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신성 제국의 성황이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특히나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그리고 그건 비단 나를 무시하던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챈슬러야 이전에도 성황이 곁에 있었던 적이 있으니 나름 쉽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트루드는 이전보다 훨씬 나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트루드.”
참다못한 나는 그녀를 따로 불러들였다.
베이언의 기사들은 정식으로 황궁 기사단 소속이 되었으며, 트루드는 그들을 이끄는 부단장이었다.
높은 위치가 주는 부담감에 대해선 지금의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예, 폐하.”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달갑지가 않았다.
내가 성황이 되었다고 한들, 나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트루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예전처럼 대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파우스트 경이 그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예?”
트루드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현자가 나를 도우려다 그렇게 된 게 맞잖아. 내가 너라도 그런 생각이 들 거야. 내가 현자를 말렸으면…….”
“그런 말씀 마십시오.”
트루드가 내 말을 잘라냈다.
나도 알고 있다. 트루드는 그 일로 나를 원망하지 않다는 걸. 그녀는 혹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내 앞에선 슬픈 척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몰래 뒤에서 울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 비록 이번 생에서 아버지를 잃었을 땐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전생에선 나 역시 아버지다운 아버지를 떠나보내야만 했었으니까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서려던 걸 말리셨던 게 폐하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선 자신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고 계셨죠.”
“그럼, 신이 원망스럽진 않고?”
트루드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전이었다면 잔뜩 놀란 반응을 보여줬겠지만 지금은 비교적 덤덤해 보였다. 성국민들의 기준으로 신에 대한 모독을, 이미 내가 수 차례 행해온 탓이었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그가 우리를 도와주는 대가로 현자의 목숨을 앗아가야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트루드는 확실히 바뀌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힐데스하임을 직접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신이 내게 하는 말을 그 자리에 모두가 들었다. 곧 성력에 대한 비밀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신에 대한 시선도 바뀌고 있었다. 그동안 신을 대하는 인간들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모두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신께서도 그것이 최선이셨겠지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신께서도 인간들의 피해가 최소한이 되길 바라시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폐하를 저희들에게 내려 주신 거겠지요.”
“나도 똑같아.”
“……예?”
“뭐가 맞는지 확신이 없고, 밤새 고민하고. 그러다 틀리기도 하고. 평범한 인간이지. 성자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나를 바라보는 트루드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반복해서 들으면 그녀 역시 조금은 생각이 바뀔 테니까.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신성 제국 내의 올바르지 못한 관행들을 처음 부정할 때만 해도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현자 정도만이 조용히 들어주었을 뿐이지.
하지만 결국 내가 그토록 외치고 다녔던 것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내 말이 항상 옳은 것 또한 아니었다. 신은 분명히 이 세계에서 인간들을 도와주는 존재였으며, 인간 또한 신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데미안 힐데스하임이야.”
내가 최대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클레이디크 중립 지역으로 떠나기 전, 현자의 옆에 서 있던 불만스러운 트루드. 그때의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게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트루드가 실소를 지었다. 기사로서 늘 엄격하게만 살아오던 트루드였지만, 웃는 모습은 분명히 여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확실히 그녀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게 해 주는 데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 * *
내가 사적인 인연들을 챙기는 중에도 국가의 중대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이젠 정말로 성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특히나 마물의 침공으로 인해 불안정한 국세를 안정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꼭 필요로 했던 것. 성국 전반적으로 의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을 설치했다. 이
전에 내게 가르침을 받았던 의원들은 그동안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그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는 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혹여나 궁금한 게 생기면 내게 직접 물어볼 수 있도록 했다.
의원의 수가 확연히 늘어날 것이 분명해졌기에 그 의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치료소 또한 곳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신성력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전파하고, 맹목적인 믿음에서 탈피하는 것까지.
결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변화가 차츰 일어나고 있었고. 비로소 사람들은 신성력에 의한 치료가 무조건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믿기 시작했다.
“……바쁘네.”
그 덕에, 베이언에 가장 먼저 세워졌던 치료소는, 수많은 방문객들로 발을 디디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서, 성황 폐하!”
“성황 폐하를 뵙습니다!”
단지 치료를 받으러 왔던 이들까지도 나를 보고는 예를 갖추었다. 나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치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성국 내에서 사실상 가장 뛰어난 의료 체계가 갖추어진 곳인 만큼 나름 실력 있는 의원들이 체계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현대 의료 기기의 모습과 닮은 의료 기기들도 찾아볼 수 있었고.
“서, 성황 폐하?”
“왜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그래?”
나는 의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면서도,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의원을 붙잡았다. 칼로스였다.
“그, 그게…….”
“제발 그냥 일상적으로 좀 대해.”
칼로스 역시 트루드와 반응이 다를 게 없었다.
“아,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젠 혼자서 작은 수술 정도는 쉽게 하는 것인지, 피 묻은 장갑을 벗어놓은 칼로스가 내게 다가왔다.
“혹시 뭐 어려운 건 없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늘 걱정이 가득합니다. 정말로 혼자서 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진료를 보다 보면 정말로 제가 모르는 증상을 갖고 오는 환자들도 있으니……. 그런데 또 저에 대한 헛소문이 퍼지고 있다 보니 솔직히 부담이 조금 됩니다.”
“당연한 거야.”
의료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칼로스에게 동조해 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인턴 첫날, 부담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다 큰 사고를 치고 시무룩해져 있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그에 비하면 칼로스는 아주 양반이었다. 그는 늘 정말로 신중하게 고민하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명의 의시가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칼로스 역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저는 단지 성황 폐하께 특혜를 받은 것뿐인데…….”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지.”
“예?”
“네가 아무런 이유 없이 특혜를 받아서 그렇게 될 수 있던 게 아니야. 너는 누구보다 뛰어난 의원이 될 자질이 있었어.”
유전이라는 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적어도 칼로스는 뛰어난 의원이라 추정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고. 스스로도 의원이 되어야만 한다는 열의를 지녔다.
“혹시 말이야. 아직도 의술은 신성력에 밀린다고 생각해?”
칼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해 뒀지만, 여전히 칼로스에게 확신이 생기지 않은 듯 보였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제가 경험이 부족하고 생각이 짧은 탓에, 아직 폐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칼로스는 무언가 할 말이 있으면서도 망설이고 있는 눈치였다.
“말해.”
“……예?”
“하고 싶은 말 있잖아.”
“신성력은 결국 환자의 생명력을 당겨 사용할 뿐이고, 그에 반해 의술이 가진 불이익은 거의 없다……는 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저한테도 중요할까 싶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야.”
“제 욕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제가 맡은 모든 환자를 살리고 싶습니다. 의술로는 불가능하지만, 신성력으론 경지가 높으면 가능한 일이니……. 성황 폐하 정도 되는 실력을 제가 지니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배부른 소리 하네.”
잘 짜인 교육체계 아래에서 현대 의학을 배웠다. 대학 과정 6년, 인턴 1년, 레지 2년. 그리고 이후로도 대학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논문과 함께 살았다.
물론 그런 기회를 접할 수 없는 칼로스의 입장에선 많이 아쉬울 테지만. 내가 오로지 재능으로만 사람을 살린다고 여기는 칼로스의 생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모든 사람을 살린다는 거. 그건 나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거든. 너도 의원 노릇 십몇 년쯤 하다 보면 깨닫게 될 거야.”
이 말이 칼로스에게는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얘기라면 결코 흘려듣지 않는 칼로스니까.
“그래도 마음가짐은 좋아.”
불가능한 일이지만 원래 목표는 크면 클수록 좋지 않은가. 나 역시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칼로스처럼 방대한 꿈을 꿨었다.
그리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건 내가 더욱 나은 의사가 되도록 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었다.
칼로스를 보면 꼭 예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더 챙겨줬던 걸지도 몰랐다.
“잘들 살고 있으려나.”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이 세계에서 벌써 2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도. 아직 전생이 종종 그립기는 했다.
특히나 칼로스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자, 인턴 시절의 나를 괴롭히던 양반이 떠올랐다.
“이젠 돌아가셨겠지.”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잔뜩 혼내다가도, 기죽은 내 모습을 보면서 챙겨줬던, 츤데레 같은 교수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쇠하여 병상 신세를 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환자를 위해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스스로의 건강을 놓쳤기 때문이었을 거다.
“쉬엄쉬엄 좀 해. 이건 명령이야.”
나는 괜히 칼로스를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그 교수님뿐만 아니라 나 역시 같은 신세가 되어 여기에 온 것이니까. 과거의 나를 닮은 칼로스 역시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