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콰앙!
굉음과 함께 새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트루드가 요셉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을지, 아니면 결국엔 뚫리고 만 것인지.
자욱한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멀쩡한 상태의 트루드였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검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대련이라고 보기엔 너무 과한 수준이군.”
백작 마르코 바이에른이었다. 그가 트루드 대신 요셉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대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건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군.”
“……죄송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필요 이상의 검을 쓰는 것. 성기사로서의 요셉이 저지른 잘못이었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트루드 경과 전하께 드리거라.”
요셉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나와 트루드에게 거듭 자세를 낮추었다.
“저 역시 트루드 경처럼 혈기왕성하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심心의 단련을 통해 벗어난 줄 알았거늘 아니었던 듯합니다. 저도 모르게 과한 일격을 날린 점 거듭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트루드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그에 응답했고, 나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그리고 트루드를 바라봤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도 스스로의 감정에 휘둘려 필요 이상의 검을 휘두른 것을 알고 있겠지.”
“……죄송합니다. 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여기 있을 거야. 그동안은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검을 쓰지 마.”
일체의 훈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비어버린 고리도, 과부화 된 온몸도 회복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떤 벌이라도 받겠다던 트루드는, 수련을 못 하게 된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그 시간 동안 나는 트루드와 함께 바이에른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둘러보고 다녔으나 조금의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바이에른 백작이 좋은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트루드와 나를 성 안으로 데려갔다. 오다가다 몇 번 낯이 익은 고위 성기사들도 함께였다.
쭉 이어진 복도를 지나, 아주 깊숙한 곳에 좁은 통로가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휑한 방 한가운데, 검이 한 자루 놓여있었다.
스스로 성력을 발하고 있는 검. 척 보기에도 보통 검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현 성국이 보유하고 있는 성물의 수를 알고 계십니까?”
“열두 갠가.”
“힘을 잃은 성배까지 포함하면 열두 개가 맞고, 그를 제한다면 열한 개지요.”
그 성배의 힘이 내 몸속에 있으니 열두 개가 맞다 치자.
“그 중 성검은 총 두 자루가 있습니다. 두 개 모두 명공 베아트릭스께서 만드셨지요. 하나는 이제 챈슬러 경께서 보유하신 아룬다이트.”
챈슬러가 공을 세우고 성황에게 하사받았던 명검. 그 검을 바라볼 때 트루드의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지라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년에 스스로의 혼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 바로 이 앵거바딜입니다.”
바이에른 백작이 앞에 놓인 검을 손으로 가리켰다.
“성물은 보유하고 있는 고유의 권능들이 있으며, 각각의 쓰임새가 다른지라 어느 것이 낫다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룬다이트와 앵거바딜의 경우엔 다릅니다.”
그러면서 백작이 앵거바딜을 들어 올렸다. 앵거바딜이 뿜어내는 성력이 돌연 날카롭게 변했다. 동시에 백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내려놓았다.
“앵거바딜은 아룬다이트의 완성형입니다. 명공께서 아룬다이트의 부족했던 부분을 모두 보완하여 제작하셨습니다. 허나 앵거바딜이 진정으로 완성된 것은 명공이 아닌 성기사의 손에 의해서입니다.”
“성기사?”
“예. 5성의 성기사셨던 과거의 성웅께서, 앵거바딜로 대악마의 심장을 꿰뚫으면서 그 힘을 흡수시켰습니다.”
“악마의 힘을 가진 성검이라는 건가.”
말이 되나 싶지만 정확했던 모양이다. 백작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허나 앵거바딜은 스스로가 인정하는 주인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고, 이제껏 앵거바딜이 택한 주인은 모두 5성의 기사였지요.”
5성의 성기사만이 앵거바딜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거라면 한 세기에 한 명도 사용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뜻이었다.
“또한 악마의 힘이 깃든 만큼 그에 타락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하지요. 참 묘하면서 신비로운 검이지 않습니까?”
“그러네.”
“이제껏 앵거바딜이 택해 온 주인은 모두 5성이었기에 가능성은 낮으나, 괜찮으면 트루드 경이 한번 쥐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바이에른 백작이 트루드에게 제안을 했다. 단순히 구경이나 시켜 주려고 데려온 것이겠지만, 이왕 온 김에 트루드도 만져는 보라는 이야기였다.
트루드 역시 성기사였고, 아까부터 앵거바딜을 탐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백작이 건넨 제안은 그녀로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현자에게 전수 받았던 지식을 통해 깨달은 바, 서약은 기사의 한계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었다. 그 덕분이라고 한들 다섯 번째 고리를 깨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건 어쩌면 앵거바딜이 트루드를 주인으로 택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트루드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주위의 고위 기사들은 미적지근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배반하고, 그녀가 앵거바딜을 뽑아 높게 들었을 때.
성검이 내뿜던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되었고, 온 공간에 빛으로 가득 들어찼다.
“이럴 수가!”
“……앵거바딜이.”
“서, 성검의 주인이 탄생했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튀어나온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 * *
앵거바딜이 바이에른 소속의 기사 외에 다른 기사를 택했다는 것은 분명 아쉬워할 만한 일이었다. 앵거바딜은 단순히 성력을 증폭시켜주는 것 외에도, 상상 이상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검이었으니까.
하지만 바이에른 백작은 결코 아쉬워하지 않았다. 피차 백작은 3황자를 돕기로 마음먹었고, 트루드는 3황자의 편이지 않은가. 덕분에 3황자의 전력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던 게지.”
그런 백작으로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앵거바딜이 어째서 4성인 트루드를 택했는지.
혹시 3황자와의 서약을 통해……
“그럴 리 없다.”
그건 아무리 3황자에게 푹 빠져있는 백작이라고 해도 과대망상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답은 간단하게 정리됐다. 신이 3황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니 그의 여기사에게 성검을 선사했다. 3황자를 지키기 위해서.
단순히 그렇게 귀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백작은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
“……그러하니 맹세를 철회하는 일은 없던 것으로 해도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앵거바딜이 5성이 아닌 기사를 택했다면 무슨 말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께서는 충분히 3황자 전하를 인정하고 계신다는 뜻이니.”
3황자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에 그 뜻을 미뤄 오던 백작은, 성검의 선택을 통해 가솔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특별한 일이긴 하군요.”
“신께서는 정말 3황자 전하를 밀어주시려는 건지…… 소인이 부족한 탓에 아직도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태초에 2성을 갖고 태어나셨으니 단단히 노여움을 보이신 것도 맞는데 말입니다.”
“시련을 주신 게지요. 미약했던 황자께서 시련을 딛고 성황이 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정도가 있지 2성은 심하지 않습니까.”
허나 여전히 3황자의 지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생각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 트루드가 보였던 비정상적인 실력 또한 3황자와의 서약 덕분이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가솔들이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이대로 지켜보면서, 추후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앵거바딜이 3황자 전하의 소유가 된 이상 싫든 좋은 우리는 3황자 전하가 승리하시기를 바라야 하는 입장 아닌가.”
만약 다른 황자가 성황이 되고, 앵거바딜이 그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바이에른은 다시 반환 받기 힘들지도 몰랐다.
기나긴 회의 끝에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았다.
반년.
딱 반년 동안 3황자를 예의주시하면서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는지, 어느 정도의 업적들을 이뤄내는지 확인하고 추후 결정하기로 마무리됐다.
바이에른 백작으로선 유예 기간을 번 것이었다.
* * *
바이에른에 머무르면서, 트루드는 검술 훈련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앵거바딜을 손에 넣은 이후로 오히려 그 열정은 더욱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백작은 트루드를 지켜보면서 앵거바딜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으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권능들과 훗날 깨우칠 수 있는 권능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이 검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도 저 말을 백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당사자인 트루드는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말씀드렸듯 앵거바딜에는 악마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놀라운 힘인 것은 분명하나, 결국 그에 잡아먹혀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앵거바딜에 의해 미쳐 버린 성기사도 있었다는 백작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 이제 천천히 봉인을 해제하십시오.”
약 이 주의 시간 뒤에 백작은 앵거바딜이 가진 모든 힘을 깨울 수 있도록 했다. 만약을 대비해 성기사 몇이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트루드는 눈을 감은 채로 앵거바딜을 들어 올렸다.
하얀 빛과 붉은 빛.
두 개의 이채로운 빛이 얽히고 얽히면서 기묘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직후 나타난 문구는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것들이었다.
「종자, 트루드에게 새로운 힘이 부여됩니다.」
「힘의 근원 일부가 공유됩니다.」
「대악마 루시퍼의 심장 박동이 전해집니다.」
「대악마 루시퍼의 봉인이 527일 후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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