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9)
제29화
현대인으로서, 의료인으로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나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곤 했다.
성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마력은 또 무엇이고 몬스터는 어디서 튀어나온 놈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당연하게도 찾지 못했지만 수시로 고민 중인 부분이기도 했다.
“으으으……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이제 다 죽었어!”
“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여기저기서 발작을 일으키는 병사들. 우습게도 현대인의 시선에서 한 가지의 가능성이 보였다.
정신분열증.
스펙터들에게 감염된 병사들은 꼭 정신분열증 환자 같아 보였다.
환각을 보며 과한 공포감을 느끼고 현실 인지 능력에 뚜렷한 이상이 엿보인다.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싸아아아악
귀신과도 같은 모습을 한 채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스펙터들. 성력으로 스펙터를 몰아내며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병사에게 달라붙는 데 성공한 스펙터는 반투명한 관을 병사의 몸에 찔러넣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 관을 통해 전해 들어가고 있었다.
파악.
내 손에서 뻗어 나온 섬광이 스펙터를 저만치 떨어뜨렸다.
“허억. 가, 감사합니다.”
스펙터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병사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그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갑옷의 틈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병사가 내 손길을 따라 몸을 숙이자 그의 거친 목이 드러났다.
스펙터가 붙어 있던 위치, 오른쪽 목을 유심히 살피자 확실히 심상치 않은 상처가 보였다. 정확히 경정맥을 향해 난 구멍에서 스펙터의 마기가 흘러나왔다.
정신분열증의 주된 원인은 도파민의 과다 분비이고, 스펙터가 마기를 통해 도파민을 정맥에 집어넣은 거라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꽤 그럴싸했다. 이 병사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의 상처도 대부분이 주요 정맥에 위치한 걸 보면 정맥으로 마기를 집어넣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꽉 잡고 있어.”
과도한 공포 때문일까, 혹은 해결책을 찾은 설렘 때문일까. 가슴이 쉴 새 없이 뜀박질을 해댔지만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지시를 내렸다.
울부짖는 감염자와, 그를 제압하고 있는 병사들. 잔뜩 긴장한 채로 대기하고 있는 의원들과 사제들. 수많은 이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말씀드렸듯이 이미 감염된 이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혹여나 전하가 손대시어 호전되지 않는다면 전하를 시기하는 이들은 멋대로 떠들어 댈 테지요.”
알고 있다.
내가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황자가 맞냐느니, 성력을 가질 자격이 없다느니 하는 이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내 위로 두 명의 형만 해도 황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도 없이 나를 폄하해 왔다.
근데 뭐, 솔직히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다 내려놓은 지가 언젠데. 황위 따위 개나 주라지.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를 믿고 따르던 병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둘 수는 없다.
“수술칼 줘봐.”
내가 손을 내밀자 의원 하나가 수사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수술칼을 건넸다.
비록 현대에서 쓰던 질 좋은 메스는 아니지만, 처음 이들이 갖고 있던 무식한 칼에 비하면 상당히 쓸만한 것이었다.
클레이디크에서 가장 솜씨 좋다는 대장장이를 수소문하여 내가 직접 의뢰한 것이니까.
“전하!”
내 의도를 눈치챈 수사제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주름진 눈이 여러 말을 토해내는 듯 보였다.
“저들을 존중하는 것은 알겠으나…….”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수사제도 최대한 참아왔을 것이다. 나는 신성 제국의 황자로서, 성력을 가진 사제로서 하면 안 될 짓을 해 왔다.
힐데스하임이었다면 의원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수 차례 징계를 받았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허나 수사제도 저들과 부대끼며 점차 느껴왔을 터.
“저들의 방식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성력으로는 고작해야 조금 호전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는 걸 말한 건 다름 아닌 사제들이었다.
수사제가 더는 뭐라 하지 못하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손놀림이 괜찮다 여겨지는 의원 몇 명을 불러 모았다.
“확실히 봐 둬. 설령 해결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희에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스윽.
칼을 든 나는 조심스레 병사의 팔을 주욱 그었다. 살을 베는 감촉이 생생히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거의 15년 만인데도 마치 어제까지 메스를 들었던 것처럼 익숙한 감각이었다. 덕분에 다른 혈관이나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 수월하게 피부를 열 수 있었다.
병사의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져 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로스에게 지시했다.
“신경 쓰지 말고 확실히 피부터 닦아내. 멈출 때까지.”
출혈이 멈춰야만 내부가 정확히 보일 테니 급하더라도 서둘러서는 안 됐다.
칼로스가 지혈하는 동안 의원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만약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너희들도 똑같이 따라해야 해. 감염된 병사가 꽤 많으니까.”
의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들로서도 외과적인 시술은 꽤 왔을 테지만 지금 내가 보여준 것처럼 정교하게 하지는 않았을 터.
“절대 다른 혈관을 건드리지 않게. 얕게 피부를 절개하고. 칼로스, 출혈은 아직이야?”
“예. 거의 다 됐는데 조금씩 피가 맺히고는 있…….”
“그 정도면 됐어. 나와봐.”
칼로스를 밀어내고는 병사의 팔을 다른 의원들에게 보이도록 했다. 피부가 열려 팔 내부가 훤히 보이고 있었다.
“여기 혈관이 두 종류 있는 거 보이지? 검은색이 정맥이고 붉은색이 동맥…… 아니, 됐다. 이건 알 필요 없고.”
정맥이니 동맥이니 하는 구분까지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듯해서 과감하게 스킵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절대 여기 붉은 혈관은 건드리지 마. 건드리는 순간 죽는다고 보면 되니까. 여기 검은 혈관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절개하면…….”
칼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꾸욱 쥐었다.
정맥이야 잘못 건드려도 동맥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메스처럼 정교한 것도 아니고 이런 칼로 건드리기엔 역시나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의 나도 수많은 모험을 해 왔고, 그 모험이 매번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그것이 나를 더욱 발전하게 했으니까.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나만큼이나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 덕분에 적당한 긴장감에 휩싸인 채로.
사악.
정맥을 얕게 그었다.
짧은 순간,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이내 정맥이 꿈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그런데 확실히 정상적인 혈액의 색은 아니었다.
“피가…… 어떻게 저렇게 까맣게 될 수가 있지?”
“스, 스펙터가 물들인 것인가.”
정맥에서는 피와 함께 스펙터의 마기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내 가설이 80% 정도는 들어맞은 것이었다.
나는 가슴 속 성배에 미리 채워 놓은 성력을 들이부었다.
콸콸콸.
신성력이 영롱한 빛을 사방으로 발산하며 혈관을 덮었다.
정맥에 난 구멍이 워낙 작아서 버려지는 신성력이 절반 이상이었으나, 그렇다고 정맥에 큰 구멍을 낼 수도 없는 일. 이 정도만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절개한 정맥이 다시 회복되도록 지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아아!”
치료를 받은 병사가 결박된 채로 이리저리 몸을 날뛰어댄 탓에 지혈하던 손이 튕겨 나왔다.
푸슈우욱.
정맥에서 튀어나온 피가 내 얼굴에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경악하며 달려들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저, 전하께서도 감염되었을 수가 있으니 서둘러 전장에서 발을 빼시옵고, 마땅한 치료를…….”
“이 자식이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전하께! 치료고 뭐고 이놈의 목을 당장…….”
“별거 아니니까 난리 부리지 마.”
그들을 손짓 한 번으로 조용하게 만들었다. 검을 뽑아 들던 병사 역시 내가 노려보자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애초에 이 정도로 스펙터의 마기가 감염될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병력은 몰살하고도 남았을 터.
내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전하.”
칼로스였다. 그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무언가를 손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뭔데?”
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칼로스가 앞으로 들이밀었다.
“전하께서 지참하라 알려주신 것 중에서…… 지금 필요할 것 같은 것을 꺼내왔습니다.”
치료용 실과 바늘. 이것 역시 메스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것과 비교하면 정밀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내가 직접 의뢰해서 제작한 물건이기에 어찌저찌 혈관을 꿰매볼 수는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이건 왜?”
“…….”
내가 묻자 칼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확신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얼굴.
그걸 보며 이 심각한 상황에도 나는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자식. 한국 인턴이었으면 넌 무조건 우리 과로 데려왔을 텐데.”
“……예?”
“아니다.”
혼자 중얼거린 나는 칼로스가 내민 바늘에 실을 꿰고는 성력으로 가볍게 세척을 했다.
그리고는.
푸욱.
혈관의 찢어진 부위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오랜만에 행하는 제대로 된 외과적인 수술이었으나 손은 그 습관을 기억이라도 하듯 자연스레 움직였다.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던 이들이 점점 피가 멎어가는 것을 보며 점차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휴.”
이 세계에서 의학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걸리는 부분이 많아서 최대한 자중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살리고는 봐야지.
혈관 접합을 마친 뒤, 한숨 돌리고 마무리로 피부를 다시 꿰매고 있을 때였다.
“저, 전하.”
“기, 기사님! 지, 진정하십시오!”
저만치서 나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일순간 확 가까워지더니 열기가 느껴졌다.
“……?”
고개를 돌려보니 충격적인 모습이 보였다.
늘 잔잔하기만 하던 트루드가 한껏 달아오른 표정으로 내게 뛰어들고 있었다. 눈이 뒤집혀있고, 얼굴은 온통 격정적인 감정들로 분노한 듯 보였다. 스펙터에게 감염된 것이 분명했다.
트루드가 내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곧바로 대처를 한 덕에 성력으로 트루드의 검을 막아내었으나, 그녀의 검은 내 방어를 뚫고 새어 들어왔다.
주욱.
가슴팍에 쓰라린 진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검을 막아낸 팔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트루드.”
내 말에 그녀가 움찔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으나, 이내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