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황량한 풍경이었다. 서쪽 섬은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처참한 폐허가 되어버렸다.
마기와 성력의 충돌로 주변의 지형이 크게 파괴된 것은 물론, 마물을 상대하다 세상을 떠난 인간의 시체와 마물의 살점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
방금까지 수많은 마물과 악마, 그리고 힐데스하임 주신까지 나타났던 현장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조용했다. 남은 건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 뿐이었다.
“……전하.”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다소 허탈하면서도, 비탄을 금치 못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갈 길 잃은 인간들에겐 이정표가 필요했다. 이 모든 일을 미리 알고 대비를 시켜두었던 3황자. 그만이 남은 인간들을 이끌 자격이 있었다.
“잠시만.”
하지만 3황자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챈슬러는 3황자의 심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워낙에 속이 깊은 분이니까. 그리고 자신에겐 지나치게 냉정하면서도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니까.
3황자가 손을 뻗어 남은 성력을 모두 쥐어 짜냈다. 방출된 신성력이 시체가 된 인간들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 그게 그들의 죽음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심심하나마 조금의 위로가 될 테니까.
“그냥, 해산시켜.”
3황자는 챈슬러에게 그렇게 말하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 챈슬러가 보기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3황자는 모두의 앞에서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명의 죽음에도 슬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에도 3황자와 함께 출정한 수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돌아선 3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슬프고 처량해 보였다. 아마 그는 모두의 눈을 피해서, 눈물을 흘릴 게 분명했다.
“……어렵군.”
처음 3황자의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챈슬러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챈슬러가 아닌 그 누구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사고 혹은 질병에 의한 죽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밟게 되는 절차였고, 신이 인간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적어도 힐데스하임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꼭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3황자는 그렇게 죽게 될 이들의 운명을 수도 없이 바꾸며 증명했다. 인간의 죽음은 신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3황자의 행보를 지켜보다 보면 신성 제국의 모든 것들이 뿌리부터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3황자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 모든 것들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3황자는 충분한 힘이 없었다. 신성 제국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힘이.
그리고 이젠 상황이 돌변했다.
3황자가 인류 전체의 위기를 막아냈다는 사실은 신성 제국뿐만이 아니라 전 대륙에 퍼지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 있어 직접 신을 불러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일지…….”
확실한 건, 3황자는 예전에 보았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옆에서 본 입장에서, 3황자의 야망이 커지고 있었으며, 그 야망은 좋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신성 제국은 더욱 번영하게 될 것이라…… 챈슬러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3황자의 명대로 우선은 각국에서 온 병력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곤 현자의 주검을 끌어안고 있는 트루드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는 것. 어찌 보면 이것 역시 3황자가 만든 변화였으며, 3황자 덕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전이었다면, 트루드는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슬픔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현자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리나 해 댔겠지.
* * *
“……빠르게 벗어난다.”
신성 제국의 수도. 으리으리한 외관과 내부를 자랑하는 1황자궁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무리가 있었다.
1황자를 포함한 그의 지지 세력들이었다. 끝까지 1황자의 편에 선 몇 되지 않는 귀족들.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악마의 부활이니 인류의 위기니 3황자가 예언했던 사실들이 전부 거짓이었다면, 혹은 3황자가 위기를 막는 데 실패했다면 1황자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서쪽 섬에 심어두었던 전령이 부리나케 전한 소식은, 1황자의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시, 시, 신께서……”
“뭐라는 거야! 똑바로 얘기해.”
“신께서 강림하셨습니다!”
3황자의 말대로 대악마가 나타났고, 인류가 대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했다. 미리 대비를 안 해 두었다면 곧장 멸망했을 것은 확실했을 정도로.
게다가 그런 대악마를 막기 위해 신이 직접 나타났다고 했다. 그건 역사적으로 봐도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젠장!”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3황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거룩한 혈투니 뭐니 할 것도 없이 성황의 공석을 채우는 것은 3황자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1황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성황이 되지 못한 황자의 운명은 거의 그랬다.
1황자 역시 3황자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조금의 기대도 걸 수가 없었다.
“우선 몸을 피한다.”
일단 잔존 세력들을 끌고 가서, 어떻게든 힘을 키워볼 요량이었다. 황자궁에 남아 있는 재물과, 아직 1황자를 따르는 사제와 성기사들. 그 정도라면 새로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과연 3황자에게 복수할 만한 힘이 길러질지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눈먼 도적들에게 위협당하는 일은 없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막상 갈 만한 곳도 없었다. 그토록 많던 지지 세력은 뒤늦게라도 3황자 쪽으로 거의 다 돌아서 버렸으며, 인근의 국가들 역시 3황자가 꽉 잡고 있었다. 특히나 이번 거사에 모든 국가가 동참하면서 진실을 보았으니…….
“……흑마법사들에게 간다.”
결국 1황자는 최후의 보루를 꺼내 들었다.
“……예?!”
“그, 그게 무슨…….”
“전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아무리 썩었더라도 그 사실을 아무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진실이 감춰져 있다. 그들을 통해 너희도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서도, 1황자 역시 흑마법사들이 영 못마땅한 것은 당연했다.
1황자가 흑마법사들을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 일이었으니까.
흑마법사들이 먼저 1황자를 찾아왔었다. 그들은 지금 1황자의 처지와, 1황자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명확히 꿰뚫고 있던 그들은 1황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흑마법사들 역시 대다수가 죽임을 당했고, 남은 세력이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단다. 1황자에게 숨어 살 만한 차원을 만들어 줄 테니 상부상조하자고.
당시 그 자리에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건 흑마법사라는 족속들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혹여나 3황자가 일을 그르칠 수 있었고.
또한…….
‘흑마법은 재료로서 인간을 필요로 하는 걸 알고 있겠죠. 우리는 몸을 쉽게 드러낼 수 없으니 그쪽에서 매달 할당량을 구해다 주셔야겠어요.’
살아 있는 인간. 시골의 노인이든, 건장한 청년이든 상관 없단다. 그게 황족으로서 일말의 양심에 찔렸지만…….
“가자.”
결정을 내렸다. 눈 딱 감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1황자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할 필요도 없었다. 아래에 있는 누군가에게 시켜 도적 노릇을 하게 하면 그만이었다.
1황자는 빠르게 짐을 싣고 말 위에 올라탔다. 여전히 못마땅한 것인지 다들 쭈뼛거리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들어 보니 서쪽 섬에서 대악마를 토벌한 직후 움직이고 있단다. 각 대륙에 잔존하는 마물들을 완전히 처치하기 위해서.
1황자가 재촉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1황자가 소리를 막 지르려고 했다.
“뭐 하냐니까……?!”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모두가 1황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황족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볼 수 없는, 불경한 눈빛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푸욱.
1황자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감촉을 느꼈다.
“이, 이게 대체……?!”
자신이 가장 믿던 기사가, 그 주인을 찔러버렸다. 1황자는 대답도 듣기 전에, 심장을 뚫린 상처로 의식이 툭 끊어져 버렸다.
즉사였다.
“……주인으로 모셨던 마지막 대우로 편히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세 명의 황자 중 두 명이 죽어버렸다. 1황자의 잔존세력은, 그렇게 자신의 주인이었던 주검을 짊어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대악마를 소멸시켰지만 아직까지 대륙에서는 마물들이 날뛰고 있었고, 이전처럼 돌아가기 위해선 한 달 정도의 시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서쪽 섬에 있던 각국의 병력들이, 이제는 자국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수 있었고. 그건 성국의 사제와 성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마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성국의 병력들이 가장 수월할 테니. 우리 쪽이 끝나고 나면 타국으로 지원을 보내주기로 약속까지 해 두었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명분들은 거의 마련이 되었다.
이전 성황이 죽으면서 공석이 되었고, 나는 그의 아들인 황자였으며, 성국 내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한 가지가 있었다. 1황자의 존재였다.
족보상으로는 나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자였으니.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찾아가기도 전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충격적인 건, 그가 죽은 채로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저희는 1황자 전하를 따르던 이들입니다.”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의리로나마 1황자를 쭉 따르려고 했지만, 1황자는 눈을 피하기 위해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고. 그리고 흑마법사들과 함께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애먼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야만 하는 입장이 될 것이었다고.
결코 그렇게 되기는 싫어서, 불가피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솔직히 핑계로 보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1황자를 죽인 건 너무 과격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신께서 저희를 벌하실 겁니다. 준비는 되어 있으니 저희를 죽여 주십시오.”
그들 역시 자신들이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