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이후로도 쭉 파우스트에게 신성력의 운용에 대해 배워나갔다.
“상처의 크기에 맞게, 정확한 양의 신성력만 뽑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나 전하께서는 고리가 두 개뿐이니 더욱 많은 신경을 쏟으셔야 합니다.”
현자가 몇 번이고 강조한 부분이었다.
과한 신성력을 사용했다가 고리가 바닥나 낭패를 본 적이 여러 번이었기에, 세밀한 제어를 위해 많은 수련을 거쳤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지나친 양의 신성력이 확 쏟아져 나오고는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지?”
무안함에 그렇게 물을 때마다 파우스트는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양호한 정도가 아니라 훌륭하십니다. 신성력이란 모으려면 흩어지고, 흩트리려면 모이는 말썽쟁이와도 같은데 꼭 전하의 손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말썽쟁이…… 그래 딱 그런 느낌이다. 현자 아니랄까봐,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래도 현자가 말한 대로 나는 꽤 양호한 편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노력의 산물.
신성력을 다루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웠고, 눈에 띄게 발전하는 것을 보며 그 흥미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렇게 나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내가 죽을 사람을 살릴 수는 없겠지?”
기껏해야 내가 하는 것은 작게 난 상처를 재생시키는 것 정도. 그 이상의 치료는 지금으로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아직은 성장해 나갈 여지가 넉넉히 있었으며, 언젠가 맞닥뜨릴 한계가 어디일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장담 드리기는 힘드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례적으로 2성의 사제가 ‘구원’을 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 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현자는 내가 희망을 품도록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는 뜻.
그러니 나 역시 어떻게 하면 신성력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갔다.
그러던 중.
환자를 치유하다 문득 묘한 경험을 한 나는 곧장 파우스트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어린아이 같은 신난 표정을 하고 계시는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내상의 경우에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지?”
“내상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신체 내부의 상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파우스트는 곧장 답을 내놓았다.
“사실 신성력이 많은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우선 외상부터 치유한 뒤에, 병자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상이 있다고 판단하여 내부에 신성력을 주입하면 되니까요. 허나…….”
“내상의 경우엔 환부를 찾기가 힘들겠지.”
“정확하십니다. 그래서 외상의 위치와 부상의 경위만으로 어느 곳에 내상이 발생하였는지를 추측해야 합니다. 이 역시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여, 추측 부위를 넓게 성력으로 치유해야만 합니다.”
현자가 여태껏 내게 내상의 치유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황송하오나 많은 신성력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작은 내상이라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해결하기 힘드실 수 있습니다.”
내 신성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로 봐선 2성으로선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소리고.
“또한 신체 내부는 난해하게 구성되어 있어 숙련되지 않은 채로 내상을 치유했다가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컨대 심장에 과한 신성력이 가해진다면 박동이 정상 수치 이상으로 빨라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요. 이러한 이유로 숙련된 사제들도 내상의 치유는 가급적이면 자제하곤 합니다.”
신성력이 높다고 한들 내상은 건들지 말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난 뒤 내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웃음이 절로 새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막으며 현자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몸 안의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잘 알고, 내상의 위치까지 정확히 추정할 능력이 있다면 신성력이 낮아도 치료할 수 있다는 거네?”
현자는 여태껏 보지 못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 보였으나.
그건 의술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
외과 의사였던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 * *
신성력은 힐데스하임 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자, 힐데스하임이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한 세력을 갖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헌데 이상하단 말이야. 신성력을 가진 사제의 수가 채 5천도 안 된다지?”
5천만 명을 훌쩍 넘기는 힐데스하임의 인구 중에서 신성력을 쓰는 사제의 수는 5천 이하. 비율로 쳐도 0.01%가 채 안 되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신성력이 만능인 것도 아닌 모양이야. 사제라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던데?”
뛰어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들, 숙련도가 부족하다면 치유에 실패하는 일 역시 빈번했다.
그런데 어떻게 힐데스하임은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
힐데스하임 소속의 저명한 학자가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신성력이 가진 힘 자체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신에게서 선택받았다는 일념 하나로 힐데스하임의 주민들은 더욱 굳건해 질 수 있었지.”
신성력은 주민들의 믿음을 이끌어 내어 국가의 결집을 강화시켰다는 뜻이었다.
신성력의 가치를 절하하는 듯한 표현 때문에 힐데스하임의 주민들에게 더없는 비난을 받았으나, 타 국가의 학자들은 그의 말에 열렬히 동의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철언이라면서.
“그때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허나 정작 그 말을 했던 당사자는 한참 후에야 번복하는 듯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땐 ‘구원’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 거야. 확실히 4성 이상의 사제가 구원하는 모습을 보면…… 그건 기적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안 되더군. 신성력은 그 자체로 놀라운 힘이었던 게야.”
그리고는 덧붙였다.
“역시 말은 아낄수록 좋은 법이군.”
그 말을 했던 학자는 이제 정계에서는 완전히 은퇴하여, 현자라는 칭호로 황자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자들을 보며 또다시 기존의 관념이 깨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놀랍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1황자는 제대로 수련하기만 한다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5성의 보유자였고.
2황자는 그보다 부족한 4성이지만 방출력은 다른 4성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데다, 검술에 천재성을 보였다.
반면 그 둘과 비교하면 3황자는 너무할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 무투에 소질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타고난 신성력마저 2성이다.
그런데 정작 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것은 모두가 우습게 보는 3황자였다.
“내 생전 2성을 보고 놀랄 일이 있다니.”
고리가 온전히 무르익기에도 한참이나 남은 8살짜리 소년.
나이와 어울리지 않은 성숙함으로 황궁 사람들을 수도 없이 놀라게 했으며 배움에 있어 매사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허나 가장 놀라운 것은 지나치게 뛰어난 신성력의 제어를 보였다는 점이다. 3살 때 성력을 깨우친 것도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고작 5년만에 이 정도로 제어한다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대단한 제어 능력으로 그가 가진 신성력으로는 어찌하기 힘들 상처들을 거뜬히 치유해 냈다.
“그런다고 한들…….”
황위 경쟁에서는 목소리조차 내질 못하겠지, 중얼거린 현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외가가 없어 각종 불이익에 시달리는 3황자인지라,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현자가 최선을 다 했으나 그의 신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았다.
3황자의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자 현자의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몸 안의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잘 알고, 내상의 위치까지 정확히 추정할 능력이 있다면 신성력이 낮아도 치료할 수 있다는 거네?”
여태껏 수준 높은 질문으로 현자를 당황케 해 온 3황자가 처음으로 바보 같은 물음을 건네 왔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가정하는 거 아니야. 만.약.에.”
“가정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을 때…….”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해? 말은 아낄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어?”
그 말을 들은 현자는 아차 하며 실소를 지었다.
“……참, 제가 그랬지요. 예.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신성력의 효용은 배로 올라가겠지요.”
특히나 신성력의 제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3황자가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3황자가 황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허나 그건 현실적으로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려면 힐데스하임이 그토록 증오하는 흑마법사와 똑같은 짓을 해야 할 겁니다. 인간의 주검을 파헤치다 보면 신체의 구조가 파악 될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꼭 흑마법사 같은 쓰레기들이나 할 짓거리라는 거지?”
다소 불경스러운 표현이었으나 의미는 정확했다.
힐데스하임에서 인간의 주검에 손을 대는 것은 천벌 받을 일이었다. 그건 힐데스하임이 흑마법사와 앙숙이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 해부를 못하니까 몸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겠네.”
그럼에도 3황자는 계속 철부지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듯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현자는 불현듯 가슴이 뛰는 자신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노망이 났나, 별 생각이 다 드는군.”
자신의 상식을 이미 여러 번 뛰어넘었던 3황자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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