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4)
제34화
클레이디크의 성공적인 수비에 대한 치하는 꽤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 질 계획이었다. 그래야만 클레이디크를 수비하는 인원들의 불만이 사그라질 것이며, 앞으로도 내지인들은 외곽의 공포를 잊은 채로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2황자 전하께서 직접 오신다더군.”
“수레를 서른 대나 끌고 출발하셨다지. 어쩌면 정말 상상 이상으로 큰 보상이 올 지도 모르겠어.”
클레이디크에 있는 힐데스하임의 병력들은 그렇게 점점 기대치를 올리고 있었고, 2황자 무리가 당도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뭐? 2황자가 직접 온다고?”
허나 그 사실을 들은 나는 다른 이들처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2황자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공신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그 먼 수도에서 여기까지 고된 길을 오고 싶어했을 리 없고, 성황의 성격 상 싫다는 2황자를 억지로 보냈을 리도 없었다.
“하아. 분명 꿍꿍이가 있을 텐데.”
그리고 사실 그 꿍꿍이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는 했다. 뭐, 꼭 내 예상과 들어맞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늘 그래 왔듯 유치한 시비나 걸어대는 수준일 거고 나는 가볍게 무시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2황자에 대한 우려를 가볍게 생각하며 마음 한 편으로 밀어버렸다.
성곽 복구 작업과 성력의 증진을 위해 신경을 다른 데 둘 겨를이 없었다.
허나 2황자를 비롯한 사절단은 생각보다도 더욱 빠른 시일에 도착했다.
“거룩하신 성황께서 특별히 파견하신 사절단이 당도하였으니, 그에 걸맞게 자세를 낮추어 예의를 표하라.”
수십의 기사를 이끌고 도착한 성황의 사절단. 그 가운데 선 2황자의 모습은 인정하기 싫지만 꽤 위풍당당해 보였다.
“오랜만이군.”
2황자의 말대로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그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내가 보았던 2황자 바스티안은 1황자 못지않게 성격 더러운 악질이라는 것이며,
“소문은 많이 들었소. 예전 그대로라던데.”
둘째는 그 옛날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점.
직접 보지 않아도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바스티안은 기사단에 들어가고 나서도 사고를 깨나 친 모양이었다. 어찌 잘 수습을 해서 소문까지 퍼지지는 않았으나, 뒷얘기가 흘러나오는 것까지는 어찌하지 못했을 터.
“너 역시 그 아둔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겠지. 그러니 이 먼 곳까지 유배를 오게 됐을 터.”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그렇게 말하자 2황자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애써 침착한 척 하면서도 분명 분이 올라 있는 얼굴이었다.
“허나 변한 것은 분명히 있군. 예전엔 그렇게 꼿꼿이 바라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2황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만은 없었다.
2황자 바스티안은 어렸을 때부터 체구가 남다르고 몸을 쓰는 데 능숙하여 훌륭한 성기사가 될 거라 기대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실제로 지금 그 기대대로 잘 성장하고 있다고 하고.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썩 불행한 일이었다. 2황자는 수련을 명목으로 세 살이나 어린 내 몸뚱이를 목도로 꽤나 열심히 후려 팼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것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형님은 아버지께서 황자 간의 대련을 금하게 된 이유를 잊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맞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꼬맹이라지만 일단 맞고 있는 내 몸뚱이 역시 연약한 어린아이의 몸이고, 목도의 재질 역시 꽤 단단했으며…… 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맞고만 있자니 여러모로 억울했다.
그래서 악바리 근성으로 있는 힘을 쥐어 짜내어 저놈의 대갈통을 후려줬던 것이 생각난다.
입에 거품을 문 채로 그대로 기절을 했었지.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그것이 바스티안의 화를 더욱 돋군 모양이었다.
“……이 자식이.”
“전하. 고정하십시오.”
바스티안이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손을 뻗었다가 옆에 있는 다른 기사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성을 되찾은 2황자가 웃어 보이더니 이내 태도를 바꿨다.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몹쓸 모습을 보일 뻔했군.”
그런데 온화한 척하는 미소가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쨌든가 보는 눈이 많은지라 2황자는 그 이상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고 공식적인 석상을 만들어 맨 아래 말단 병사들부터 차근차근 보상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오늘은 거하게 한잔해도 되겠군!”
“가족들을 굶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구만.”
꽤 많은 양의 금화와 곡식, 그리고 여물. 병사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들이 주어졌다.
“이게 다 황자님 덕분인데 저희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황자 전하께서 부담 갖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잖는가. 괜한 소리 더 하지 말게나.”
그렇게 직접 내게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3보병대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대장 팔츠 자작에게는 추가적인 영지와 그에 대한 수조권을 지급하며, 그 산하의 중대장들에게는 각각 남작의 작위를 부여한다.”
보상은 점차 그 규모가 커졌다. 2황자가 이끌고 온 사절단은 꽤나 열심히 조사한 듯, 공에 걸맞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들 큰 불만 없이 기뻐하고, 서로를 축하하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챈슬러의 차례가 왔다.
“중앙기사단의 부단장이자 3황자 데미안 클레이디크의 수호 기사로 임명되어 있는 챈슬러 마테우스는 앞으로 나와 성황 폐하의 은총을 받으라.”
챈슬러. 이번 수호 임무에서 그의 공은 가장 크다고 해도 무방했다.
일단은 힐데스하임 진형 쪽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트루드가 내 호위를 담당하는 동안 챈슬러는 진형을 가장 넓게 뛰어다니며 가장 많은 스펙터를 잠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그렇기에 챈슬러에게 어떠한 보상이 돌아갈지 기대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명공 베아트릭스가 제작하고 바스티안 힐데스하임 전하께서 빛을 불어 넣으신, 성검 아룬다이트. 이 검으로 하여금 더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겠다 하셨다.”
2황자가 아룬다이트를 들어 올렸다. 검집에 들어가 있을 때도 환한 빛을 내던 명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자 눈부실 정도의 광채를 내뿜었다.
검을 다뤄본 자들은 모두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검의 성능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부러움.
제 것이 될 리는 없으리라고, 자신이 그만한 공을 세우지 않았다고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눈을 반짝일 정도로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해할 수 없네. 그렇지 않…….”
나는 그런 검사들의 마음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동조를 구하려다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에휴. 너도 기사는 기사구나.”
트루드. 다른 것에는 하등 관심을 보인 적 없던 그녀마저도 그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목숨을 다해 그 뜻을 받들겠습니다. 언제나 가장 밝은 빛으로서 음지를 비추는 기사가 되겠습니다.”
정작 그 검을 받게 된 챈슬러만이 담담한 어조로 2황자에게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그럼 언제나 황국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겠다.”
그게 끝이었다.
분명 아직 호명되지 못한 이가 둘 남아 있었으나 2황자를 비롯한 이들은 자리를 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챈슬러가 나섰다.
“2황자 전하.”
“무슨 일인가.”
“아직 3황자 전하와 수습 기사 트루드에 대한 행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아룁니다.”
당연히 착오가 있었겠거니, 실수로 빠뜨렸겠거니,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2황자가 미처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것이 그의 유치한 꿍꿍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3황자와 트루드는 이번 공신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예?”
당황한 채로 묻는 챈슬러.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심하게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말이 돼?”
“트루드 경이야 그렇다고 쳐도 3황자 전하께서는 이번에 가장 지대한 공을…….”
솔직히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야 무슨 사명감 때문에 한 일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 했을 뿐. 그러니 딱히 보상을 바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자 왠지 모르게 가슴에 턱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억울한가?
모르겠다. 그다지 억울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차피 알아줄 사람들은 전부 알아주고 있고.
그 심경의 근원지를 찾아나서고 있을 때 옆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트루드?”
내 옆에 서 있던 트루드가 어느새 저만치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호오. 트루드. 신께서 내리신 조각 같은 얼굴은 그대로군. 무슨 일이지? 공신에서 제외된 것이 억울한가?”
“예. 억울합니다.”
트루드의 목소리는 답지 않게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녀 딴에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려는 듯 보였으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걸 본 2황자가 피식 웃었다.
“내가 봤을 땐 억울할 것 없다. 들어보니 전투 중에 스펙터에게 감염됐었다지?”
그 말에 트루드가 악몽이 떠오르는 듯 움찔했다. 2황자의 미소는 더욱 비릿해졌다.
“한사람 몫을 해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신께서 하사하신 그 힘으로 동료들을 해하려 했다더군.”
트루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 말은 그녀에게 썩 충격을 줬으리라.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트루드가 입을 열었다.
“……억울하다는 것은 비단 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더니 그녀가 뒤를 보며 나를 바라봤다.
“이번 수호 임무에서 가장 큰 공을 이루신 것은 데미안 전하이십니다. 저를 제하신 것은 마땅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나, 데미안 전하께서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하신다는 것은 저로선 도통 이해할 수도, 그렇게 의아한 채로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더니 하나둘 조심스레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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