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수장이 흑마법사가 된 지는 벌써 4백년이었다. 수명이 다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다른 인간들의 몸을 취하면서 이름 없는 인간으로서 아주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흑마법과 신성력, 그리고 힐데스하임과 루시퍼에 대한 고찰.
4백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낱 인간들이 고민해 봐야 도달할 수 없는 결론.
신성력과 흑마법은 다를 것이 없다.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없는 절대자의 힘을 빌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다만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은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모른 채, 신을 마냥 절대선으로 모시며 스스로 잖은 제한을 만들기에 바빴다.
“……무식한 인간이군. 이해를 못 한 건가?”
그리고 수장이 사제를 설득하려 시도한 건 이번이 2백년 만이었다.
진리에 다다른 후 백여 년 동안은 사제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흑마법사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보려 했다. 흑마법사와 사제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고, 사제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흑마법사들 역시 숨어 살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제들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진실은 외면한 채, 흑마법사에 대한 무변별적인 적대심으로 응대했다. 하지만 그러한 가면 뒤에서,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 하는 감정이 엿보였다.
마냥 말이 안 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사제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진실을 외면한 채로 흑마법사에 대한 태도를 고수했다.
결국 수장 역시 사제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들은 고지식한 데다 제 눈을 스스로 가리는 멍청한 족속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수장은 살아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자를 설득해 보았다. 그의 권능으로, 수장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았을 테니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보고도 황자의 마음은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짧고 굵게 사는 게 내 인생 목표라서 말이야.’
멍청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그는 전혀 혼란스러워 보이지가 않았다.
제아무리 믿음이 강한 사제들이라도, 진실을 들었을 때는 결코 태연하지 못했다. 수장의 말을 믿지 않는 척하더라도, 내적 갈등이 생겨야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로 네 신이 인간들에게 대가 없는 선의를 베푸는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믿음이 지나치게 확고하거나, 아니면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황자를 보며 마냥 비웃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꼭 모든 걸 깨우친 사람처럼 보였다.
“대가 없는 선의? 그런 건 없겠지.”
그리고 황자의 대답 역시, 일반 사제들의 믿음과는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그런 황자의 말이, 주위에 있는 사제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황자만이 아무렇지 않아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막 나를 천사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는데. 사실 나도 늘 돈 받고 일했거든.”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황자를 설득하려 했건만, 오히려 혼란에 빠지고 있는 것은 수장 본인이었다. 잠시 머리를 굴린 수장이 황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힐데스하임과 루시퍼. 결국 그들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생명이 희생되어야만 한다. 그건 응당한 일이고, 사제와 흑마법사가 서로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한 수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마법사들이 소환한 시체들은 신성력에 의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다른 흑마법사들은 전부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제압 당했다.
수장 역시 같은 꼴이나 다름 없었다. 황자의 막대한 성력에 의해 차원이 덧씌워져 있었고,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를 설득하려 드는 건 그가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사제와 흑마법사가 손을 잡는다?”
3황자의 말에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분들의 힘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현세에 강림시키는 것이다.”
“루시퍼가 인간계로 오면 우릴 죽이려 들진 않겠어?”
“……그건 오해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루시퍼가 인간 세계로 도래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힘이 온전치 않았고, 흑마법사들이 사제들에 의해 강한 탄압을 받은 탓에 마땅히 지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루시퍼의 목표는 힐데스하임에 알려진 것처럼 인간을 멸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힐데스하임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힘을 나누고 계시지.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이 그분을 증오하고, 맞서 싸우려 드니 그분께서도 강압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 뿐.”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네.”
그리고 그 설득이 조금은 먹혀들었는지 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이교도의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 힐데스하임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은 그런 황자를 만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수장의 눈에는 우습게 보였을 뿐이다.
황자는 그런 이들에게 손짓해 조용히 하도록 시켰다. 그리곤 수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수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어쩐지 황자의 얼굴이 썩 달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두 쪽 다 별로 좋아하진 않아. 그래서 신성력 외에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해 나가고 있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작은 상처를 낫게 하는 것 정도로 그치겠지. 하지만 진리를 깨닫고, 신의 힘을 온전히 사용한다면 죽은 이를 되살릴 수도 있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네.”
황자가 수장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영 아닌 것 같단 말이지.”
“……?”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면 알지는 못해도 두 명 이상의 목숨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닌가?”
황자가 수장에게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흑마법의 시전에는 인간의 피가 필요하고, 수장이 찾고 있는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전설 속의 흑마법을 위해서는 최소 수 명의 목숨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
“이 세상에 쓸모 없는 목숨들이 너무 많지.”
아니, 어쩌면 벌레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대의를 위해 희생되기 위함이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흑마법사들은 늘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들을 제물로 사용해 왔다.
“……내가 멍청했네. 너 같은 놈이랑 대화를 해 보려고 하다니.”
그런데 대체 어떤 생각이 3황자의 마음을 거슬렀는지는 몰라도 수장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종종 그런 놈들이 있긴 하지. 죽여버리고 싶은 놈들. 죽어야 마땅한 놈들. 신이 있다면 대체 왜 이런 인간을 만든 거지 싶은, 동족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인 놈들.”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이냐?”
“너희들의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거야.”
수장이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루가 된 시체 곁에서 머물고 있는 영혼들에게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을 엿보며, 그들을 위로하여 영혼이 더 이상 이 세상을 맴돌지 않게 하는 일들.
“너희들의 기준대로라면, 신분이 미천하면 희생돼도 상관 없다는 건가?”
“……당연한 것 아닌가?”
3황자가 무엇을 바라고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건 당연한 말이었다. 고귀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 미천한 자가 죽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너는 네가 정말로 진리를 깨우쳤다고 생각해?”
이미 수장의 과거를 읽은 뒤라, 황자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거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거든.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거. 나도 내가 늘 옳다고만은 생각하지 않거든.”
황자의 얼굴이, 어느새 딱딱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안에 가시가 돋은 것처럼 수장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네 멍청한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알 수 있겠다.”
“자, 잠깐…….”
황자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던 성력이 일순간에 그의 손에 몰려들었다.
위기를 감지한 수장이 시간을 벌어보려 했지만, 황자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수장 역시 그간 많은 사제들을 만나보며, 사제가 어떤 자들인지를 파악했다 생각했지만 황자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단 말인가.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막대한 성력이 그를 덮쳤다.
알려진 것처럼 결코 따스한 힘은 아니었다. 그의 온몸에는 흑마력이 있기 때문에, 그와 반대되는 힘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끄…… 끄흐읍…….”
그러는 와중에 알 수 없는 형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셀 수 없이 많은 누군가의 기억들이 초 단위로 그의 머리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수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복수라는 것은 뒤늦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 * *
흑마법사들은 살려두지 않았다.
죽여버리고 싶은 놈들. 죽어야 마땅한 놈들.
전생에서는 차마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흉악범이라도 병원에 오면 살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에 대해 회의감을 품는 순간 괴로워지는 것은 나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사회였다.
이곳의 기준에 맞추어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전하.”
사제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흑마법사가 한 말이, 그리고 그에 대해 내가 내놓은 대답이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미천한 자들은 고귀한 자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건 사실 사제들 역시 같은 마음일 터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흑마법사와 사제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물론 흑마법사들처럼 과격하게 인간을 희생시키지는 않지만.
솔직히 나도 내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지만, 그게 저들의 가치관과는 다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의심하지 마.”
지금은 사제들이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되었다. 신에 대한 막연한 믿음. 그걸 썩 달갑게 여기지는 않지만, 때로는 맹목적인 믿음이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지금 사제들은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쳐서 루시퍼와 맞서 싸워야 할 때였다.
그들의 생각을, 이 세상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바꾸는 건 그 뒤에 할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