 4성이 되니 걱정이 좀 되었겠지. 본인도 신성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고. 그러던 중 현자가 사용했다던 궁극의 신성 마법에 대해 들었다. 어떻소?”
“이야기를 잘도 만들어 내는구나.”
2황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가 어떻든, 네가 나를 찾아왔다는 건 혹여나 내가 정말로 그 실마리를 찾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아니냐?”
그는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2황자가 설령 고리를 끊어내면서 극강의 효용을 얻어내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항상 그가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희생자들과 그들의 고통이었다.
“만약 본인의 고리를 끊어내셨다면 나는 아무 신경도 안 썼을 것이오.”
그제야 2황자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보였다.
“그새 네놈에게 다 일러바친 모양이구나.”
“그걸 꼭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 비겁한 건 본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비겁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나 같은 황족의 고리를 단순한 실험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어차피 쓸 데도 없는 고리를 대의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뭐가 꼭 문제라도 되는 듯 말하는구나.”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말을 해도 못 알아 먹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 딱 그에 맞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본인이 떳떳하다고 생각하시오?”
“혹여나 내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신께서 심판해 주시겠지. 허나 신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황족으로서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이며,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신께 심판을 받겠다 하셨소?”
안 그래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 2황자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었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신께 심판을 받겠지만. 보아라, 아무렇지 않지 않느냐.”
나는 지금 당장 부결의 추에 성력을 주입하여 그를 심판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현자에게 미리 들은 바가 있어서였다.
지금 당장 그를 심판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오히려 내가 궁지에 몰리게 될 수도 있다. 2황자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해를 가했다는 식으로.
나 또한 판을 확실하게 깔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2황자가 했던 짓들을 공개하고,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 말 꼭 지키시오.”
“……뭐?”
그러면 정말로 신성 제국에 올바른 기준이 세워질 것이며, 많은 것들이 뒤바뀌게 될 것이었다.
“심판을 받겠다는 것 말이오. 기대하시오.”
나는 그 정도까지만 해두고 2황자궁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 * *
얼마 뒤 신성 제국에는 난리가 났다.
갑자기 성황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절벽 아래에서 사실상 시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성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3황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당연히 좋지 않은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부 사람들이 성황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마음 속에 품어왔다고 한들, 성황이 신성 제국의 정신적 지주인 것은 자명했으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성황 폐하께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아무리 황자 전하라고 한들 성황 폐하와 관련된 이상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대귀족들은 3황자의 앞에서 그를 대놓고 나무라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3황자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평소 성황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던 3황자라 귀족들의 가장 큰 타겟이 된 게 3황자였건만, 그는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황 폐하께서 유언을 남기셨더군.”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3황자가 조심스레 꺼내놓은 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지 귀족들이 영문도 모르고 있을 때, 3황자가 내놓은 서신이 있었다.
발신인이 성황으로 되어 있고, 필체 역시 확실한 성황의 것이었다.
“……이럴 수가…….”
그리고 서신의 내용을 읽어나간 귀족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부는 크게 걱정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크게 감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부류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한쪽은 변절해 버린 성황의 뒤를 따라 탐욕만을 추구하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성황의 솔직한 고백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성황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한 이상, 이들 역시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감격하는 이들 역시 완전히 순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성황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는, 귀족으로서 위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명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성황의 뜻을 따라야만 했다.
이제야 어째서 그 빛나던 성황이 그렇게 변모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자신들의 침묵까지도 죄악임을 알게 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오늘 내일 하는 채로 치료를 받고 있는 신세지만, 성황이 뉘우쳤다는 것. 그것은 성국에 있어서 분명히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들 아는가?”
그리고 3황자는 자신의 품에서 백금으로 된 화려한 무언가를 꺼내놓았다.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은 아주 예전부터 성황을 따르던 자들이었다.
“……부결의 추군요.”
사라진 시기가 참 묘했던 성물이었다. 성황이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부결의 추가 사라졌으니, 성황이 숨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결의 추가 돌아온 것은 역시 성황이 3황자에게 건네주었다는 거겠지.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바라면서.
어째서일까.
그토록 탐욕만을 추구하던 성황이 어떻게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의구심은, 과거의 성황을 본 이들이라면 사실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현재의 3황자의 모습과, 과거 성황의 모습은.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면서 성황 역시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3황자가 성황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뜻이다.
“작은형님께서 사제와 성기사에게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을 들었지. 이제 부결의 추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를 심판할 것이다.”
“허나 전하…… 2황자 전하는 엄연히 3황자 전하보다…….”
“부결의 추 앞에서 황족의 서열이란 의미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 아는 자가 없나?”
3황자의 물음에 한 귀족이 답했다.
“맞습니다. 폐하께서도 황자이시던 시절 1황자 전하를 부결의 추로 심판하셨던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거였다. 2황자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2황자가 부결의 추에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큰 죗값을 받게 되느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런데 3황자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성황이 된다면 부결의 추로 모두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 중 일부는 내가 성황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3황자는 모두를 바라보며 씨익 바라보았다.
“무운을 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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