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78)
제178화
마계와 천계.
두 세계에 대해 손톱만큼의 이해도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인간계 외에 존재하는 두 차원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들이 있었다.
바로 흑마법사라는 존재들이었다.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이 천계에 존재하는 신과 천사의 힘을 선사 받았다면, 흑마법사들은 악마에게 갈구하여 얻어낸 힘이 있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그 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들 역시 어두운 세계의 신적인 존재에게 힘을 받았다는 것과 그를 위해 힘을 비축해 두어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채 살아갈 뿐이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본능적인 울림이 그들에게 퍼졌다. 무조건적으로 숭배해 온 대악마의 강림. 성국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눈치채고 견제를 해 왔다.
대륙 내에 숨어 있는 흑마법사들을 속출하는 데 열을 올렸으며, 흑마법사들의 성지나 다름없는 칠흑 등대를 습격해 왔다.
덕분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늦어지기는 했으나 큰 상관은 없었다.
“고작 일 년 늦어졌을 뿐이다.”
주축이 되는 고위 흑마법사들은 이미 몸을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칠흑 등대에서의 의식은 단지 시기를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함이었을 뿐. 수많은 고서와 자재, 그리고 흑마법의 매개가 되는 생명체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흑마법사들은 새로운 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다시금 힘을 모아왔다.
루시퍼가 부활했을 때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그분이 뜻을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돕고자 함이었다.
대악마가 바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힐데스하임의 사제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자신들의 신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뜻을 따르는 것. 신을 숭배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헌데 힐데스하임 놈들 역시 철저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성국에서도 대악마의 부활에 대해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3황자의 지휘 아래에서였다.
“정말 거슬리는군.”
아마도 그의 여기사가 그분의 힘을 공유받고 있는 탓이리라.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 인간이 루시퍼의 힘을 지니고도 용케 잘 버텨 왔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무너질 테니까.
“아아… 정말 기대되는 순간이야.”
충직한 기사가 자신의 주군에게 검을 꽂아 넣는 미래가 도래하리라. 그리고 성국은, 인간은 새까맣게 물든 세상에서, 진정한 신이 누군지 깨닫게 되겠지.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은 힐데스하임 놈들도, 발칸 놈들도 아닌 흑마법사들이 될 것이었다.
“끄아아아악!”
지금 이 순간에도, 흑마법사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섭취하며 자신들의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대의를 위해 쓸모없는 인간이 희생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약자를 희생하는 것은 힐데스하임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늘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있는 놈들이지만, 사실 그 속내는 흑마법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그리고 대부분이 힐데스하임에 대해 유독 강한 적대심을 지니고 있었다.
흑마법사가 된 계기도, 이유도 모두가 달랐지만 대부분이 애초부터 신성 제국에 강한 반발심을 지니고 있었다.
왜 신의 힘이라는 것이 정해진 이들에게만 주어지는가. 태생부터 인간에게 급이 나눠져 있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한때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성국의 그러한 관념 아래에서 고통받다가, 이들만의 신을 영접한 뒤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어찌보면 힐데스하임보다도 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하다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그분께서 부활하셨을 때, 서쪽 섬으로 뚫고 들어갈 만한 힘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들이 힘을 끌어모으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분께서 탄생하시는 순간을 직접 맞이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쪽 섬에 성국의 병력들이 다수 배치되었으니,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이그네아 놈들도 생각이 통하는 면이 있을 줄 알았더니. 그냥 먼저 죽여버려야 했나.”
성국에 버림받고, 누구보다 힐데스하임에 대한 원망이 커야만 당연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결국 변절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여기며 내버려 뒀던 것인데, 오히려 그들이 성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국에서 서쪽 섬에 병력을 주둔시킨 것도 그 직후였으니 이그네아 놈들이 귀띔을 준 게 분명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지? 돌아갈 명분도, 이유도 없었을 텐데.”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입니다.”
“……그래?”
“성국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지금은 공석이지만 곧 바뀌게 되겠지요.”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그네아가 성국에 반감을 지니게 된 것은 단지 성황 탓이었으며,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살기 위해선 도망쳐서 숨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그래 봐야, 결국에는 성황을 도왔던 놈들이 그대로 살아있지 않은가?”
흑마법사들을 이끄는 수장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흑마법사로서 가장 오랜 생활을 해 왔기에, 평범한 인간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자였다.
“그게 그들의 멍청함입니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단지 더 이상 성국에서 숨어 살 필요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돌아간 게지요. 모든 게 성황의 탓이었다 위안하고는.”
“정말 이해할 수 없군.”
그리 말한 수장은 저만치에 있는 왜소한 체구의 남자에게 물었다. 20대 중반이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의 흑마법사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이제 와서 돌아가고 싶냐는 말이야. 네 모든 선택을 후회한다거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답한 남자는 애써 핑계를 만들고 자리를 떴다.
“대장님은 저놈에게 너무 가혹하신 것 아닙니까? 낄낄. 보는 재미는 있지만요.”
“확실히 해 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흑마법사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는 성국을 증오하게 되었으며, 누구보다 흑마법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자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 *
“……젠장.”
신성 제국에서 사제가 되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타고난 성력. 그런 전제가 깔려 있는 이상, 극소수만이 사제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성력의 양이 적다면 기껏해야 작은 신전에서 썩으며 살아야 하겠지만, 그것만 해도 신성 제국 내에선 엄청난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남자는 그런 면에서는 운이 참 좋았다.
경지가 높지는 않았지만, 성력을 타고났다는 건 정말로 신성 제국에서 운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제가 된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사제가 되며 신성 제국의 진면목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바라던 성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히 오염되어 있었다. 지위가 높은 사제가 아니라서 아주 자세한 내막을 볼 수는 없었음에도, 그가 본 빙산의 일각만으로도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권력이라는 것이 참 무서웠다. 사제가 되고 나면서 권력이 생기자, 많은 것들이 뒤바뀌었다.
촌구석 영지를 지니고 있던 남작이자, 다른 남작들에게서도 무시 받던 자신의 아버지는 그 권력을 복수하는 데 이용했다. 아버지를 무시하던 이들이 결국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게 되었다.
‘잘 했다.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던 이들의 시선이 어땠는가를 떠올려보면 지금도 끔찍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칭찬을 건넸었다.
정말 웃긴 건, 그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들은 칭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성황의 오른팔이라 여겨졌던 현자 파우스트가 그가 있던 신전에 들렀다. 그땐 이미 현자는 성황에게 버림받은 뒤라 큰 명성이 있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토록 높은 위치에 있던 파우스트는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제아무리 현자라고 한들 고달프고 속이 쓰렸겠지. 조금의 권력만으로도 삶이 완전이 뒤바뀌어 버렸는데. 파우스트 역시, 아버지에게 무릎 꿇은 자들처럼, 자신보다 아래 있던 이에게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겠지.
하지만 파우스트는 남자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는 몰라도, 전혀 기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현자는 꼭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신비롭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만난 현자에게 남자는 한마디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남자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현자가 남자에게 바라던 모습이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제 와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마 흑마법에 손을 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겠지.
하지만 남자가 그런 선택을 했던 데는 역설적이게도 현자의 영향이 가장 컸다.
현자가 어째서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그런 의문에 대한 고찰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누구보다 올바르고, 누구보다 고귀한 성력을 지니고 있던 현자가. 성황에게 버림을 받았다. 현자는 그 사연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누명을 쓴 게 분명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신성 제국에는 미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남자에게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왔고, 단지 그 속삭임을 따라 걸어왔더니 지금의 위치까지 와 있었다.
그는 통째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왼팔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저는 어떤 존재입니까.”
사제로서 신에게 던지는 질문도, 흑마법사로서 악마에게 던지는 질문도 아니었다.
현자 파우스트,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 누구보다 현명한 자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가 3황자를 돕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남자에게는 큰 내적 갈등이 피어오르게 했다.
게다가 3황자가 모든 것을 밝혔다. 성국 전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내막. 평생토록 성국에서는 감출 줄로만 알았더니 아니었다.
성국이 썩은 게 아니라 성황이 썩었던 것뿐. 그리고 성황에 의해 많은 것도 따라서 오염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선한 인물들로 들어차 있다는 사실.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저는 누구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며, 누구에게 상을 받게 될 운명입니까?”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이런 고뇌의 시간도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달이 온전히 하늘에 뜨자, 그의 눈빛이 뒤바뀌었다. 동공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밤에는 흑마법사로만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가 하던 고민이 무엇인지 새까맣게 잊은 채로 잡혀 온 인간들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제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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