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저, 전하. 마물이 각지에서 소환되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이례적인 양입니다!”
“서, 서쪽 섬에서도 지원 병력을 요청해 왔습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듯 혼란스러워졌다.
서쪽 섬에서 마물의 양이 급증한 것 뿐만이 아니라, 기존에 마물이 출몰한다 알려진 곳들에서 나타나는 마물의 수도 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게다가 마물의 출현지가 아닌 곳까지 차원이 열리면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할 때였다.
“서쪽 섬의 상황은 정확히 어떻게 되지?”
“……아직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사제들이 큰 위험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물들이 꼭 악마의 재림을 기다리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합니다.”
“기존의 병력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정돈가?”
사제와 성기사들은 확실히 다른 이들에 비해 마물을 상대하는 데 있어 수월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이들조차 소환되는 마물을 대처하는 데 급급해 하고 있었다.
발칸 제국을 비롯한 독립 왕국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들 역시 자국에 나타난 마물들과 싸우는 중이라 지원 병력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악마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에서 다크 엘프들의 시신이 대량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크 엘프?”
“예. 덕분에 대악마의 부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대사제들의 추측입니다.”
연이어 급하게 나타난 현자가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을 늘어놓았다.
“엘프는 인간계 내의 평화를 유지하는 존재입니다. 과거, 지독한 전쟁을 하던 인간들의 칼을 멈추게 한 것이 엘프의 피였지요. 그리고…… 다크 엘프의 피는 다른 차원과 인간계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알려져 있습니다.”
다소 어려운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게 표정으로 드러난 것인지 현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하. 세상엔 필연적인 운명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엘프들은 인간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 자신들을 원망하고, 다크 엘프가 되어 인간들까지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애초에 운명이었다는 거야?”
내 말에 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결국 다크 엘프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깨닫고, 맡은 바를 다 한 게지요.”
다크 엘프들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그들은 미아를 내게 맡기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건 본인들도 알고 있었을까. 본인들이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게 된다는 건 알고 있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리 처량한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고.
“……운명이라고?”
처음으로 현자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운명이라는 것. 이 세상에서는 꽤나 당연히 되는 부분일 수 있었으나 현대에서 살다 온 내게는, 평생을 살아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받아들이면 참 편하기는 하다.
‘애초에 죽었을 환자였어.’
‘네가 아니라 그 어떤 의사가 와도 살릴 수 없었을 거라고.’
그 환자는 죽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합리화했으면 참 편했겠지. 울면서 밤을 세우는 일도 없었을 거고.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일.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의 다짐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았기에.
그 덕에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경력의 의사들에게는 결코 꿀리지 않는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이번의 삶에서도. 애초에 이런 세계가 될 운명이고, 애초에 버림받은 황자로서 살아갈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면 나는 이렇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자를 나무랄 수 없었다. 나도 결국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으니까. 다크 엘프가 미아를 두고 떠나가던 때, 그들의 행방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나도 짐작은 하면서 그냥 방관했던 것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큰일을 하셔야 합니다.”
정말 누군가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리고 현자의 말처럼 내가 큰일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정말 빌어먹을 운명이었다.
황자니까 천한 자들과 어울리면 안 된다. 명의니까 일반 진료는 보면 안 된다. 무엇이 다른 이야기인가?
“모르겠다,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회의감이 몰려들었지만, 사실 지금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크 엘프뿐만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은 영혼으로서 내게 큰 힘을 보태주었다. 그리고 이 힘은 당연히 모두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사제들, 성기사들 전부 서쪽 섬으로 이동할 거야.”
챈슬러와 마르틴을 포함한 베이언의 기사들은 이미 전부 서쪽 섬에서 전투 중이었고, 나는 트루드와 함께 곧장 이동할 준비를 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파우스트 역시 따라나설 채비를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러자 현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기야 제대로 된 성력도 없는 늙은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알잖……”
“그래도 나름대로 도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현자는 그렇게 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 * *
세 명의 사제와 두 명의 성기사. 그리고 나와 트루드, 현자까지. 총 여덟 명이 탄 배가 힐데스하임의 땅을 벗어나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마물의 무리를 본 게 두 번이나 됐다. 마물에 대한 대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각 영지의 성에 민간인이 얼마든 출입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두고, 최소한의 인원들이 그 성을 지키도록 해 두었다.
물론 언제까지나 그들이 몰려드는 마물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계속해서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정말 이기적이게도, 오히려 그렇게 많은 마물들이 한 곳에 포진되어 있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물들의 중심부인 서쪽 섬을 먼저 진압하고 나면 추후 상황은 나아질 테니까.
발칸 제국과 여타 왕국들에도 같은 대처를 하도록 지시해 두었다. 아마도 거리가 있는 만큼 서쪽 섬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릴 테지만…… 버티면 승산은 있다는 소리였다.
“……지독하네.”
바다 위에는 자욱하게 안개가 끼어 있었다. 전에, 이그네아 가문 사람들을 만나러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정확히 동일한 상황은 아니었다.
피부가 안개를 스치며 따끔거렸고,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져만 가고 있었다. 신성력이나 마력이 없다면 일반인은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었지만 겉으로는 티가 날지도 모르겠다.
두려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 한 명의 목숨이 아닌, 수천만 혹은 수억 명의 생사가 내게 달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너무 큰 짐이었다.
괜히 하늘을 노려보았다. 대체 왜 나였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뒤늦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건 단지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겐 욕심이 있었다.
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차마 시기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그리고 지금 나는 주인공이 맞았다. 정말 싫으면서도…… 또 마냥 도망치고 싶은 것만은 아니었다.
“……전하?”
트루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준비는 됐어?”
나는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되려 트루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트루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늘 준비해 왔습니다. 언제가 됐든,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맞이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한 트루드가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 트루드의 눈에는, 왠지 모를 존경심이 묻어 있었다.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제가 해 왔던 것이 결코 최선이 아닐까 봐. 전하께서는 이토록 완벽하신 분인데, 제가 전하의 유일한 오점이 될까 봐.”
트루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늘 부족했다. 내겐 과분하기만 한 기사였고, 아무것도 없던 내게 큰 힘이 되어 준 충직한 기사였는데. 그녀는 오히려 내가 그녀와 맺은 서약이 내게 족쇄가 될까 봐 우려하고 있었다.
“당연히 무섭지. 손이 덜덜 떨리는걸?”
나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손은 아무렇지 않았다.
타고난 건 아니고, 학습된 태연함이었다. 메스를 쥔 손이, 그 어떤 순간에도 떨려서는 안 되기에. 십수 년간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얻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래도 내가 걱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네가 차지하는 건 조금도 없어.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왔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늘 옆에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너는 말이야. 네게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면 어떨 것 같아?”
갑작스레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화제를 돌린 것이기도 한데, 오히려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하께서 돌아가시는 일은…….”
“생사람을 왜 죽은 사람 만들어? 아니면 내가 죽길 바란다거나, 소중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거나. 뭐 그런 거야?”
내가 놀리듯 트루드를 질책하자 그녀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뜻은 아니오나…….”
“전하께 그런 무엄한 소리를! 자식을 잘못 키운 제 책임이니 저를 벌하십시오.”
그리고 뒤에서 나타난 현자가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런데 트루드는 혼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울상을 지었다.
“그, 그리 들리셨다면 정말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껜 아무런 죄가 없으니 부디 제게 책임을 물어 주십시오.”
그리고 트루드는 검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몸을 엎드리려고 했다.
나와 현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런 트루드를 얼른 저지했다.
현자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