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72)
제172화
대천사라는 존재가 나타나서 2황자를 끌고 갔다. 정확히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몰라도, 신이라는 작자가 제대로 개념이 박혀 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황자와 그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나 역시 부결의 추 위에 오르게 하려 했었지만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나를 심판해줄 것을 요청한 것에, 대천사가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
그걸 보고도 나설 만한 용기를 가진 이들은 없을 것이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유력한 성황의 후보 중 한 명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심지어 황족에 대한 철썩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성 제국에서, 황자가 신의 심판을 받는 일이 일어난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까지도 내가 의도한 바였다.
2황자가 성황이 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차에, 여사제와 노기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나의 행동에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2황자를 심판하는 것 이상으로, 신성 제국의 여론 자체를 뒤집어엎고 싶었다. 2황자가 사라진다고 한들 내 지지 세력이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 테니까.
2황자를 따르는 귀족들 중 대다수는 내가 아닌 1황자 쪽으로 붙을 테고, 그리되면 후계자 경쟁은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겠지.
잘못된 사상을 인지하게 하고 민심을 사로잡는 것.
지금 당장 모든 민심이 나를 향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의구심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 거라 믿는다.
어쨌거나 마무리를 하기 전에 꼭 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신성 제국을 수호해 왔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허나 자신의 사명을 위해 움직였느냐 하면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
신성 제국에서, 자칫하면 황자라는 위치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 하지만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정의를 추구한 사제 한 명과 기사 한 명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저만치서 걸어오는 둘이 있었다.
얼마 전 나를 믿고 2황자에게 당한 악행을 고백해 준 여사제와 노기사였다.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들을 여기에 불러내기 위해 나는 황자의 권위를 운운하기까지 해야만 했다.
“여사제의 쇠약한 몸은 자신보다 타인을 보살폈다는 증표이며, 노기사의 손에 난 상처는 타인의 희생을 자신의 손으로 막아냈다는 방증이다.”
그들은, 정말로 모두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정의로운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2황자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과, 저런 이들을 두고 애먼 놈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이 내 화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지금 당장에라도 2황자를 치워 버려야 성에 찰 만큼.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 역시 죄가 아니다. 허나, 단서가 주어졌음에도 고뇌하지 않는 것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제국민들의 눈빛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혼란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게 당연했다. 수십 년간 당연하다시피 받아들여야만 했던 진리에서 벗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일반적으로 경력이 많은 의사일수록 혁신적인 논문에 보수적인 것도 그러한 이치였다.
“신성 제국의 둘째 황자라는 자가, 누구보다 빛나는 사제와 기사의 마음을 꺾어 버렸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고 신께서 내려주신 권능을 박탈한 중죄였다.”
모두에게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간 2황자가 저질렀던 악행들은, 제국민들에게 있어 아직까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제의 신성력을 앗아갔다는 사실은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감히 황족이라도 말이다. 신성력은 신이 친히 내린 권능이었으니까.
“지금은 신성력이 없다 하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사제이며 성기사다. 모두가 그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장내에 침묵이 일었다.
제국민들의 시선은 노기사와 사제에게 꽂혀 있었다. 처음 그들의 눈빛에 보인 감정은 분노와 동정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바뀐 표정들은 썩 마음에 들었다.
황족을 비롯한 사제와 성기사들을 바라보는 존경이 담긴 얼굴들.
“……맞습니다!”
누군가가 소리쳤고,
“사제님과 성기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신성 제국을 수호해 주신 것에 감은을 표합니다!”
“앞으로도 성국에 남아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이내 모두가 여사제와 노기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둘은, 절대 오기 싫어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벅찬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톡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권능을 통해서, 내가 이들을 위로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욱 좋은 방법이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그리고 그 방법이 다행히도 잘 통한 듯 보였다.
* * *
성황이 의식을 잃고 2황자가 사라졌다. 당연히 국가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형성되었으나, 그렇다고 성국이 풀썩 무너지지는 않았다.
만약 발칸 제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았다면 당장에 그들이 쳐들어 와 위기가 닥칠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발칸의 관계가 예전 같지는 않으니까.
나는 2황자를 심판한 후 성황의 치료를 위해 온갖 수를 다 써보았다.
내가 가진 권능들도, 힐데스하임의 성물도, 심지어 현대의 고도화 된 의학 기술들도.
하지만 식물인간이 된 성황은 깨어나질 않았다. 식물인간이 된 인간이 다시 깨어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는 했지만 성황의 경우엔 쉽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상태는 악화되고만 있었고 애초에 살날이 그리 길게 남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서 성황께 그리 모든 걸 쏟아부으십니까? 1황자 전하께서는 2황자 전하를 지지하던 세력들을 규합하고, 혼란에 빠진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 계신데…….”
현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의 뒤에는 꼭 ‘성황을 원망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듯했다. 성황에 대한 악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으나 현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을까?”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미 전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폐하께서 그리되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성국의 미래가 전하께 달려있음을 생각해 주십시오.”
“괜찮아. 나름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는 늘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아버지였어.”
현자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민들은 성황을 존경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상에 의해 강요받은 감정일 뿐이고. 그 누구도 성황이 죽는다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다들 그 빈자리를 누가, 어떻게 메꾸는지에만 관심 있을 뿐.”
그리고 아무리 성황이 과거에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현재의 악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었다. 결코.
“그런데 누군가는 진심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조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 아버지의 과거의 모습을 여전히 가슴 속에 파묻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야.”
어차피 성황이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면, 이 세상을 더 살아간다고 해서 앞으로 또 나쁜 일을 꾸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일들을 속죄하기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국을 이끌어 나가려 하겠지.
“그보다 말이야. 미운 정도 정이라는데, 현자는 아버지에 대해 미련 같은 건 없는 거야?”
현자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다.
성황은 변절하고, 현자는 토사구팽을 당했다.
마음이 떠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내가 아는 현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 역시 성황의 과거를 여전히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자는 끝끝내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별일이네. 현자가 숨기고 싶은 것도 있고.”
나는 그것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성황께서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로 인해 신께 받게 되실 벌도 조금은 감경되시기를…….”
현자의 말에 조금이나마 성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 * *
결국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고, 성황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더니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다.
성황의 죽음.
다른 것들은 뒤로하고라도 그 하나 만으로도 성국 전체에 큰 파장을 주었다.
그리고 각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들이 전면 취소되었으며, 수도에 있는 추모식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추모식의 진행을 맡은 것은 장남인 1황자였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지지하는 권위 높은 귀족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2황자의 편이었던 귀족들 역시 1황자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새 저쪽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래. 어차피 내 쪽으로 올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거절했을 사람들이었다.
1황자의 주도하에 모두가 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사람들 중에는 챈슬러와 현자가 따라왔다. 아무래도 성황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던 자들이다 보니 참석하고 싶은 눈치였다.
“……당신께서는 늘 신성 제국이 빛을 잃지 않게 늘 노고를 다 하셨으며, 위로는 힐데스하임 주신을, 아래로는 만인을 떠받치는 무거운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허나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1황자가 준비해 온 연설문을 낭독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겠지. 그 역시 마찬가지로 성황을 진정한 아버지로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으레 참석해야 하는 행사에서 맡은 일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1황자의 기나긴 연설이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황을 기리기 위해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표해냈다. 물론 그중 절반 이상은 가식적인 말일 뿐이겠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브를 쓴 여인이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을 지키던 성기사가 그녀를 저지하려 하자 내가 나서서 말렸다.
“그냥 둬.”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작게 읊조리자 성기사가 뒤로 물러났다.
여인은 비석 앞에 서서 로브의 모자를 벗었다.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잔뜩 주름을 머금었음에도 찬란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화, 황비님께서……!”
그녀를 알아본 극소수의 사람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전하?!”
그리고 사전에 들은 것이 없었던 현자와 챈슬러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들이었다.
“꼭 오고 싶어 하시더라고. 괜찮아. 어머니의 죄는 전부 누명이었고, 이젠 그걸 증명할 방법도 생겼잖아?”
부결의 추가 내 손에 있는 이상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숨어 살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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