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99)
제199화
챈슬러를 본 전 1황비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왕국의 정예 기사가 수십이 몰려와도 승패를 가늠할 수 없었으니, 지금 당장 그를 힘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고.
그저 그를 잘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 챈슬러가 왔다고?”
황비에게서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황족들 또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 역시 1황비처럼 성황이 그를 보낸 것으로 착각했으나 1황비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성황의 곁을 떠났다고 하더라고. 그냥 혼자서 온 것 같아.”
“그냥 하는 말 아닙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고요? 그러다가 우리 목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황비의 말에 모두가 불신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건 챈슬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행색이 완전 거지꼴이었다니까? 수도에만 가도 용병들도 그렇게 헤진 옷은 안 입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버림받은 게 분명해.”
그런 챈슬러의 모습을 보면서, 황비는 챈슬러가 성황에게 토사구팽 당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전대 성황에게 당했던 것처럼.
“……정말로요?”
“그렇다니까. 내가 왜 거짓말을 치겠어?”
황비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모두가 눈에 불을 켰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챈슬러 경이 여기 온 건 우리와 한 편이 되겠단 거 아닙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라니까.”
챈슬러가 성황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을 게 분명했고. 아무리 꼬장꼬장한 챈슬러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동정심을 표출하며 잘 꼬드긴다면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챈슬러가 한 편이 된다면 그 효용가치는 무궁무진했다.
그는 신성 제국 내에서도 최강의 성기사였고, 그와 버금가는 실력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이들을 위해 검을 든다면, 무시하는 왕국은 물론이요, 신성 제국까지 되찾을 수도 있었다.
당장엔 어렵겠지만, 그를 통해 힘을 모은다면 말이다.
“잘 생각해 봐. 챈슬러 경에게는 성황에게 버림받은 게 트라우마 같은 일일 거라고. 전대 성황께 이미 같은 일을 당했었고,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같잖은 위치에 있던 3황자에게 붙을 정도였는데. 결국 완전히 믿던 사람에게 또 다시 같은 일을 당한 거잖아?”
모두가 황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이건 정말로…… 신께서 주신 기회가 아닐지.”
“아마 성기사 중에는 챈슬러 경을 따르려는 자들이 많이 있겠죠. 나중에 성국을 탈환할 때 그들이 우리 편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얼른 가 봅시다.”
그제서야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챈슬러가 마음을 돌리기 전에 그를 만나서 확실히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아이고, 이게 무슨 꼴입니까. 챈슬러 경.”
그리고 챈슬러의 모습은 황비가 말한 대로였다.
“얼마만이에요, 이게. 그래도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까 참 반갑네. 잘 지냈죠?”
격하게 환호하는 모습에, 챈슬러가 미소를 지었다. 워낙 표정 변화도 없는 사람이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게 아마도 정말로 이들을 반가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상심이 참 크겠어요. 얼굴이 진짜 많이 상했네.”
그리고 확신을 얻은 황비가 슬쩍 본론을 꺼내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말 해봐요.”
“……예? 무슨 일 말입니까?”
챈슬러가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황비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를 살살 달랬다.
“걱정하지 말고요. 어차피 같은 처지 아니에요?”
“……같은 처지는 무슨…….”
“성황도 참 너무하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다고 가족들이고, 믿고 따르던 기사고, 그렇게 막 내칠 수가 있냐고요.”
그러자 챈슬러가 아무런 말도 없이 황비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미소가 사라진 채였다. 아무래도 챈슬러에게는 성황이 좋지 않은 기억일 수밖에 없겠지.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요. 우리도 이렇게 숨어 살잖아요? 성황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가벼워서는 안 될 텐데. 저렇게 내버려 뒀다간 그간 쌓아 온 성국의 역사 자체가 무너져 버릴 거예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일단은, 잘 왔어요. 여기서 쭉 쉬면서 같이 의논해 봐요. 우리가 같이 힘을 합치면 성국의 주인이 올바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하.”
그 말까지 들은 챈슬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그리곤 챈슬러가 폭소를 터뜨렸다. 과거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품격이 없는 챈슬러의 모습이었다.
“재밌습니다. 제가 성황 폐하의 곁을 떠났다는 것이, 황비께는 버림받았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나 봅니다.”
그 말을 들은 황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챈슬러가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황비가 오해를 한 모양인 듯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아니에요.”
혼란에 빠진 황비가 손을 휘저으며 아무 말이나 내놓았다. 그런 황비를 어느새 딱딱한 얼굴로 노려보던 챈슬러가 입을 열었다.
“황비께서 그다지 좋으신 분이 아니라는 건 성황 폐하가 황자이던 시절부터 모시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대 성황을 모실 때부터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튼 현 성황 폐하를 떠나게 된 건 단지 제 자의였습니다. 전대 성황 폐하의 곁을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우죠.”
“자, 자의로 떠났다면 어쨌든 성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심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건 없잖아요. 어차피 어느 정도는 같은 맥락인데.”
“……솔직히 사람이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챈슬러의 심기를 더욱 건드린 것인지 그의 목소리가 한층 묵직해졌다.
“그래도, 만나 뵈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사람은 조금씩이나마 변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여전하시군요, 황비께서는.”
황비가 악독 영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 일에 대한 책임만 물으려고 했었다. 과거의 일에 대한 죄를 묻는 건, 성황 폐하께서도 그다지 바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채앵.
챈슬러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너무 훌륭한 분이기에. 녹슬어가는 검인 제가 그 분의 곁에 있는 건 차마 어울리지 않기에. 떠났을 뿐입니다.”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그런 와중 이들이 계획을 들어보니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곳에서 나름대로 힘을 모으고 있었고, 언제가 됐든 성국의 황좌를 탈환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
성황 폐하께 위험이 될 만한 요소는 아예 싹을 잘라두는 게 맞았다.
과거의 챈슬러라면, 어쩌면 이들을 살려둘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는 어떤 면에선 훨씬 더 단호해졌다.
서걱.
챈슬러가 검을 그어 한 명도 살려두지 않고 목숨을 끊어버렸다.
지금의 챈슬러는 이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자.”
그리고 다른 기사 두 명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곤 챈슬러의 뒤를 따랐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애초에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는 일이 이들에게는 더욱 익숙하지 않았다.
무작정 발이 닿는 대로, 또 다른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 * *
「어떤가.」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하나의 영혼. 그에게 신이 물음을 건넸다.
「인간 중에 가장 현명하다던 그대가 예측하던 결말, 그대로인가?」
현자 파우스트. 그는 세상을 떠난 뒤로, 계속해서 영혼으로 이 세상에 머물고 있었다. 영혼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건 아직 미련이 있다는 뜻이다.
현자의 미련은 단지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니군요.’
현자가 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애초에 성황 폐하는 제가 예측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께서 성국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모든 일이 전부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현자가 바라보는 현장에는 챈슬러가 있었다.
‘하지만 챈슬러 경의 변화가 가장 흥미롭군요.’
성기사로서 다소 권위적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걸 끝으로 현자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그가 궁금했던 결말을 모두 보게 되었으니.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건가?」
신은, 현자에게 특별히 기회를 주었다.
현자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인, 그의 방대한 지식과 기억을 모두 보존한 채로 환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원하는 삶으로 환생할 수 있도록.
가장 현명한 인간이자, 신의 뜻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 데미안이 성황이 되도록 도운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저는…….’
현자는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성황께서 살았던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늘 궁금했다. 대체 어떤 곳에서 살아왔는지.
‘성황께서 어떤 분이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기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현자 역시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현자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지식은 이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곳이었고, 그곳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에서 더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성황은 늘 현자에게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는 존재였으니까.
「원하는 대로 해 주겠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찾는 건 스스로 해결해 보도록. 너라면 어렵지 않겠지.」
신은 현자의 부탁에 응했다. 신성 제국의 모습을 지켜보던 현자는 사라졌고.
“응애애!”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 * *
“응애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꼭 스스로 울음을 억제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얘가 우리 아이구나.”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참 의젓하네요, 애가.”
간호사가 아이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울음을 참으려는 모습에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뭐 문제 있고 그런 건 아니겠죠?”
“예, 걱정 마세요. 몸무게가 조금 적은 편이긴 한데 건강엔 전혀 문제없어요.”
아이에게 건강 상 문제가 없다는 건 그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직업이 의사인 데다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보기까지 했으니.
“휴우.”
출산이 워낙 길어진 탓에 한숨도 자지 못한 아버지는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쐤다.
“고생 많았다, 야.”
그리고 아버지 되는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은 무슨. 와이프가 다 했지.”
“교수님께서 참 기뻐하시겠다.”
“교수님? 정 교수님?”
“그래, 인마.”
“그분은 나 기억도 못 할걸?”
“하긴 그렇겠지.”
“자식이. 말이라도 아니라고 해 주면 덧나냐?”
“지가 부정해놓고 뭐래. 아무튼…… 너나 나나 그 분 덕에 의사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참 고맙지.”
“그러게나 말이다.”
그들은 과거에 정하늘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었고, 지금은 어엿한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했다.
“벌써 이십 년이 넘었구나.”
정하늘의 환자로 있으면서,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의사의 꿈을 키웠으니.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