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6)
제36화
어이가 없었다.
2황자 바스티안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스스로 곱씹어볼 만큼 이해가 가지 않았다.
“3황자 전하께서 공신 목록에서 제외되셨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주변 이들에게 묻고 있는 발칸 제국의 아르민 후작.
등장하는 타이밍 하며, 2황자에게 다 들리도록 저렇게 말해대는 것 하며. 이건 3황자를 돕기 위해 직접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헌데 대체 어째서 적국의 후작이 데미안을 돕고 있단 말인가.
입술을 짓씹으며 의문에 빠져있을 때, 아르민 후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2황자에게로 다가왔다.
“전하. 비록 발칸과 힐데스하임이 사뭇 가까운 사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클레이디크에서만큼은 서로 등을 맞댈 수밖에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고, 특히나 서로의 행동에 민감한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그 공로를 뚜렷이 목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3황자에게 부당한 몫이 떨어졌다고 말하려는 겁니까.”
신성 제국에 작게나마 반감을 가진 힐데스하임 소속 이들뿐만 아니라, 이젠 아예 적국인 발칸 제국 소속의 후작까지 3황자의 편을 들고 나서고 있었다.
이건 결코 한 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여러 전장에 나서 본 2황자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 머저리 새끼가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을 했기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일을 저질러 버린 만큼 아르민 후작을 구워삶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잘 말해서 후작을 적으로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단은 적국의 높은 귀족이기도 한 만큼 나중에 황위 전쟁을 하게 될 때 적으로 두면 곤란한 일이 생겨날 것이다.
오히려 이번에 3황자 쪽으로 기울어 있는 아르민 후작의 마음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면 이토록 좋은 일이 없었다. 다소 1황자에게 우세한 현재의 상황을 확 뒤집어 엎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이였으니까.
생각을 마친 2황자는 이전에 다른 이들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려 했다.
3황자는 분명 공을 세운 것이 맞으나 그 종자인 트루드 경이 그 공을 깎아 먹었다.
상대는 다른 힐데스하임 소속의 이들처럼 권위로 찍어누를 수가 없는 발칸 제국의 아르민 후작이었지만, ‘신성 제국’의 규칙은 이러하다며 얼버무리기엔 오히려 더욱 좋은 면이 있었다.
그런데 2황자가 말을 채 꺼내기도 아르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데 이것 참 곤란하군요.”
“예?”
“이번에 저희 발칸 쪽에서도 우리 쪽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사절단이 오기로 했습니다만…….”
아르민 후작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입꼬리가 순간 올라가려는 것을 본 2황자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저희 황제 폐하께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피해 규모가 10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든 데에는 3황자 전하의 공이 대부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는 몹시 기뻐하시며 특별히 3황자 전하께 상을 수여하기로 하셨습니다.”
“바, 발칸 제국의 황제께서 말입니까. 어떤 것으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특별히 신경 써 주신다고 하셨으니 보통 것은 아니겠지요.”
곤란하다. 그건 지금 2황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헌데 뭐…… 2황자 전하의 결정이나 신성 제국의 결정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잘 모르는 이들은 세간에서 떠들어 대지 않겠습니까.”
아르민 후작의 말대로였다.
믿기 힘들지만, 이곳의 이들이 말을 들어보니 3황자가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허나 2황자는 그런 놈의 공을 무산시킬 묘책을 만들어 냈다.
뒷말이 아주 안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어쨌거나 나름의 명분을 만들어 낸 것이다.
허나 타국에서, 심지어 힐데스하임과는 휴전 상태이지만 엄연한 적국에서 상대의 공로를 인정하고 상을 내려 줄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작 당국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은 이가, 적국에서 상을 내릴 정도로 큰 공을 세운 것이라면? 어찌 말이 안 나올 수가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맡겼던 성황마저도 무마하기 힘들 정도로 여론이 들끓고 말게 될 것이다.
“……정말입니까.”
2황자는 아르민에게 물었다. 아르민의 표정은 사뭇 진지한 듯 보이면서도 애써 미소를 참고 있는 듯했다.
“예.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어쩌면 아르민이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수를 쓴 것일 수도…… 아니, 그건 너무 간 생각이고.
아무튼 2황자로서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알고도 이대로 무마할 수는 없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을 왔다 보니 몹시 지치는군요. 이후는 내일로 미루고 우선 들어가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2황자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았다. 그런 자신을 향해 기사 한 명이 따라붙으며 물었다.
“전하. 나머지 절차는 어떻게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2황자를 뺀 채로 진행되는 논공행상. 올바로 이루어진다면 꽤 많은 것이 바뀌고 말겠지만 2황자의 의도는 그런 것이리라 이해한 기사가 그 뜻을 사절단 전체에게 전했다.
“미친 새끼.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자리를 박찬 2황자가 씩씩거리며 중얼거렸다.
상황이 어째서 이렇게 굴러가게 된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전하. 아르민 후작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참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양반이었다.
덕분에 2황자에게는 한 방 먹여줄 수 있었다.
나야 보상 따위 안 받으면 그만이었지만, 나 때문에 발 벗고 나서는 다른 이들의 처지가 곤란해질 뻔한 상황.
거기서 어떻게 알고 아르민 후작이 나타나 상황을 무마시켜 주었다.
그리고 공로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이튿날 다시 시상식이 이어졌다.
“데미안 힐데스하임 전하의 위대하신 공로는 감히 가늠하기 힘든 정도였기에 적절한 보상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성황께 보고하여 직접 새로운 보상을 준비할 테니 관대한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들고 온 물건 중에서는 마땅한 게 없다는 것을 길게도 표현해댔다.
어쨌거나 저렇게까지 말하자 전혀 기대하지 않던 나로서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트루드는 비록 스펙터들에게 정신을 빼앗겨 일을 저지를 뻔하긴 하였으나, 그 전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업적을 인정받아 명마를 수여 받게 되었다.
트루드와 몹시 잘 어울리는 깨끗한 피부의 백마였다.
“뭘 그렇게 좋아해?”
답지않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트루드에게 그렇게 묻자 트루드가 대답했다.
“전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늘어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아부 한번 대단했다.
* * *
2황자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궁에서의 부름이 있었다. 공로를 인정하고, 성황이 격려와 포상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대충 들어보니 포상이라 해봐야 이 세상에서 돈 좀 되는 보물과 남들의 부러움을 살 칭호 정도라는데, 내게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귀찮아 죽겠네.
그렇다고 직접 부르는데 안 갈 수도 없으니 참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수도로 돌아오자 감회가 조금 새롭기는 했다.
“축하드립니다. 3황자 전하.”
“클레이디크 같이 험난한 곳에서 그만한 공을 세우시다니…… 성황 폐하께서 틀림없이 감형해 주실 겁니다.”
입에 바른 말들이었다.
어렸을 때는 나를 보고도 못 본 체 하던 이들이, 이제와서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어대고 있었다.
그 이유야 뻔했다.
클레이디크에서 공로를 세우며 보여주었던 내 성력에 대한 사실이 수도까지 퍼졌으리라.
참회의 숲에서 보였던 활약이야 내 성력이 확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일반적인 2성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정도의 성력. 그 성력을 통한 활약. 그것이 조사단에 의해 낱낱이 알려지면서 수도에까지 퍼졌으리라.
피곤해질까 봐 알려지는 걸 꺼려왔으나 어차피 언젠가는 알려질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3성이 되었다는 사실까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고, 당분간은 계속해서 감춰 둘 생각이었다.
단지 생각보다 뛰어난 성력을 가졌다, 정도야 좀 귀찮은 정도로 끝날 테지만 고리의 개수가 변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홀 한쪽에 서 있는데 뭔가 익숙한 듯한 얼굴이 보였다.
서글서글하게 썩 잘생긴 인상의 중년.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싶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권능을 발동시켰다.
[마르코 바이에른] [소속 : 힐데스하임] [바이에른 백작가의 가주] [격의 차이로 인해 정보가 제한됩니다.] [격의 차이로 인해 정보가 제한됩니다.]바이에른의 가주. 그걸로 더 말할 게 없었다.
권능은 많은 정보를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이리 같은 귀족들을 뒤로하고 마르코를 향해 다가갔다.
“잘 지냈나?”
“……저를 어찌 아십니까?”
“모를 수가. 그렇게 끈질기게 선물까지 줘 놓고는.”
“저희 가문의 장남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으니 제가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나랑 엮이는 게 무섭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니…….”
“알아. 농담 한번 해 본 거야.”
나는 성황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처지. 그럼에도 대놓고 내게 시비를 걸어올 수 있는 건 위로 있는 두 황자나, 극히 일부의 공작 정도였다. 황족이라는 신분은 그 정도까지 나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귀족은 달랐다. 특히나 일국의 군주인 성황에게 간언을 올려대다가 미움받고 배척당한 가문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처량한 위치에 있는 것이 바이에른 백작가였다. 검劍의 성지라 불리며 수많은 명문 성기사를 배출해 온 가문이 성황의 말 한마디에 거의 몰락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은 것이다.
“걱정 마. 난 상관 안 하니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그런 가문과 엮이는 게 결코 좋게 다가오지는 않을 테고, 바이에른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쪽도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잖아? 옳은 말 한 게.”
그리고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는 바이에른 백작이 안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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