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는 사제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들이었다. 역할과 존재 가치에 큰 차이가 있는.
사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능력이 있지만 성기사들처럼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없으며, 성기사 역시 간단한 치유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사제들과 비한다면 효력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사제는 치료에, 성기사는 수비와 공격에 치중해야 하는 만큼 각각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도 달랐다.
“끝까지 살아남아 더 많은 이들을 살려야만 한다.”
는 것이 사제들의 기본적인 행동 지침이었으며,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것이 전투다. 허나 그것은 신께서 그대의 노고를 인정하고 불러들이심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
는 것이 성기사들의 마인드였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누구보다 신실한 성기사 트루드는 당연히 그 지침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조차도 감명받게 하는 남자가 있었다.
“……기사로 살기 위해 태어난 몸. 쿨럭! 팔을 잃으면 더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기사의 심지가 굳게 세워진 사내. 이곳에 있는 성기사들 중 전력은 가장 약할지언정, 그 의지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황자는 그런 성기사를 말렸다. 사제로서는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때때로 성기사와 사제는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부딪히고는 했다.
“부디 제 신념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죽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나, 더이상 성기사로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더없이 두려운 일입니다.”
3황자는 꼭 바보 같다는 얼굴로 성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점차 그 얼굴이 변해갔다. 안쓰러움. 꼭 그렇게 생각하는 성기사를 동정하듯 바라보다가,
“길어야 5시간이다. 원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가.”
이내 그 동정심마저 사라지고 3황자에게 남은 감정은 꼭 경외심처럼 보였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아랫사람에게, 그리고 완전히 다른 족속이라 볼 수 있는 성기사에게 저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굳이 트루드가 말하지 않아도, 지켜보던 성기사들 역시 모두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 성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흑마법사와 구울들을 정리하던 와중에 3황자가 혼잣말을 내뱉는 것이 들려왔다.
3황자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노라고, 3황자 전하께서 이해해 주신 것만으로도 모두가 감사함을 느끼고 있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트루드는 3황자에게 그러한 위로를 전하는 대신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적들을 베어냈다.
차츰 적들이 줄어가는가 싶더니 일순간에 공간의 기운이 반전되었다.
심상치 않은 것이 소환되었음을 모두가 직감하고는 어두운 곳을 바라보았다.
쿵.
집채만 한 악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성기사들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들 역시도 인간이었기에. 애써 신에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었으나, 악마의 존재는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했다.
근원적인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5성의 성웅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완전히 예외적일 수는 없었을 터.
모든 성기사들이 악마를 보고 겁에 질려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정녕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장 내 심장을 찌르지 않고 뭘 하는 거지?」
「멍청하기 따로 없군. 신의 거짓말에 속아 멍청한 신념을 갖고 있는 자들이라니.」
사방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속삭임.
압도적인 힘. 위압적인 공포.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악마의 위세에 몇몇은 검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성기사들이라 하여도 악마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악마를 소멸시킨다고 해도, 심지가 연약한 이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사탄이 남긴 악몽에 시달리다가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입술을 꾸욱 깨문 트루드가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수치스럽게도 그녀의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것은 그녀의 심장에 있는 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이 내린 고결한 힘이, 무언가에 턱 가로막힌 듯 발현되지 않았다.
좌절감이 몰려들어 그녀의 온몸을 잠식시키던 그때였다.
“으아아아아!”
이곳에 있는 성기사 중 가장 기운이 약한 사내. 3황자의 이해심 덕분에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기사.
바이에른 백작도, 트루드도 아닌 그 사내가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쾅!
수없이 넘어지고, 내팽개쳐지고, 마침내 온몸이 찢어발겨졌다.
헌데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로 살 수 있어 영광이었……!”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작은 사내가,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우다 죽었다. 성기사의 신념에 충실히 살아가다 누구보다 명예로운 죽음에 이르렀다.
그것은 성기사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성기사들의 사기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 각성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면역됩니다.」
로프처럼 온몸을 감싸고 있던 위압감이 툭 끊기며 온몸을 해방시킨 기분이었다.
트루드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얼어붙어 있던 모든 성기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화악!
모든 성력을 쥐어 짜낸 오러. 좁은 동굴이 눈조차 뜨기 힘들 정도로 환하게 밝아졌다.
콰앙!
성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러 악마의 몸통을 타격했다.
악마 역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버러지 한 놈 때문에 귀찮게 되었군.」
두 손과 날개를 휘둘러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쳐냈다.
쾅!
악마에게 얻어맞은 성기사는 저만치 날아가 벽에 박혔다. 그럼에도 다른 성기사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악마의 몸에 차츰 생채기가 났다. 워낙에 튼튼한 몸인지라 그 이상의 상처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푸욱!
그나마 얇은 부위인 날개에 바이에른 백작이 검을 찔러넣었다.
「크윽. 이 벌레 새끼들이……」
악마는 자신을 찌른 바이에른 백작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일반적인 성기사라면 반응도 하지 못할 속도.
하지만 바이에른 백작은 놀라운 속도로 검을 회수하여 그 손을 막아냈고,
“크윽.”
다행히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상황이 순탄치 못함을 인지한 트루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성력을 발현시켰다.
얼마 전 바이에른에서 하사받은 성검 ‘앵거바딜’.
앵거바딜은 꼭 고리 한 개가 더 생겨난 것처럼 놀라운 성력을 제공해 주었지만, 앵거바딜이 가진 진정한 힘은 그것이 아니었다.
악마를 잠재운 검. 사탄의 심장을 통해 그 힘을 흡수한 성검聖劍이자…… 마검魔劍.
「대악마 루시퍼의 힘이 극히 일부 깨어납니다.」
「대악마 루시퍼의 봉인이 3일 앞당겨집니다.」
「섞일 수 없는 두 힘이 만나 새로운 힘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순간 모두가 트루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기사, 악마, 3황자.
제각기 다른 시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뜻을 해석할 시간은 없었다.
「오랜 시간 사용하면 힘에 잠식될 수 있습니다.」
트루드의 검에서 꼭 핏물과도 같은 선홍빛 기운이 퍼져 나왔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파앙.
바닥을 박찬 트루드가 놀라운 속도로 악마를 향해 발검했다. 트루드 본인마저 당황할 정도로 급상승한 속도와 위력.
쾅!
악마는 간신히 트루드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트루드의 검을 막아 낸 악마의 날개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그리곤 곧이어 그 선을 따라 날개가 쭈욱 찢어졌다.
「이, 인간 놈이 어떻게 그분의 힘을……!」
악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트루드를 향해 물었으나,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다시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악마는 재빠르게 바닥을 박차 그 검을 피해내긴 했지만 발끝에 트루드의 검이 스쳐 생채기를 냈다.
날지도 못하는데다 다리마저 절뚝거리게 된 악마는 제대로 도망조차 칠 수 없었다.
「크큭…… 그래, 네가 그 힘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인간의 정신으로는 고작 1분이 최대겠지. 그 시간만 버틴다면…… 큭.」
트루드는 악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검을 크게 베어냈다.
악마의 말대로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몰랐다. 이미 악마의 힘을 사용하면서 머릿속으로 대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다.
「좋지? 힘이란 거 말이야.」
「당장에도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어.」
「순식간에 괴물이 될 수 있는 힘을 주겠다.」
「그대의 위선적인 신을 버리고 나와 계약을 하는 것은 어떠한가?」
평소라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말들이, 이상하게 그녀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있었다. 악마의 말에는 그녀를 약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콰앙! 콰앙!
도망치는 악마를 쫓으며 빠르게 검을 휘둘러댔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악마에게서 처음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악마가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성기사들은 그 웃음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까지군. 그래, 인간 치고 그분의 힘을 오래 견디기는 했다. 대단해.」
성기사들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정말로 악마의 힘에 잠식되어 버린 것인 건가.
트루드는 악마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새빨갛게 물들어져 있었다.
「대악마시여! 제가 남은 버러지들을 처리하겠……」
악마가 트루드를 향해 말을 하고 있을 때, 별안간 악마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트루드가 휘두른 일격이었다.
“와아아아아!”
“트루드 경이 기적과도 같은…….”
성기사들이 승리를 직감하며 트루드를 향해 환호를 날리려 했지만 어쩐지 그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붉게 물든 그녀의 눈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며, 검에서 나오는 붉은 기운 역시도 멎지 않았다.
“……트루드 경?”
“괜찮으십니까?”
성기사 몇이 그런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 했으나, 트루드는 본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오지 마!”
흠칫.
순간 느껴진 섬뜩함에 성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터벅, 터벅.
그럼에도 트루드에게 다가가는 이가 있었다.
“트루드.”
3황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