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바이에른이 3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사실은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내린 마르코 바이에른. 그는 3황자를 지지하기로 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벅찬 감정에 휘둘려 섣부른 결정을 내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상의도 없이 결정을 내리셨단 말입니까.”
“가주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불경하였다면 사죄드립니다. 허나 조금은 신중하셨어야 하는 일입니다.”
바이에른의 직계 혈통들과 중책을 맡고 있는 기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 그곳에서 가주 마르코는 자신이 어째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한들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태여 지금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벌써부터 저희가 3황자 전하를 지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황궁의 많은 지원이 끊길 것입니다.”
“빠르고 느림은 없는 법이라 하였으니 저는 가주님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옳고 그름만이 있는 법이고, 3황자 전하의 성덕은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요.”
“과거에는 그른 선택이 현재에 와서는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듯이, 추후 3황자 전하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될 수는 있으나 지금은 아니라 봅니다.”
찬성보다 반대하는 이의 수가 훨씬 많았다. 마르코는 조용히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는 3황자 전하께서 살리신 목숨이니, 설령 바이에른이 3황자 전하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저 혼자만이라도 그분을 도울 것입니다.”
“도련님께 베푸신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 역시 맞으나 그것이 바이에른 전체의 운명을 걸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생각입니다. 비록 클레이디크에서 활약하고 계시다고는 하나, 3황자 전하께서는 타고난 성력도 갖추어진 외가도 없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3황자 전하께는 송구한 말이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맹세를 철회하시는 게 마땅하다 사료됩니다.”
마르코는 가주 된 입장으로서, 그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한 채로 독단적인 결정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모았고.
3황자의 지지를 반대하는 이가 여덟, 그리고 찬성하는 이는 마르코를 포함하여 단 세 명뿐이었다.
“그대들의 뜻은 알겠다. 가주의 위치를 가벼이 여긴 것 역시 반성하고, 3황자 전하께 철회의 뜻을 전하도록 하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은인과도 같은 3황자에게 어떻게 그런 비보를 전해야 할지, 벌써부터 마르코의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3황자 전하에게 할 말을 홀로 중얼거리며 정리를 하던 도중 말단 기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백작님! 부단장께서 백작님께 전하라 하시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말하라.”
“그, 그러니까 지금 연무장에서 대련이 벌어지고 있는데…….”
말단 기사라 본인을 어려워하는 것일까. 아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기사는 믿지 못할 것을 본 사람처럼 당황한 듯한 얼굴로 무어라 전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된 듯한 모습이었다.
‘꼭 나 같군.’
자신이 3황자의 앞에 선다면 곧 저런 모습이 될 터.
괜스레 본인과 말단 기사가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무슨 일인가. 대련 중에 누가 중상이라도 입은 겐가?”
“음…… 어…… 중상을 입은 이는 없습니다. 상대가 워낙 조절을 해 가며 상대하는 터라.”
“그러면 무슨 문제인가?”
“트, 트루드 경이 저희 쪽 기사들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트루드라면?”
“3황자 전하와 서약을 맺었다는 여기사입니다.”
“대련 중에 이기고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그게 무슨 큰 문제라도 된다는 듯 소란이란 말이냐.”
3황자와 주종 관계를 맺었다는 기사, 트루드에 대해서는 바이에른 백작 역시 아는 바가 있었다.
황궁 기사단의 4성이며, 빠르고 날카로운 검을 지닌 유망한 여기사.
그 잘났다는 황궁 기사단에서도 촉망받는 인재로 여겨졌을 만큼 뛰어난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바이에른 쪽의 기사들이 대련에서 지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헌데 자긍심 강한 바이에른의 기사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소속의 기사에게 대련에서 졌다는 사실이, 가주에게 전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여긴 것일까.
“그,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벌써 중견 기사 다섯을 쓰러뜨렸습니다!”
“뭐?!”
하지만 그 여기사가 무려 다섯을 연달아 이겼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자존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그녀가 가진 강함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기사라면 당연히 갖게 되는 호기심이었다.
“바로 가지.”
마르코 백작이 연무장으로 나갔을 땐, 이미 수많은 구경꾼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검조차 들기 어려워 보이는 연약한 체구의 여기사. 몸 여기저기에 난 생채기와 곧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숨을 보면 꼭 그녀가 대련의 패자인 것처럼 보였다.
헌데, 이미 저만치에 주저앉아 만신창이가 되어 몸을 회복시키는 기사들의 상태는 훨씬 더 가관이었다.
백작도 알고 있을 정도로 나름 실력 있는 중견 기사 여섯 명.
“그새 한 명 늘어난 것인가?”
그들이 모두 트루드에게 패한 것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검을 맞대본 자가 느끼는 경외심. 격의 차이를 통해 느끼는 좌절감.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었다.
* * *
트루드는 호승심이 강했다.
이 세계의 기사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 트루드를 봤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로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트루드에게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탓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나라는 걸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제가 상대해야 하는 건 같은 성기사입니다. 전하께서 이곳에 머무르시는 동안만이라도 검을 나누며 경험을 쌓아볼까 합니다.”
쿨한 척 그러라고는 했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트루드의 성장 욕구가 얼마나 불타오르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무리를 할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련이 벌어지고 있다는 연무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중견 기사 둘을 쓰러뜨린 뒤였다.
그러고도 모자란 것인지 대기하고 있는 바이에른의 기사들 쪽에 살짝 시선을 주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트루드에게 다가갔다.
“트루드.”
“……전하.”
“너무 무리하는 듯하군. 그만하는 게 좋은 법한데.”
“아직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트루드의 눈은 무언가에 홀린 듯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조금 뒤로 물러났다.
“바이에른에서 12년째 몸 담고 있는 3성의 기사입니다. 이름은 대련 후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루드의 다음 상대가 나타났다. 뿜어져 나오는 기세부터가 상당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은 지쳐 있는 트루드를 상대로 열심히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뿐, 트루드는 개화시킨 다섯 개의 고리를 모두 회전시켜 상대를 성력으로 제압했다.
이후로도 트루드는 두 명의 기사를 추가로 제압했다. 이쯤 되자 바이에른 쪽에서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여섯 명이라니…….”
“과연 저게 4성의 힘인가.”
“바이에른이 최고라 믿었거늘…… 중앙 기사단 쪽에는 저런 괴물이 얼마나 많다는 것인가.”
“많지는 않아.”
그렇게 말하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내 기사가 워낙 특출날 뿐이지.”
그들은 나를 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뿌듯함. 그것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트루드를 내심 말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트루드가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지, 나 역시 궁금했다.
“황궁 기사단에서 12년, 그리고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추가로 20년 동안 수련한 4성의 성기사 요셉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기사가 등장했다. 지금까지는 트루드의 상황에 맞게 상대를 내보낸 바이에른 쪽이었지만, 더이상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면해야겠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트루드는 자신의 선배에게 예의를 표했다. 지칠 대로 지친 트루드였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강한 기사를 상대로 투지가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전력을 다 하십시오. 저 역시 그대가 지쳤다고 하여 가벼이 할 마음은 없으니.”
“바라던 바입니다.”
그게 기사들 사이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둘 사이에 더이상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트루드가 먼저 검을 뽑는 것을 기다린 요셉은, 한 박자 늦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채앵!
찢어질 듯한 금속 부딪히는 소리.
방금 막 허리춤에 손이 있던 요셉은 눈 깜짝할 새에 트루드를 향해 검을 내지른 것이었고,
“……!”
트루드는 간발의 차이로 그 검을 받아냈다.
“어마어마하군. 요셉 경의 검을 받아내다니.”
“성인이 되고 나면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가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바이에른의 기사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트루드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트루드의 가장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빠른 검격에 있었으나, 요셉은 속도로 트루드를 압도하고 있었다.
콰앙, 콰앙!
검이 부딪힐 때마다 성력끼리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서로의 검이 회수되기가 무섭게 다시 맞부딪히기를 반복했다.
트루드는 힘에서도 밀리고 있었으며, 성력의 양도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다섯 개의 고리를 채우고 있던 성력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며 오러가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요셉의 검이 불타올랐다. 그가 가진 성력의 대부분을 실은 듯, 거대한 크기의 오러가 그의 검에 휩싸이고 있었다.
트루드 역시 위기임을 깨닫고는 남은 성력을 쥐어 짜냈으나 고리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
패배를 직감한 그녀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기사 트루드에게 성력을 공유합니다.」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