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4)
제24화
다음 날,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트루드와 부단장은 기사단으로 갔습니다. 그곳의 기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련까지 하고 오려면 저녁은 돼야 할 듯합니다.”
클레이디크에도 성기사단은 있었다. 이곳을 통치하는 마테우스 후작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란다.
마찬가지로 신전 역시 존재했고.
“그럼 나도 신전 좀 가 봐야겠네.”
클레이디크로 온 이유가 마냥 쉬려고 그런 것은 아니니까.
황가의 눈에서 벗어나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입지를 쌓고, 클레이디크에만 있다는 의술을 확인할 계획이었다.
의술은 물 건너 간 것 같지만.
어쨌든 여기는 보는 눈이 많지 않으니 남몰래 의술을 사용해보기에도 훨씬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현자를 따라 신전으로 나갔다. 꽤 큰 건물에 비해 신전을 지키는 사제는 단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치료를 받으러 오는 이의 숫자조차 많지 않았다.
사제가 설명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첫째는 클레이디크에 존재하는 사제의 수 자체가 적다 보니 신전에서 치료를 받는 것은 극소수의 귀족들만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곳이 국경을 이루는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국의 중앙에 위치한 수도와는 달리, 클레이디크는 힐데스하임의 동쪽 끝에 위치했다.
마물과 몬스터, 그 외에도 수많은 이종족이 즐비한 루어스 평원.
힐데스하임은 그런 곳과 붙어 있다 보니 성곽 수비에 많은 병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제들은 거기서 발생하는 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러 나가고 있단다.
“바람직한 일이네.”
적어도 되도 않는 귀족들의 뒷바라지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야전 사제로 뛰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었다.
클레이디크로 와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을 수 있었다.
“성곽이라. 같이 좀 가보지.”
내 말에 신전을 지키던 사제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왜. 신전을 지키고 있어야 해서?”
“누가 올 것도 아니니 상관없습니다만…….”
“
왜. 괜찮으니까 말해봐.”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성곽에는 쉴 새 없이 위급 상황이 벌어져 황자 전하의 안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워낙 그러한 것이 일상이다 보니 성격 또한 거친 자들이 많습니다.”
좋게 해석하면 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고, 나쁘게 해석하면 굳이 가서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소리였다.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잘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말고.”
사제는 그 말을 듣고도 영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도 결국 내 명을 거역하지는 못하고 앞장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클레이디크의 성곽에는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밀집해 있었다.
신성 제국과 발칸 제국의 수가 각각 절반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비 영역 또한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오크 떼가 몰려오고 있다! 모두 진형을 갖춰라!”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성곽에 자리 잡은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히 들어찼다.
“힐데스하임 놈들! 저번처럼 뚫려서 괜히 우리의 도움을 받지나 말라고.”
“흥! 우리 사제들한테 치료를 구걸한 놈들이 말은 많지.”
이 묘한 자존심 싸움은 벌써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병사와 사제, 의원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으나 수시로 새로운 인원이 충당되었고, 덕분에 클레이디크의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곳이 뚫린다면 힐데스하임과 발칸 전역에 위험이 닥치게 되는 것이니 이들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했다.
“검을 들어라!”
“질 수 없지. 궁병들은 달려오는 놈들부터 노리고, 보병은 성벽에 달라붙은 놈들부터 확실히 처리해!”
날이 밝음과 동시에 이들의 일상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가운데를 기점으로 갈라선 양 제국의 병사들. 그들의 검에 각자 파란 마력의 기운과 하얀 성력의 기운이 맴돌았다.
이윽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수많은 오크들.
콰앙, 쾅, 쾅.
마력과 성력, 투창과 화살. 원거리에서 날아간 많은 공격들을 얻어맞고도 많은 수의 오크들이 잔존하고 있었다.
기어코 그 공격을 피해낸 오크 몇이 성벽을 넘고야 말았다.
“으아아아!”
검사들이 검을 뽑아 들어 달려들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이 퍼졌다. 국경에서 꽤 오랜 시간을 전투해 온 만큼 양쪽 모두 체계적인 전투 능력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체계는 단순히 전투 방식에만 구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친 이들은 뒤로 빠져 치료부터 받고, 검을 다룰 줄 아는 궁병은 1열로 전진해!”
계속 이어질 전투를 위해, 확실하게 병력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방식은 내게도 꽤나 효율적으로 보였다.
힐데스하임의 부상자는 사제에게, 발칸의 부상자는 의원에게 달라붙었다.
“끄으윽. 힘줄이 베인 것 같소. 어서 치료해주시오.”
발칸 제국의 신입 의원, 칼로스에게도 부상자 한 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칼로스는 변변찮은 평민이었다.
제 아버지 역시 클레이디크의 성곽에서 의원을 했으며 꽤나 이름을 알린 사람이라고는 하나, 어렸을 때 마물의 검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결코 전쟁에 나서는 일은 없으리라 수 차례 다짐했건만.
‘자, 잘한 선택일까.’
천성부터가 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곳에 나서게 된 것은 아비의 정의로운 성격을 빼닮은 것이 한몫했다.
며칠 전, 집안의 버려진 창고에서 아버지가 남겨 놓은 비밀 의술 서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결코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들아. 부디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게 해다오.’
책 사이에 남겨진 아버지의 유언장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은 평생 겁쟁이로만 살아왔던 칼로스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결국 수많은 고민 끝에 칼로스는 성곽의 의원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지대한 공을 세워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갖고 돌아가리라 결심하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지혈도 제대로 못 해? 피 새는 거 안 보여?”
허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지혈을 하는 그의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생전 처음 본 오크의 얼굴은 얼마나 흉측하던지.
그리고 죽고 죽이는 광경을 볼 때마다 평화로운 촌구석에서 살아온 그로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칼로스로구나. 네 아버지께 말은 많이 들었는데. 듣던 대로 용감한 놈이로군. 장하다.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게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도망을 치겠는가. 그건 정말 더없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다친 병사를 치유하고 있을 때.
“거기 신입! 이 멍청한 새끼야! 프로텍션 안에서 빠져나오지 말라니까!”
의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프로텍션 마법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치료하다 보니 어느새 그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가겠습…….”
그 말을 하던 칼로스에게 거대한 그늘이 드리웠다.
칼로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크가 던진 것으로 보인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대부분이 절망적인 감정이었다.
팔다리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칼로스는 멍하니 서서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젠장! 이 멍청한 새끼!”
병사들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도와줄 수도 없었다.
칼로스가 입술을 꾸욱 씹으며 두 눈을 감았다. 이제 그의 몸은 바위에 맞아 바스라질 것이 분명했다.
“…….”
헌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이란 원래 이렇게 허무한 것이던가. 마지막 가는 순간만큼은 편하게 보내주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괜찮나.”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로스가 당황하며 눈을 떴다.
사제복, 그것도 아주 고귀한 이들이나 입던 옷을 입은 이가 서 있었다.
그는 바위가 날아온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고, 그 손끝에는 새하얀 반원의 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그가 막아 준 것이었다.
‘어째서 힐데스하임의 사제가….’
분명 저쪽의 사제들도 제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알고 칼로스를 구해준 것일까.
그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때가 아니었다.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얼타지 말고 돌아가.”
칼로스가 얼른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주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3, 3황자 전하가 아닌가?”
“어째서 전하께서 이 위험한 곳에 오신 게야. 솔직히 말해서 별 도움도 되지 않으실 텐데.”
“……그런데 방금 홀리 프로텍션을 사용하신 것 아닌가? 2성이시라던데 어떻게 저 정도의 성력을…….”
힐데스하임 쪽의 사제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발칸의 기사 한 명이 그 황자라는 이에게 다가갔다.
“발칸 진형의 총지휘를 맡은 기사 람이라 합니다. 우리 발칸의 귀한 인력을 구해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1열에서 검을 쥐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발칸의 모든 이들이 자세를 낮췄다.
허나 3황자는 마땅찮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인사는 상황이 잠잠해지면 나누도록 하지.”
지금까지 성곽에 와서 방해만 끼치던 여타 귀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잠시 눈치를 보던 람이 소리를 내질렀다.
“모두 전투를 재개하라!”
그제야 얼어붙어 있던 이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