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스펙터, 그 끔찍한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건 참회의 숲 이후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두 번째로 마주했음에도 익숙해지기는커녕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두려움은 두 배로 되었다.
배와 팔, 허벅지 및 엉덩이 등에 스펙터가 달라붙자 병사들이 하나둘 미쳐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도, 도망쳐.”
“악마다! 악마가 도래했다. 신께서 우릴 버렸다!”
쾅.
“개소리하지 말고 일어들 나.”
그래도 성력에 취약하다는 약점 덕분에 내 성력을 얻어맞은 스펙터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겁에 질려 있던 사제들도 정신을 차리곤 성력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다.
스펙터가 떨어진 병사들은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발광하는 이들도, 자해를 하는 이들도, 심지어는 동료에게 칼을 휘두르는 이까지 있었다.
성력으로 치유해 봐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달려드는 스펙터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고 말 것이다.
“사제들 몸에 성력 두르고 전부 1열로 전진해!”
내가 소리쳤다. 몸에 홀리 프로텍트를 걸어둔 사제들이 내 말에 따라 앞으로 이동했다.
후열에 남은 것은 발칸의 의원들. 성력도 없는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나 혼란스러워 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대로 대기하고 있어.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으니까.”
그리곤 사제들과 함께 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제들 모두 나란히 서서 성력을 끌어올려.”
일렬로 선 사제들이 일제히 신성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성력은 내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성배로 모여들었다.
[당신을 향한 사제들의 신념이 극에 달합니다.]신성력의 기반은 믿음.
굳건한 신념을 가진 이들일수록 성력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었으며, 그건 꼭 신에 대한 믿음뿐만이 아닌 자신이 모시는 군주에 대한 믿음도 포함되었다.
초대 성황 때가 신성력의 전성기라 불렸던 이유도 사제들이 그만큼 그를 믿고 따랐기 때문.
그러니 내가 지난 두 달간 사제들에게 신뢰를 쌓아온 것도 아무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사제들의 진실한 경배가 한곳에 모입니다.] [수많은 사제들의 신념이 아득하게 높은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천후天候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그득히 채워졌던 성배가 바닥을 드러냅니다.]역사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후를 바꾼다는 권능.
「초대 성황 폐하께서 메마른 곳에 이르러 불쌍하게 여기시니, 가뭄은 사라지고 금세 비가 내리더라.」
「신께서 노하시어 태풍으로 하여금 인간을 벌하려 하셨으나, 초대 성황께서 직접 기도를 올리시어 태풍을 소멸케 하였으니 이것은 가히 기적이었다.」
「이는 「천후天候의 권능」이라 불리었다.」
「이후로 성황께서 천후의 권능을 깨우려 하셨지만 신께서 단 한 번도 허락지 않으셨다.」
그런 천후의 권능이 다행스럽게도 반응을 보였다.
새하얀 빛이 온 하늘을 덮었다. 이윽고 검붉게 물들었던 달이 성력에 의해 하얀 빛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다, 달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월식이 사라지고 스펙터들 역시 소멸되고 있습니다!”
“이, 이건 기적입니다!”
기적. 그래, 썩 어울리는 표현이기는 했으나.
이건 결코 나 혼자만이 만들어 낸 기적이 아니었다.
성곽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제들이 매일 같이 내 성배를 통해 치료를 행했으며, 그 덕분에 그들의 신념이 밑바닥부터 조금씩 쌓여 갔고 결국 온전히 한 잔을 채울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제들이 모든 성력을 끌어내었다.
그렇게, 성배의 또 다른 능력 「천후의 권능」을 간신히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봐야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월식을 아예 잠재운 것도 아니다. 잠시 성력으로 임시 조치를 한 것뿐.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고 있었다.
“3황자 전하께서 하늘을 움직이셨다!”
“신께서 3황자님을 보살피고 계신다!”
모두가 나를 경배하고 있었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낸 것이지.”
허나 그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전하의 자비로움과 겸양하심이 과연 하늘을 찌릅니다.”
에휴.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너희들이 고생 좀 하자.”
나는 맨 후열에서 왠지 모르게 위축된 듯 보이는 의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놀란 눈으로 내게 물었다.
“……저희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말한 건 다들 챙겨왔지?”
“예. 그런데 어디에 쓰시려고…….”
“보면 알아. 칼로스, 내 장비 좀.”
옆에 붙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칼로스가, 내 의중을 이해하곤 짐꾸러미에서 작은 칼을 내밀었다.
메스…… 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가장 실력 좋다는 대장장이에게 의뢰해 만들어 둔 것이었다.
“의원들은 전부 따라와.”
스펙터가 사라졌음에도 아직까지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뒤처리할 것이 남아 있었다.
* * *
데미안 힐데스하임은 고작 열여섯 살의 소년이지만 분명 훌륭한 지도자였다.
클레이디크를 지키는 양 진형의 병사들은 모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3황자는 소문처럼 무식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았으며 지니고 있는 신성력 역시 듣던 것처럼 미약하지 않았다.
“저게 어떻게 2성이란 말인가.”
“성물의 힘이 받쳐준다고 쳐도…… 확실히 믿기 힘들군.”
힐데스하임의 수도에서도 꿇리지 않을 성력을 가진데다, 이곳에서 더욱 치열하게 성력을 사용해 온 탓에 일반적인 사제들보다 더욱 뛰어난 성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이들조차 3황자의 성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씩, 점차 3황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성황과 황족에 반감을 갖고 있는 만큼 3황자를 못마땅해하던 이들도 3황자를 보며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흥. 그래봐야 우리 아르민 후작 각하만큼은 아니지만, 너희 힐데스하임에도 괜찮은 분이 계셨군.”
그 사실은 발칸의 병사들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황자는 최전방에 나서서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소문과는 다른, 꽤 훌륭한 황족. 3황자에 대한 인식은 딱 그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믿고 따르기에는 충분했다. 이제껏 보아 왔던 황족들에 비하면 저 정도는 양반이었으니까.
3황자에 대한 그러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 사제들의 성력 역시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었으나, 사제들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전하께서 지휘를 훌륭하게 하셔서 그런지 부상자도 많이 줄긴 했군. 사제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셔서 그런가 성력의 양이 많아진 것 같은 착각도 들어.”
다른 사제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소리를 해 댔으나 기존에 클레이디크의 사제들을 이끌던 4성의 수사제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는 알고 있었다. 진정으로 믿고 따를 만한 군주가 군림하던 때에, 사제들은 뛰어난 역량들을 보였으며 힐데스하임은 전성기를 맞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은 전성기가 아니었다. 겔리두스 폰 힐데스하임은 사제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기엔 부족함이 있는 성황이었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절대 없었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만 3황자 전하께서 성황이 되신다면 국력의 증강은 기대해볼 만하겠군.”
고작 두 달이다. 성황과 황족에 대해 내심 불신을 가진 사제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 걸린 기간이.
거의 원망 가까운 시선으로 데미안을 바라보던 사제들이 이토록 데미안을 믿고 따르게 된 것이다. 3황자는 분명 그만한 인품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사제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을 때.
“이것마저 의도하셨던 건가.”
스펙터를 상대하는 3황자를 보며 수사제가 중얼거렸다.
[사제들의 진실한 경배가 한곳에 모입니다.] [수많은 사제들의 신념이 아득하게 높은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천후天候의 권능」이 발동됩니다.]수사제 역시 역사서에서나 들어본 적 있는 이례적인 경우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모든 성력을 헌납한 사제들은 하나둘 3황자를 향해 조아리고 있었다. 군주를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있는 것이었다.
“3황자 전하께서 하늘을 움직이셨다!”
“신께서 3황자님을 보살피고 계신다!”
그 대열에 수사제 역시 동참했다. 물론 저렇게 난리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울컥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낸 것이지.”
그 말을 들은 사제들은 더욱 감복되었다. 허나 3황자는 그런 반응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오히려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의원들은 전부 따라와.”
그리곤 성력의 힘에 망연자실해있던 의원들을 3황자가 불러 모았다. 이미 스펙터들에게 감염되어 폭주해버린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원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의학은 성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인간이 신을 뛰어넘을 수 없듯.’
과거엔 의학이 성력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믿었지만 그건 3황자가 나타나기 전.
3황자로 인해 성력의 진정한 힘을 보게 된 의원들은 내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쓸모도 없는 의학을 어디에 쓰려고 한단 말인가.
“3황자 전하. 이미 감염된 이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선 몸을 결박하여 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힐데스하임 쪽의 수사제가 그리 말하자 3황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무조건 낫기는 하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상태가 심각한 이들은 성력을 들이부어도 호전되지 않습니다. 허나 그것은 모두 신의 뜻…….”
“개소리.”
3황자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주위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무리 3황자가 이곳 힐데스하임 사제들의 마음을 샀다고 한들 십수 년간 이들을 이끌어 온 수사제만큼은 아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3황자가 이곳의 베테랑인 수사제에게 되도 않는 훈수를 두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것도 썩 거친 언행을 내뱉으면서까지.
허나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사제와 의원을 불러 모은 3황자가 곧장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멀쩡한 병사들이 폭주한 이들을 단단히 잡고 있는 동안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해야 할 거다.”
그런데 3황자가 내린 지시는 위험하며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의원들은 감염자들 한쪽 팔 피부를 절개해. 전에 말해준 위치 있지?”
정맥이라던가 뭐라던가 하며 팔 안쪽의 파란 혈관에 대해 3황자가 설명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의원들은 3황자가 의학에 대해, 인간의 신체에 대해 뭘 알겠느냐 하며 우습게 넘겼지만.
이제 와서 그 얘기를 왜 꺼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3황자는 그런 의원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의원에게서 수술용 칼을 빼앗은 3황자가 제압되어 있는 감염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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