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
고리가 많을수록 좋은 것은 단순히 성력의 양이 늘어나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각의 고리는 저마다의 뛰어난 분야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고리의 개수에 따라 취할 수 있는 권능의 종류가 나뉘어 있었으니 내게 늘어난 잠재력은 이전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에휴, 그럼 뭐하냐. 지금은 그림의 떡인데.”
그럼에도 지금 그 세 번째 고리는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수준으로 그 속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분명히 희미하게나마 성력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날이 갈수록 그 양이 늘어간다는 사실은 내 열정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게다가 원래 있던 두 개는 눈에 띄게 커졌단 말이지.”
손이 괜스레 가슴팍으로 향했다.
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비대해진 두 개의 고리. 이 역시 내게 막대한 성취감과 열의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신성력의 양은 늘어날 것이며, 그것은 세 번째 고리 역시 마찬가지. 3성의 고유 권능 역시 언젠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경사로운 일이지만, 나에게 생긴 변화는 일단 나 혼자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다. 물론 언제까지나 감춰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 당장 내 고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너무 위험했다.
가뜩이나 위로 두 형이 나를 얼마나 견제하는데. 성력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또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른다.
그래서 신전에서 환자 치유 업무를 보며 기존의 고리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새로 생긴 고리를 남몰래 사용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확연한 발전이 느껴지고, 앞으로도 성장할 여지가 주어지자 이 단순한 일상이 훨씬 더 유쾌해졌다.
“진상 놈들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황자라는 특성상 내가 치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위 귀족들이었고, 그중에는 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성황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나 다를 바 없으니 나를 우습게 보는 거다.
“어쩌겠어. 좋게 생각해야지.”
그놈들을 내 환자가 아닌, 성력을 시험할 좋은 실험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통해 내가 가진 성력을 시험하면서, 세 번째 고리를 통해 확연히 발전한 부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성력을 단순히 원하는 부위에 도포하여 상처를 치료시켰을 뿐이라면, 지금은 성력과 접촉되는 부분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지만 큰 차이.
“신체 구조에 무지하다면 알아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다른 사제들에게는 별 쓸모도 없는 이 감각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였다.
이전에 현자에게 넌지시 물은 적 있는 내상의 치유.
지금까지는 신체 구조를 안다고 해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시경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추측만으로 성력을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성력을 통해 안쪽의 감각을 느끼고, 간략하게나마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꽤나 기분 좋은 성과였다.
특히나 성력이 적은 나로선 더욱 그 효율은 크게 작용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의심가는 부위 전체에 성력을 도포해야만 했으니까.
이론적으로 내상의 치유에 대해 정립을 해놓은 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 * *
“부디 황자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 여긴 귀족들만 사용하는 신전이다. 너희를 위한 치료소가 마을에 있지 않느냐.”
“그곳에선 살릴 수 없다 했단 말입니다!”
“어허! 그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모두 신의 뜻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거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신전 밖으로 나와보니 평민으로 보이는 여인과 수호 기사의 실랑이가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수호 기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 있던 여인이 내게 절규하듯 외쳤다.
“황자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처럼 불민한 이들에게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성자시라고. 부디 그 평판에 걸맞게…….”
“이놈! 네놈이 뭔데 전하를 함부로 평하고, 그에 모자라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냐. 바쁘신 분이니 썩 돌아가거라.”
잠깐 지켜봤음에도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인의 몸에도 군데군데 상처가 엿보였으나, 그녀의 품에 안긴 다섯 살 남짓 어린아이의 상태는 훨씬 심각해 보였다. 당장 손쓰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직업병 때문인지, 인륜적인 양심 때문인지 모르는 체 넘어가는 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디가 아픈지 좀 볼게.”
여인의 눈에 희망이 들어찬 순간, 기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하. 오베라스 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크게 다친 거 아니면 좀 기다리라고 해.”
고위 귀족들이 신전으로 오는 것은 대부분이 심각한 부상이 아닌, 그저 성력을 받아 기력이나 조금 얻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그와의 약속이 잡혀있다고 한들 우선 급한 일을 보고 챙겨줘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수호 기사는 계속해서 말꼬리를 늘였다.
“전하, 하오나 오베라스 각하는…….”
“내 선택을 강요하는 건 너 같은데.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보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성기사가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더니,
“신전의 3성급 사제도 포기한 병자입니다.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외부적인 폭력에 의해 신체 내부의 장기에 손상이 간 듯합니다. 내상의 경우엔 전하의 성력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실 겁니다.”
되도 않는 훈수에 이어,
“선택은 전하의 몫이나 무의미하게 공작 각하의 시간을 버리게 하시면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실 것입니다.”
주제를 모르고 악담까지 퍼붓고 있었다.
헬무트 공작. 그 마음에 안 드는 양반하고 아주 각별한 사이라도 되는 걸까. 성기사의 과도한 언행이 언짢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걸 바로잡을 때가 아니었다.
저놈이 장기에 손상이 갔을 거라 했지, 분명. 그럼 어쩌면 내가 가진 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눕히고 보죠.”
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두었던 내상의 치료. 머릿속으로 생각해 둔 이론을 직접 시험해 볼 때였다.
* * *
소문을 들은 파우스트가 신전으로 뛰어갔다.
연로한 신체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3황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신전을 지키는 성기사에게 물었다. 불퉁한 표정을 보니 뭔가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신전 평치료소 안에 계십니다.”
“어째서 접대실로 가시지 않고? 헬무트 공이 기다리고 계시지 않은가.”
헬무트 오베라스. 막대한 권력을 가진 신성 제국의 공작이자 내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앞뒤 보지 않고 엎어버리기로 유명한 폭군이었다.
“평신전에서 포기한 병자를 살리겠다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걸 3황자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오베라스를 제쳐두고 다른 병자를 살리고 있단다.
“어찌하여!”
파우스트 역시 그 병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딱한 사정을 듣고 얼마 전 평신전으로 파견을 갔다가 포기한 환자였다.
2성인 본인 역시 손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 사실상 4성 이상이 온다고 해도 소생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3황자가 어째서 그런 무의미하고 아둔한 선택을 한 것일까. 이 복잡한 귀족 사회에서 오베라스에게 밉보인다는 것은 어떠한 후폭풍을 불러오게 될지 알 터인데.
파우스트가 질책을 담은 눈으로 성기사를 노려보자 그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말려 보았습니다. 허나 전하가 고집부리는 것을 제가 어찌 막겠습니까. 하여간 없는 놈이 더하다고…….”
“이놈! 그게 전하께 무슨 말버릇이냐!”
현자가 호통을 내질렀다.
“제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그럼에도 성기사는 되려 뻔뻔하게 받아쳤다. 이제보니 가슴팍에 힐데스하임의 문양과 더불어 오베라스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였다.
“현자라고 불리시는 것도 옛일인가 봅니다. 그쪽으로 붙는 것이 결코 파우스트 경의 신상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실 텐데요.”
이제는 현자에게까지 반협박을 해대고 있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으나, 더 따졌다가는 3황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퍼억.
어느새 나타난 3황자가 주먹을 내뻗어 기사의 다리 사이를 내질렀다.
“네 아버지뻘 되는 사람인데, 말조심 좀 하지?”
세게 내지른 것은 아니라 아프지는 않겠지만 부위가 부위인지라 성기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데는 충분한 듯 보였다.
“전하.”
파우스트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3황자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명분도 없이 헬무트 공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은 분명 전하께 불리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꾹 참고 이번만 사과를 하시면 소인이 어떻게든…….”
“명분이 없긴 왜 없어?”
3황자가 뒤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얼마 전 신전에서 보았던 여인과, 그녀의 죽어가는 아이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3황자 전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의 여인이 연신 3황자에게 허리를 숙여댔다.
화들짝 놀란 파우스트가 여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봤다.
아직은 기력이 없었으나 전에 봤던 것에 비하면 몰라볼 정도로 호전되어 있었다. 다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나고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파우스트가 깜짝 놀라며 물었지만 3황자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베라스인지 뭔지 하는 놈하고 일은 내가 알아서 풀 테니까 경이 안 나서줘도 돼.”
당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던 것일까.
그에 대한 것은 묻지 못했다.
“궁금하군. 어떻게 풀지.”
어느새 나타난 오베라스가 가소롭다는 얼굴로 서 있었으니까.
그를 보고도 3황자의 얼굴은 여전히 태연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