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81)
제181화
신성 제국을 비롯한 인간 세력이 마물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동안,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었다. 현자가 가져온 정보였다.
종이에 휘날리듯 적힌 글자들은, 여러 시간에 나누어 걸쳐 적은 듯 연결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현자가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처럼, 중요하고 긴박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에 대한 정보.
그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잔존 세력을 찾아내고 처리하기 위해서도 공을 들였으나 쉽지 않았다. 발칸 제국에서도 협조를 해주었음에도 그들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현재 내가 임시로 머물고 있는 힐데스하임의 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흑마법사의 주축이 되는 세력이 머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말 같지도 않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성 제국의 정중앙부에 루시퍼를 포함한 마물들이 쏟아질 차원의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이거 확실한 거야?”
나는 현자에게 그 출처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이들에게 들은 공식적인 정보도 아니었고, 현자가 개인적으로 입수한 정보다 보니. 지금의 현자에게 그럴 만한 정보통이 있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현재로선 설명 드리기 어려우나 연이 있던 자에게서 온 정보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다른 생각은 미뤄두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현자의 말대로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이틀 뒤면 흑마법사들이 직접 움직여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할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이 허를 찌르기 위해 먼 곳에 숨은 것이 아닌, 도리어 신성 제국의 수도 근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곧장 고위 성기사를 불러들였다. 공식적으로는 황궁 기사단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성황 자리가 공석인지라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자였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병력의 수가 얼마나 있지?”
“병력이라면…….”
“정예라고 불릴 만한 성기사와 사제들만 헤아리면.”
“그게…… 현재 수도에 남아있는 수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이 칠흑 등대에 있거나, 언제든 칠흑 등대로 이동하기 위해 근방의 내륙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알고 있으니까. 대답부터 해.”
대부분이 칠흑 등대 쪽으로 빠져있는 건 다름 아닌 내 지시였고, 그걸로 따지고들 생각은 없었다. 우선 그쪽 인원 중 일부가 돌아오도록 지시해야겠지만, 그 전에 먼저 출발할 최소한의 인원들을 끌어모아야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성기사와 사제가 각각 다섯씩은 될 것입니다.”
“총 열 명이네.”
거기에 트루드와 나를 포함하면 열두 명 남짓은 될 것이었다.
흑마법사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유추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머릿수가 달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병사들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그들은 오히려 흑마법사들의 좋은 재료로써 활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가 약한 자라면 흑마법 앞에서 맞서 싸울 의지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내가 정예 기사와 사제들만 찾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불러 모으고, 만약을 대비해서 여기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성기사들 서른 명 정도도 추가적으로 지원 올 수 있게 요청해 둬.”
“……예.”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병력들과 황궁을 나서기까지,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현자가 건넨 정보에서 말하는 위치로 도착했다. 인적이 드문 공터였다.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흑마법사들 역시 보이지가 않았다.
“……전하?”
성기사와 사제들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곳에 흑마법사들이……”
“쉿.”
나는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설마 힐데스하임의 수도인데, 흑마법사들이 미쳤냐고 여기에 오겠냐는 듯한 뉘앙스의 질문은 사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막 가슴의 울림을 느끼던 차였다.
아주 미묘한 감각이었다. 다섯 개의 고리 전체에 퍼지는, 집중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변화.
“달라.”
숨 쉬는 공기가 다르고, 딛고 있는 땅이 다르다. 보고 있는 것이 미묘하게 뒤틀려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세상이 나를 속이는 듯한 감정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직감적으로 수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느껴보지 않았으면 모를, 이 이질적인 감각은 예전에 마주했던 흑마법과 동일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아주 미세한 감각이었다.
성력을 끌어모았다. 차원에 덧씌워진, 흑마법을 감추고 있는 또 다른 흑마법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화악.
많은 양의 성력을 방출하자, 파공성과 함께 공간이 찢어지듯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또다른 풍경이 드러났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고, 우리 쪽의 기사들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힐데스하임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들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사제들이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차원 속에 숨어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수상했을 뿐더러, 그들에게서 노골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아까처럼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자극적인 흑마법의 기운들이었다.
“여, 여길 어떻게……?!”
흑마법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저들의 입장에선 꽤나 훌륭하게 성국의 허를 찔렀고, 자리를 잡은 채 온전히 기척을 숨기고 있는 그들을 찾아내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섯 개의 고리를 모두 활용해야만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나 역시 미리 듣지 않았다면 제대로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진 몰라도, 저들이 시전하고 있는 흑마법이 완성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지도 몰랐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보기보다 침착했다.
사제들이 허울만 좋은 평화 속에서 배 따시게 살아오는 동안, 흑마법사들은 늘 전쟁을 준비해 왔을 테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게 전부인가?”
이 정도의 숫자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얼굴.
그렇다고 숫자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흑마법사의 숫자도 도합 스무 명 남짓일 뿐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그리고 가장 수상한 기운을 품고 있는 한 남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화악.
바람이 거세게 일며 주변의 공기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손엔 새까만 기운이 몰려들자 성기사들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쾅!
하지만 흑마법사들을 향해 달려가던 기사들은 곧바로 저지당했다. 몇몇의 흑마법사들이 그를 엄호하며, 흑마력을 날려댔기 때문이다. 흑마력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성기사들은 검으로 그 기운을 막아내느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너희들의 신이 정말로 유일신이라 믿는가.”
고작 몇 초 지연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몇 초가 그에겐 충분한 시간인 듯,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댄 흑마법사가 우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모여 있던 흑마법이 바닥을 꿰뚫으며 흑마법의 기운이 분산되었다.
“신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지? 우리가 신을 따라야만 하는 이유는?”
그의 질문이 정말로 본질적인 의문을 표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함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스멀스멀.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사이 사이, 바닥에서부터 마물들이 하나 둘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건 우리가 모시는 신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지. 과거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너희들의 신께서도 이런 자비를 베푸시는가?”
매개체. 내가 아는 한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생명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과거에 죽어 바닥에 묻혀 있던 시체들이 정말로 되살아 난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사제와 성기사들이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흑마법사들의 언변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한때나마 성국을 위해 싸웠던 과거의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죽여야 한다는 것이 거부감이 느껴져서인지. 뭐 때문인지는 정확히 할 수는 없었어도.
“원래 사이비라는 게 말이야.”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영 허점이 많았다.
“그럴싸한 점이 많거든. 안 그러면 누가 속겠냐고.”
흑마법사들의 논리는 대학 시절 마주했던 사이비 전파자와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우리 쪽이라고 꼭 사이비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마지막 내 말은 사제와 성기사들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음성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나 혼자 담아두어야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너희들보단 우리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악마든 신이든.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음에도. 다른 이의 생명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흑마법을 결코 옹호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내 일말의 양심이었다.
* * *
흑마법사들은 황자와 사제들의 등장을 보며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릭투스에게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성국과 내통하지 않았다면 정보가 샜을 리가 없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흔적을 조금도 남겨둔 적이 없으며, 그 누구도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리고 여기서 흑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작정하고 이들을 잡으러 온 게 아니라면 발각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릭투스의 표정은 당당했다. 그는 다른 흑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 사제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릭투스의 짓이 아닌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 무렵.
“그럴싸한 점이 많거든. 안 그러면 누가 속겠냐고.”
황자가 흑마법사들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물론 먼저 시작한 것은 이들의 수장이었다.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에게, 자신들의 우매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사제들은 흑마법사를 보면 탄압하기에만 바빴다. 이렇게 이들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이는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럴싸하다?”
수장 역시 그런 점에서 동하는 게 있는 것인지. 황자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수장이 일으킨 시체들은 사제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신성 제국 놈들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한때나마 성국을 위해 싸웠던 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두 번 죽이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정말 멍청하기 그지 없는 놈들이었다.
“그게 현실이지. 때로는 지나치게 고고해. 그러면서, 때로는 흑마법사들보다도 비열하지. 너희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
반면 흑마법사들은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황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막대한 양의 빛이 그의 손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긴 하지.”
그런데 황자는 다른 사제들처럼 흑마법사들의 말에 덜컥 화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근데 난 아니거든.”
그리고 그의 손에 몰려들었던 성력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