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엘프의 신체에 대해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보통의 사제들이라면 대상이 어떤 종족이든 상관이 없었을 거다. 단지 몸 전체에 성력을 주입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부족한 성력을 커버하기 위해 효율을 극대화시켜야만 하는 나로서는 신체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건 대상이 인간이든, 인간과 다른 종이든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몸과는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많은 엘프의 몸.
고작 방금 한 명을 살려냈다고 엘프의 신체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한 건 결코 아니었다. 의학 공부를 그렇게 오래 했음에도 인간의 몸조차 때론 미지의 영역처럼 막막하게만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몸속의 성배는 내가 새로운 신체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도왔고, 그 덕에 미아가 흑마법에 물드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
흑마법에 휩싸여가던 미아에게 생기던 변화. 그 종착지가 결국에는 다크 엘프였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도 어차피 스무 살이 되면 다크 엘프가 될 운명 아닌가?”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미아. 내가 손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죽지 않았을 거다. 지금 여기 있는 다른 이들처럼 다크 엘프가 되었을 뿐이겠지.
그리고 어차피 악마의 저주를 통해 다크 엘프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이들은 어째서 그토록 막으려 했을까.
“다크 엘프의 삶은 고독하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지독할 정도다. 허나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그 고독함이 점차 무감각하게 변해간다는 거다.”
“무감각해진다면 좋은 것 아닌가?”
“고통은 없어도 상처는 심해지는 법이지. 엘프로 살아가던 시절. 우리는 그 찬란한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간다. 모르겠다. 이 아이에겐 차라리 엘프의 삶을 줄이는 것이 나았을지도. 하지만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늘려주고 싶다.”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라면 그럴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라도 얼마든 하고픈 것이 부모 된 자의 마음이었다.
더불어 다크 엘프에게는 엘프로서의 삶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무감각해졌음에도 그리 말하는 것을 보면.
“갈 곳은 있나?”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저주받은 몸으로는 아무 데서나 살아갈 수 없으니.”
내가 내걸 조건은 다크 엘프의 저주를 풀어주는 것.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할 수도 없었고, 오랜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나를 따라오면 거처를 마련해주지.”
“그대 같은 사람은 우리가 쉴 곳을 찾아줄 수 없다. 우리는 흑마법사들이 만든 영역에서만 숨쉴 수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그런 곳을 찾아봐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대는 사제가 아닌가? 이곳 신성 제국에서는 흑마법사를 찾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흑마법사들이 그대 앞에 모습을 드러낼 리도 없다.”
“그렇겠지. 신성 제국이라면.”
하지만 중립 지역 클레이디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클레이디크에서도 흑마법사의 존재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근방에 숨어 있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설령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르민 후작에게 부탁을 해서 발칸 제국 쪽 흑마법사들과 주선을 맺어 줄 수도 있었다.
“클레이디크라. 그대들의 왕에게 버림을 받은 모양이군. 헌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그대들의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행위일 텐데.”
이유야 충분히 있었다.
“훗날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무얼 말하는 거지? 우리 일족의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말 못 하겠네.”
철저히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안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종족, 다크 엘프.
“그럼 거절하겠…….”
“과거를 되찾게 해주지.”
하지만 이들을 성공적으로 정화시키고 엘프로 돌려놓는다면 얘기는 달랐다.
“……뭐?”
“말 그대로다. 엘프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게. 백 퍼센트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 역시 엘프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너희를 돌려놓지 못한다면 너희들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필요는 없어.”
“그 뜻은…….”
“나는 엘프의 힘이 필요한 거지, 다크 엘프의 힘이 필요한 게 아냐.”
인간은 갖지 못하는 엘프만의 힘은 내게 큰 전력이 될 것이며,
“대악마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루시퍼를 봉인시키는 데 엘프는 없어서는 안 되는 열쇠와도 같은 존재였다.
비록 대악마를 잠재우며 엘프 일족은 더없는 고통에 빠지게 되었지만, 이들은 엘프가 된다면 다시금 악마 소멸을 도울 것이다.
누구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대의를 위해서라면 몇 차례고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전생에서도 간혹 봤던 그 멍청한 놈들처럼.
물론 그 우둔함이 괜히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뒤로 열심히 응원하기도 했었다. 지금 역시도, 마냥 엘프들을 이용하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 보면 그대들을 그렇게 만든 것에 인간의 지분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기도 참 미안한데.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너는 그 인간들과는 다르군.”
“모든 인간들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당신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 줄 거고.”
하지만 저들은 부정적인 면모로 가득 찬 다크 엘프이기에 내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당시라고 해서 부정한 인간들만 있던 것은 아니다.”
엘프가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최전방에서 싸우던 성기사들은 우리보다도 더욱 용맹했지. 엘프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성웅이라 불리는, 최정상에 올랐던 극히 일부의 성기사들. 그들 역시 대악마와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다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건 그들의 역할이 아니었지.”
결국 승자의 모든 혜택을 거머 쥔 것은 황좌에 있는 성황의 것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성황의 자리에 기어코 오르겠노라, 그렇게해서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엘프는 인간에게 얼마나 위대한 영웅이었는지 바로잡겠노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로 엘프를 속이는 건 그들이 말하는 ‘부정한 인간’이나 할 짓이었으니까.
“상관없어.”
다크 엘프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뭐?”
“애초에 그런 걸 바랐던 것이 아니니까. 우린 평화로운 삶을 계속해서 살고 싶었을 뿐이야.”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눈에 아주 조금이지만 희망 비슷한 것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삶을 꼭 되찾아줬으면 좋겠군.”
그러면서 다크 엘프가 본인들이 몰고 온 흑마 위로 올라탔다.
“뭐해? 갈 거면 빨리 가자고. 우리한텐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다크 엘프는 자신의 일족들에게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미리 합의라도 본 듯이 일제히 말 위로 올랐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으며 나도 말 위로 올라탔다.
그리곤 맨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클레이디크를 향해서.
* * *
발칸 제국의 아르민 후작은 여전히 클레이디크에 남아 성곽 수비 임무에 앞장서고 있었다.
자신의 영지를 갖고 있는 후작이 중립 변경에서 직접 검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제국 내 정치 싸움과 영토 전쟁이 활발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영지를 뒷전으로 하고 더욱 많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몸소 나선다니.
귀족들의 일을 잘 모르는 일개 병사들조차도 아르민 후작이 얼마나 대단한 선택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민 후작이 이곳에 없었으면 얼마나 더 큰 사상자들이 발생했을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민 후작이 클레이디크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데미안 힐데스하임.
비록 적국의 황자이자, 성황 후보이며, 언젠가는 자신이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의 성품과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다시 그를 보기 위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민 경. 3황자께서 돌아오고 계신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더욱 늦어진 3황자의 귀환 소식에 아르민 후작은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을 준비해라. 마중을 나가 볼 테니.”
어차피 클레이디크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에 자신이 3황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발칸 제국 전역에 퍼졌을 터.
추후 누군가가 그걸 문제삼는다면, 중립 지역의 수호를 위해 신성 제국과 불가피하게 손을 잡은 것이라 둘러댈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걸 명분으로 내전을 일으킬 만한 귀족들이 몇 명 정도 머릿속에 있었으나, 군사력으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모르겠군. 이것이 맞는 것인지.”
신성 제국의 황족들은 백성들을 허황된 신앙으로 기만하는 쓰레기들이다. 어릴 적부터 교육받았던 내용들에 의해 형성된 가치관이 슬슬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회의감에 빠져있던 아르민 후작의 눈에 말을 이끌고 오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3황자의 깃발을 본 아르민 후작은 곧장 말을 이끌고 그쪽으로 달려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성대한 환영식을 열고 싶었지만, 3황자는 그런 데 쓰는 비용과 인력을 극도로 싫어하는 참된 귀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제했다.
그런데 3황자 무리와 가까워질수록 아르민 후작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3황자의 뒤를 따라오는 일련의 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피부색과 그에 걸맞은 흑마를 타고 있는, 정체불명의 종족.
마치 역사서에서 묘사되었던 엘프와 꼭 닮아 있었다. 뾰족한 귀와 조각 같은 외모. 허리춤의 단검과 등에 맨 기다란 곡궁.
하지만 순백의 피부는 칠흑빛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거친 듯한 인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엘프와 정반대였다.
게다가……
“지독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3황자 전하께서 쫓기시는 건가.”
순수한 자연의 힘과 정령을 부린다는 엘프들에게서 흑마법의 아우라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3황자가 위험에 처한 것이라 판단한 아르민 후작은 검을 뽑아 들고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3황자를 지나쳐 다크 엘프의 목을 베어버리려던 찰나.
“잠깐! 그럴 필요 없어요.”
3황자가 아르민 후작을 저지시켰다.
“예?”
아르민 후작이 공격성을 드러낸 탓에 이종족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고 있었지만, 3황자를 노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3황자는 그들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이끌고 온 것뿐.
“저들은…… 대체 누굽니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흑마법을 다루는 이종족과 신성 제국의 3황자가 한 편일 수가 있다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