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3)
제23화
“……환장하겠구만.”
이 세계의 의술. 딱히 고도화된 발전이 이루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정말 끔찍하리만치 기대 이하였다.
치료 과정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몰상식하게 이루어졌다. 기절한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지를 않나, 독 성분이 있는 식물을 약초라며 먹이려 하지 않나. 심지어는 망치로 환자의 머리를 내려치려고까지 했다.
“두통은 머리에 마귀가 들어온 것이니 외부적인 충격을 가해 그 안에 있는 놈을 부수는 것이…….”
“그러다 마귀보다 사람이 먼저 죽겠다. 그만해라.”
되도 않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건 근방의 어느 치료소를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깐 봤음에도 가히 충격적인 장면들.
이곳의 의술은 그 이름이 무색하도록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허나 무식하면 용감하다지.
“살리면 그만 아닙니까.”
불퉁스럽게 대꾸하는 이가 있었다.
사실 많은 의원들이 각자 할 말이 많은 듯 보였으나 내 위치 때문인지 참고 있었고 그러니 나 역시 제대로 된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벌할 생각은 없고, 어차피 내겐 그럴 힘도 없으니 자유로이 네 생각을 말해봐라.”
“말씀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발칸 제국에서는 이렇게 하여 사람을 살립니다. 힐데스하임에서는 성력으로 살리듯이. 이게 저희의 방식이란 말입니다.”
“도무지 존중할 수 없는 방식이군.”
“……꼭 발칸 제국을 무시하는 듯이 들립니다.”
“협박은 잘도 하는군. 허나 내가 무시하는 건 발칸 제국이 아니야. 너희들이지.”
노골적인 발언에 저들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갑작스레 나타난 타국의 황자가 훈수를 둬 대니 기분 나쁜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만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네가 보던 병자가 누구였지?”
“……저기 누워있는 남자입니다.”
“도축할 때나 쓰는 칼로 배를 열려던 남자군.”
이번에도 노골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의원의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장 누워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이틀간 누워있으면서 조금이나마 회복된 신성력을 몽땅 들이부었다.
무언가에 찔린 듯한 복부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고통스러워하던 남자의 표정 역시 급격하게 편안해졌다.
주변에서 작은 감탄사들이 들려왔다. 발칸 제국의 국민들이라 그런가 감탄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자중하는 듯 보였으나, 그 표정들까지도 감추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저게 성력이란 말인가.”
“사, 상처가 단번에 나았다. 힐데스하임의 허풍이라 생각했거늘…… 듣던 것보다 더하다니.”
“우리는 대체 무얼 해 왔던가. 정녕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이었단 말인가.”
밖으로 나오는 동안 뒤에서 그런 헛소리가 들려 왔지만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들이 하는 것은 의술이 아니며, 운 좋게 사람을 살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살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을 거다.
저들은 그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며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 넘기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예 저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의술에서 손을 뗀다면 더욱 잘 될 일이었다.
“트루드. 지금 신성력은 넉넉히 있어?”
“이틀간 사용하지 않아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방금 본 이들은 넉넉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트루드는 16살의 나이에도 현자를 닮아 눈치가 꽤나 빨랐다. 내가 원하는 바를 단번에 이해하고 찰떡같이 대답했다.
“부탁 좀 할게. 안에 내가 있으면 저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실 것 없이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계시면 제가 알아서 복귀하겠습니다.”
“아냐.”
내가 벌인 일 때문에 생긴 것을 트루드에게 떠맡겨놓고, 양심 없이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전부 치료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정말 고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나머지 환자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치료는 주 종목이 아니라 그런가, 한참 뒤에 나온 트루드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고생했다.”
* * *
3황자가 클레이디크의 민간 치료소를 들쑤셨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건 명백한 시비가 아닙니까! 우리 발칸 제국이 언제 힐데스하임의 신전을 무시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중립 지역에서 민감한 사항이었는데 3황자가 그 문제를 건드려 버렸다.
그 자리에 없던 의원들이 불같이 화를 냈으나 정작 3황자에게 망신을 당했던 이들은 별말이 없었다.
“뭐라고 좀 해보십쇼! 직접 당한 의원님들이 후작 각하께 말씀을 드려야 확실히 힘이 실릴 것 아닙니까!”
“……너는 힐데스하임 놈들이 신성력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을 얼마나 믿느냐.”
“갑자기 그건 왜요. 하나도 믿지 않소. 놈들은 성력에 대해 그렇게 떠들어 대면서도 막상 아픈 곳이 있으면 신전이 아니라 치료소를 찾지 않습니까.”
“그거야 평민들은 신전에서 치료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여 그런 것이겠지.”
“어쨌건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을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있잖소. 분명 되도 않는 허풍일 것이 분명하오. 물론 성력이니 뭐니 하는 걸로 상처가 낫는다고는 하지만, 성곽에 파견을 갔다 온 의원님들 말 못 들었소? 다들 신성력도 사실은 별 볼 일 없다지 않소.”
“네놈이 어제 함께 있었으면 그런 말은 못 할 게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답답해 죽겠네.”
허나 의원들은 3황자의 성력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의술이 성력의 우위에 있다는 신념이 금 가고 있는 것은 자신들 뿐이면 족하다.
클레이디크에 있는 발칸 제국민 전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의술은 결국 사장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3황자가 보인 행보에 대해서는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오랜만입니다, 부단장님.”
신성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사이에서는 또 다른 내용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한때 힐데스하임의 소속이었던 이들. 사제였거나, 성기사였거나, 혹은 성력이 없어 일반 기사였던 이들까지.
그런 이들이 클레이디크로 오게 된 경위는 대부분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누명을 쓴 이들도 있었고, 죄의 무게가 보이는 것보다 무겁게 측정되어 억울하게 오게 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특히나 자신을 유배 보낸 신성 제국에 반감을 갖고 있었고.
“그래.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이제 발칸 제국 소속이라면서?”
많은 이들이 발칸 제국 소속으로 국적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 이들이 챈슬러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어째서 그랬지? 신성 제국에서 태어난 것은 축복받은 일이며 특히나 성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고귀함이 어디 밥 먹여 준답니까?”
노골적인 말에 챈슬러가 흠칫하며 그 말을 한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 생각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10년입니다. 귀족 한 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쫓겨나고도 황궁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요. 저같이 고리 두 개뿐인 놈은 필요가 없다 이겁니다.”
“……무엄하다. 폐하께서는 분명 생각이 있으신…….”
“부단장님은 그럼 어찌하여 이곳까지 끌려오게 되셨습니까? 어찌하여 단장이 되지 못했습니까? 고리가 다섯 개이며, 황국에 대한 충성심도 가득하고 정의로움이라면 둘째라면 서러우실 분이.”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성황께서 3황자 전하를 호위하시라 명하셨기 때문이다. 내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신 게지.”
“구실을 갖춘 것에 불과하지요. 실은 폐하께서 부단장님을 버리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네 이놈!”
콰앙!
부단장의 검이 테이블을 절반으로 갈랐다. 양쪽으로 넘어지던 테이블이 파란빛에 휩싸여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그를 본 챈슬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마력을?”
“평생 두 개짜리 신성력 고리를 달고 살 바에야, 한 개짜리 마나 고리를 다는 게 백 배 낫지요. 마력은 노력 여하에 따라 고리의 개수가 충분히 늘어날 수 있으니.”
“아예 발칸 제국의 사람이 되었군.”
“수도에서 쫓겨난 순간부터 그러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챈슬러는 이제 분노보다는 당혹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사실 신성 제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십수 년 전부터 균열이 가고 있었으며, 3황자를 따라 수도를 떠날 때부터 더욱 커지고 있었다.
허나 신과 성력에 대한 믿음까지 박살 난 것은 아니었다.
[성자께서 당신을 어루만집니다.]며칠 전 보았던 신탁에서, 분명 3황자를 성자라고 했었다. 3황자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마침 이야기가 나와 드리는 말인데, 3황자 전하께서 치료소를 들러 으름장을 놓으셨다지요.”
“민감한 문제이나 그 행위 자체는 마땅한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성력만이 해낼 수 있으니.”
“성력은 방향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으나 의술은 그렇지 않지요. 인간이 직접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표본을 쌓아야 하다 보니 의원마다의 실력과 이론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어째 의술을 칭송하는 듯 보이는군. 나도 직접 보았는데 살리는 이의 수보다 죽이는 이의 수가 더 많았다. 실력이 뛰어난 이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지.”
“지금은 그렇지요. 허나 부단장님 역시 그를 보셨으면 생각이 달라지셨을 겁니다. 지금은 잠적을 감췄으나 손대는 이들마다 살려내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명맥이 이은 이가, 혹은 마땅한 실력을 갖춘 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법입니다.”
“얼토당토않은 막연한 희망이로군.”
“하하하. 있으나 마나 한 성력보다는 걸어볼 만한 희망이지요. 듣자 하니 3황자 전하께서도 고리가 두 개라고 하시던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의술보다도 효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한…….”
콰앙.
챈슬러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네놈들이 뭘 안다고.”
3황자의 고리가 두 개뿐이라는 건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었으나.
그렇게 치기엔 얼마 전 막대한 성력을 보였으며,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신탁이 성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허나 그 사실을 이 배반자들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똑똑히 봐 두어라. 너희들이 그토록 우습게 보는 3황자 전하께서 세상을 바꿀 것이니.”
그렇게 에둘러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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