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신성 제국의 수도는 성국 내에서 가장 거룩한 지역이라 여겨지지만, 그 안에서도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황국에 반기를 들고 역모를 꾀했거나, 그에 버금가는 죄질로 죄수가 된 이들. 허나 성황의 특별한 사면으로 참수만은 면해 인간답지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
비좁은 옥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내 역시 마찬가지로 이곳에 수감된 죄수였다.
과거 성국의 기사단을 이끌며 성웅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으나, 그때의 찬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허름한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런 그를 찾아온 여인. 단장은 그녀를 향해 질책하듯 물었다.
“떠나면 뒤도 보지 말고 달려 성국을 벗어나라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 다시 이곳에는 발 들일 생각도 말라고.”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단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가득 담긴 눈동자.
결국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야 말았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제 모든 것이 있는 곳인데.”
떨리는 여인의 목소리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서늘했다.
“모든 것이 있는 곳이라. 황비의 신분으로 계실 때는 그러셨겠지요. 허나 이제는 아닙니다. 폐비는 일개 평민만도 못한 신세 아닙니까.”
“이곳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게 남은 것은 제가 낳은 아이 뿐입니다. 그 아이가 제게 모든 것입니다. 성황께서 저를 버리셨다고 한들, 제 몸으로 낳은 아이가 어찌 제 아이가 아닌 것이 된단 말입니까.”
여인의 목소리는 과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을 한 것인지 음성도 꽤나 높아져 있었고.
“그러다 발각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데 모두 헛고생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그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신성 제국에서 황비가 폐위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였다. 성국에 대한 모독.
실제로 황비가 그러한 중범죄를 저질렀든 저지르지 않았든 상관없었다.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여인이 그 피해자였다.
“됐습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니. 다만 알아두십시오. 황자께 더이상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어찌 보면 황자 전하 때문에 황비께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해 져 있었다. 여태껏 허공만 응시하던 단장이 놀라 그녀를 바라볼 정도로.
“정말 제가 그 아이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 보십니까?”
“……명백한 사실입니다. 부정할수록 황비께서는 더욱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허나 아이를 2성으로 잉태한 제 잘못이지, 어찌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폐하께서 벌 내리신 대로 당장 목이라도 내놓고 싶지만 아이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게 두렵습니다. 이 위선적인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성 제국이라는 허울 아래 이 곳은 썩어 문드러져 있지요.”
여인의 말에 구태여 반박하지 않는 것일까, 혹은 반박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개를 휙 돌린 단장은 허공을 향해 한숨만 내쉬었다.
“당장 발길을 돌려 떠나십시오. 누가 알아볼까 두렵습니다.”
“목숨을 걸고 돌아왔는데, 제 아이 얼굴 한번 보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정말 안 될 일입니다!”
단장이 벌떡 일어나 여인을 노려봤다.
“황비께서 3황자 전하를 얼마나 각별히 여기시는 줄 압니다. 그렇기에 더욱 자중하셔야 됩니다. 발각되면 황자 전하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지실 겁니다.”
“그럼 어떻게 아이를 사지에 두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단 말입니까. 못난 어미 탓에 그리 태어난 아이인데. 흐흑…….”
결국 황비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안쓰럽게 바라보고만 있던 단장은 그녀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세력을 모으고 계십니까?”
“예. 본가에서 최대한 지원을 받으며 모으고는 있으나 역시 마땅치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훗날 황자 전하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또한 황자 전하께 남겨 두신 보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말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목숨 두어 번은 구해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예?”
“아닙니다. 어찌 되었건 부디 제 말씀대로 현명히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여인은 결국 자신이 낳은 3황자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신성 제국을 떠나갔다.
훗날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아득바득 살기로 하면서.
* * *
“아오. 불편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낑낑거리며 빼려 했으나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의식이 있던 순간부터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것 같은데, 7살이 된 지금까지도 손가락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걸까. 해괴망측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걸 보니 그럴 가능성도 꽤 높아 보였다.
“에이, 모르겠다.”
결국 빼는 것을 포기하곤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지루하기만 하던 아기의 생활은 끝이 났으나 여전히 어린아이의 몸이었고,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많았다.
다만,
“허리 안 아픈 건 좋네.”
비오던 날이면 슬슬 쑤시기 시작하던 관절들이 완전 새 것처럼 쌩쌩했다. 근육이야 성장하면서 차츰 붙이면 될 문제였고. 이번 생에서는 이른 나이부터 건강을 챙기기로 하고……
이 생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히 신성력이었다.
신성력을 처음 깨우친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러니까 세 살때의 일이었지만 아직까지 현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건 현자의 권고 때문이었다.
“전하께서 성력을 이른 나이에 깨우친 것은 분명 경축할 일이나, 소인의 사견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 연유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난해하실 테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전하를 시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현자가 무엇을 말하는 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히는 1황자와 2황자 쪽에서 내가 신성력을 이른 나이에 깨우쳤다는 것을 듣게 되면 더욱 견제를 하게 될 터.
그러니 나 역시 현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지 뭐. 현자는 이 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면서. 경의 말이 맞겠지.”
대신 4년 동안 남들의 눈을 피해 조금씩이나마 틈틈이 신성력을 다뤄 보았다.
“쉽지가 않네.”
그럼에도 별다른 발전이나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다.
애초에 2성의 재능으로 타고난 것 때문인지, 혹은 원래 처음엔 다루기 난해한 것인지는 몰라도 신성력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연마해 온 시간이 3년 가까이 되다 보니 조금이지만 익숙해지는 듯했다.
“놀라운 속도입니다. 이토록 성력에 빠르게 적응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현자의 칭찬에 괜히 코밑을 슥슥 문질렀다.
“너무 띄워주는 거 아냐?”
별것 아닌 것에 괜히 우쭐해졌다가 금세 자괴감이 몰려왔다. 몸이 어려지면서 마음도 조금은 어려진 걸까.
내 마음도 모르고 현자의 칭찬은 계속되었다.
“고리가 두 개뿐이라는 것은 분명 전하의 앞날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을 극복하다보면 더욱 성장하게 되는 법이지요.”
“성장하는 것도 있나?”
“예. 고리의 개수는 선천적이나 크기는 후천적이라고들 합니다. 비록 고리의 크기 역시 타고난 자질이 중요하나 더없는 노력으로 그 크기를 차츰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단 고리의 크기는 꽤나 크게 타고났으니, 그것은 장차 크게 도움이 될 거라는 현자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서 결론은 성력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그 크기를 키워라?”
“예 맞습니다. 성력의 결핍은 더 큰 그릇을 만들어줍니다. 다만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과한 결핍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고통, 통증, 질병.
신의 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들. 그것을 모조리 악마의 저주 혹은 신의 형벌이라 여기는 우둔한 세상이었다.
가령 근육통은 자신의 몸을 과하게 굴렸다고 신이 경고하는 것이니, 가급적이면 그 정도의 신체 활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든가.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가 만연해 있는 세상이었으니 신성력 역시 마찬가지로 통증이 찾아오지 않는 선에서 사용하라는 게 현자의 권고였다.
“물론 고리의 개수가 많을 수록 성력의 총량 면에서 유리한 것이 있습니다. 또한 각 고리가 갖고 있는 고유의 권능이 있지요. 예컨대 전하께서는 3성 이상의 권능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건 좀 슬프네. 극복할 수 없다는 거 아냐.”
“다만 다행인 것은 가장 중요한 권능은 사용하실 수 있으신 게지요.”
현자가 말한 것은「재생의 권능」이었다.
맨 처음 성력을 깨우치면서 자연스레 얻게 된 능력.
“1성의 사제와 2성의 사제가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는 이유입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1성의 사제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고리가 1개로 태어났으면 이정도의 위로도 못 받을 뻔 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현자는 그 이후로도 사제가 어떻게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든지, 힐데스하임이 어떻게 신성 제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든지 하는 것들을 설명했다.
그게 다 결국엔 하나로 이어졌다.
“신의 힘으로 죽어가는 인간을 다시 살린다는 것. 이러한 기적을 본 이들은 더욱 결착되어 하나가 될 수 있었지요.”
결국 재생의 권능이 짱이라는 거였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사람 살리는 게 그렇게 대단한 취급을 받는다면……
“그런데 성력이라는 게 신께서 주시는 힘 아니야.”
“예, 맞습니다.”
“신의 힘으로 인간을 치유한다는 건데, 혹시 인간의 힘만으로 인간을 치유할 수는 없어?”
내가 있던 현대의 의학. 그걸로 사람을 살리면 그만 아닌가.
물론 고도화 된 의료기기도, 숙련된 어시도 없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곳에 의학이 있다면 얘기가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사실 이 질문을 현자에게 처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몇 번 물은 적이 있었으나 모두가 사색이 되어 그런 모독적인 말은 자제해 달라나 뭐라나.
꽤 민감한 사안인 듯 보였다. 다만 현자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곤란하다는 건, 어떤 면에서?”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있고, 실제로 본 적도 있긴 합니다만 실용성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어지간한 2성의 사제, 그 절반의 절반도 못하는 능력이었지요.”
“그럼 있긴 하다는 건데. 대답하기 곤란하단 건 뭐야.”
“딱 한 명. 사제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인 이를 보았습니다. 적국에 있는 이라 이후로는 만나보지 못했으나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딱 한 명뿐이었고, 아직까지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허허. 이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신성 모독으로 잡혀가겠군요.”
“그런데 나한테는 왜 말해준 건데?”
“황자 전하께서는 쉬이 입 밖에 내지 않으실 테니까요.”
“재밌네.”
“아닙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 보는 능력 좋다고. 재밌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