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95)
제195화
“……폐하!”
시간이 지나가면서, 모두가 성숙해졌다. 잘못된 사상들이 바로잡히고 쓸데없는 가식들은 사라졌다.
칼로스 역시도, 의술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부담 없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여전히 트루드는 나를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기사라는 족속들의 특징이니 나 역시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기로 했다.
“심장 질환 환자에게 적합한 뇌사자를 찾았습니다.”
칼로스가 때마침 업무를 마친 나를 찾아왔다.
얼마 전, 칼로스는 심장 질환으로 의심되는 환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예전 젠스위트 국왕의 아들이 보였던 것과 비슷한 증세였기에 칼로스 역시 정확한 진단을 내린 상태였다.
칼로스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칼로스는 기억력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배움을 얻은 경험들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타입이었다.
‘혈액형이 맞는 뇌사자를 찾아야 합니까?’
그에 걸맞게 예전의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칼로스의 말대로, 환자에게는 심장 이식이 필요해 보였기에, 그에 맞는 심장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병자의 나이대에 맞는 뇌사자. 서로의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칼로스는 고위 의원의 직권을 이용해 뇌사자를 수소문했고.
“어디 보자.”
그렇게 찾아낸 뇌사자는 성기사였다.
“부단 백작의 밑에 있는 성기사로서, 3성의 성력을 지닌 기사라 합니다. 백작령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중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뇌사에 빠졌다고 합니다.”
칼로스는 이제 내가 묻지 않아도 먼저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꺼내놓았다.
“……흠.”
고작해야 이십 대 중반쯤이나 되었을 법한 성기사였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정은?”
내가 칼로스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물었다. 칼로스 역시 저쪽의 눈치를 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8년 전에 평민을 만나 혼인하고 슬하에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다 합니다.”
역시였다. 나는 저만치서 울고 있는 한 여인과, 아이 둘 쪽을 향해 슬쩍 고갯짓했다. 그러자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평민인 자신과 결혼한 것에 신이 노했다느니, 넘볼 수 없는 분을 넘본 자신의 죄가 남편에게 씌인 것이라느니. 내게 달려들어 울며 불며 죄를 고하는 여인을, 다른 성기사들이 떼어내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사상은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겉으론 바뀐 것처럼 보일지언정, 판단력이 흐려질 때면 여전히 사람들은 과거부터 주입받아 온 본성이 깨어나기 마련이었다. 지금처럼.
“좋은 사람이었나 보네.”
나는 지금 그런 그녀의 사상보다, 그가 그만큼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남편이었다는 것에서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전생의 내가 죽었을 때 내 가족들은 저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겠지. 나는 가정에서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화살이 꿰뚫고 지나간 것처럼 양심이 찔렸다.
나는 뇌사자의 혈액을 추출하고, 심장 질환 환자의 혈액과 섞어보았다.
칼로스가 이미 확인한 결과지만, 그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생명이 달린 일이기에 두 번, 세 번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칼로스의 말대로 동일한 혈액형이었다. 혈액의 응고 반응이 없는 이상 심장 이식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현대 의학으로도 소생의 여지가 없는 뇌사자, 그가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를 통해 죽게 될 한 명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음에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의사는 늘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울고 있는 여인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성기사로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그것보다 쉽지 않은 건 자신의 힘듦을 감추는 일이거든.”
난 의사로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고, 감춘다고 감췄지만 그게 나의 가정에서 불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 성기사와는 달리.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다. 힐데스하임께서도 그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거다.”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들의 오열을 모두가 침울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죽고 나서는 어떻게 되는가.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가.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때때로 하얀 거짓말이 필요한 법이다. 그게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
나는 성기사들에게 가족들을 부축해 나가게 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
정말로. 의사라는 직업이 편한 직업은 아니었다. 육체적으로 시달리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지금 같은 감정을 집어치우고 이성적으로 수술을 진행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힘들었다.
“잘 봐둬, 칼로스. 다음번엔 네가 혼자 할 수 있게, 아니 내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만 이어질 수 있는 거니까.”
안 그래도 의학 서적을 편찬 중이기는 했다. 입에서 입으로, 의술이 퍼져나가는 건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방대한 양을 글자로만 적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며, 수술 과정을 직접 보는 것과는 또 차원이 달랐다.
“……알겠습니다.”
이 세계의 의학이 현대만큼은 되지 않더라도 터무니없이 사람이 죽는 일만큼은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 * *
“……미안해요.”
정하늘이라는 의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정하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정하늘을 대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종종 나올 정도였다.
사실, 정하늘이 세상을 뜬 후 오히려 그의 선행들이 재조명되었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정말로…… 미안해요.”
그 사실들은, 가족마저도 몰랐던 것들이 대다수였다.
생전 정하늘의 아내였던 여인은 이제 주름살이 잔뜩 생긴 노인이 되었지만, 그를 잊기는커녕 그에 대한 기억들이 뚜렷해져만 갔다.
그녀는 정하늘의 묘소 앞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25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었다. 그의 기일 때마다, 정하늘의 아내와 자식들은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그런 줄도 몰랐다고요. 당신 월급이 적은 이유가 그런 것일 줄은…….”
그녀는 정하늘이라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의사라는 배경 때문에 결혼한 게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하늘의 월급이 자신의 생각보다 적었다. 적어도 가족들이 먹고살기엔 충분한 돈이었음에도 정하늘을 늘 닦달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사지. 왜 월급을 몰래 삥땅쳐요?! 내가 당신 돈 못 쓰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정하늘은 한사코 부정했지만. 그는 정말이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티가 났다.
“그 돈으로 당신의 환자들을 살리고 있었던 줄은…….”
동료 의사들조차 몰랐던 사실. 정하늘은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월급을 털어서라도 도와주었던 것이다.
정하늘이 죽고 나서,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털어놓았던 진실이었다.
“이러면 내가 뭐가 되냐고요. 왜 당신 혼자만 항상 착한 사람이고, 난 늘 나쁜 사람이냐고요…….”
정하늘과 알게 모르게 불편한 기류가 흘렀던 것은, 그 부분 외에도 정하늘이 가정에 쓰는 시간이 적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정하늘이 병원에서 그토록 고생하면서 보내는 시간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그에게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거다. 애초에 그녀가 정하늘과 결혼하게 되었던 건 그런 그의 선량한 부분 때문이었으니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하늘은 거짓말을 해 왔다. 친구 만나서 한 잔 했다며. 병원에서 회식이 잡혔다며.
아마도,
“그러면 제가 당신을 덜 걱정할까봐 그랬던 거겠죠.”
그는 지나치게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정하늘이 의사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힘듦을 감추지 못했을 때. 그때 그녀가 자신의 일처럼 걱정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정하늘은 절대로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을 원망도 많이 했어요. 당신이 떠난 후로 정말 힘들었으니까.”
정하늘은 앞선 이유 때문에 뛰어난 의사치고 많은 월급을 가정에 제공하지 못했고, 모은 돈 또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정하늘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환자들이 정하늘의 가족들에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그녀가 사양했음에도, 그들은 한사코 필사적이었다.
정하늘이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병원에서 누워있다 보면 참 심란하거든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심정…… 정말 그건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정 교수님이 시간 날 때마다 옆에 와서 종종 수다를 떨어 주셨어요.’
그들은 아직까지도 정하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참 큰 힘이 되는 게, 의사 선생님 옆에서 태연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다 보면, 어? 나 살 수도 있는 건가? 하는 희망이 생기거든요. 근데 그때 정 교수님하고 얘기하다 보면, 교수님은 가족들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들에게서, 정하늘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가족 얘기만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그러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면서 갑자기 우울해지고.’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정하늘을 원망했던 가족들은 오히려 그에게 죄책감을 지니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장정이 된 그의 자식들은, 그에게 칭얼댔던 유소년기를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이 좋으면 아예 병원에서 살지? 집은 뭐하러 들어와?’
‘아빠. 졸업식 때 와주면 안 돼? 애들이 나 놀린단 말이야. 나만 아빠 안 온다고.’
대체 왜 그랬을까. 그땐 너무도 어렸다.
울고 있는 가족들을, 25년 전의 동료 의사들이 다독여주었다.
“그놈, 좋은 데 갔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그놈만큼 착한 사람 없다는 거.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정하늘이라는 존재를 허투루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 역시 슬픔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차마 힘든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대부분 의사직을 은퇴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정하늘 그놈…… 계속 살았으면 훨씬 위대한 놈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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