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5)
“트루드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하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훨씬 컸을 것입니다.”
난 정말 상관없는데.
나 대신 나서서 억울한 듯 토로하는 이들이 있었고, 솔직히 그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어느새 가슴을 턱 막고 있는 듯한 무언가도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2황자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철혈의 수습기사. 황국의 철제 인형. 일편검심.
그것은 기사단에 있을 당시 트루드의 별명이었다. 그녀의 별명이 그렇게 붙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감정이란 게 있긴 있었군.’
오로지 검밖에 모르는. 그 외에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보지 못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의 동요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같잖은 고집이 우스워 꺾어보려 그녀를 꽤 오랜 기간 괴롭혔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를 따르는 검이 되겠느냐?’
사실 그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당한 것이 분해서 더욱 악착같이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굳건한 심지를 부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그 누구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홀로 그토록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습군. 고작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런 그녀가 3황자를 위해 저렇게까지 나선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3황자 놈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잘난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착한 척은 혼자 다 하느라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었지.
“트루드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성황께서 선사하신 성배의 힘이 있었다고는 하나 과거 역사를 보아도 공을 논할 때는 사물이 아닌 오로지 인물만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심지어 트루드의 말을 거들며 3황자를 변호하는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클레이디크의 수비 임무를 맞고 있는 이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신성 제국과 황족에게 어느 정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애초에 충성심이 부족하여 이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 온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성황에게 더욱 악감정을 갖게 된 벌레들이 아닌가.
‘……데미안 이 자식은 그런 놈들까지 어떻게…….’
정말 믿기 힘들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곳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건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 상황을 바로잡는 것. 미천한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성황 폐하의 대리인으로 왔으며 그 이전에 신성 제국의 두 번째 황자이고, 신께 네 개의 고리를 선사 받은 성기사이다. 그런 내 결정에 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황자는 강수를 뒀다. 제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적으로 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이제껏 3황자 대신 불만을 표출해오던 이들이 흠칫하며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이미 한번 신성 제국에서 버림받은 몸들. 두 번째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더 나서기가 힘들었다.
“그대들이 무슨 의도에서,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는 알겠으나 나 역시 올바른 행상을 위해 이곳에 머무르며 심도 있는 조사를 거쳤고, 그런 만큼 번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황자가 그렇게 확정 지으려 할 때였다.
다그닥, 다그닥.
저만치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꽤 많은 수의 말이 저마다 땅을 박차며 그 소리가 겹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높게 깃발을 치켜든 기수. 발칸 제국의 새빨간 문양이 높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 발칸 놈들이다.”
“무, 무슨 일이지.”
2황자 일행은 일동 당황하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클레이디크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새삼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는 듯 보였다. 2황자 일행 때문에 굳이 반가운 척을 하지 않는 것 같기까지 해 보였다.
선두에 선 늠름한 자태의 기사. 그가 누군지는 2황자도 알고 있었다.
“발칸 제국의 아르민 비스바덴 후작입니다.”
아르민 비스바덴. 발칸 제국 소속의 뛰어난 기사이자 클레이디크를 분할 통치하고 있는 고위 귀족.
“……구면이던가요.”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베테랑은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2황자가 감당하기에는 놀랍도록 무거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기억하시는군요.”
제국 간의 교류가 있을 때 지나가듯 인사한 적이 있었다. 그 이상 큰 접점은 없었지만.
“신성 제국에서 직접 보내신 2황자 전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몸소 뵈러 왔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헌데…… 어찌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 보입니다. 원래 이토록 딱딱한 이들이 아닌데. 무슨 일들 있습니까?”
아르민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2황자의 앞에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토록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보니 어느새 클레이디크 주둔 양군이 꽤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2황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힐데스하임과 발칸은 틈만 나면 물어뜯는 사이가 아닌가. 어찌 저렇게 친해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자신과 아르민 후작 정도로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이라면 직접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가식적으로 상대를 대한다고 해도 말이다.
“……별일 없습니다.”
한 사제의 대답을 들은 아르민 후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것도 아니라면 다행인 거고요. 그것보다, 듣기로는 신성 제국에서 직접 상을 내리러 오셨다는데 맞습니까?”
아르민 후작의 질문에 2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황께서 저를 직접 보내셨지요.”
“호오. 황자 전하께서 몸소 오셨으니 꽤 합당한 보상을 받으시겠군요.”
그러더니 아르민이 뒤를 돌아 누군가를 찾는 모습을 해 보였다.
“아. 저기 계시는군. 3황자 전하.”
그러곤 3황자를 발견한 아르민 후작이 데미안 놈에게로 다가갔다.
“좋겠습니다. 이번에 가장 큰 공을 세우셨으니 분명 저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보물을 받게 되시겠지요.”
그리고는 쓸데없는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 * *
“스펙터에게 잠식된 이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의원들과 사제들이 합심하여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기적. 기적이라고밖에 일컬을 수 없는 일을 만들어 낸 이는 다름 아닌 신성 제국의 3황자였다.
3황자의 유능함과 됨됨이를 진작부터 알아봤던 아르민이었으나, 이번 수호 임무에서 데미안은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 냈다. 아르민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눈부신 활약이었다.
3황자가 개발해 낸 치료법은 이번 임무에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일식에서 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해낼 것이었다. 그 가치는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발칸 제국의 이들을 대표하여 전하께서 만들어 내신 기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 선물을 드리려 하는데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춰 드리는 것이 더욱 나을 듯하여…….”
“됐습니다. 선물은 무슨요. 서로 고생한 걸 가지고.”
아르민은 진심을 담아 3황자에게 고마움을 표했더니 3황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아르민이 달라붙어 감사의 말을 전하며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묻자 3황자가 귀찮은 듯 대답했다.
“정 그러시면 우리 병사들 술이나 한잔 사 주십시오. 다들 엄청난 주당들이니 단단히 각오하시고요.”
아르민 후작은 그 말을 들으며 또다시 감탄하고 말았다. 3황자는 정말이지 발칸 제국으로 데려오고 싶을 만큼 뛰어난 군주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힐데스하임의 2황자와는 같은 혈육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른 인간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 물론 아르민은 3황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후, 후작님! 이 비, 빌어먹을 힐데스하임 놈들이 어제 술값으로만 300골드를 썼답니다!”
“미친!”
힐데스하임 병사들은 3황자의 배려심만큼이나 엄청난 주량을 갖고 있었고, 그 덕에 생각보다 큰돈이 깨지기는 했으나 사실 이번에 줄어든 피해를 감안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성 제국에서는 2황자가 직접 내려와 마땅한 상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칸 제국과 마찬가지로 힐데스하임에서도 황국에서 직접 전령이 내려와 상을 주겠다는 소식이 전해져 들어왔다.
“분명 대단한 상을 받겠는데. 부럽군.”
이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3황자이니 얼마나 큰 보상을 받게 될지는 아르민 후작으로서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준비한 것은 조촐하게 느껴지겠어.”
그리고 3황자는 필요 없다며 계속해서 사양해 댔지만 아르민은 그럼에도 굳이 3황자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 놓았다.
“내일 힐데스하임 쪽의 논공행상이 끝나고 나면 양국 간부들끼리 모여 축하연을 열 것이다. 3황자 전하께 드릴 선물은 거기서 꺼내놓을 것이니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아르민은 신성 제국에서 온 2황자 일행이 떠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아르민 후작의 귀에 들려온 소식이 그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후작님! 지금 힐데스하임 쪽의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들어보니 힐데스하임의 공신 목록에서 3황자가 빠졌단다. 아르민 후작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힐데스하임의 다른 이들이 들고일어나려 한답니다!”
3황자의 성격상 그들을 애써 말리려 들고 있겠지만, 아르민 후작이 생각하기로도 이건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이 생겼군. 기사들은 모두 준비해라!”
아르민 후작은 늦기 전에 말에 올라 행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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