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74)
제174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돌아온 이그네아의 가주가 좋지 못한 소식을 함께 전해왔다.
그들이 있던 보금자리에서 느껴지는 마기의 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대악의 부활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마물이 등장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었다.
신성 제국의 수뇌부에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다. 성황과 2황자의 죽음,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충격적인 반전으로 인해 신성 제국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할 때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니까.
그리고 성황과 2황자의 사람들 중 다수가 내 쪽으로 붙게 되었으니 이제는 정말 해볼 만 할 수 있었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습니까?”
내 질문에 이그네아 가주가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진작에 루시퍼가 강림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신성 제국이 저희를 포용하기로 결정한 이상, 정식적으로 신성 제국의 병력이 마물의 시발점에 주둔해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큰형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1황자와도 더 이상 얼굴 보고 살 일 없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나와는 앞으로 성황의 자리를 두고 계속 싸워야 할 테니까.
물론 지금은 그것보단 인류에게 닥칠 위기를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첫째 황자께서 그 사실을 안다고 한들 도움을 주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귀족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나에게 누구보다 적대심을 갖고 있는 건 당연히 1황자일 테니까 말이다.
1황자가 돕지 않으면 성국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전 대륙의 인류가 멸망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1황자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루시퍼를 막는 데 급급한 것을 이용해, 마지막에 나타나 그 공로를 가로채거나 아니면 아예 대악마에게 내 세력이 무너지기를 기다릴 계획을 세우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애초에 지금의 나 정도의 힘으로 대악마를 막을 수 있다면, 신이 이토록 경고를 보내오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예전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1황자로서도 모른 체 뒷짐만 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최근 들어 신께서는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개입을 하고 계신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 그 중 대부분은 내가 꾸며낸 일이었다. 모두가 신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사실 내가 권능에 의해 만들어 낸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모두가 신탁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신께서 직접 개입하셔야 할 만큼 큰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며, 큰형님이 악마의 부활을 모른 체 한다면 신께서는 마땅한 벌을 내리시겠지. 그건 큰형님도 알고 있을 거고.”
1황자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더라도, 그 또한 분명히 불안에 떨고 있을 거다. 자신과 동류였던 2황자와 성황이 사라져 버렸으니, 그 역시 언제든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은 분명했다.
결국엔 대악마를 막는 것에 앞장서 나서야 할 수밖에 없을 거다.
혹여나 위기가 닥쳤음에도 1황자가 계속해서 눈치만 보고 있다면, 이번에도 신탁의 힘을 빌리면 그만일 테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1황자 쪽을 신경 쓰기보다, 어떻게 대악마의 부활에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 * *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은 당연히 대악마의 부활 자체를 저지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 흑마법사들의 본거지라 여겨지는 칠흑 등대를 직접 침공했던 것이기도 했다. 나름의 효과를 볼 수는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었다.
단순히 흑마법사들이 루시퍼의 부활을 앞당기는 걸 막았을 뿐, 그의 부활은 여전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의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상황이 훨씬 수월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근방의 왕국과 발칸 제국에 이미 서신을 전달해 두었다. 그들은 언제라도 달려와 큰 힘이 돼 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인간들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한데 모여 있었다.
하지만 역시…… 걱정이 되는 부분은 있었다.
대악마의 전력을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우리 쪽의 힘이 강해졌다고 안심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혹여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싶어서 역사서를 뒤져 보았다. 선조들은 대악마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가.
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듯 뜬구름 잡는 소리만 가득했다.
“……하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갑작스레 심장의 고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미 일전에 여러 차례 느껴본 적 있는 감각.
시야가 흐려지며 손끝의 감각이 희미해져 갈수록, 나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타날 미래라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나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야가 뚜렷해지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이시여.”
수많은 사제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성기사는 제각기 하얀 검광을 내뿜으며 검을 휘둘러 댔다.
산맥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삼면을 둘러싼 바다에서는 새까만 기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풍경이었음에도, 나는 그곳이 어딘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그네아가 숨어 살던, 마물의 탄생지라 불리는 섬이었다.
“발칸과 서부 왕국에서의 지원군이 달려오고 있으니 최대한 버티면 승산이 있다!”
챈슬러가 소리치고, 그 옆에서는 성배를 꺼내든 채 무언가를 준비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1황자 역시 참전했고, 덕분에 신성 제국 내의 대부분의 병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몰려드는 마물을 막아내는 수준에 급급했다.
아직 밀리지는 않고 있었지만 모두가 절망에 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산채를 덮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의 대악마. 루시퍼는 하늘을 날고 있는 채로 웃으며 인간들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모두가 용맹하게 싸우고 있음에도, 대악마가 개입하는 순간 그 균형이 쉽사리 깨지게 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미래의 내가 들고 있는 성배에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몰려들었다. 주변의 사제들의 힘까지 한데 모아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내가 머뭇거렸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엘프들이 서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마기가 훨씬 중화되어 있었음에도, 엘프들은 여전히 그들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역사서에서 대악마를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엘프들은, 결코 다크 엘프의 모습이 아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의 부재보다도.
“전하! 더 지체하면 아예 방법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파우스트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알던 침착한 모습의 현자가 아니었다. 대악마는 현자에게도 혼란을 빚을 만한 존재였던 것이다.
“……젠장.”
다크 엘프들은 미래의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다크 엘프들을 되돌리기 위해 조금씩의 신성력을 주입하기는 하였으나,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마저도 많은 양의 신성력을 주입하게 된다면 그들의 몸에서는 큰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미안하다.”
그 사과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미래의 나라고 해도 그 선택을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내, 성배에서 뿜여져 나온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온 땅을 덮었다. 그제야 내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젠장.”
시야가 탁 트이며 운명의 권능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었다. 암담한 현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생각보다도 더욱 끔찍한 미래였다.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내가 모든 성력을 한데 모아 쥐어 짜냈다고 하더라도 과연 대악마를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결국엔 실패했을 것이다.
대악마의 힘은 보기보다 더욱 강했고, 인간은 모든 힘을 꺼내 들지도 못했다. 게다가 나를 믿고 따르던 엘프 일족에게는 결국 뒤통수를 친 꼴이나 다름없었다.
어째서 운명의 권능이 발동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그동안 운명의 권능은 내가 바꿔야만 하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씩이나마 실마리를 찾아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
바꿔야만 하는 미래. 그건 이번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면 짐작 가는 곳이 너무 많았다.
가장 첫번째로는, 내가 성배로 발동시켰던 마법은 무엇이었는가.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리 사제들의 신성력을 끌어모은다고 한들, 성배로 그만한 방출을 만들어 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아직 4성이었으니 고리를 한 개 더 만들어 낼 여지도 분명히 찾아보면 있을 터였다.
두 번째로 개선점이 보였던 것은 다크 엘프의 존재였다.
내가 보았던 미래에서 오우거들은 인간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을 위한 일은 아니겠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건 오우거들에게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다크 엘프는 분명히 달랐다. 그들은 오히려 마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인간을 위해 싸우고 있었고, 사제들이 신성력을 내뿜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원래의 엘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아버지의 심장에 있는 종양을 의술로 제거함으로써, 흑마법에 감염되었던 그를 정상적으로 돌려낼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전에 엘프들에게도 사용해 보았던 방법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에게선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건 엘프와 인간이 가진 신체 구조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었다. 엘프는 인간과 닮아 있으면서도 해부학적으로 분명히 다른 몸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엘프의 몸을 알 수가 없으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그들의 몸을 절개해 살펴본다고 해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미아. 그녀가 현재 유일하게 정상적인 몸을 가진 엘프였지만, 살아있는 그녀의 몸으로 해부를 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백날 고민해 봐야 뭐 하겠어.”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다. 어쩌면 다크 엘프들이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만나보았다.
* * *
나는 내가 본 미래에 대해서 그들에게 전했다.
“……우리는 인간들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군.”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자조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니야. 혹시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 건 없는지 물어보러 왔어. 터무니없는 추측이라도 괜찮으니까.”
다크 엘프가 아닌 엘프가 가진 능력의 위대함을 아주 조금이나마 전해들었기에, 우선은 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크 엘프들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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