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대악마의 봉인 해제.
그게 세상의 멸망에 가까운 대참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성검을 직접 쥔 당사자, 트루드 역시도 루시퍼가 깨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하고, 현자한테 가서 얘기나 해보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기에, 역시 현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바이에른에서의 볼일도 끝이 났고 현자가 있는 클레이디크로 되돌아가려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이가 있었다. 2황자였다.
바이에른 백작은 나 대신 2황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미리 말씀이라도 주셨으면 환대식이라도…….”
“환대식 따위를 벌일 일로 온 건 아니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황자의 뒤에 쭉 서 있는 기사들은 척 보기에도 실력을 갖춘 황궁 소속의 정식 기사들이었다.
나는 백작의 옆에 서서 무슨 일인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성황 폐하의 명을 받아 반란군을 퇴치하러 가는 길이다.”
“반란군이라면 어떤 이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근방은 수시로 수색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이들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2황자는 그런 백작을 나무라듯 말했다.
“수색을 똑바로 안 한 게지. 아니면 한통속이라도 되는 거거나.”
“말이 지나치네.”
바이에른 백작이 자신에게는 무엇보다도 수치일 말을 듣고도 대꾸 못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끼어들었다.
“데미안. 너도 여기 있었군.”
내가 바이에른의 영지에 왔다는 소식을 몰랐을 리 없음에도, 2황자는 뻔뻔스레 그리 말하고 있었다.
“마침 잘 됐어. 흑마법을 쓰는 간악한 무리들이 핀스 강 너머에 숨어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이에른의 기사들이 좀 도와줬으면 해서 온 것인데, 그 잘났다는 너도 함께해 주면 좋겠군.”
2황자가 이곳에 온 의도가 다분히도 보였다. 내가 있는 걸 알고, 바이에른의 지원 요청하는 척하면서 나까지 데려가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내게 망신을 주려는 것이겠지.
물론 피해망상일 수도 있지만 위로 있는 두 황자들이 지금까지 써 왔던 수를 보면 꼭 이런 레퍼토리였다.
“2황자 전하. 흑마법사들이라면 아무리 경계한다 하여도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혹여나 3황자 전하의 신변에 위협이 생긴다면…….”
“나한테는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나 역시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일이다.”
“…….”
백작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잔뜩 어려 있었다.
“가보지 뭐.”
힐데스하임에서 이단이라 지목하며 기피 대상 1순위로 꼽는 흑마법사의 존재는 과연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바이에른 기사들의 전력을 살펴볼 기회이기도 했다.
게다가 2황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보기 좋게 망신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으니.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내일 당장 떠날 것이다. 백작은 바로 정예를 추려서 출전 준비를 마쳤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바이에른 백작은 준비를 위해 곧바로 떠났으며, 나 역시도 쉬고 있는 트루드를 찾아가 준비를 마치라 일러두었다.
“워낙에 위험한 존재들이니 저는 전하의 곁에만 붙어 호위를 맡겠습니다.”
트루드는 결코 자신을 떼어놓는 명령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그 뜻에 동의했다. 나부터 살고 볼 일이었으니까.
* * *
다음 날이 되고, 출전 준비를 마친 기사들이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쭉 늘어서 있는 2황자의 황궁 기사들, 그리고 바이에른 가의 기사들.
이렇게 보니 장관이었다.
정예만 추린 덕에 각 기사들이 내뿜고 있는 기운만으로 절로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장차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2황자는 익숙한 듯 선봉에 선 채로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의 뒤를 따라 황궁의 기사들이 일제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이에른 백작은 출발하기 전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전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거리가 꽤 되니 마차에 타고 이동하심이 아무래도 좋을 듯합니다.”
“괜찮다니까.”
클레이디크에서 보낸 몇 달의 시간 덕에 말을 타고 달리는 데는 꽤 익숙해져 있었으며, 체력 역시도 일반 사제들과는 비하지 못할 정도로 튼튼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말씀하십시오. 조금 늦추어도 상관없으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바이에른 백작도 고삐를 쥐었다.
“이랴!”
나와 트루드는 백작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달렸으며, 뒤로 수십의 기사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만치 앞에서 달리고 있는 2황자가 힐끔 내 쪽을 계속 바라보기 시작했다. 꼭 뒤처지기를 바라는 눈빛이었으나 아직은 끄떡도 없었다.
젊은 게 참 좋기는 좋았다.
한나절을 꼬박 달리면서도 전혀 뒤처지지 않은 채로 따라붙을 수 있었고, 작은 강이 나오고서야 기사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2황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뜻대로 되지 않은 듯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바이에른 백작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 있다.
“……여기 말입니까?”
휑하니 텅 비어있는 벌판. 작은 강이 줄기를 틀고 있을 뿐인 황폐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영 이상하기는 했다.
“이단 놈들이 희한한 마법으로 자취를 감춰 두었더군. 사제들이 흑마법을 무효화시키고 있으니 잠자코 대기하고 있도록.”
2황자의 말대로, 황궁에서 데려온 소수의 사제들은 원형으로 서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성력이 마법진을 따라 아름다운 선형을 그려냈다.
성력이 흩날리는 공간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더니 주위를 감싸고 있던 풍경이 일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쭉 깔려 있던 잔디는 기분 나쁜 흑색의 땅바닥으로 변했고, 흐르던 강물이 멈춰 섰다.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기이한 풍경. 그리고 이 공간을 메우는 기분 나쁜 기운 탓에 숨이 턱 막혀왔다. 반응을 보니 모두가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흑마법.
성력과는 서로 상극이라는 마법답게, 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흑마법의 기운만으로 가슴 속의 고리는 삐걱거리고 있었다.
“빠르게 끝내야겠군.”
2황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보유하고 있는 성력만 점차 동이 날 것이다.
허나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길. 길은 눈대중으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쭉 늘어져 있었다.
“우선 한쪽을 택해서 나아가 본 후에, 잘못되었다면 반대쪽 길로 다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력으로도 어느 쪽 길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으니 백작이 제시한 방법도 꽤 합리적인 듯 보였으나,
“이곳에 들어온 순간 이단 놈들은 눈치를 챘을 거다. 이미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겠지. 잘못된 길을 택했다간 필시 놓치고 말 거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병력이 이쪽 길로 가지. 바이에른 경은 자네 기사들을 이끌고 저쪽으로 가.”
양 병력을 각각의 길로 나누자는 뜻이었다. 그만큼 적을 만난다면 위험 부담이 커지는 것이었지만 백작은 거부하지 못했다. 그것 외에 더 적절한 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한 탓이겠지.
“……알겠습니다.”
2황자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력들을 이끌고 왼쪽 길로 사라져버렸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위험한 기운이 계속해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후방에서 지켜보다 부상당한 이들만 돌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알겠어.”
나 역시도 전열에 서서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상대가 성력에 상성인 이들이라면 성력으로 한 방 먹여주는 것도 꽤 강한 위력을 보일 테지만, 지금 상황에선 효율이 좋지 않다.
성기사가 검으로 적을 베어내고, 나를 포함한 극소수의 사제는 만약을 대비해 치료 인원으로 후열에 빠져있는 것이 맞다.
“그럼 계속 가겠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적막해진 사방. 말발굽 소리만 계속해서 울려댔다.
그러다 그 소리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순간에 뚝 끊겼다. 바이에른 백작이 손을 들어 올려 기사들을 멈춰 세운 탓이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로브를 둘러쓴 채로, 발이 없는 흑색의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이 흑마법사임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대들이 이곳을 만든 이단들인가?”
백작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이단이 무엇을 뜻하는가.”
“신의 은총 덕에 살아가면서도, 신에 배반하는 부덕한 힘을 깨우쳤냐는 뜻이다.”
“우리도 그쪽들처럼 신을 따르지. 우리만의 신 말이야.”
그 말과 함께 흑마법사들의 손에서 일제히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분께서 주신 힘이지. 결코 부덕하지 않은. 그대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단 말이지?”
「성력이 적대되는 기운을 만나 위력이 약해집니다.」
「성기사들의 사기가 저하됩니다.」
솔직히 나도 신성 제국의 황자로 살아가는 입장이지만, 내가 보기엔 흑마법사와 사제는 비슷한 입장이었다.
사제는 신을 따르며, 흑마법사는 저들의 말대로 자신들만의 신을 따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받으며 그 힘으로 자신의 신을 위해 살아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닮아 있었으나,
“전하. 저들은 힘을 얻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땅치 않아 하는 이들입니다.”
트루드의 말대로 흑마법사는 마법 하나를 익히기 위해 수십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이들.
썩어 빠진 힐데스하임 쪽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저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은 사실이었다.
「역설의 권능을 발휘합니다.」
「성기사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신탁’을 전합니다.」
난데없이 신탁이 들려온 탓일까, 바이에른의 성기사들이 일제히 내 쪽을 바라봤다.
“……전하. 혹시 신탁을 들으셨습니까.”
“어.”
애써 들은 척했다.
신탁은 결코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신께서 전하를 보살피심이 분명합니다.”
신탁이 전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성기사들이 사기를 되찾고 불타오릅니다.」
그리고 역설의 권능은 단순히 신탁을 전해는 것을 넘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능력.
「약화된 성력이 조금이나마 원래의 힘을 되찾습니다.」
“가 보자.”
덕분에 우리 쪽의 피해가 줄어들 것만은 확실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