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어머니를 알아 본 이들도 있기는 했으나,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아니, 나설 수 없었을 테지.
추모식이라는 삼엄한 분위기도 한 몫 했겠으나 결국 그녀의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이 더욱 큰 이유일 것이었다.
어머니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로 비석을 향해 다가갔다. 품에 들고 있던 꽃을 앞에 내려놓으며 비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비석을 쓰다듬으려다가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누구보다 성황을 원망했을 사람이다. 어쩌면 현자보다도 더.
인생에 있어서 반려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크고, 그만큼 그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받았던 원망감은 누구보다 클 것이다. 심지어 그녀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성황에게 피해를 보게 된 상황이었다.
“……당신께서는 벌을 받으신 겁니다.”
그리고 애써 감정을 부여잡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당신께서는 신성 제국을 망치셨어요. 빛나던 신성 제국이 이리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겠죠.”
모두가 듣는 앞에서, 어머니는 되려 성황을 질타하고 있었다. 성황이 이걸 듣게 된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본성이 나빴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더욱 원망하겠지.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황을 옹호할 수는 없었다. 그에 의해 고통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내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벌을 더욱 받으시겠죠. 신께서, 정말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당신께서는 천벌을 받으셔야 마땅한 일이겠죠. 당신의 죽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여전히,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게 맞는 거니까……. 저 역시 당신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살아야 했던 만큼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충분할 거예요……. 그런데도, 당신께서 너무 고통스러운 벌을 받지 않으셨으면, 신께서 조금이나마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 왜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젠 그녀의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께서 원랜 그런 분이 아니셨으니까 그렇겠죠. 당신께서 제게 청혼하셨을 땐 정말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이셨고, 모두를 웃음 짓게 하는 성군이셨으니까요. 그 때의 당신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성황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흑마법에 물든 이가 신성 제국을 이끈다는 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사실이었기에, 모두가 알면서도 감춰야만 했어요. 당신께서 완전히 물들기 전에는 성황이 되지 않으려 하셨지요. 그때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셨지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성황의 비밀이었다.
당연히 감춰야만 했을 것이다. 흑마법에 잡아먹힌 이가 성황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성황은 자신이 변절하게 될 미래를 알고라도 있었는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비극을 막아내려 했던 것이다. 성황이 되기 위해,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왔으면서도. 그걸 눈앞에 두고 말이다.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둬야만 했을까요. 아뇨, 전 이렇게 될 걸 알았다고 한들 당신을 말렸을 거예요. 당신은 잘못한 게 없었는데, 누구보다 정의롭게 살아 온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당신이 희생해야 한단 말이에요.”
급기야 어머니는 오열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래도 당신이 참 미웠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했는지 원망스러웠고, 그 비극의 사연을 알고 있으니까 더 고통스러웠어요.”
극소수만 알고 있었을 성황의 사연이 모두의 앞에 공개되었다.
성황을 마냥 존경하며 믿어 온 이들은 성황에 대해 실망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내심 성황을 원망하던 이들은 조금이나마 생각이 달라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사실이었다. 어머니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얼굴 한번이나 뵀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께서 속이 너무 깊으신 탓이겠죠. 마냥 당신의 잘못으로 몰아갈 수 없음에도, 당신은 죄책감으로 인해 차마 저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으셨겠죠. 그게 전 늘 당신에게 불만이었으면서도, 그게 당신에게 빠지게 만들었어요.”
으흑흑.
모두가 침묵 속에서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깊은 고뇌에 빠진 이들이 여럿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오열하고 있었고.
끄읍.
옆에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현자와 챈슬러 역시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많은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게 내게는 그저 의외였다.
현자와 챈슬러가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것. 그만큼 원래의 성황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뜻이겠지.
만약 내가 잘못되더라도 저 둘은 같은 반응을 보일까.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저 둘에게도 청춘이 있었으며, 그 청춘을 포함하여 자신의 인생 절반 이상을 성황과 함께 보내왔을 것이다. 그런 성황과 나를 비교하는 건 저들에게 실례였다.
그러나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트루드와 칼로스를 포함한 여러 명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내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도 잃을 게 많아진 이상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다.
* * *
“……저건 성황 폐하에 대한 모독입니다.”
“역모를 저지르셨던 황비께서 어찌 살아 계신단 말입니까. 그걸 떠나서 어찌 제 발로 돌아와 성황 폐하께 망언을 퍼붓는단 말입니까.”
황비의 모습을 본 귀족들은 조용히 한 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챈슬러 경께서 황비를 살려주셨다는 게 정말이었나 봅니다.”
과거에 소문이 돌기는 했었다.
역모로 인한 황비의 처형령을 성황이 직접 내렸으나, 챈슬러가 감히 성황에게 거짓을 저지르고 황비를 살려주었다는 것. 결국 그 사실이 밝혀져 챈슬러까지 역모 죄로 투옥되었다는 것.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황비가 정확히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챈슬러가 어떤 죄목으로 투옥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가 보군.”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성황 역시 차마 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늘어날수록 들통 나기 쉬운 법이니까.
챈슬러와 황비의 죄가 엮여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누군가는 의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나 챈슬러처럼 황궁 기사단에서 나름의 인지도와 권위가 있는 이가, 황비를 살려주려 했다면 기사들이 특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챈슬러가 황비를 살려준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요청하며 들고 나섰을 수도 있고.
그러니 성황은 챈슬러의 죄목을 정확히 알리지도 않은 채로 투옥시켜버렸던 것이……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죄를 다시 묻는 것이 어떻습니까?”
“황비께서 살아계신다면 판도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지요. 이그네아 가문의 사람들도 살아있을 수 있고, 이그네아를 지지하던 이들이 전부 황자 전하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있을 테니.”
허나 모두가 말은 그리 하면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3황자에 대한 견제가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황자까지 신의 심판을 받게 해 버렸지 않은가.
어쩌면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지지하는 1황자마저 3황자로 인해 신의 심판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3황자가 부결의 추를 발동시키지 못하도록 수도의 사제들을 대거 매수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신성력이 없으면 3황자 역시 부결의 추를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 있나?”
“……예?”
“이미 민심이 뒤바뀌고 있어. 지금의 여론대로라면 오히려 저들의 결백을 증명하고 더욱 불리하게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지.”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황비와 이그네아 가문이 돌아오게 된다면, 그들이 3황자에게 힘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이라도 남겨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정말로 저들이 결백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가는 그 의심마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솔직히 결백을 증명하는 편이 훨씬 쉽겠지. 성황께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시고 세상을 뜨신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성황이 결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퍼지고 있는 이상에야, 성황의 명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결코 옳은 일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결국 그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황의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 흘리는 자들.
그건 황비와, 현자 그리고 챈슬러뿐만이 아니었다.
성황의 과거를 알고 있는 자들 중 일부도 그 모습에 감회되고 말았다.
* * *
분명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성황을 따랐던 이들인 만큼, 달라지는 성황의 모습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그 원인이 흑마법이었다는 것은 차마 몰랐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성황에게 반기를 든다거나, 심지어 충언을 올리지도 못했다. 나섰던 현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충직하게 성황을 따랐던 현자마저도 토사구팽을 당하게 되었다. 일개 귀족의 입장에서 괜히 나섰다간 가문 하나가 폭삭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수도 있었다.
성황께서는 워낙에 현명하신 분이니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거겠지. 금방 정신을 차리시겠지.
그랬던 생각들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만, 성황의 새로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건 귀족들의 입장에선 아주 편한 일이었다.
전보다 훨씬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되었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면서 과거의 성황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겔리두스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는가를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나타난 현자와 챈슬러를 보며 마음에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을 또다시 숨겨야만 했다. 그 둘을 볼 때면 매번 그래야만 했다.
저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용감하게 나서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황비가 나타났을 땐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절할 뻔했다. 챈슬러가 황비를 살려주었다는 소문이 정말일 줄이야.
하지만 이내, 황비가 읊조리는 말들은 이들에게 있어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애써 잊고 살아왔던 것들.
가슴 속에 남은 일말의 양심이 채찍질 당하는 듯했다. 너무도 쓰라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와 챈슬러, 그리고 현자가 오열하는 것을 보며 이들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주역들이 모인 모습을 보며,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