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신성 제국의 진정한 주인, 위대하신 3황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신성 제국에는 세 명의 황자가 태어났으나, 이제는 오로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황자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3황자였다.
얼마 전, 1황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식적으로 성황의 후계자는 3황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베이언 영지 내의 커다란 광장에서 황위의 계승식이 열리고 있었다. 기존의 관례대로 성궁에서 귀족들만이 참여하는 계승식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참관할 수 있도록 열린 행사였다.
그리고 그건 3황자의 지시였다.
당연하게도 3황자에 대한 여론이 더욱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3황자에 대해 좋은 시선만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전부 그분의 노림수일 겁니다.’
‘3황자 전하는 그 자리가 가진 의미를 놓치고 있습니다. 황족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어리숙한 소년인 줄만 알았던 3황자였다. 하지만 3황자는 누구보다 영리했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했다. 민심을 사로잡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알려진 1황자에 죽음 역시 너무도 뜬금 없었다.
1황자를 따르던 무리들이 직접 황자를 처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 설령 1황자가 정말 알려진 대로 흑마법사와 손을 잡으려 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황족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시기도 참 교묘한데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그런 반역자 무리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시는 이유는 뭐겠는가.’
1황자를 죽인 건 3황자일 것이고. 단지 3황자는 1황자를 따르던 무리들과 합의 후에 그들에게 덮어씌웠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1황자를 죽인 이들을 당장에 처형시키지 않고, 투옥 후에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 사건이 점차 잊혀져 갈 때쯤 그들은 풀려나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 것이고.
그들이 보기에, 3황자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3황자가 원하는 신성 제국을 반대하고 있었다.
* * *
3황자의 등장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엄숙한 자리였다.
각지의 고위 귀족들부터 신성 제국의 황족들, 그리고 주변 왕국과 발칸의 황족까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대단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참관하는 민간인들은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것만이 허락되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모두가 3황자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신성 제국의 황자가 아닌, 성황으로서 해야 할 행동들은 훨씬 더 무거움을 알고 있다. 황자로서 많이 부족했고, 성황으로서도 부족할 테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 나가도록 하겠다.”
짧게 연설을 마친 3황자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인간들에게 닥쳤던 위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3황자는 황족이면서도 대악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몸소 나섰다. 그 현장에 있었고, 인류의 멸망을 막아낸 장본인이었다.
“나 혼자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3황자를 도와준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 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제대로 된 추모식도 열리지 않았던 게 조금 의아했었으나, 3황자는 이 자리를 빌어 그들을 추모할 생각인 듯 보였다.
“힐데스하임뿐만 아니라 각지의 영웅들이 나서 주었고, 우리는 결코 그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3황자의 말대로 목숨을 잃었던 건 신성 제국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성 제국에서 열리는 추모식이라면, 신성 제국의 사람들만을 위로하는 것이 관례였다.
설마 3황자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타국의 영웅들까지 기리기 위해서.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에서, 그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그의 깊은 속내를 깨달은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성군이 될 분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여 잠시 그들을 위로했다.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을 고위 귀족, 왕족들이 한 데 모여 이러고 있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품이 넘치는 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주변 이들이 그들에게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바로 베이언의 기사들이었다. 귀족 자제 출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다지 높은 신분을 지닌 이들은 아니었다.
“……그러게 오지 말자고 했잖아.”
“3황자 전하께서 꼭 참석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빠져?”
황궁 소속의 성기사들은 베이언의 기사들과는 달리 기품이 철철 흘러 넘치는 이들이었다. 반면 베이언의 기사들은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든 채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될 상황을 예상하기는 했었다. 그런데도 3황자가 엄포를 놓은 탓에 빠질 수가 없었다.
“숭고한 희생양이 된 이들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싸워준 이들에게. 모두가 고마워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3황자가 베이언의 기사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
무언가 이상한 것을 직감했다. 그런 이들에게 3황자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무 것도 없던 나를, 순전히 기사가 되어 큰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와주었고. 마물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용맹히 싸웠던, 베이언 기사단이다.”
3황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3황자가 그들을 포장해 준 덕일까. 여전히 시선이 곱지만은 않으면서도, 그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베이언의 기사들은 괜히 우쭐거리는 심정이 되어 고개를 조금 더 높게 들었다.
황자 전하께서 자신들을 언급해 주다니. 적잖이 감동을 받았고. 그들이 우쭐거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3황자가 자신들을 그만큼 대단하게 여겨주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젠장.”
베이언 기사단 내에서도, 누구보다 기품이 없는 자. 이 자리에 와서 가장 많은 눈칫밥을 먹어야만 했던, 용병 출신의 마르틴은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눈물이 흘러나왔다.
“기사가 뭐라고.”
그는 기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 * *
“……기사가 뭐라고!”
자리가 파한 후, 베이언 기사단원들이 주점에 가서 술을 진탕 마셨다. 달아 오른 얼굴의 마르틴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용병 노릇할 땐 말이야. 기사 놈들 무진장 욕하고 다녔거든. 제깟 놈들이 뭐기에 그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지. 뭐하러 그렇게 폼이나 잡고 다니는지.”
“푸하하하. 취했네, 취했어.”
다소 호탕한 성격의 마르틴이었지만, 그는 용병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 때의 자신이 부끄럽거나, 혹은 동료 기사들이 자신을 우습게 볼까봐였다.
하지만 만취한 마르틴은 그런 것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근데 기사가 되니까 폼 잡고 싶어지는 거 있지?”
그렇게 말하며 마르틴이 제복의 깃을 빳빳하게 세웠다.
“하하, 그래. 자네가 기사단 문장을 하루에도 열 번씩 닦는 게 그런 이유였구만.”
“왜 아니겠어. 3황자 전하께서 선사해 주신 건데. 아까 그놈들 봤냐고. 우리 대놓고 무시하는 듯하더니, 3황자 전하께서 우리 챙겨 주니까 한마디도 못 하는 거.”
자신보다 한참이나 지위 높은 귀족을 함부로 얘기하는 건 다소 위험한 행동이었다. 기사로서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틴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고, 다른 베이언의 기사들도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원래 마르틴이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르틴이 한 말이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까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에 취해 있는 탓이기도 했다.
“여기들 있었구만.”
그렇게 다소 방탕하게 있던 이들이, 누군가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예의를 갖추었다.
“야, 야.”
그리고 술에 떡이 된 채로 누워 있는 마르틴을 동료 기사 한 명이 툭툭 건드렸다.
“아, 왜애. 좀 냅둬. 오늘은 그냥 끌리는 대로 살래.”
“이야. 생긴 건 완전 주당인데 혼자 저렇게 취했단 말이야?”
다름 아닌 3황자였다. 그는 행사의 뒤풀이까지 모두 마치고 이곳에 들른 듯했다. 역시나, 늘 뒷전이었던 베이언의 기사들을 챙겨주는 건 3황자밖에 없었다.
“취하긴 누가 취했다고 그……?”
그리고 그 말에 발작하듯 일어난 마르틴 역시 3황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귀족들에 대해 다소 무례하게 말했던 마르틴이었지만, 그의 무례함은 부당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베이언의 기사들이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멸시를 당했으니. 뒤에서 욕이라도 하던 거였다.
하지만 3황자는 달랐다. 그는 황족이면서도 베이언의 기사들에게는 은인 같은 존재였다. 특히나 마르틴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저, 전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 아, 아니. 그냥 죽여 주시옵소서!”
만취한 마르틴이 정신을 번쩍 차린 채로 바닥에 드러눕듯 몸을 깔았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3황자가 갑작스레 정색했다.
“뭐 하는 거야. 일어나.”
3황자는 그런 마르틴의 행동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 때는 웃으며 넘기면서 말이다.
늘 그런 자였다, 3황자는. 그렇게 뜻깊은 사람이었다. 베이언의 기사들은 3황자를 오래 보아 온 만큼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3황자가 위선의 가면을 쓴 사람이라고. 그가 어수룩한 척, 능력 없는 척했던 건 전부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연기였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고. 너무 어렵게 대하지도 말고.”
“옙. 아, 알겠습니다.”
3황자의 반응에 다급히 일어난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 따라줘.”
그리고 3황자가 의자를 하나 대충 옮겨서 테이블에 앉았다. 베이언의 기사들처럼, 3황자 역시 왠지 모르게 오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니. 이제는 3황자가 아니었다. 오늘부로 신성 제국의 성황이었고.
베이언의 기사들은 사석에서 성황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 성황 폐하께서는 어떤 술을 좋아하시려나…….”
“폭탄주 하나 말아줘. 거하게 취해 봐야겠으니까.”
“이야. 성황 폐하십니다!”
베이언의 기사들은 기사답지 않다고 많은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시선들에 늘 주눅이 들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모시는 데미안 역시 황족답지 않은 이라는 시선을 받아 왔다. 이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이 보기에 데미안은 전혀 주눅 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아까 챙겨줬던 거겠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폭탄주를 시원하게 말아주는 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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