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어후.
짧은 탄식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본 아주 먼 과거의 기억.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대한민국에서의 나, 정하늘.
당시 내 손으로 살렸던 환자의 수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 중에서는 모든 의사들이 포기했던 가망 없는 환자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신의 손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내가 이곳에서는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경을 오가는 사람은커녕, 얕게 베인 상처조차도 치유하지 못하겠군.’
태어난 이후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가, 1년만에 나타나서 한 말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
저 말을 들은 지도 대충 반 년 정도가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만큼 내 자존심에는 스크래치가 가는 말이었다.
신성력? 그딴 거 없어도 나는 얼마든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의학 지식으로 말이다.
에휴, 그럼 뭐 해. 여기선 쓸 수도 없는데.
성황의 아들이 의술이라니, 그건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간 이단 취급이나 받을 것이 분명했다. 장비나 약물이 불충분하기도 했고.
그래, 뭐 어쩌겠냐.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인데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렇게 얼굴 한 번 비치더니 그런 말만 뚝 내놓고 사라지는 게 참…….
그러다 문득 전생의 내가 떠올라서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이 좋으면 아예 병원에서 살지? 집은 뭐 하러 들어와?’
‘아빠. 졸업식 때 와주면 안 돼? 애들이 나 놀린단 말이야. 나만 아빠 안 온다고.’
‘그렇게 일만 하지 말고 가족도 좀 챙겨라 인마. 너 그러다 나중에 가서 후회한다.’
그래. 나도 나쁜 아버지였고, 그래서 벌을 받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어머, 황자님이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봐.”
“그러게. 웃으시는 거 오랜만에 본다.”
“꺄악. 어쩜 이렇게 천사 같으실까.”
그 웃음이 시녀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쨌거나 2성의 신성력을 부여받은 뒤로 아버지에게는 완전히 버림받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단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인생 짬이 얼만데 부모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었다. 적어도 성황의 아들인 만큼 최소한의 대우는 받을 수 있을 것이며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더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전생에서는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갔으니 이번 생에서는 좀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으읍. 으읏…….”
이 연약한 몸뚱아리는 예고도 없이 수시로 아파왔고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호흡 곤란, 온몸을 달구는 듯한 고열.
온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감각 속에서 나는 몸부림쳤다. 미련 없는 생이라 여겼지만 막상 죽을 지경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발버둥을 쳤다.
모든 힘을 쥐어 있는 힘껏 울음을 짜냈다.
“응애애애애!”
아기로 사는 것은 원래 이렇게 힘 든 걸까. 정말 차라리 확 죽어버렸으면 이런 끔찍한 고통도 끝이 날 텐데.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3황자 전하가 고열에 시달리신다. 어서 사제 불러와!”
“이번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계셔!”
“태어나실 적부터 체중이 적게 나가시더라니……!”
고비 때마다 나타난 사제들이 손에서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내 몸으로 들어오면서 고통이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것이 이 세계에서 사람을 살리는 신성력이라는 것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나는 그것이 단지 어린아이의 몸이라서, 혹은 체질적으로 원래 약한 몸이라서 이렇게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죄, 죄송합니다.”
“폐하께서 의심하지 않게 다음 달 쯤에나 다시 해. 약을 두 배를 넣어서라도 이번엔 확실히 해, 알겠어?”
세 번째 황자로 태어난 이상 나는 누군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나를 죽이려 했던 건 당연히 위로 있는 두 황자의 외가 쪽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눈을 부릅떠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개인적인 복수심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으며, 갓난아이를 죽이려는 비인륜적인 행동에 2차로 분노하게 되었다.
“3황자 전하.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이 어찌 이리도…….”
하지만 그런 나를 수시로 찾아와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다.
주름진 얼굴의 중년.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현자라고 불렀다.
“몸에 좋다는 약을 타 왔으니 쓰시더라도 부디 삼켜 주시옵소서.”
현자가 내민 약은 맛은 지독하게 썼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정신이 곧 꺼질 것만 같다가도 번쩍 들었고 몸에도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힘들어도 버티셔야 합니다. 저분들은 황자 전하를 끝없이 괴롭힐 테지만 버티셔야 합니다. 신께서 3황자 전하를 이 세상에 내리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요. 버티고 버티시면 마침내 빛을 보게 되실 겁니다.”
현자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는 현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 * *
1황자와 2황자 쪽의 암살 기도는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까지 계속되었다.
“3황자 전하. 오늘은 혹시 불편하신 데가…….”
“업써. 괜차나.”
아직은 말이 어눌하게 나가기는 하나, 온전히 내 의사와 생각을 말로 전할 수 있게 되자 저들로서도 그 짓거리를 계속하기엔 위험 부담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 덕분에 나는 잠시라도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새로운 몸으로 적응하는 준비 기간을 거칠 수 있었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어눌한 발음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짧은 혀를 열심히 굴리는 연습을 했으며,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전하.”
으으읍!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켜 스스로의 힘으로 걸음마를 떼어내기도 했다.
“전하! 잘하셨습니다! 전하께서 내딛은 발걸음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토록 빠른 속도라니…… 신께서는 정말 전하께 축복을 내리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우쭐해졌다가도 문득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고작 걸음마를 뗀 걸로, 말을 하게 된 걸로 기뻐하다니.
아무튼 그렇게 슬슬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갈 무렵.
“전하. 조금 이른 감은 없잖아 있으나 슬슬 전하께서 가진 힘을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 합니다.”
나를 쭉 챙겨주었던 현자가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겠노라며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신성력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신성력이라는 것은 몸을 치유시키는 데에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 신성력 덕분에 수도 없이 살아난 터라 부정할 수 없었고, 그런 만큼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황자로 태어난 이상 최대한 신성력의 경지를 끌어올려야 할 필요도 있었다. 이곳에서 힘이자 권력은 다름 아닌 성력이었으니까.
“가슴께에 자리 잡은 뭉치의 감각을 느끼셔야 합니다. 익숙하지 않으실 테지만 그 기운의 존재를 파악하고 움직이는 데 성공하신다면 이후엔 훨씬 수월해 지실 겁니다.”
현자의 말대로 가슴 어림에 무언가 답답한 듯한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아무리 움직여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잘 안대는데.”
그러자 현자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전하께서 워낙 성장 속도가 빠르신 탓에 제 욕심이 과했던 모양입니다. 보통은 일곱 살은 되어야 처음으로 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되지요. 그러니 안 되는 걸 너무 억지로 하려 하지는 마십시오.”
지금 내 나이가 두 살 남짓이니 시기적으로 너무 일러서 안 되는 걸 수도 있지만 지금 해 둔 노력이 분명 착실히 쌓여 나가고 있으리라 믿으며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갔다.
“되도 않는 짓 하지 말고 포기해.”
“그래 봤자 너는 2성이야. 아무리 아득바득 기어 봐야 밑바닥 신세겠지.”
그런 내 앞에 나타나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대는 1황자와 2황자.
놈들의 귀엽지도 않은 시비는 한 귀로 흘리고 계속해서 성력을 움직이려고 시도를 했으며, 덕분에 4살이라는 꽤 이른 시기에 첫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번쩍.
“돼따!”
새하얀 빛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가슴을 얽매이는 듯한 감각이 순식간에 상쾌함으로 뒤바뀌었다.
몸 안에서 간질이는 듯한 이질적인 기운, 신성력이 조금이나마 명확해졌다. 드디어 신성력의 제어에 대한 감을 잡은 듯한 기분이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기뻐하고 있을 때.
처음 보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잠들어 있던 두 개의 고리가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고리에 성력이 부여됩니다.] [「생기의 권능」이 깨어납니다.] [「재생의 권능」이 깨어납니다.]꽤 친절한 메시지 덕에 비로소 첫 번째 경지에 이르렀노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맞지? 현자가 말했던 거.”
현자에게도 신성력을 보여주자 현자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해내실 줄은 결코 몰랐는데…… 세 살의 나이에 성력을 다루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현자는 감탄의 시선을 내보이며 계속해서 나를 치켜세웠다.
“고리가 두 개라 신께서 포기하신 건가 했거늘…… 저만한 재능이라니.”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현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