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80)
제180화
“계획이 변경되었다.”
흑마법사들의 수장이 새로운 내용을 전파하였다.
“서쪽 섬으로 우리가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
얼핏 듣기로는 이상한 말이었다. 아무리 경계가 삼엄해졌다고 한들, 루시퍼의 부활 현장에 흑마법사들이 직접 가지 않는다는 건 수장이 겁을 먹었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깟 놈들이 뭐가 걱정이란 말입니까?”
“그분께서 강림하신다면, 힐데스하임의 병력들 전부가 전투에 투입될 것입니다.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면 걱정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수장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처음 수장이 전달했던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흑마법사들은 모두 동의했고, 한참 난전 중인 현장에 개입해 마군단을 돕는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그 계획을 바꾼다는 말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실현 가능한 계획만을 실행으로 옮긴다, 그것이 우리의 철칙이니까.”
“그 말씀은…….”
“확실히 실행 가능한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는 거지.”
그리고 수장이 원래의 계획을 틀 정도라면,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루시퍼께서 깨어나시기 전에 충분한 양의 제물이 모였다.”
흑마법사들은, 앞서 말했듯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에 비해서 훨씬 정확한 부활의 시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제물, 그러니까 살아 있는 인간들을 계속해서 모으고 있었다.
일전에 비해서 훨씬 어려워지기는 했다.
힐데스하임의 단속이 훨씬 심해졌을뿐더러, 암묵적으로 흑마법사들의 존재를 용인해 주던 발칸 제국도,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결국 대륙 내에 숨어 지내면서도, 대의를 위해 희생될 인간들을 납치해야만 했다. 루시퍼의 부활까지 힘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하지만,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그리고 오히려 지금은 단순히 인간의 병력과 맞서 싸우기 위한 수준의 힘을 넘어서 그 이상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이 모였다. 힐데스하임과 발칸 내에서 정세가 흔들릴 거사들이 연이어 벌어진 탓에 흑마법사들에 대한 경계가 소홀해진 덕이었다.
무엇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흑마법사들이 도망쳐 숨은 곳이 설마 힐데스하임 안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차원의 입구를 바꾼다.”
“……!”
흑마법사들은 그 말을 듣고 놀랐으나, 그게 가능하다면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흑마법사들이라고 하여도 흑마법의 기원이 어떤 것인지, 흑마법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모른다.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었으며, 선배 흑마법사들에게 들은 극히 일부의 사실만이 전해질 뿐.
애초에 흑마법은 결코 기록으로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구전을 통해 전달되던 사실은 극히 소수일 뿐이었으며, 많은 것들이 소실되었다.
헌데 현존하는 흑마법사들 중 가장 오래된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가 바로 수장이었다. 다음 가는 흑마법사를 꼽자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어도, 첫째가 수장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수도 없이 알고 있었으며, 그간 흑마법사들에게 하나씩 풀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된단 말입니까?”
흑마법사들이 수장에게 물었다. 놀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왜 이제야 그 사실을 알려주었냐고 따지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수장은 그런 이들을 노려보았다.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수장과 일반 흑마법사들의 사이에는 확실한 서열이 존재했다. 그에게 잘못 보였다가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된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장에게 반발심을 갖고 반역을 꿈꿨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우리가 그간 무엇을 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나오겠지.”
그리고 수장의 느긋함을 질책하려던 이들은, 수장의 말을 듣고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칠흑 등대에 있을 당시 우리가 가장 주력해야만 했던 것은 그분의 재림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칠흑 등대에 새겨진 마법진은, 인간들의 피를 제물로 하여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루시퍼의 부활을 앞당기고, 그분의 온전한 힘을 인간계로 불러오기 위하여.
“하지만 변수가 생겼지.”
그리고 그 누구도, 칠흑 등대로 인간들이 쳐들어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본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칠흑 등대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은 흑마법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 누구인지도 모를 위대한 흑마법사들이 모여 칠흑 등대를 수호하는 흑마법진을 깔아 두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칠흑 등대는 수백 년간 흑마법사들의 거처로 사용할 수 있었다.
“……3황자였겠지. 아마도.”
그런데 힐데스하임의 병력들이 칠흑 등대에 깔려 있는 흑마법진을 뚫고 들어왔다. 그 병력을 이끈 것은 성황도, 1황자도 아닌 3황자였다. 심지어 그때 당시엔 성국 내의 3황자에 대한 평판이 바닥을 치고 있었기에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3황자가 신성 제국 내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3황자가 칠흑 등대로 뚫고 들어온 것은 단순히 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3황자가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던 거지. 아니면…… 신성 제국이 우리를 속였거나.”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은 낮았다. 흑마법사들은 정보에 예민해야만 한다. 많은 정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신성 제국 내에도 수많은 정보통이 있었고, 그를 통해 입수했던 3황자에 대한 소문이 결코 거짓은 아니라 믿었다. 그렇다면 3황자가 신성 제국의 모두를 속이고 자신의 힘을 숨겨왔다는 말이 되었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결국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3황자라는 소리다. 칠흑 등대를 뚫고 들어온 순간 우리의 주적은 성황보다도 3황자가 되었었지.”
3황자가 모든 걸 망쳤다. 수년간 흑마법사들이 준비해 왔던 것을 모두 망가뜨렸으며, 흑마법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힘을 모아야만 했고, 이제 와서 루시퍼의 소환진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불완전하게나마 그분께서 강림할 시기가 되기도 했고. 대신에,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제야 할 수 있는 것. 그건 수장이 말했던 대로 루시퍼를 포함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차원의 문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열지에 대해서는 이미 결정을 내려두었다.”
신성 제국의 수도. 흑마법사들의 주적이라 볼 수 있는 사제들의 근원지.
“성국의 병력들은 이미 칠흑 등대에 모여 있고, 제집은 비워 둔 꼴이다. 루시퍼께서 온전히 깨어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지. 놈들이 눈치채고 돌아오는 동안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을 것이다.”
수장의 계획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신의 자식이라 일컫는 이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악마가 태어나는 걸 보면 어떤 좌절에 빠질지. 궁금하지 않나?”
수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흑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기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리가 파하자마자 사라진 분주히 움직이는 남자가 있었다. 릭투스였다.
수장은 그런 릭투스를 보며 수상함을 느끼곤 뒤쫓아갔다. 그는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
“……릭투스.”
수장이 릭투스를 불러 세웠다. 허둥지둥 옮기는 발걸음이 역시나 수상했다. 제자리에 멈춘 릭투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를 봐라.”
뒷모습만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장은 직감적으로 릭투스를 의심했다.
부들.
릭투스의 몸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수장은 얼른 다가가 그런 릭투스의 어깨를 잡고 돌렸다.
화악.
새빨간 동공. 생기 없는 얼굴. 그대로였다. 하지만 역시 찝찝함이 남았던 수장은 그런 릭투스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즉시 흑마법으로 그의 기억을 훑어보았다.
“……흐음.”
그래도 역시 이상한 점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다. 어찌 되었든 너도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네가 태어났고, 너를 고통에 빠지게 한 신성 제국을 나락에 빠뜨릴 순간이 다가올 테니.”
“두말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릭투스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흘렀다. 소소한 기쁨. 역시 릭투스는 수장이 생각한 그대로였다.
만족스러웠다.
* * *
“이번 일만 순조롭게 넘기고 나면 모든 게 일사천리일 것이다. 혹여나 발각되더라도, 동료를 구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도 신성 제국 내에서 숨어 살고 있지만, 마법진을 깔기 위해 수도로 가는 건 확실히 위험 부담이 있었다. 물론 어지간해서는 흑마법으로 도망치는 건 가능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지금의 힘으로 수도의 사제들과 정면 대결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각자 살아서 도망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럼. 이동한다.”
흑마법사들의 행색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까만색의 로브는, 사제들이 입는 새하얀 사제복으로 바뀌었다. 얼굴도 선한 인상으로 모두가 뒤바뀌었다.
물론 사제들이 작정하고 그들의 조사한다면, 성력과 반대되는 기운에 수상함을 느끼게 될 테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까지 확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수도로 이동한 흑마법사들은 미리 탐색해 둔 장소로 이동했다. 성황궁을 포함한 성국의 주요 시설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들은 미리 가져온 인간들의 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나절 정도는 걸릴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들킬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일부 흑마법사들이 가상의 차원을 만들어 이들을 덧씌워 두고 있었으니, 성력으로 그 차원을 꿰뚫지 않는 이상에야 발각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거의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마법진을 완성시키던 손짓도 그대로 멈췄다.
흑마법사들에게는 가장 경계되는 기운. 흑마법과 상극인, 다량의 성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동안 성력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근처를 돌아다니는 사제들이 종종 있기는 했으나,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그에 비할 수 없이 거대한 느낌이었다.
혹여나 발각될 걱정에 흑마법사들이 기척을 감추고 있던 무렵.
화아악.
그대로 이들을 감춰주고 있던 허상의 차원이 찢어지며, 누군가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퍽 잘생긴 얼굴의 황족이었다. 흑마법사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