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클레이디크 영지로 돌아가던 길, 생각에 잠겨 있는 아르민 후작에게 물었다.
“필시 저희 제국의 누군가가 일으킨 일일 겁니다. 떠오르는 이는 있으나 명확한 물증이 없으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지요.”
아르민 후작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 나로서도 괜히 답답한 일이었다.
“허나 한번 실패한 이상 당장 또 그런 일을 꾸미지는 못할 겁니다. 염려 마시지요.”
“염려는 누가 했다고요.”
“지금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한 아르민 후작이 피식 웃었다.
“전하를 만난 뒤로 힐데스하임에 대한 제 생각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전하 같은 분이 계신다는 것만 해도 신성 제국은 꽤 괜찮은 곳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칸 제국엔 아르민 경 같은 사람도 있잖습니까.”
발칸 제국과 힐데스하임 신성 제국.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 속에서, 발칸 쪽에 이런 귀족이 있을 줄도, 이런 사람과 가까워질 줄도 몰랐다. 그건 아르민 후작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다고 양쪽 제국이 정상이라는 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내가 보기엔 발칸이나 힐데스하임이나 둘 다 썩을 대로 썩어 있는 국가였고,
“허나 저와 전하는 영향력이 다르지요. 전하께서 신성 제국의 군주가 되신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찾아올지……. 많은 이들이 전하를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아르민 후작의 말대로 나에게는 힐데스하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위로 있는 두 황자를 제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나, 점점 욕심이 커지고 있었다. 이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것 참 위험한 말이네요.”
누가 들었으면 아르민 후작을 역모로 몰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말.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제국 쪽에서 제 목숨을 앗아가려 했는데도 충성을 맹세하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니겠습니까.”
아르민은 그것이 영 화가 난 것인지 평소보다도 더욱 민감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쌓여 있었을 생각들을 꺼내놓았다.
“……차라리 제가 힐데스하임 직할이었다면 좋을 뻔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전하 같은 분을 모실 수 있었을 텐데.”
“아르민 경.”
나 역시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눈치를 보지 않고 아르민과 더욱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더라면. 그가 공식적으로 내 편의 사람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굳이 지금 논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예?”
“세상일은 모르는 거지 않습니까. 힐데스하임도 본디 섬에서 시작된 작은 국가였죠. 주위의 영토를 하나하나 편입하면서 지금의 제국이 완성된 것이고.”
아르민 후작령이 언제까지나 발칸 제국의 영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훗날을 도모하죠.”
“알겠습니다. 전하의 깊은 뜻에 또다시 탄복할 뿐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클레이디크로 도착해 있었다.
“저희 쪽에도 전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힐데스하임 쪽 이들과 재회를 마치시고 그들에게도 인사 정도는 해주시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민 후작은 자리를 비켜주겠다며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전하!”
제일 먼저 나를 향해 달려온 건 칼로스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소년기라 그런가 못 본 새에 키가 훌쩍 커 있었고 덩치도 조금은 우람해져 있었다.
하지만 내게 달려온 뒤 한참이나 숨을 고르는 엉뚱한 모습은 그가 여전하다는 걸 보여줬다.
“잘 지냈나?”
“헉, 헉. 예. 전하께서 전해주신 지혜 덕분에 여러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저로선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게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별일은 없었고?”
“늘 똑같기야 한데, 요새 들어 부상자가 늘고 있기는 합니다.”
“마물의 수가 늘었다면서?”
아르민 후작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침공해오는 마물과 몬스터의 수가 1.5배가량 늘었다는데, 사제와 의원들이 활약해주는 덕에 부상자의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단다.
“예. 어찌 된 영문인지 몰려오는 수가 늘어 병사들이 더욱 고생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제분들 역시 지친 기색이 날로 늘어갑니다. 이대로면 조만간 감당이 안 될 거라는 말도 나오고 있었는데, 전하께서 돌아와 주셨으니 걱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것이 악마의 부활이 가까워져 가면서 생기는 변화라는 걸 트루드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날 거라는 것까지.
“흠. 벌써 감당이 안 되어 갈 정도라면 큰일이기는 하네.”
“그래도 전하께서 오셨지 않습니까. 아, 혹시 결례를 범한 것이라면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께서 대의를 펼치시는데 이곳의 일이 전하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면…….”
“아냐. 그런 건 아니고. 계속 여기 있긴 할 건데, 나 한 명이 보탠다고 뭐 얼마나 크게 달라지겠어.”
월식 때의 활약이야 ‘참회의 권능’ 덕분이고, 평상시에는 끽해봐야 사제 한 명의 역할을 하는 게 다였다.
“전하께서 저희에게 전해주신 지식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 않습니까.”
그거야 기본도 안 된 이들이었으니 당장에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고. 그 외에 더 가르쳐 줄 수 있는 의학 지식들은 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하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사제 한 분 한 분의 영향력이 워낙에 큰 상황이라 전하께서 손길을 뻗어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저희 의원들은 얼마나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싶을 정도라.”
“뭘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 그렇잖습니까. 사제 분들이야 힐데스하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선택받으신 분들이고, 저희는 그냥 곁눈질로 배우기만 해도…….”
“야.”
칼로스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내가 가르쳐 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저들은 지혈을 통해 상태의 악화를 막는다거나, 상처 부위를 절개하여 사제들이 성력으로 치유하는 것을 원활히 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칼로스의 생각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생에서 평생토록 의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듣기 싫은 소리였다.
왠지 모르게 칼로스가 전보다 주눅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도 그런 회의감에 빠져 있는 것 때문일까. 이건 조금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다 너처럼 생각하는 거야?”
“예?”
“거기 있는 사람들, 다 너처럼 생각하는 거냐고.”
나도 모르게 말이 차갑게 나가자, 칼로스가 당황한 채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제분들이나 병사분들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 저희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저희가 노력한다 한들, 결국 직접적인 치유는 사제분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따라와.”
칼로스의 말을 자른 채로 발을 옮겼다. 칼로스는 부리나케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향한 곳은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성벽 위였다.
“거기 오른쪽 조심해!”
“비켜. 안 비키고 뭐 하는 거야! 신참,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그러다가 골로 가는 거 한순간인 거 몰라?”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함성이 들려오는 곳. 모두가 목숨을 걸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광경은 여전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한 이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동, 전투 중지! 중지! 신성 제국 힐데스하임의 3황자 전하께 예의를 표하…….”
“됐어. 하던 거 계속해.”
“예?”
“앞에 오크들 두고 뭐 하는 거야? 빨리 하던 것들 해!”
내가 소리를 지르자 몸을 숙이려던 이들이 머뭇거리며 전투를 재개했다. 지금은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너도 일단 거들어.”
칼로스를 의원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나서, 나도 사제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성력만으로 해결이 되거나, 내상이 심각하여 의원들이 절개해 둔 환자들을 성력으로 치유했다.
“오셨습니까?”
사제들이 간간이 인사를 건네왔다.
“너희도 의원들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예?”
“저쪽에서 그러더라고. 자신들은 있으나 마나인 것 같다고.”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들과 합세하면서 성력의 효율이 거의 배로 올랐다고 봐도 되니.”
“다행이네. 너희는 그렇게 생각 안 해서.”
혹시나 사제들이 그런 생각으로 의원들을 무시해 왔기에 칼로스가 그런 열등감을 느낀 거라면, 화가 더 치밀어 오를 뻔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며 슬슬 몬스터의 침공이 줄어들 무렵.
“의원들은 전부 모여봐.”
발칸 제국의 의원들을 불러 모았다. 한쪽에 서 있는 칼로스를 앞으로 불러냈다.
굳이 칼로스가 했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저들의 눈에 칼로스가 잘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대들이 하는 일에 불만이 있나?”
“……?”
의원들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성력이 의술보다 월등하고. 의술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거야.”
의원들은 대답 없이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칼로스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 대답이 전하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일 수 있으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칼로스의 말에 힘입어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 의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의술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
당장 나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성력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그게 내가 가진 의학 지식들로 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술의 한계는 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거기 환자 데리고 와 봐.”
“지금 사제께서 치료 중이신 환자라…….”
“내가 치료할 테니까 데려와.”
복부 쪽 대동맥을 다쳐 출혈이 심하던 병사였다. 의원들이 절개를 마치고 이제 막 사제가 혈관을 재생시키려던 찰나였다.
“잘 봐. 당장은 어렵겠지만 너희도 언젠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해야만 하고.”
나는 미리 제작해 둔 작은 실과 바늘을 꺼내 들었다.
확대경 달린 안경도, 숙련된 어시스트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거였으니까.
오