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1)
제41화
“황궁에서 우리 존재를 눈치챈 모양이다. 입구 쪽에 성력을 품은 이들이 대거 들어왔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힐데스하임 내에 거처를 잡은 흑마법사들은 실제로 꽤 오랜 시간을 숨어 있었다.
애초에 고위 흑마법사들이라면 ‘심연의 마탑’으로 들어가 더욱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그만한 능력은 되지 못했다.
그러니 황궁에서 보낸 성기사들이라면 결국엔 죽은 목숨일 터.
“계획대로 간다. 소환을 마칠 때까지 앞에서 시간을 끌어.”
이 중에서 나름 고위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힘을 모은다면, 수명의 절반을 소비하여 소악마 정도는 소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성기사들이 얼마나 몰려왔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차피 죽은 목숨,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환 시간을 벌기 위해서 비교적 경지가 낮은 이들이 앞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지체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흑마법사들의 상황은 괜찮았다. 흑마법진이 잔뜩 깔린 거처에 성기사가 들어온 것이니, 당연히 저들의 힘은 약화되고 흑마법사들의 힘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할 필요는 없겠군. 괜히 마법진이 엉켰다간 큰일 날 테니 천천히, 확실하게 해.”
허나 여유롭던 상황이 급반전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흑마법진의 힘을 약화시키고 기사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한 사내. 아니, 소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한 앳된 얼굴의 남자였다. 일순 그 소년에게서 뿜어져 나온 힘이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었다.
“……저자는 누구지?”
마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흑마법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을 엿보다가 저들의 대화를 통해 저 소년이 3황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3황자라면…… 그 덜떨어진 황자 아닌가?”
“나도 그렇게 들었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군. 황궁에서 부러 낸 소문이었던 게야. 이렇게 된 거, 서둘러야겠어.”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이 속도대로라면 소환은 절반도 되지 않은 채로 성기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너는 계속해서 소환을 진행해라. 나는 구울들을 생성해서 시간을 끌어 볼 테니.”
“내가 직접 가서 3황자를 암살하고 오겠다. 다른 능력을 별 볼 일 없는 듯하니. 저놈만 죽이면 전력이 많이 약해질 거다.”
흑마법사들의 유리함을 대폭 완화시키고 있는 주범 3황자. 그를 제거한다면 확실히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암살에 특화되어 있는 고위 흑마법사. 그가 3황자를 암살하기 위해 빠르게 이동했다.
기척을 최대한 숨긴 채로, 근처까지 이동해 매복해 있던 흑마법사는 자신의 썩어 문드러진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마음속으로 영창을 외우자 그 오른팔이 새까맣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악!
그리고 그대로 3황자를 향해 돌진했다.
민간인 100명을 제물로 바쳐 얻은 육체 속도 강화. 그리고 사제 5명을 제물로 바쳐 얻은 극한의 공격력.
전장에서 날고 긴 성기사라면 어찌저찌 받아낼 수 있는 공격이겠지만, 황족으로 태어나 제 잘난 줄만 알고 살아온 소년이라면 단숨에 꿰뚫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파앙!
허나, 흑마법사의 일격은 어림도 없이 튕겨 나왔다. 3황자가 만들어 낸 수호 마법에 의해서.
“……젠장.”
정말 소문으로 들은 3황자가 맞는 것인지, 흑마법사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공격을 반응하는 것을 넘어, 성공적으로 반응하고 오히려 그를 튕겨내기까지 했다.
단순히 성력이 대단하다뿐만이 아니라, 전투 센스나 실전 경험까지 뛰어나다는 것을 뜻했다.
흑마법사가 재차 3황자에게 공격을 가하려 했을 땐, 이미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위에 포진한 성기사와 사제들이 성력으로 옭아매고 있는 탓이었다.
“어이가 없군.”
그릇된 소문에 속아 3황자를 우습게 보고…… 아니, 애초에 우습게 보지도 않았다. 자신의 전력을 실은 일격이었으니 가벼이 보지 않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으리라.
“네 죄는 신께서 직접 물으실 것이니,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성기사의 그 말과 함께, 흑마법사의 목이 달아났다.
* * *
흑마법사는 요상한 마법들을 많이 쓴다지만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놈들과는 달리 정말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장.
언젠가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인 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생각보다 덤덤했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쓰레기들이라 생각해서 마음이 편한 탓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 익숙해진 것일까.
아마 둘 다겠지.
흑마법사들과 함께 구울들이 섞여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수의 구울들. 그 개체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희생시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성기사들은 노련하게 몰려드는 구울들을 제거했지만 그 수는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이미 이곳까지 달려오는데 한나절을 소모한지라 피로는 피로대로 쌓여 있었고 계속되는 전투는 위험했다.
“사제들 전부 모여봐.”
나는 이곳에 커다란 홀리 프로텍트를 만들기로 했다. 잠시나마 일행 전부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사제들의 수와 성력을 대충 계산해 보니 충분할 듯 보였다.
그렇게 작업은 착수되었고, 성기사들이 구울과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동안 프로텍트는 점점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상자입니다!”
그때 성기사 한 명이 급하게 한 명을 안고 왔다. 나는 사제들이 계속해서 프로텍트 형성에 집중하게 한 뒤, 부상자를 향해 달려갔다.
“경위는?”
“흑마법사에게 오른쪽 팔을 공격받고 쓰러졌습니다.”
투구를 벗겨보니 창창한 나이의 젊은 청년이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놈인데, 꼭 참여하고 싶다고 떼를 썼다……며 백작이 슬쩍 소개한 적 있는 성기사였다.
성기사의 말대로 오른쪽 팔에는 심각한 부상이 있었다. 막대한 양의 출혈.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그의 팔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흑마법사의 무서운 점이었다.
재빨리 성력으로 치유를 해 봤지만 속도만 조금 늦출 뿐, 팔에서 시작된 감염은 점점 더 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사제들을 불러 치유하게 해 봤으나 역시나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치유를 전문으로 하는 4성 이상의 사제가 와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4성의 성기사는 이곳에도 있었지만, 그만한 경지의 사제는 없었다.
무력함에 가슴이 쉴새 없이 뛰었지만 그런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냉철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미안한데, 절단해야겠다.”
아직은 감염이 팔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었으니 빠르게 잘라낸다면 목숨까지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외상에 의한 감염으로 절단한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로 인해 환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단이라는 단어에, 누워 있던 기사가 눈을 번쩍 떴다.
“쿨럭! 아,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러다 진짜 죽는다.”
“주, 죽으면 그것 역시 신의 뜻이겠지요.”
“절단해서 살면 그것도 신의 뜻이고? 생각 참 편하게도 하네.”
“……기사로 살기 위해 태어난 몸. 쿨럭! 팔을 잃으면 더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놈의 고집은 확고했다.
황자의 권위를 운운해가며 협박에 가까운 설득도 해 보았으나 철저히 거부했다.
“부디 제 신념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죽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나, 더이상 성기사로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더없이 두려운 일입니다.”
참 바보 같은 말이었다.
신을 위해, 신의 뜻대로, 신을 통해서만 살아가는 바보 같은 놈들.
그런데 그런 놈들과 같이 지낸 세월이 꽤 길어져서일까. 이 덜떨어진 성기사의 신념이 새삼 내 가슴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외과 의사 정하늘이었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부탁. 하지만 황자 데미안으로서 받아들이고 말았다.
“길어야 5시간이다. 원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가.”
몸의 외상만을 치유한 채로 기사를 보내주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는 이상이 없으나, 결국엔 몸 안을 감염시킨 흑마법의 기운이 그의 숨을 거두고 말 것이다.
“으아아아아!”
기사는 고함을 내지르며 누구보다 용맹하게 나아갔다. 구울을 베어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끝이 없던 구울의 수가 점차 줄어가고 간간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던 흑마법사들은 이제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끝일까. 어디까지 가면 이들을 이끄는 놈이 나오는 것일까.
계속해서 쭉쭉 나아가다, 문득 발걸음이 뚝 하고 멈춰 섰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느낀 불안한 기운. 새까만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 목이 죄인 듯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공포.
이런 것은 이 세상에서도 처음이었다. 스펙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성기사들 중에서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는 이들까지 나왔다.
연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형상이 조금씩 드러났다. 집채만 한 몸집. 새빨간 전신. 머리 위의 작은 뿔 두 개와 등 뒤의 날개.
“아, 악마다!”
“저, 정신 나간 놈들이 악마를 소환하다니!”
악마를 보고는 바이에른의 정예 성기사들조차도 일제히 겁에 질리고 말았다.
[가소롭군.]그 말 한마디가 심장을 푹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작 이딴 놈들을 상대하라고 나를 부르다니. 나야 거저먹는 거니 좋지만 말이야.]대꾸는커녕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내가 나서봐야 상대조차 안 된다는 것을 알아챈 탓이었다.
“으아아아아!”
그런데 홀로 소리를 지르려 뛰쳐나가는 성기사 한 명이 있었다. 아까 심각한 감염을 입은 그 청년이었다.
콰앙!
[재밌군. 패기는 좋다.]악마는 손조차 쓰지 않고 성기사를 튕겨냈다. 그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거세게 처박혔다.
그럼에도 그는 검을 땅에 꽂고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터덜 터덜.
기세와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성기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위대하신 전하께서 주신 기회다! 이렇게 날려버릴 순 없……!”
콰앙!
[누가 위대하단 말이냐. 피차 모두 똑같이 하찮은 인간 주제에.]다시 한번 처박힌 성기사.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기어서 악마를 향해 나아갔다.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로 살 수 있어 영광이었……!”
파스스.
악마의 손가락질 한 번에 성기사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바보 같은 행동은 전세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바이에른 성기사들의 사기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 성기사들이 각성합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